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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논평] 꼼수가 아니라 소통 _홍익학당. 윤홍식. N006

Buddhastudy 2017. 3. 3. 18:07


 

당신들은 이걸 하셔야 됩니다. 민심의 본질이 양심이다. 왜 이 얘기를 드리냐 면 지금 국민이 이렇게 성이 나 있는데, 이게 잠잠해 지길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정치인들이. 즉 국민 안에서 양심이 울부짖을 때요, 그 양심을 각성시켜서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도록 창조적 해법을 제시해야 될 분들이, 양심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어느 세월에 우리 국민이 다시 양심이 타올라서 양심국가를 만듭니까?

 

뭐랑 똑같냐 하면, 여러분이 늘 이기적으로 사시다가 모처럼 한번 양심 타오를 때 있죠? 그때 양심 성찰하면서 양심이 뭔지 연구하실 수 있는 최적기에요. 이 시기 놓치고 다시 마음식고 나면요, 양심노트 거들떠도 안봅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되는데,

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거죠.

지금 정치인들이.

 

이건 제가 볼 때요, 정치 기본을 모르시는 거 같아요. 민심을 안 믿고 계세요. 그렇게 민중이 주인이라고 부르짖던 분들마저도 지금 민중의 마음 안에 양심이 있고, 그래서 무서운 거다.” 하는 거를 못 읽고 계시더라고요. 이걸 가지고 자꾸 계산을 하세요. “이번에 우리 당이 이걸 통해서 뭔가 재미를 보려면 뭘 해야 되고, 그러면 우리가 지금 나아가야 되냐 말아야 되냐.” 이 계산의 근거가 우리 당의 당략이더라는 거죠.

 

국민의 양심의 구현이 아니라, 그게 저는 안타까워서. 그 얘기를 어떤 정당 하나라도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제가 12년 전에 학당 열 때요, 양심 얘기를 제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할 거 같다는 그런 이상한 의심이 들어서 열었습니다. 실제로 안 하시더라고요. 도 닦는데서 양심 얘기 하는데 보셨어요? 요즘 양심 얘기 많이 해요. 저희가 하도 설치니까, 다른 단체에서요, 제 강의를 지금 베껴서 양심 얘기를 써먹는 거 많이 봤어요.

 

갑자기 그 전에 양심 얘기 안하던 분들이 갑자기 양심을 주장해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위험하다고 봤어요.

 

본인이 양심을 안 하면서

양심 주장하면요,

오히려 조직 깨져요.

안하는 게 나아요.

 

우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 모였다. 그러면 뭉치는데요,

갑자기 그런 분들이 양심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서로 허점이 보여서요, 못 있어요.

정신 차리면 못 있는 다고요. 거기에.

 

그러니까 학당이 양심노트를 강조한다는 거는 도대체 어떤 각오겠습니까? 저부터 양심 그 분석의 대상이 될 텐데, 그 얘기를 왜 할까요? 이것만이 답이니까요. 그리고 비판받고 비판도 하면서 성숙해가는 게 양심공부니까요. 그거 무서워해서는 공부를 아예 못해요. 지금 정치두요, 저는 정치인들이 무슨 답을 안 갖고 계셔도 되요. 제가 안타까운 게 이거에요. 다들 뭔 묘수를 찾고 계신지, 별게 아니라, 쉽게 말하면 탄핵, 하야, 그거가지고 싸우시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국민의 마음을 나는 읽어내고 있다. 국민들아. 양심 밝히는 게 우리의 비전이다. 우리는 이리 가야 된다.” 이런 말도 못하더라는 거죠. 구체적인 뭔 대안을 안 내놓더라도, 국민의 양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셔야 소통이 일어나는데, 소통이 안 일어나면 끝입니다. 내가 나중에 묘수를 내놔서 국민이 다 그때 지지해 줄 거야. 그런 계산 때리고 있는 게 꼼수라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국민이 아파하잖아요.

계속 소통해 줘야 되요.

 

여러분이 부모님이고 자녀가 아프다고 그러면 약도 없어요. 뭐하시겠어요? 약이 없더라도 계속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하고 그 아픈 사람과 공감해주면서 소통해 가야되죠. 그 모습 자체를 안보이니까 지금 제가 이렇게 열 받아서 얘기하는 겁니다. 자꾸 지금 당선, 자기가 떨어질 거냐, 당선 할 거냐, 따지고 계시거나 뭔가 짠하고 등장하시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니까요.

 

우리가 왜 월급 주는데요,

우리 조금 가려울 때 긁어달라고 월급 주고,

우리가 평소에 다 받들어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우리가 힘들 땐 안보여요.

이런 게 저희 창당의 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