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깨어있음

윤홍식_홍익학당, 대학에서 배우는 철학의 요결

Buddhastudy 2017. 3. 3. 20:55


 

, 요즘은 제 철학 강의와 정치 강의가 자연스럽게 자꾸 만나고 있습니다. ? 제 머릿속에서 하나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 이제 연결해서 대학 강의로 가볼게요. 대학은 여기가 우리 양심이죠. 대학에서는 양심을 뭐라고 불렀죠? 명덕明德. 대학 식으로 가볼게요. 대학 식으로 설명하면 명덕입니다. 우리 안에 명덕 있다. 그래서 이게 영혼육으로 치면 영이죠. 여기가 혼. 제일 바깥을 육이라고 했을 때. 오늘 이렇게만 그려놓고 할게요. , , 제일 바깥을 육이라고, 감싸고 있는 걸 육이라고 합시다. 기독교에서 이러는 것을 유교에서 명덕이라고 불렀다는 거.

 

노자도 똑같아요. 유교랑 노자사상 똑같아요. 노자가 공자님의 선생님이기 때문에 노자는 이 명덕을 현덕이라고 불렀습니다. 현묘한 덕. 현묘하다는 건 세상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현묘하다는 건 세상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니에요. 절대계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현묘한 거예요. 시공을 초월해 있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말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노자에 그렇게 나와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다. 말 할 수 없다는 거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그 자리가 현덕이라는 거예요.

 

그 현덕이 우리 안에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우울한 정치얘기 했더니 좀 깝깝하시죠? 그건 혼의 영역이 깜깜한 겁니다. 혼이. 혼은 뭐로 이루어져있어요? 생각, 감정, 오감, 이 오감은 육체랑 함께 작용하죠. 육체를 통해 작용하죠. 그런데 결국 생각·감정·오감은 사실은 혼이죠. 생각은 또 둘로 나눠요. 지성적인 작용과 의지적인 작용. ‘하고 싶다.’ ‘땡긴다.’ 하는 거랑 판단하는 거옳은가, 그른가 판단하는 거. 이게 다에요.

 

여러분이 지금

몸뚱이, 영혼육을 갖고 계시다는 거는

이런 구조로 갖고 계시다는 겁니다.

이걸 잘 활용하시기 위해서 철학공부를 하는 거고,

대학이라는 책도 정치인이 되려면

이걸 잘 활용하는 철학자가 먼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철학자가 안 되고

올바른 정치 할 수 없다.

 

플라톤이랑 생각이 똑같아요. 동양의 대학은.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이랑, 동양의 대학이라는 책은 다 그대로 연결된 책입니다. 그런데 명덕이라고 불렀다는 게 재미있죠. 명덕. , 이거를 인도식으로 말하면 인도에선 공이라고 불렀단 말이에요. 이 자리를. . 혼과 육이, 생각·감정·오감을 초월한 자리를 공이라고 불렀는데, 이 동양에서는 명덕이니, 현덕이니 하고 덕이라는 말을 썼단 말이에요. 이게 약간 다르죠. 느낌이. 이 안에 인의예지의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의 덕이 꽉 찼다는 거예요. 그래서 명덕이라고 그래요텅 빈 거 같죠. 텅 비어있는데 그 안에 지혜와 자비와 능력이 꽉 찼다는 거예요. 덕이. 전지, 전능,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얘기에요. 텅 빈 하느님이 아니라.

 

인도는 텅 비었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걸 좋아하고,

동양에서는 여기서 인의예지가 나온다는 걸 강조하고,

서양은 또 거기에서 진선미가 나온 다는 걸 강조해요.

 

진선미 덩어리에요. 그러니까 인도철학도 결국 대승불교에서 어떻게 공이 단순한 공이 아니라, 이 안에 육바라밀의 덕이 꽉 찼다는 거예요. 요즘 제가 쓰고 싶어도 못 쓰는 말들이 있어요. 동양에서 이걸 오덕이라고 그랬어요. 오덕. 진짜로 선비들 문집에서 오덕이라고 불러요. 오상이나 오덕. 인의예지신을. 오덕이 요즘 오타쿠를 의미하잖아요. 육바라밀을 한문으로 하면 육덕이에요. 육덕. 십바라밀은 십덕이 되고. 그러니까 이게 쓰고 싶은데.

 

왜냐하면 바라밀이라고 하면 인도 말이잖아요. 한문으로 표현해서 우리식으로 이렇게. 우리식이라는 게 꼭 한글은 아니지만, 한문으로도 유교개념들하고 일치시켜서 이해하게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 요즘 그런 의미들이 다 그렇게 좀 범상하게 쓰여서. 좀 상스럽게 쓰여서. 상서럽게가 아니라. 상스럽게 쓰여서. 사실 육바라밀이 뭔지 이해하시려는 데, 육덕이에요. 6가지 덕이, 그러니까 공 안에 6가지 신묘한 덕이 꽉 차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공이 보시_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베풀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공이 여러분을 어디로 끌고 가요? 계율을 지켜요, 유혹을 이겨내서 계율을 지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힘이에요. . 사랑과 힘. 그런 사랑, 그런 힘. 반야라는 지혜, 옳고 그름을 선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거고, 보시는 사랑까지 포함해서. 능력이면서 사랑이죠. 나머지 것들도요 다 결국은 능력이에요.

 

인욕이라는 건요, 참아내는 능력, 그 힘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정진력_정진하는 힘.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양심을 끝까지 구현해내는 힘이 우리 참나 안에, 공 안에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있는 힘. 욕심에 물들지 않고, 항상 욕심에 벗어나 있는 그 선정력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참나 자리가. 6능력을, 저게 기독교로 말하면 성령의 열매죠. 성령 자체고, 성령이 우리한테 주는 열매가 저 6가지 덕을 줘요. 누구한테 주죠? 혼한테요.

 

이 명덕이

혼한테 선물을 주는, 이걸 은총이라고 하는 겁니다.

은총이니 가피니 하는 거예요. 열매이니 하는 게,

 

이 안에 씨앗으로 있던 게

혼을 통해서 발현된 거라는 거죠.

 

열매라고 부르는 느낌은 뭐죠? 뿌리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그렇죠? 여기에 열매가 여기서 맺힌다는 거예요. 열매는 어디서 맺혀요? 혼에서요. 영은 뿌리기 때문에. 잠재력이라고 그래요. 잠재력. 사실은 잠재력이 아니에요. 그 자체는 이미 완전한 능력과 완전한 사랑, 완전한 지혜, 그 자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몰라]하고 참나랑 하나가 되는 순간, 양심과 하나가 되는 순간, 거기에 어떤 문제도 없어져요.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 생겨요? 한 생각이 일어나면서 생겨요.

 

혼의 세계에 여러분이 들어오시면 생각도 시원찮고, 다 시원치 않아요. 판단도 시원찮고, 뭐 좀 해보자고 그러면. “양심하자하고 진리를 캐자하고 인터넷 켜면 꼭 엄한데 가 있어요.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뭐 어쩐다더라.” “충격뭐 이런 데 가 있단 말이에요. 학당강의 들으려고 유튜브를 딱 켜서 다 켜려고 하니까 충격” “극형” “이런 거 절대 보지 마시오.” 그러면 또 보게 되고, “절대 보지 마시오.” 하면 한번 봐보고 싶고.

 

자극적인 거에 너무 약하죠.

의지력도 약하고,

지성도 약하고.

감정도요, 희노애락 조절이 안 돼요.

 

엄한데서 너무 막 흥분해 버리고 이래서 이게 결국 우리 또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이 우리 안에서 소화가 안 되어서 이 오감을 실제 쓰는데 있어서 절제가 잘 안 돼요. , 이게 우리 실존입니다. 요거 생각·감정·오감 바로 잡히면 여러분이 몸을 통해서 사실은 그 진리를 다 구현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명덕의 화신이 되요. 혼과 육을 통해서 우리가 표현할 때 화신이라고 해요. 아바타라고 하죠. 양심의 아바타가 될 수 있어요

혼과 육이 양심의 뜻대로 굴러가면 양심의 아바타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아바타가 화신입니다. 화신이 될 수도 있어요. 아바타가 인도 말이죠. 인도 말. 화신. 신의 화신. 신의 화신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신의 화신을, 아바타를

기독교에서는 뭐라고 하죠?

성자에요.

성부의 분신이라고 해서

성자라고 하는 겁니다. 성자.

 

불교에서는요? 보살.

불성을 지닌 중생이기 때문에 보살.

다른 말로 성자의 상응한 말이 불자.

불성의 자녀죠. 불성의 분신.

 

불성은 눈에 안 보여요. 공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보이죠? 저 보이시죠? 생각·감정·오감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거 느껴지시죠? 그럼 저는 제가 만약에 이런 생각·감정·오감을 진리를 위해서 쓰면 저는 불자가 되고 성자가 되고, 보살이 되고, 아바타가 됩니다. 신의 아바타. 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해요. 신이 있다면, 신이 옳다고 할 걸 옳다고 하고, 신이 하고 싶은 걸 의역해주고, 이게 제일 성스러운 작업니다. 신이 원하는 걸 의역해 주고.

 

내 감정을 사사롭게 쓰지 않고,

아버지 뜻대로 감정을 조화롭게 쓰고,

오감을 아버지 뜻대로 이 오감을 쓰면,

우리는 찰나라도 우리는 성자가 되요. 찰나.

 

저희는 찰나 찰나하자는 거예요. 오래는 못해요. 그러니까 찰나찰나. 금방 의지가 다른 데를 향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가면, 이럴 때 좌절하시면 안 됩니다. 중생으로서의 어떤 그런 자각이 없으신 거예요. 여러분 중생이에요. 현상계는 무상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의지를 냈더라도 찰나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금방 딴 데 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줄 알고 다시 돌리는 게 여러분이 하실 일이지, “어떻게 내가 이거밖에 안 되지? 이럴 일이 아니에요.”

 

왜냐? 제가 장담하건데 죽을 때까지 그러실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로 좌절하시면 안 돼요. 이건 일상사로 아셔야 되요. 가면 아무 말 안하고 다시 그냥 데려다 놓으면 되요. 이해되시죠? 가면 데려다 놓고. 고수는 나가면 데려다 놓으면 고수에요. 지금 이순간은 항상 여기 있게 만들면 고수, 하수는 나갈 때 나간 거 가지고 타박하다가 더 멀리가요. “아까라도 돌아갈 걸.” 하는 그런 상황을 계속 만들어 냅니다. 하수에요. , 이게 다에요.

 

정말 성스러운 일이죠. 최근에 그 광고, 금연 상품 광고 대게 딱 좋아요. 어떤 사람이 담배를 피우려다가 참았어요. ‘이것도 금연입니다.’라는 거예요. ‘방금 참은 그것도 금연이다.’ 마찬가지로 똑같아요. 한 생각이 사적으로 작용하려고 하는데, 우주적인 주권자로서 육바라밀 법에 의거해서 마음을 인의예지신에 의거해서, 명덕의 명령대로 마음을 추스렸다.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하면 여러분 찰나지만 여러분은 감히 성인으로서,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의 모습을 그 순간 한 거예요. 훌륭하죠.

 

그거에 대해서 대게 뿌듯해 하셔야 됩니다. 찰나찰나. 다시 돌아간 거 가지고 실망하지 마시고, 자꾸 자꾸 나는 성스러운 모습을 내가 할 수 있는 스킬을 얻었다는 거에 만족하셔야 되요. 이대로만 내가 계속 하면 죽을 때까지 엄청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끼셔야 되요. 좀 유불기를 좀 섞어서 해봤습니다. 유불선기. 기독교, 도교, 불교, 유교. 다 하나다. 요거만 아시면 다 통한다.

 

그러니까 동양 예전에 선비들 받아서 정치인을 키워야 되는데, 이런 군자 보살을 안 만들어내고 어떻게, 이 양반들한테 원래 정치를 맡기면 안 돼요. 군자 보살 아니면. 맡기면 안 돼요. 무조건. 무조건 맡기시면요, 사기당하시게 되어있는 거예요. 별수가 없어요. 그 사람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사람 처지가 되어보세요. 양심을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데 당선되려니까 양심얘기를 했어요. “그럴 수 있잖아요. 결혼하기 전에 좀 사기 칠 수 있는 거죠. 결혼하는 데 그걸 진짜로 진지하게 요구해오면 안 되는 거죠.” 이렇게 생각한다니까요. 진짜로.

 

이런 사람들한테서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라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사기꾼들한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너도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너도 해. 왜 나한테 와서 그래? 질투 하냐? 부럽냐?” 전혀 관점이 달라요. “부럽냐?” 양심 얘기하던 사람은 뭐 되는 거죠. 전혀 논리가 다르니까. 이해되세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셔야 되요. 지금. 겉은 멀쩡해 보여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봐도 양심 연구하는 사람처럼 보일만하게 하게 해요. 진짜로. 제가 놀랜다니까요. 저건 진짜로 연구한 사람 같아요. 철학을 한 사람같이 말을 해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자기한테 도움이 되면 귀신같이 갖다 쓰고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 좀 신통이 있어요. 이 사람들. 그래서 진짜처럼 보이게 위장을 하고 있어요. 전문가가 봐도 바로 안 보일 정도로. 그래서 국민들이 힘드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국민이 주권자니까, 리더들만 대학 공부해서 되는 거예요. 국민 전체가 해야 되요. 기본적인 소양 갖추어야 되요. 왜냐? 이제 뽑아야 되니까. 우리가 군자를 뽑아야 되니까. 예전에는 왕이 뽑아줬죠. 이제는 우리가 뽑아야 되니까, 우리가 다 같이 이 공부를 해야 되는 거예요.

 

반납하고 싶죠. 힘드시죠. 그냥 군주제로 낫겠다. 괜히 주권 받았다가 우리만 욕먹고, 우리가 쓸 수 있는 힘도 없고. 사실 이런 상황이에요. 배울 건 배웁시다. 고대부터 정치인은 무조건 양심 전문가가 되어야 된다고 확고하게 가르쳤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명덕을 끌어다 쓰지 않고 서는 절대 양심의 열매가, 그러니까 뿌리가 양심에 안 박혀 있는 데 어떻게 양심의 열매가 그 나무에서 맺을 수 있겠어요. 얻을 수 있겠어요. 수학할 수가 없겠죠. 그런데 우리는 뿌리가 양심에 안 박힌 사람들을 뽑아놓고 양심의 열매가 수확이 안 된다고 한탄한다는 거죠. 이거 심각하다.  

, 이게 대학이랑 또 어떻게 연결 되냐 하면요, 대학얘기만 좀 잠깐하고 가는 겁니다. 대학이라는 학교에서 뭘 가르치냐?

 

格物致知격물치지. 사물을 연구하면서 옳고 그름을 연구해서 지혜를 이룬다. 이게 지성의 영역 아닙니까? , 명덕, 우리 안에 있는 인의예지의 그 광덕의 덕을 다시 밝혀내려면 지성이 어떻게 명덕을 담죠? 지성이라는 그릇이, 여러분 안에 있는 혼 중에 지성이라는 그릇이 명덕을 담아내려면, 있는 그대로 진실을 진실이라고 인정해야 되겠죠. 판단할 수 있어야 겠죠. 이게 맞다. 아니다를. 그래서 사물을 연구해서 본질까지 파헤쳐서 지혜를 이룬다가 지성이 명덕을 담아내는 방식입니다. 의지는요? 격물치지 다음에 뭐 있죠?

 

聖意성의. 정성스러울 성, 항상 말을 이루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옳다고 선악을 판단했으면 선을 끝까지 의역하라는 거예요. 의지가 명덕을 담아내는 방식은 선을 끝까지 의역해주는 거예요. 성실하게 진실하게. 진심으로 선을 원해주는 게 성의입니다. 그러면 감정에서 어떻게 되죠?

 

正心정심. 마음이 감정이 올바르게, 희노래락이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어요. 정당한 분노도요, 희노애락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면 빨리 돌아오셔야 됩니다. 정당하지 않은 선까지 가버려서 그래요. 정당하게 시작해요. 양심에서 시작해요. 그런데 멀리가요. 사람들은. 거기 사심을 자꾸 보태기 때문에. 정당하게 양심적으로 뭐를 좀 해보려다 결과를 보면 아주 엉망인 경우들은 가다가 변질됩니다. 정심을 이룰 수 있어야 되고요,

 

五感오감이라는 건 몸뚱이죠. 정심,

修身수신. 몸뚱이가 닦인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오감의 사용이 다 절제를 이루게 된다. 양심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이 몸이라는 그릇을 가지고 명덕을 담아보면 이렇게 됩니다. 수신이 됩니다. 그러면 이게 다잖아요. 개인 수신은. 수신하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요? 제가. 가정에서는 제가. 나라에서는 치국. 천하에서는 평천하. 이게 다입니다. 가족, 나라, 천하.

 

예전 같으면요, 국가는 각 제국들 말하고, 천하는 천자 국이니까 중국이 천하구요, 중국 안에 있는 제휴 국들이 국가에요. 그럼 우리나라로 치면요, 우리나라가 천하고 지자체들이 국가에요. 여기서 말하는. 격물치지 수신제가 치국평천화. 그런데 요즘 같으면 이제 세계화 시대잖아요. 지구촌 시대에서는 이 개념을 더 크게 잡을 수 있죠. 국가 단위는 우리 지구전체, 천하를 지구 전체로 확장해서 보시는 게 좋죠.

 

다 뭐했죠? 영혼육에서 영의 뜻대로 혼과 육을 경영하는 팁이 이 八條팔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입니다. 이걸 팔조목이라고 그래요. 팔조목은 三綱領삼강령으로 요약 되요. 삼강령은 뭐죠? 3가지 강령. 이거 보면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수기죠. 나를 닦는 거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치인이죠. 남을 닦는 거죠. 두 개죠. 두 개로 나뉘죠.

 

그러니까 삼강령은 첫째 나를 닦아야죠. 대학지도는 제明明德명명덕. 광명한 덕을 다시 온전히 내 몸에서 밝히는 데서 있다. 일단 일차적으로. 내가 내 안에 있는 광명한 덕을 온전히 밖으로 밝히는 데 있다. 내 몸에서 명덕을 소화해내는 측면을 강조하고, 그 다음에 온 백성이 양심적으로 살 수 있게 새롭게 하는 도와주는 데 있다. 수기치인. 2강령이죠. 마지막 3강령, 양자가 최선의 경지에 나갈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 止於至善지어지선. 지극한 경지에 머무르게 하는 이 2가지가 다. 최선이 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이 대학의 건학이념은 3강령에 들어있습니다. 수기치인, 그리고 둘 다 최선의 모습을 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최선의 모습이라는 거는, 결국 궁극의 최선의 모습도 있겠지만, 중요한 거는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이에요. , 이 나라에 지금 적용해 보죠. 이 나라 정치는요, 철학공부를 통해, 지금 대학 가셔서는 이런 공부 못 배웁니다. 고대 대학에서 가르쳤다는 얘기지 지금 대학에서 이거 안 가르쳐요.

 

지금 그러면 공부 못하느냐. 아니죠. 홍익학당이 대학이에요. 그러니까 홍익학당에 오셔서 온라인 강의 들으세요. 사이버대학 다니는 기분으로 제 유튜브 강의를 진지하게 들어보세요. 우리 홍익학당에 모든 콘텐츠는 고대의 대학에서 가르치던 거를 현대적으로 가르치려고 만든 거니까요,

 

수기치인,

자신의 양심을 밝히고

그 양심을 가지고 이웃과 주변을 화목하게 화평하게 만들고,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가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데 있다.

이게 대학이라는 학교의 건학이념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대학에서 길러내고 싶은 인제상이 우리가 말한 양심지킴이인데, 즉 군자인데, 이 군자는 어떤 존재죠? 자신의 양심을 밝혀서, 첫째가 자신의 양심을 밝혀야 되요.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은 가정도 나라도 천하도 절대로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다는 게 전제되어있습니다. 즉 선악판단이 잘못되어 있으면 다 잘못 되요. 지금 우리나라에 문제 있는 정치인들이나 문제 있는 세력들은 이게 잘못되어있는 거예요. 선악판단이 잘못되어있어요. 철저히 자신의 편견을 선이라고 생각해요. 선악판단을 바로잡아 놓으면.

 

보세요. 인간은요, 이렇게 프로그램 되어있다는 거예요. 양심에 맞게 선악 판단만 해놓으면, 선을 의역하게 되어있고, 악은 미워하게 되어있고, 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조화를 이루게 되어있고, 몸가짐이 절제를 이루게 되어있고, 가족한테 잘하게 되어있고, 나라에 등용되면 국민을 잘 다스리게 되어있고, 천하를 화평하게 만들 수 있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시작이 어디에요? 명덕에서 시작 되요. . 이게 명덕을 발현한 것뿐이에요.

 

원래 여러분 안에 있는 능력을 발현한 거뿐이기 때문에, 대학의 첫 번째 강령이 사실은 이 전체가 명명덕이에요. 내 양심을 발현했을 뿐이요. 그런데 제 개인적 입장에서는 양심을 발현한 거고, 다른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다른 분들 양심까지 각성시킨 거죠. 그래서 원래 명명덕 하나면 다 끝이에요. 그런데 굳이 나누면 명명덕과 치인을 나눠볼 수 있는 거죠. 나와 남의 입장을 두 개로 나눠보면서. 삼박자로 설명해보면, 둘 다 잘 되는 게 또 삼강령의 마지막 강령으로 붙는 거죠.

 

대학 강의 간단하게 했습니다. 이게 대학 전부에요. 이 대학의 구조는 머리에 넣어서 다니세요. 여러분은 그러면, 선비학교 군사학교에 다니시라는 거랑 똑같아요. 그러면서 제 유튜브나 다른 고전강의를 들으실 때 항상 이 구조 에서 들으셔야 되요. ‘나는 이 강의를 듣고 선악판단을 더 바르게 하겠다. 그래서 내 수기치인의 팁을 더 얻겠다.’ 이런 관점에서 살아가시면, 요즘 프랭클린 플래너, 이런데 보셔두요, 다 똑같아요. 거기 체크하게 되어있어요.

 

한 사람의 개인 차원부터. 지성, 감성, 몸가짐, 가정, 회사에서 자기 역할 제대로 하나, 다 체크하는 표가 있습니다. 그거 보면 똑같아요. 대학이 더 정밀해요. 오히려. 대학은요, 영성관리까지 시켜요. 영성. 요즘 또 영성이 유행하니까 영성도 많이 넣었습니다마는 영성, 고대부터 영성부터 시작해요. 영성, 지성, 의지, 감성, 오감, 그리고 가정, 사회, 이렇게. 치국이나 평천하를 사회로 놓고 보면 다 들어오죠.

 

이 관리를 매일매일 해나가는 분이 군자고 선비에요. 이게 찰나찰나, 그러니까 내일 생각하지 말고, 내일 금연도 왜 그런 광고가 나왔겠어요. 제가 예전부터 강의 때 하던 얘기잖아요. 한번 참는 것을 대게 의미 있게 하시라구요. 왜냐? 오늘 담배를 참았는데, 생각해보세요. 내일 까지 생각하면, 어차피 내일 필 텐데, 내일은 질 텐데, 오늘 겨우 이겼지. 이 욕망을. 내일은 이긴다는 자신이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면 오늘도 무너져요. 그럴 바에 오늘 피우자가 되요. 어차피 내일 필 텐데 오늘 피우자.  

, 그런 얘기 제가 예전에 많이 드렸잖아요.

 

오늘만 생각하셔야 되요.

지금 이 상황.

이 상황에서 양심 51%이겨내는 것만 신경 쓰셔야지,

내가 이런다고 이 나라가 양심 51%가 되겠는가.

나 또한 내일 또 양심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여러분 마음으로 핍박하면,

자라던 양심의 싹이 죽어버려요.

 

그래서 항상 지금 이 순간만 신경 쓰시라.

이러기 위해서 [몰라. 괜찮아]를 제가 지도해 드린 거예요.

[몰라 괜찮아]를 엄청 해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어요.

 

잡념들을 막아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을, 몰입을 해야만, 이 상황에서 멋진 작품 만들어 냅니다. 내일 노시라도 멋진 작품 만들고 오늘 노셔야지요. 내일 망가지더라도. 아니 유명한 이외수 같은 작가가 매일 명작을 만듭니까? 아니에요. 이 분 한 작품 쓰고 나면요, 또 한 몇 년 쉬어요. 충전의 기간이 필요해요. 여러분도 양심전문가로서 양심 작품을 만드신다면, 오늘 멋진 작품 만들고 좀 쉬세요. 개콘보고 좀 쉬세요. 그랬다가 또 하나 만들고. 또 하나 말들고. 아주 무너지지만 말자하는 정도로 양심을 관리해 가시면, 매일 매일 멋진 작품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게 의미 있는 건데. 그래서 저희 양심 노트에 여러분이 만든 양심 작품을 뒤에 쓰게 되어있어요. 작은 일이라도 내가 승리했던 역사를 쓰라는 거예요. 그럼 힘들 때 승리했던 역사 목록만 쫙 봐도 내가 그래도 꽤 이겨내고 있었잖아. 거기에 희망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게 대게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관리 할 때는. 이해되시죠. 무슨 말씀인지.

 

, 그래서 매일매일 승리하시기를. 승리하시고, 좀 쉬세요. 어떻게 전투를 계속해요? 작품하나 만들었으면 쉬세요. 가족을 위해 뭔가 내가 한 거 같으면 뿌듯해 하시면서 쉬세요. 쉬었다가 막말만 하지 마시고 가족이랑, 좀 양심적인 게 좀 힘들더라도 좀 버티시다가 또 한 번 멋진 만들고 빠지고, 이렇게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요. 그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우주는 계속 밝아지고 있다는 거.

그런 분들로 인해.

 

그런데 불가능한 조건을 자기한테 걸어요. 성인도 아니면서 매순간 양심적으로 살기를.” 그런데 그게 매순간에 집중하는 말이면 좋은데, “계속 그래야지하면 힘들어져요. 매 순간순간에 몰입을 하시다면 이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이어질 거 먼저 걱정하면 못해요. “어차피 내가 좀 있다가 안할 거 같은데. 끊어질 거 같은데.” 하는 그 걱정 때문에 먼저 무너져요. 그래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이게 실전 팁입니다. 그래서 이게 보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