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4_5. 통도사에 내려오는 아주 기이한 이야기

Buddhastudy 2017. 3. 24. 20:11



통도사에 또 내려오는 아주 귀한 얘기가 있는데, 조선말기의 일입니다. 용학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용학스님이 저 영변의 서광사에 계실 때인데, 영변의 서광사에 있으면서, 해마다 어느 때가 되면 오산에 있는 수암사라는 절에 와서 꼭 차 석 잔을 얻어 마시고 가는 꿈을 꾸었어요. 그래서 십수년 계속 꼭 하필이면 그날, 아주 선명한 꿈을 꾸니까, 기록을 해 뒀습니다. 꼭 한날한시, 바로 그날이었어요.

 

그래서 내심 내가 이 오산 수암사 하고 무슨 인연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쭉 하면서 살고 있는데, 한번은 오산 수암사에서 왔다는 객성이 자기가 거취 하는 영변에 서광사까지 오게 된 거죠. 물어봤어요. “당신이 수암사에서 왔다죠?” “. 그렇습니다.” “그러면 수암사에 생긴 모양이 이러이러합니까? 물길은 어떻게 되어있고, 현판은 어떻게 달려있고, 또 가람은 어떻게 배치되어있습니까?” 하니, “아이고 스님이 어떻게 다 아느냐고.” “내가 꿈에서 봤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혹시 그날 무슨 날입니까?” 했더니, 스님이 하는 얘기가 우리 중창주, 우리 절을 크게 일으킨 중창주 스님의 제일일입니다.” 돌아가신 날입니다. 그래요. 돌아가신 날이니까 제사를, 절에서도 돌아가신 날을 기념해서 늘 제사를 다 지냅니다. 모든 절에서. 우리도 세속에서도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 지내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까, 절에 와서 평생 위패를 모시거나, 또는 당일 날 기제사날 제사를 올리고 그렇게 하잖아요.

 

집에서 제사지내는 문제, 또는 추석에 차례지내는 문제 때문에 불교 안 믿는다. 이런 사람도 있죠. 그래서 다른 종교로 가니 마니 하는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은 절에 오면 돼. 절에. 절에 그냥 제사를 붙이거나 기제삿 날, 또는 설 추석에 차례 때, 절에 와서 지내면 깨끗해요, 아주. 그래서 그런 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에서 설 추석, 차례지내는 것처럼, 또 스님들도 설 추석에도 먼저 가신 스님들 차례지내고, 또 기제삿날도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용학스님은 이 수암사에 중창주 되는 스님, 그 스님 기젯날 가서 자기가 차 석 잔을 얻어 마시고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딱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러면 오산 수암사 중창주였구나.”하는 거를 직감하게 되요. 그거를 우리가 차 얻어 마시고 하는 것도 어쩌다가 얻어 마시는 거 하고, 하필이면 그날 가서 꼭꼭 얻어 마시는 거하고는 다르거든요. 주인이기 때문에 꼭꼭하게 되는 거죠. 거기서 또 축원하니까 부르니까 가는 거고.

 

그래서 , 내가 수암사 중창주였구나.”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그 중창주스님이 그렇게 절을 많이 크게 일으키셨는데, 혹시 전해 내려오는, 평소에 중창주스님의 평소의 원, 그 원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모든 스님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거든요. “나는 뭘 좀 하겠다. 뭘 좀 하겠다.” 그런 얘기를 잘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저 남구청 앞에 전세 있을 때부터 나는 33층 건물, 33, 33층은 아니더라도 33개 층 되는 그런 규모의 시설을 가지고 노인 분들을 모시는 그런 시설, 또는 학교 병원, 이런 걸 동시에 좀, 종합적으로 이웃들을 위한 그런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곧잘 했어요.

 

그랬더니 그때 당시에 우리 신도님들은 스님요, 전세나 면하세요.” 그랬어. 그런데 지금 와서 그분들이 저랑 같이 25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304050대 되는 분들은 지금은 60708090대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분들하고 가끔 얘기할 때면, “스님은 그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시더니, 지금 거의 다시 다 이루셨네요.” 그래요.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처럼 이 생에서 원을 이룰 수가 없었다면 다음 생에도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지금 하는 겁니다.

 

용학스님이 물어요. “그럼 중창주 되는 스님이 그러면 그 전생에 돌아가시기 전에 늘 무슨 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물었더니 저 해인사 8만 대장경을 전체 다 한번 복사를 해서, 전 모든 도량에 절에 시주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 원이 있었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종이가 귀하고 먹물이 귀할 때는 팔만대장경 저거 전체 한번 복사하기기 보통이 아닙니다, 저거는. 요즘 시가로 따지면 아마 분명히 수백억 이상 돈과 정성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스님은 내가 중창주 스님인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지금 나도 해인사 팔만대장경 저걸 인쇄를 한번 해야 될 건데,” 그 생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산 수암사에서 온 스님한테 그 얘기를 하니까, “아이고 스님이 그럼 중창주스님인가 봅니다.”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갔죠. 그래서 이 스님이 1896, 그리 오래된 세월이 아니죠? 1896년에 통도사가서 백일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또 이것은 불보살의 가피력이 아니면 또 힘든 일이다. 이래서 다시 또 해인사로 가서 백일기도를 하고.

 

계속 백일기도를 하면서 불보살의 가피력에 의지해서 원을 계속 다져갔는데, 드디어 1899년 이때에 큰 시주자가 나타났어요. 나라의 큰 시주자가 나타나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한부가 아닌 4부를 인쇄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4부로 되는 팔만대장경을 삼보사찰,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에 한부, 요즘 말로하면 한 질이죠. 한 질씩 시주를 하고, 한 질은 당시에 전국 조계종 사찰에 시주를 했다.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통도사에도 가보면 지금도 용학스님이 당시에 인쇄했다는 팔만대장경 인쇄물이 아직도 있어요. 잘 보존되어있는 거죠. 용학스님은 말년을 통도사에서 보내면서 마지막에는 살아서 치아에서 사리가 나오는 그런 기적도 보이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는 앉아서 , 이제 가노라.”하고 그냥 가셨다는 거예요.

 

요즘은 제가 물어보니까 9988234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 삼일 앓다가 죽는다. 이러는데, 이삼일 앓다가 죽는 거는 대보살이 못돼요. 그런 어떻게 죽어야 됩니까? 9988234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초 앓다가 죽어야 되요. 2 3초는 뭐냐? “, 내가 가야 되는데 몸이 좀 찝찝하네.” 그러고 가버려야 되요.

 

지금은 용학스님이 앉아서 돌아가셨다하죠. 앉아서 죽는 정도면 9988234가 되요. 우리 한국 불교대학에 와서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고 기도하고 수행하니까 분명히 99세까지 88까지 살다가 2, 3초 잠시 번민하다가 죽을 겁니다. 99세까지 버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