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5_4. 개미에 얽힌 일화, 대승보살

Buddhastudy 2017. 3. 30. 20:21



제가 살고 있는 무문관에도 그 개미가 많아요. 특히 세면장에 개미가 많아요. 이 추운데도 컵에 뭐 조금 단것이 있다거나 이러면, 세면장에 내놓으면, 언제 개미떼들이 그 냄새를 맡고는 다 모여 들어요. 그래서 세면장에 들어가기 어떨 때는 마음이 아주 불편해요. 물에 쓸려나가는 게 있거든요. 아무리 조심해도 쓸려 내려가잖아요. 그러면 아예 컵에 붙은 개미 때문에 물 안 가는데 올려놓고, 2~3일 기다릴 때도 있어요. 어디 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날씨가 추울 때는 바깥에 내놓을 수도 없고, 아무튼 이 개미가 늘 신경 쓰이게 하는데, 옛날얘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혼자 수행을 하는 그런 스님이었는데, 소승 선을 닦는 그런 스님이었습니다. 상좌가 하나 있었는데, 어린 동자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먼 길을 가게 되었어요. 먼 길을 가는데 당연히 짊어지는 괴나리봇짐 같은 것을 절에서는 걸망이라고 말해요. 걸망. 걸망을 하나 지고 가다가 당연히 그 어린 아이가 지어야 되는데, 스님도 어린아이라는 걸 감안해서 스님도 지고 그러다 애한테 맡겼습니다. 동자승한테.

 

동자승이 그걸 아주 힘겹게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는데, 계속 개미떼가 이어져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는 얘기가 동자승이 무심코 하는 말이 ", 내가 나중에 공부를 많이 해서 저 개미떼들을 내가 다 제도해야지. 저 개미들 내가 다 구제해야지."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노스님은 한 번도 자기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개미떼를 많이 봐왔지만, 저 어린아이처럼 "내가 개미떼를 다 구제하고 다 구원해야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 얼마나 대견스러워요.

 

자기는 한 번도 못했던, 마음을 내지 않았던 그런 애기를 하니까. 그래서 너무 미안해서, ‘얘야 내가 대승보살에게 저 무거운 짐을 지게 할 수가 없지.’ 속으로 생각하시고는 "야야, 그 걸망 내놔라." 어린 동자는 또 스승이 내놔라하니까 그냥 내 줬죠. 그리고는 앞에서 그 소년이 동자승이 나풀거리면서 혼자 앞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개미떼라는 것이 수십리 뻗쳐 있을 때도 있어요. 도대체 그 개미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럴 때가 있거든요.

 

수십리 길을 가는데 개미떼가 계속 이어져요. 개미 보는 것도 이제 지겨워. 그러니까 입이 참 문제죠. ?? 가만히 있으면 되었을 텐데, “아이고 개미떼들 더럽게 많네. 저거 내가 제도하다가 내가 먼저 뒤지겠다.” “저거 먼저 제도하려다가 내가 먼저 죽겠네.” 그 말을 듣던 옆에 노스님, 큰 스님이 속으로, 겉으로는 얘기 안하셔도 그럼 그렇지 네깟 놈이 무슨 대승보살이 되겠느냐.”

 

한국불교권 일본불교권 여기서는 대승보살이라는 말은 아주 극존칭 하는 그런 말입니다. 대승보살. 한번 때라 해봐요. 대승보살. 대승보살. 어찌 보면 홀로 수행하는 스님들보다도 대승보살이 더 높은 지위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이 비구계를 받고 비구니계를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계가 대승보살계라. 대승보살계를 받고 대승보살 한다면 그 사람은 어찌 보면 이미 공부를 다 한, 이미 마무리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여기 앉아있는 분들은 스님들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이런 수행을 다 이미 전생부터 다 해온 그런 바가 있어서 다 생략하고, 아예 대승보살행을 하려고 지금 세속에 살아있는지도 모르죠. 그게. 얼마나 좋은 일 하고 있는지는 모르죠. 지금. “본인 생각에 나 좀 좋은 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 아무튼 대승보살행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승보살이 다 되면 이 세상에 이대로 불국토가 되겠죠. 아무튼 그래서 다시 걸망을 동자가 받아 메고 목적지를 갔다. 이런 애기가 있어요.

 

하무튼 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스님이 동자의 운명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이 숙면통이라는 게 있잖아요. 숙명을 보니, 이 동자가 열흘 이내에 죽을 거 같아요. 동자의 운명을 보니까 그렇더라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는 애가 많아서 또 절에 갔다가 맡기는 수가 있었거든요. 아마 그런 경우 아닌가 생각이 되요.

 

그래서 동자들아, “너 부모님 보고 싶지?” 이러니까 부모님 보고 싶다.” 어린아이니까, 부모님이 보고 싶다 하니까, 그럼 집에 좀 갔다 올래? 그러니 이 애는 가만히 있다가 아주 횡재를 한 것처럼 부모님 보고 오라는 거, 그 만큼 더 좋은 말은 없거든요. 기분 좋은 말은 없어요. “, 그럼 스님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옛날이니까 떡도 좀해서 보내겠죠. 괴나리봇짐 작은 걸망을 하나 지고 혼자 가게 된 겁니다.

 

아마 속가 집이 한 20 30리 떨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10리쯤 가다가 물난리를 만났고 아무튼 그래서 돌아왔어요. 열흘 안에 분명히 확신을 하고 보냈는데 돌아왔어요. 그래서 노스님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거든요. 분명히 죽을 아이인데 돌아왔어. 그래서 그 동자승을 앉혀놓고 물었어요. “혹시 왔다 갔다 하면서 네가 좋은 일을 했다거나 특별한 일을 한 게 없느냐?” 이러니까

 

이 동자승은 자기가 좋은 일을 한 줄도 몰라.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스님께서 가라해서 저는 집에 가서, 부모님하고 그 부모님이 해준 음식 먹고 그냥 돌아왔을 뿐입니다.” “아니다. 네가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그럼 여기서 떠날 때부터 자세히 얘기를 해라 보라.” 자세히 얘기를 하다 보니, 10리쯤 가다가 저 위에서 물난리가 나서 물이 막 쏟아져 내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개울 한 가운데, 큰 나무둥치가 하나 걸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 개미가 꽉 들어앉아있는 거라. 우리 시골 살다보면 그런 일이 더러 있거든요. 개울 한가운데 흙섬, 또는 나무가 떠내려 와서 갇혀있는 수도 있는 걸 우리가 보게 되잖아요. 아무튼 그런 경우였던 가 봅니다. 그래서 이 동자승은 안타까워서 개미가 다 생명체인데 보기에 떠내려가면 안 되지.’ 이런 생각밖에 없는 거죠..

 

저 놈을 구해서 복이 되겠다. 안 되겠다.’ 그런 생각 자체가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어쨌든 저거 살려내야 된다.’ 그 생각으로 주위에 나무막대기 주워다가 다리를 놔준 거예요. 그러니까 개미들이 나무토막위에 놀다가 물이 치고 들어오는데 다리가 하나 놓여 지니까 다리를 타고 순순히 다 건너나온 거예요. 그래서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건너나온 뒤에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가서 놀다가 왔습니다.

 

그래, 너의 무주상, 네가 참 아무런 대가 없이 한 그 보시행,” 남의 생명을 살려주는 자체가 보시행이잖아요. “너의 그 선근공덕이 너의 수명을 연장시켰구나.” 이렇게 얘기를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무튼 아주 순수하게 하는 보시는 하되, 여기서 보이는 것처럼 보시했다는 생각 없이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