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7_4. 근기가 옅어지는 과정, 정법시, 상법시, 말법시, 신해행증

Buddhastudy 2017. 4. 10. 19:32



그런데 여기에 제1 오백세, 2 오백세, 3 오백세, 4 오백세, 5 오백세라고 하는 요것은 우리 중생들의 근기, 근기가 옅어지는 그 과정을 또 말하기도 해요. 잘 살펴보면, 처음에 절에 온 사람들, 아주 신심 있습니다. 그래서 해탈견고, 완전히 부처님하고 딱 하나 되는 그런 마음으로 오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참선도 좀 하고, 기도도 좀 하고, 선정도 좀 하고, 또 다문, 지금처럼 경전도 좀 배우고 이렇게 가지요. 그런데 이 신심이 차츰 차츰 옅어져요. 그래서 나중에는 불사에도 좀 동참하다가 제5 오백세 되면 절에 오래 좀 다니다보면 자꾸 사시비를 걸게 되고, 그 절에 가서도 잘난 척하고 상을 내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계바늘을 다시 거꾸로 돌려서, 아주 순수하고 천진했던 그 원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요.

 

1 오백세,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서 내가 공부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한다면 큰 문제는 없겠습니다. , 이러한 5단계의 불교의 변천과정을 얘기하는 수도 있고,

 

그 다음에 95페이지에 보이는 것처럼, 정법시, 상법시, 말법시, 이렇게 또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정법시. 상법시. 말법시. 정법시는 부처님법이 잘 유통되고 신해행정이 원만한 시기라. 그랬어요. 그래서 이 시기를 약 한 오백년 이렇게 봐요. 그래서 부처님, 아까 제1 오백세하고 비슷하죠. 신해행정이 원만한 시기다. 한국 불교대학의 신행 목표가 신해행정 아닙니까?

 

_아주 믿음을 가지고

_부처님 공부도 하고

_봉사나 행동하는 그런 불자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되고

_증이라는 것은 증득한다. 포교도 하고 성취하는 그런 불자라야 된다.

 

그래서 정법시에 불교가 오백년 지나가고, 그 다음에 정법하고 비슷한 그런 시기, 상법시가 천년 지나갑니다. 부처님법이 어느 정도 유통되나? 증득하는 사람은 적고 모양만 비슷한 불교의 시기이다.

 

그 다음에 말법시라. 스님들이 법문할 때 보면 이 말법시대에 우리가 잘 해야 된다. 이런 말 하거든요. 이 말법시라고 하는 것은 말법만년을 말해요. 그러니까 천오백년 그 이후 만년이니까 아직 다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말법시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교리는 있기는 하나, 진정한 실천적 보살은 적고, 업장이 두터워 정법에 귀의하는 자가 적다. 정법에 귀의하는 불자가 적다, 이랬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종교인구 조사를 보니 불교인구가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2005년도에 불자 숫자가 1059만 명이었는데, 2015년도, 불교인구가 762만 명이라. 통계가요, 그러니까 300만 명이 그동안에 10년 동안 떨어진 거죠. 불교인구가 늘어난 절은 한국불교대학 밖에 없어요. 불교 전체로 봤을 때는 이게 참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불자들 전체책임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책임도 있습니다.

 

말법시라서 그렇습니다. 요즘 뭐, TV보기를 좋아하고, 골프 치러 다니기를 좋아하고, 유흥을 즐기기를 좋아하지, 우리처럼 아주 고리타분하게 여기 와서 공부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기 앉아있는 분들은 분명히 전생부터 부처님하고 인연이 아주 깊었던 거 같아요. 안 그러고서야 여기와 앉아있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떡을 주나? 밥을 주나? 그렇잖아요.

 

여기 앉아있는 자체가 참 신통하기는 해요. 아주. 몇 명이 되었든 간에, 100명이 되었든 1000명이 되었든 간에 참 신통하죠. 그런데 이 말법시대에 이렇게 부처님 법을 찾고 여기 앉아있는 것은 정말 과거 전생부터 부처님하고 많은 두껍고 두터운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있는 것 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대단한 신심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아래 보시면 신심이라는 말이 나와 있네요. 신심. 한번 읽어봐요. 신심. 신심. 반야바라말의 여러 공덕을 믿음이며, 반야바라밀이 일체 부처님을 출생시키는 줄 믿음이며, 중생각자의 자신 가운데 불생이 본래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줄 믿음이며, 일체중생이 모든 부처님 세계에 드는 줄 믿는 믿음이다. 또한 사바세계가 정토세계가 되는 줄 믿는 믿음이다. 하여튼 부처님 믿는 것이 다 신심입니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나는 부처님 믿는다." 그 사람 신심 좋은 겁니다.

 

좀 불교교단이 흔들린다 할지라도, 또 내가 다니는 절에 스님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다 할지라도, “나는 부처님 믿는다.” 그런 마음만 있다면 신심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불자들은 대부분 한 80% 불자들은 그 신심이 오래 가지를 못해요. 오래 못 가. 그게 문제입니다. 불교대학 입학해서도 1020년 죽을 때까지 가는 사람은 10%? 정도 됩니다. 10%.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처럼 불교 공부도 끝이 없어야 되는데, 어디까지 해야 되느냐? 죽을 때까지 해야 되고,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까지라도 공부를 해야 되겠다.” 이런 작심이 있었을 때 공부가 되는 것인데, 대부분 그렇게 안 돼요. 입학해서 한두 달 만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또 입학해서 또 한 반년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 있고, 오늘처럼 특강한다니까 어쩌다 나온 사람도 있고.

 

아무튼 뭐, 오랜만에 나오더라도 인연을 잊지 않고 나온다면 그분은 신심이 그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80%사람들은 그 신심이 오래 가지 못해요. 그런 신심을 불교에서는 말뚝신심이라. 이렇게 말해요. 말뚝신심내지 마라. 그러거든요. ", 나 이제 열심히 다닐 거야. , 절에 갈 때마다 108배하고, 절에 갈 때마다 천배하고 올 거야. 그런 사람들이 한 5~6, 또는 한 달 만에 퍼져서 안 나오죠. "아이고, 거 말뚝 신심 낼 때 알아봤다." 그래요.

 

말뚝은 푹 꽂았다가 푹 빼버리면 그만이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스님들은 저놈 봐라. 또 말뚝신심 낸다.” 그러거든요. 그냥 지긋하게, 우리가 가마솥에 불 넣듯이 이렇게 불 지피듯이 그렇게 신심을 내는 것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