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354회] 청년 스스로 청년문제 해결하고 싶어요.

Buddhastudy 2018. 1. 12. 20:16


저는 29살 대학원에 지금 다니고 있는 청년인데요.

학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요즘에 드는 생각이

제 주변에도 친구들이나 청년들이 취업도 힘들고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저도 과도한 경쟁 속에서 계속 학벌만 높이고 쓸데없는 공부를 했다고 요즘엔 회의감이 많이 들거든요.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이렇게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이렇게 일만 하면 정말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런 고민 중에 여러 사회, 정치 문제들이 저와 청년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최근 들어서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데 저희들이 학업이나 일하는 거, 여러 가지 개인문제 할애하는 시간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청년들이 어떻게 이 청년 문제, 사회문제를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여러분들 자녀를 두신 분들, 저 청년의 고민이 이해가 됩니까? . 여러분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나는 이렇게 살아도 너는 좀 한번 성공해라. 잘 살아봐라.” 이런 게 부모의 사랑이기는 한데, 이게 자녀한테는 굉장히 무거운 짐이에요.

 

특히 제가 미국 주립대학에 다니는 유학생들 고민을 상담해 보면, 부모님이 자기를 돈 들여 여기까지 유학을 보냈는데, 또 어릴 때 공부 잘한다고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이 공부를 해보니까 너무 힘들고 또 그만큼 기대에 부합을 못하니까 개인으로 생각하면 여기서는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데, 미국에 와보니까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단 말이오.

 

그래서 그것을 딱 그만두려니까 부모님의 그 기대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것을 계속 하기에는 전망도 없고 또 능률도 안 나고 하기도 싫고. 이래서 거의 정신질환이 될 수준까지 가 있거든요. 그래서 박사 과정을 10년 가까이 하는 사람도 있고. 독일에 가보면.

 

그럴 때 제가 , 그만 둬.” 이렇게 얘기해요. “어떻게 그만둬요.” 그래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신분열증이 나거나 나중에 자살하거나 하는 것보다는 훨씬 지금 그만 두는 게 낫다. 한국에서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여기 유럽에 와서 보니까 대학가는 사람 10%도 안 되지 않냐. 그리고 옛날에는 여기 와서 학위 따면 한국에 가면 직장이 보장이 되는데, 지금 따기도 어렵지만 따서 가져가봐야 직장도 보장이 제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미국과 한국이 유럽과 한국이 기술격차가 많이 났기 때문에 여기서 학위를 따고 돌아가면 1020년 노트만 갖고도 먹고 살 수가 있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지식이나 기술격차가 너무 좁아져서 돌아가면 3년도 써 먹기가 어렵고. 어떤 것은 가자마자 이미 다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거다.

 

그래서 유학생이 많은 것도 있지만 기술격차, 지식격차가 없기 때문에 효용성이 없다. 이렇게 노력한 거에 효용성이 없다. 그래서 자기가 뭔가 재미가 있고, 연구하는 게 재미가 있고 뭔가 자기 나름대로 방법이 있고 이러면 학문을 해도 좋다. 고생을 해도 괜찮고.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부모기대를 못 이겨서 이것은 인생 낭비다. 그리고 특히 너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그만 둬라. 이렇게 해서 그만둔 사람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청년이 여기 있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자녀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지나치면 아이들에게 엄청난 무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여러분들,

 

애들 키울 때는 힘들게 키우면 안 돼요.

힘들게 키우면 애들이 다 잘못됩니다.

애를 대충 키워야 되요.

 

내가 먹기 위해서 한 밥에 한 숟가락 주고, 내 빨래 할 때 해서 그냥 주고, 입던 옷 주고, 그래서 애 키우는 게 재미도 있고, 이렇게 키우며 애에 대해서 크게 공을 안 들였기 때문에 애에 대해서 뭐가 없다? 기대가 없는 거요. 아까 저렇게 남편죽고 외동아들 저렇게 정성들여 키운 사람들은 거기 엄청난 공을 들였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다 키워놓으니까 그 공은 누가 뺐어갔다? 어떤 여자가 뺏어가 놓으니까 그 주위를 늘 맴돌고 서성거리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젊은 여자가 영리하면 어머니가 이 대가, 너무 정성을 쏟았는데 섭섭하시구나.” 해서 좀 나눠가지고 나눠주고, 비유를 맞추고 살살살살 조정을 하면 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계속 시비를 하고, 안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오든지, 5명 낳을 때까지 있지 말고. 이게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거요. 센스가 없어서. 한마디로.

 

그렇게 키우면 자녀에게 기대를 안거니까 아이들도 자기 인생을 어릴 때부터 자기가 사는 거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자기 취향에 맞는 거, 이런 걸 가야 돼. 앞으로는 이렇게 지금 우리 같은 학교 시스템, 이런 교육의 효용성이 거의 끝났습니다. 이것은 산업사회에 맞는 노동자를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살 수도 있고, 이것은 닮아가야 할 선진문명이 있고, 그것을 모방하는 교육시스템이거든요.

 

그런데 그 모방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해서 격차가 줄어든 거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더 이상 성장 할 수가 없어요. 격차가 줄어들어서. 그러니까 이 모방을 할 때는 격려하고 독려하고 이러면 효과가 납니다. 군대 훈련하듯이 하면.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창조성은 안 생깁니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집중이 되어야 탁! 창조성이 일어납니다. 볼록렌즈로 열을 가해야 탁 뚫리고 선에서 화두에 이 뭐꼬가 집중해야 빵 터지듯이. 그런데

 

집중 하고 싶다고 집중은 안 됩니다.

집중은 좋아하면 집중이 됩니다.

 

애들이 만화를 읽거나 컴퓨터게임 할 때 불러도 엄마 말이 귀에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엄청나게 집중이 되어 있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 좋아하는 것을 어릴 때 뭐든지, 그러니까 우리는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어야 된다. 변호사가 되어야 된다.” 이렇게 정해놓고 살잖아. 이런 것은 앞으로는 효용가치가 없어져요.

 

그러니까 뭐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오. 좋아한다고 다 할 수는 없는데, 집중을 해야 돼요. 그리고

 

앞으로는 창조가 필요한 거요.

창조가 일어나려면 집중을 해야 되고,

집중을 하려면 좋아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그 뭐가 좋은지를 알려면 나는 뭐가 좋다.” 이게 정해져서 사주 봐서 뽑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유롭게 경험을 하면서 자기가 하나, “난 음악이 좋다.” “나는 농사짓는 게 좋다.” “나는 장난감 만드는 게 좋다.” “게임 개발하는 게 좋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하는 거요. 그게 유해한 게 아니면. 도덕적으로 부도덕하거나, 법률적으로 위법이거나. 유해한 게 아니면 제한을 안 해야 되요.

 

그렇게 인력이 커야 국가가 지금 새로운 4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는 미래세대에 필요한 인력이 되는 거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인력의 양성이 안 되어 있는 거요. 삼성전자 같은 데도 모방기술은 최첨단이지만, 창조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곧 모든 분야가 이제 곧 중소기업이 지금 어려워지고, 이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까지도 어려워지고, 아주 몇 개 기업까지도 앞으로 어려워지는 시대에 도래할 거다. 이거요.

 

완전히 문명이 새로운 시대로 지금 나아가는 초입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살 앞으로 1020년 후에는 그런 시대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 식으로 교육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거요.

 

그런데 문제는

선생과 학부형이

다 자기가 경험한 거에 기초에서

애들을 지도 교육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여러분들도 20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요? 몰라요? 모르잖아.

모르는 게 뭘 지도를 해요. 자기도 모르면서.

 

그런 측면에서 마침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러고요.

그다음에 이 청년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앞에 서론에서도 말했지만, 하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질 거냐?

관점을 어떻게 가질 거냐?

이게 달라지는 거요.

주로 제가 하는 일은 그거에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 거냐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곡식을 하나 심어서 많은 수확을 얻으려면 씨앗이 좋아야 되요. 두 번째는 밭이 좋아야 되요.

 

밭을 어떻게 만들 거냐?

이게 우리가 사는 환경이고,

씨앗이 어떠냐?

요게 우리들 개인의 자기 삶의 자세인 거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것은

수행이라는 것은

종자개량에 들어가는 거요.

 

아까 종자개량 하겠다는데 아이고 종자 개량 어렵겠다. 그냥 그 종자 갖고 살아라. 종자 개량하려면 DNA를 바꿔야 되는데, 그러려면 좀 세게 충격을 줘야 된다. 관점을 바꿔라.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그 다음에 사회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하는 게 밭을 개량하는 거요. 거기에다가 너무 오래 밭을 사용한 거라면 딴 데 흙을 가져와서 객토작업을 한다든지, 산성화가 되었으면 석회석을 뿌려준다든지, 너무 거름기가 적으면 유기질 비료를 갖다 넣는다든지, 우선 급할 때는 약간의 화학 비료를 쓴다든지, 그 다음에 비닐하우스를 쳐준다든지, 이런 환경의 작업도 해줘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게 뭐냐? 그게 정치고, 그게 경제고, 그게 사회고, 그런 거요.

 

그러면 그런 것들을 좋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데 여러분들을 대행하는 공익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대통령에게 우리 사는 환경을 요렇게 좀 만들어주세요. 요렇게 좀 만들어주세요.” 그것은 비닐하우스 쳐주세요.” 하는데, 돈이 그만큼 안 되면 못 치잖아. 그죠? “몇 평만 치고 다음에 쳐주세요.” 라든지, 이것은 형편 되는대로 해야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유럽처럼 좀 사회보장이 잘 되려면 우리가 뭘 많이 부담해야 된다? 세금을 많이 부담을 해야 되잖아. 그죠? 세금은 조금 부담해놓고 혜택은 많이 내라. 이것은 말이 안 된단 말이오. 혜택을 좀 많이 받으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 되고. 세금을 적게 내면 혜택이 좀 적은 거고. 그럴 때 전체적으로 보면 세금을 좀 많이 내고 혜택을 많이 받는 그런 쪽으로 가려면 세금은 수입에 따라서 내고, 혜택은 평균적으로 받으니까

 

저부담, 저혜택일 때는 누가 유리하다?

고소득층이 유리하고,

고부담 고혜택일 때는 누가 유리해진다?

저소득층이 유리해지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한꺼번에는 못가더라도 저부담 저혜택에서 중부담 중혜택으로 가야 되는 거요. 그럼 여기 당연히 소위 고소득층, 기득권층의 저항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국민이 주인이니까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만들 건지, 이런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 되요. 그런데 무조건 부담만 많이 해라.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세금은 안내도 되고,

혜택은 많이 주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오.

 

물론 절약을 해서 조금 더 줄 수는 있는데, 그것은 절대적으로는 안 되는 거요. 우리가 혜택을 좀 받으려면 부담을 조금 늘려야 된다. 이런 것을 우리가 결국 국민들이 결정을 하는 거다.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