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07회] 수행해서 좋아진 줄 알았는데...

Buddhastudy 2018. 7. 12. 19:58


경전반 졸업하고 가을 불대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저는 불대 입학 이후에 나름대로 수행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계속하면서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제가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도 나는 정말 좋게 많이 바뀌었는데 남편은 저보고 자꾸만 너무 세졌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는 잔소리도 안 하고 짜증도 안 내고 그러던데 저한테 자꾸만 세졌다고 해서 사실은 이해가 안 갔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 자신을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더라고요. 남편한테도 그렇고 시어머니한테도 그렇고.

 

그래서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하는 게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는구나, 화 안 내고 잘하고 있다이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아주 뿌듯해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처음에는 당당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좀 오만해지는 건지?

요즘에 들어서는 화도 더 많이 내고요. 수행하기 전보다는. 심지어 며칠 전에는 시어머니한테는 큰소리로 소리도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제가 진짜 이러려고 수행을 했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스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이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처음에는 나는 점점 좋아지는데 주변에 시어머니도 힘들어지시고 남편도 힘들어지고. 그런데 인제 그러면서 수행을 열심히 하다가 한 번 몸이 좀 아파서 수행을 하루를 놓쳤어요. 450일 하루도 빠짐없이 했었는데, 하루를 딱 놓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정말 와르르 무너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는 100일 넘으면 400일 넘게 했으면 수행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하루 딱 놓치고 나서 완전히 와르르 무너지는 저 자신을 보면서 좀 실망감도 들고 다시 기도를 시작해야지 시작해야지 하지만,

 

내가 450일 더 앞으로 열심히 수행하고 나서도 또 혹시나 몸이 아프고 수행을 놓치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있어서 그런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수행이 다시 다잡아서 시작하는 게 잘 안 되고 있고요.

 

예전에는 제가 칭찬받은 며느리였거든요. 남편도 늘 저한테 고맙다고 하고 그러면서 주변은 편했는데, 저만 힘들어하면서 살았었어요.

 

지금은 수행 열심히 하면서 제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마음이 불편하고 주변까지 힘들게 하는 이런 사람이 된 저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한테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자기는 수행 열심히 했다는데 자기 기준은 절한 것을 수행이라고 하든지, 참선 할 걸 수행이라고 하든지,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데, 자기가 수행을 전혀 안한 거지 뭐. 수행 안했다는 얘기지.

 

지금 얘기를 쭉 들어보면. 수행하고는 아무, 기복을 한 거지. 복을 빌었지. 절을 열심히 하면서 복을 빌었다 이래는 말할 수 있지마는 수행은 한 적이 없어.

 

절은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수행은 한 적이 없고, 경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수행은 한 적이 없다. 이 말이오.

제 딴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천지지 뭐. 교회가도 열심히 하고.

 

그러니까 수행 기도문 읽어봐.

모든 괴로움은

밖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난다고 매일 읽고 있잖아.

 

자긴 나로부터 일어난다는데,

시어머니한테 화를 내는 게 그게 어떻게 수행이야. 수행 자체가 아니지.

 

또 수행자라면 딱 화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지만, 화가 탁 냈다가

아이고, 내가 또 놓쳤네.” 이러고 돌아와야지. 자긴 수행적 관점을 안 가지고 있다. 내가 아무리 정신적인 질환이 있든, 육체적인 질환이 있든, 성질이 더럽던 그거는 괜찮아.

 

그러나 수행자라는 것은 관점을 딱 잡고 얘기해야 된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불안하지마는 , 나로부터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지만 , 내가 놓쳤구나.”

관점을 이렇게 탁 돌아가야 수행자라 할 수 있다.

화를 안내야 수행자가 아니고.

 

화는 날 수도 있고, 욕심은 낼 수도 있고, 갈등은 생길수도 있지만, 딱 자기로 돌아갈 수 있어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일어나 나에게 돌아온다. 이러잖아. 그렇게 관점을 안 잡고 있지.

 

450일간 절을 열심히 했겠지. 아침에 조깅하듯이. 그건 조깅이지 수행 아니야. 절을 열심히 한 거지.

수행이 됐다가 수행이 안 됐다가.’ 수행은 됐다가 안 됐다가 이런 법이 없어. 절은 하다가 안 하는 게 있을 수 있지. 수행이 뭐 됐다가 안 됐다가 이런 게 어디 있어.

수행이 어떻게 됐다가 안 됐다가 할 일이야.

 

수행은 관점을 딱 갖추고 놓칠 수 있으니까,

놓치면 놓쳤구나하고 되돌아오면 수행자고,

놓친 줄 모르면 수행자가 아닌 거지.

 

시어머니한테 화를 낼 수도 있지. 화를 탁 냈다가

아이고, 내가 또 깜빡 시어머니 탓했구나.” 이렇게 탁 돌아오면 되지.

아이고,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성질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네요.” 이렇게 말하면 되지.

 

다시 관점을 잡아. 관점을. 그렇게 되는 자각,

 

내가 나를 놓친 줄도 모르는 자각하기 위해서

절을 하는 거야.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서

, 내가 그때 깜빡 나를 놓쳤네. 아이고, 내가 그 관점을 놓쳤네.”

이렇게 자각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잖아.

 

그 다음에는 관점을 놓쳤을 때 그때마다

아이고, 내가 또 놓쳤네.” 이렇게 자각하는 게 수행이야.

절하는 게 수행이 아니고.

 

절하는 이유는

절하면서 그 관점을 잡으라고 절을 하는 거야.

 

자기야 300배를 하든 500배를 천배를 하든 그건 자기 문제고, 등산을 10키로를 하든, 20키로를 하든, 설악산을 오르든, 지리산을 오르든, 그건 개인이 그냥 하는 일이지. 극기훈련, 나는 이정도 극기 훈련했다. 이럴 수 있지.

 

그건 개인들 누구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자기 개인적으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그런 거잖아.

 

화가 날 수도 있고, 짜증을 낼 수도 있고, 욕심을 낼 수도 있어.

그러나 그게 나한테 괴로움이 되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놓쳐서 화가 났기 때문에

아이고 놓쳤구나.”하고 돌아오면 그게 어떻게 괴로움이 될 수 있겠어.

관점을 다시 잡고 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