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63) 재혼생활

Buddhastudy 2010. 9. 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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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는 이 질문하신 부인이 내 집 살림, 내 집 살림, 내 아이, 너 아이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게 문제의 원인이에요. 남편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고. 그러니까 남편은 내 아이를 안 돌본다. 그런데 나는 너의 아이를 돌봐야 된다. 이렇게 지금 나누고 있다 이 말이에요. 이미 재혼을 했으면 결혼을 했으면 그 분의 아이들이 누구 아이다? 내 아이이기 때문에 남의 아이는 돌보고 내 아이는 안 돌본다 이런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요. 내가 아이가 넷이 있는데. 둘만 돌보고 둘을 못 돌본다.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이 말이오. 성한 아이 둘은 내가 어떻게 돌보는데. 어려운 아이들은 내가 제대로 돌 못보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또 여기서 가만히 보면. 이 재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여기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싶지만은 헤어짐도 쉽지가 않네요 하는데. 이 남편에 대한 정일까? 그렇지 않는 거 같애. 이 모르겠는데. 손들고 질문하면 물어보겠는데.

 

아마 내가 볼 때는 이 관계에서는 시설에 맡겨놓고 조금 지원을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고. 그죠? 뭔가 딴살림, 헤어지기가 어려운 내 조건이 있다는 거죠. 남편을 고려해서 지금 안 헤어지는 게 아니고. 내 어떤 필요 때문에 지금 헤어지지를 못하는 거요. 이건 남편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또 남편입장을, 평범한 남편이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남편이 왜 결혼했어요? 왜 재혼을 했어요? 애 둘인데 혼자 키우기가 어려우니까. 어떤 여자가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 이래서 재혼을 한 거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아이 둘 키우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제 아이 문제 때문에 맨날 울고 있으니까. 남편이 생각할 때는 이 여자가 언제는 떠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내가 볼 때는. 그러니까 마음 깊이 함께 평생을 산다 하는 신뢰를 못 주고 있다. 그것이 드러나는 게. 뭔가 다툼이 있으면. 뭔가 자기 아이를 챙기고 뭘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남편의 아이. 두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아빠가 한마디로 보면 애들도 보면 계모인데 그죠? 계모 말 듣는 게 좋아요 그래도 계모 말 안 듣고 아빠가 자기들 잘 돌봐주는 건. 애들이 보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에요? 그것도 또 좋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여기에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의 행동이 좋은 행동이기도 하고. 나쁜 행동이기도 하다 이 말이오. 결혼을 해서 남편이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아내가 볼 때는 좋은 남편인데. 시어머니가 볼 때는 어때요? 아들이 바보 같죠. 에이고 이것아. 여자한테 꽉 쥐어 잡혀가지고. 이 바보 같이. 니가 뭐가 못났다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거요. 나만 보면 내가 다 옳은 거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이 말이오.

 

아내가 볼 때는 남편이 자기 거 같애. 그런데 엄마가 볼 때는 아들이 누구 꺼 같을까? 내 꺼 같지. 그러면 낳아서 키운 사람이 내 꺼 같은 생각이 더 들까? 결혼한 사람이 더 들까? 그런데 이게 여자의 불행이오. 며느리는 당신 내건 데 왜 자꾸 엄마 말 듣냐? 그러려면 왜 나하고 결혼했냐? 이런 식으로 따지는 거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인간의 정 중에 두터운 게 부모자식간의 정인데. 그 정을 끊으려고 하니까. 이거는 천벌 받을 짓이란 말이오. 그런데 또 시어머니는 어떠냐? 이 세상의 정 중에 부부가 서로를 위하는 정이 참 중요한 거 아니오? 그죠? 그런데 그걸 보고 질투하고 정을 끊으려는 게 이 시어머니 또 마음이란 말이오. 이것도 또 천벌 받을 짓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되요.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떨어져 살다 집에 온다 이러면. 이 남편 괜찮다 할수록. 이 남편 낳아서 키우고 여기까지 오도록 누가 해 줬어요? 시어머니가 해줬죠? 그런데 사실은 단물은 누가 다 빼먹습니까? 내가 다 빼먹잖아. 그지? 그러니까 어차피 내가 내 거로 가지고 사는데. 원래 누구꺼였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지만. 속되게 말하면 원래 누구꺼였다? 시어머니 꺼 였지. 그러니까 빼긴 시어머니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그죠? 그러니까 가끔 올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 돌려 줘야 되요. 제 얘기 잘 들으세요. 시어머니가 딱 오시면 남편을 빨리 시어머니한테로 돌려 줘야 되. 방에 잘 때도 어머니가 계신데. 여보. 여보. 여보. 어머니한테 가서 자라고. 그래서 오래간만에 모자가 만나서 얘기도 많이 하라고. 아들보고 어머니 용돈도 많이 드려. 남편이 10만원 주겠다 그러면 20만원 드리라고 그러고. 100만원 주겠다 하면 200만원 드리라고. 이렇게 해야 이게 좋은, 사실은 부인이오.

 

또 어머니가 됐으면 자기 두 부부가 좋아서 하는 일은. 만약에 아들이 며느리 즉, 부인이 어떻다 하고 엄마한테 비난의 얘기를 하면. 아들을 야단을 쳐야 됩니다. 그래서 어디로 돌려줘야 된다? 부인한테로 가도록 야단을 쳐서. 그러면 안 된다. 나도 결혼해서 너희 아빠가 그랬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모른다. 애기 가졌을 때 그렇게 해서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러면 안 된다. 가서 너희 부인한테 가서 해라. 이렇게 서로 돌려 줘야 되요. 이렇게 해야 이 가정이 평화로워진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 분은 우리가 신체 장애아기로 태어났다 그러면, 재앙이라고 생각하죠? 보통 뭐라고 그래요?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러면 이 신체 장애는 나쁘다는 뜻 아닙니까? 그죠? 나쁘니까 뭐라고 생각한다? 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어떻습니까? 신체 장애라도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 갈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까 없다고 말합니까? 있다고 말하죠. 그래서 수녀님들은 자기가 낳은 애도 아니고. 자기 친척도 아닌데. 그런 부모가, 부모도 버린 애들을 모아서 보살피죠. 이런 사람 많이 있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도 있는데. 내가 남이 낳아서 버린 사람을 보살피지는 못할지언정. 내가 낳은 내 자식은 보살피는 마음을 내야 하지 않냐? 만약에 기독교 신앙으로 본다면 하느님께서 내가 하느님이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듯이. 나도 이 아이에게 아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베푸는. 그런 훈련을 시키려고 즉, 하나님의 은총이 나에게 내려서 나에게 이런 아이를 줬구나.

 

불교 같으면 관세음보살님의 일체 중생의 아픔을 다 껴안는다고 했는데. 나는 일체 중생은 고하사고 내 아이라도 하나 껴안을 수 있는 요런 작은 관세음보살이 되라고. 이 아이를 줬구나. 이렇게 이걸 복으로 생각해야 되.? 신체장애인데 재앙이에요? 그러니까 자식하고도 여러분들은 뭘 따진다? 이해관계를 따지는 거요. 이해관계를. 자식이 건강하고 미끈하고 잘나가면 아 좋다 그러고. 마치 물건 좋은 거 사서 좋아하듯이. 그러니까 이 중생은 자기 자식에게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이 말이오. 결혼했을 때는 이것도 책임이 있지만은 반반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효도 안 한다고 그래도 죄가 그건 적습니다. ? 이 선택은 내가 한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선택 당했기 때문에.

 

결혼은 그거 보다는 훨씬 더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자식을 낳는 거는 그것보다 10배 더 책임이 있습니다. ? 자식은 아무 선택권이 없었고. 내가 일방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식에 대한 여러분들의 책임은 무한책임이어야 된다 이거요. 여기에는 털끝만큼도 예외를 붙이면 안 되요. 첫째. 자식을 시설에 맡기는 거는 시설에 맡긴다고 잘못된 게 아니오. 자식을 맡기고 자기는 결혼해서 살겠다는 이 생각자체가 처음에 제가 볼 때 잘못됐어요. 결혼이 잘못된 게 아니라. 재혼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러니까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된다. 자식에 대한 책임의식을 분명히 갖고. 그 책임 의식을 갖더라도 내가 재혼을 했으면 남편은 내 자식을 돌보려고 재혼을 한 게 아니오. 자기는 자기 자식을 돌 볼 사람이 필요해서 재혼을 한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미 결혼을 했으면 가서 그 아이 둘을 아무런 분별없이 내 자식처럼 돌보고. 내 자식처럼이 아니라 내 자식이니까 돌보고. 그 다음에 내가 시간을, 힘을 더 내서. 신체 장애가 있는 애들을 돌봐야 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함께 할 수가 있다 첫째. 두 번째 함께 갈 수가 도저히 없다고 생각하면 이혼을 하고. 포기를 하고. 장애자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말이오. 그리고 나서 다시 재혼을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