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67) 경쟁의 두려움

Buddhastudy 2010. 9. 17. 22:09

  방송 보기: BTN


이 사람 병은 경쟁하기 싫은 게 병이 아니고. 경쟁해서 이기고 싶은데. 경쟁에서 질 거 같아서 두려워하는 게 병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경쟁을 회피한다 이 말이오. 뒤에 질문에 나와 있잖아요. 끝까지 하고 싶은데 이런 말이 있단 말이오. 그러니 이 세상에서 경쟁이라는 것은 좋다고도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경쟁을 다시 말하면 상대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경쟁을 하면, 경쟁이 나의 게으름을 막아주는 좋은 양약이 된다. 그런데 경쟁이 욕심으로 채워져 있어서 상대를 미워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경쟁하는 것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이 말이오. 여기서 경쟁하지 마라 하는 것은. 무조건 경쟁하는 것은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경쟁을 두려워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어떤 미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마라 이런 얘기요.

 

그 결과를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라 이거요. 두 사람이 길을 걷는데 내가 만약에 하루에 10km씩 걷는다, 아침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혼자 하다 보면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마는데. 옆에 누가 다른 사람이 하나 있어서. 그 사람 하는 거 보면서 약간의 경쟁심이 일어나면서 같이 할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공부할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혼자서 나태해지는 게으름을 이러한 경쟁이 이겨내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런 걸 뭐라 그래요? 우리가 이름 붙여서 선의의 경쟁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바둑을 둘 때 우리가 이기려고 하죠. 또 축구를 차거나 뭘 할 때도 어쨌든 이기려고 해요 안 해요? 이기려고 해야 열심히 하지. 이길 생각이 없으면 열심히 합니까 안 합니까? 안 하지.

 

그런데 그런 것에서 졌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이 말이오. 그거는. 다만 게임으로 한 것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이 분은 이기려고 하는 거요. 꼭 이겨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못 이길 거 같으니까. 경쟁을 미리 포기하는 거요. 안 하려고 한다 이거요. 그래서 이 분은 경쟁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 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 경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경쟁을 회피하지만은 또 하게 되면. 상대를 죽여서라도 이기려고 하는. 싸워서라도 이기려고 하는. 이런 쪽으로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이기려고 하는 이런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런 것은 또 싫고 하니까 아예 회피하고. 자꾸 이렇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전거를 탈 때 우리가 넘어지잖아 그죠? 그럼 넘어져야 타 집니까 안 넘어지고도 타집니까? 우리모두 다 안 넘어지고 타고 싶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백이면 백, 다 몇 번 넘어지고 탑니다. 그럴 때 한두 번 넘어진걸 가지고 포기한다 그거는 욕심 때문에 그래요. 좌절한다. 욕심 때문에 그래요. 열 번 넘어지고 탈 수 있는 거를 한 두 번 넘어지고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 넘어지고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좌절과 절망이 생긴다. 이거는 넘어지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생기는 거요. 아이들이 자전거 배우고 싶은 아이들은 넘어져가면서 무릎 팍 까져 가면서 계속 하지 않습니까? 하지 마라 그래도 한다 이 말이오. 그것이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타는 과정으로 간다. 그러니까 경쟁에서 실패하는 것은 지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경쟁에서 지면 이기려면 뭐해야 됩니까? 가만있으면 이겨 집니까? 노력을 해야 됩니까? 첫째, 노력을 하죠.

 

두 번째. 그냥 노력만 하면 됩니까? 좀 연구도 해야 됩니까? 연구도 하죠. 연구를 하고 거기에 따라 노력을 한다. 요게 인류역사가 발전한 원리입니다. 그냥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연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력하면서 연구해야 되고. 연구하면서 노력해야 되. 그러면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 그래서 그 실패가, 실패를 했기 때문에 사실은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얘기요. 모든 인류의 역사의 문명 속에서 획기적인 새로운 발견은 전부 실패를 거듭한 뒤에 생겨난 거지. 처음부터 생겨난 것은 없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경쟁에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 분은 왜 두려워하느냐? 공짜로 먹으려고 한다. 경쟁 안하고 그냥 추대 받기를 원한다. 이게 게으름 병의 증상입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세상 살이를 게으르게 살려고 한다 이거요.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한다.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실패는 좋은 거에요. 실패를 해야 발전을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여기서 묻는데. 물어라 해서 제가 대답을 합니다. 열 개 물어서 내가 열 개를 다 답했어. 그럼 여러분 좋죠. 묻는 거 마다 다 대답해주니. 그죠? 나한테 무슨 이익이 있어요? 아무 이익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물었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다. 그러면 나한테 손해입니까? 이익입니까?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이익이에요. 그러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그 모르는 게 뭔지를 알았으니까. 오늘 저녁에 가서 찾아야 되. 안 찾아야 되요? 찾아야 되고. 연구해야 되겠지. 그러면 내 아는 게 많아져요 적어져요? 많아 지지. 그러니까 모르는 게 나쁜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모르는 게 발견된다는 것은 그 만큼 자기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런 얘기요.

 

그래 옛날에는 저도 모르는 게 많아서 점점점점 발전해 왔는데. 요즘은 여러분들이 묻는 거에 대해서 모르는 게 별로 없는 거 보니까. 정체국면에 들었다. 조금 있으면 뭐 한다? 쇠락국면으로 간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내 발전 보다는 비중을 어느 쪽에 둬야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세상 사람에게 나눠가져야 되겠다. 목표를 이렇게 두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아직도 발전해야 되겠다 할때는 이건 낭비적인 시간이오. 목적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요. 그래서 이러다가 사람들이 그래요. 스님 그냥 물어라이럴 때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러죠. 모르면 어떻게 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좋은 일이오. 또 얼마나 쉬워요. 모르는 거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면 되잖아. ‘잘 모르겠습니다이 말이 그렇게 어려워요? 얼마나 쉬워요. 몇 자에요? ....... 7마디만 하면 된단 말이오. ‘잘모르겠습니다.’ 이러면 되잖아요. 거기다 뒤에 또 하나 붙이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에이그 그것도 모르나이러지만은. 세상을 다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 모르는 게 정상이오 아는 게 정상이요? 모르는 게 정상이오. 그러니까 뭘 다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요게 인생을 좀 살아보고 연구를 자꾸 해 보면 즉, 의사가 환자의 병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은. 30, 40년 환자를 다뤄보면 대충 문 열고 들어오는 꼬라지만 보면 어때요? 아이고 거제 어디 아프구나. 얼굴 안색보고 안다 그래 모른다 그래? 알아요. 말하는 거 보거나 표정 보거나아이고 스님 요이렇게 바로 하면 아이고 저게 옆구리가 아프구나. 저게 속이 어디 아프구나. 이게 오래 하면 알 수 있어요. 그 게 딱 100% 맞는다는 건 아니지만. 거의 딱 직관적으로 벌써 거의80~90%는 알아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얘기를 듣는 거요. 얘기를 딱 들어보고 확인이 되면 의사들이 주로 어디 아픕니다 이러면. 나는 의사가 모를까 싶어서 열 개 말해주고 싶은데 의사가 잘 들어줘요 안 들어줘요? 한 두 마디 들으면 알았어요 하고 딱 끊어버리죠. 그럼 억수로 불안합니다. 저게 뭘 알까? 나는 여기 아픈데 이런데. 그 사람은 오래 해 왔기 때문에 벌써 딱 몇 마디 들어보면 알아요. 그래서 저도 마찬가지에요 해보면. 벌써 찾아와서 스님요 하면서 가만놔두면 1시간 얘기할겁니다. 아시겠어요? 평생 살아온 얘기 다 하려고 폼을 잡아요. 시간 있으면 들어주면 되는데. 딱 들어와서 얼굴 표정 보면 대충 알아요. 몇 마디 들어보면 알아요. 아이고 그만 하세요 이러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세요 그러면. 막 스님이 자기 얘기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자기한테 이렇게 한다. 억울해가지고.

 

그런데 이 마음 병도 마찬가지에요. 육체 병보다 이건 더 알기가 쉬워요. 여기 딱 보면 얼굴 표정을 보거나 말하는 거 보면 금방 알아요. 그런데 종이에 쪽지 쓰면 떨어집니다. 정확도가. 아시겠어요? 왜냐하면 이 글에는 떨림이 있어요 없어요? 없고 높낮이도 없고 표정도 없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 글만 보고는 조금 덜 맞아요. 그러나 딱 손들고 얘기하면 벌써 겉으로 배고파요 해도 아이고 저 배부르구나. 배불러요 해도 아이고 배고픈 주제에. 이렇게 금방 알 수 있어요. 이런 거는 거의 맞는데. 지식적인걸 자꾸 묻는다. 아마존 강에 지류가 몇 개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알 수가 없어요 그거는. 그래서 그런 거 물으면 제가 뭐라 그래요? 모르겠습니다. 사전 찾아보세요. 그러죠. 그건 사전에 있는 얘기니까. 나한테 물을 필요가 없다 이 말이오. 저는 사전 찾아보라고 안내를 해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