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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영화 [암살] 스페셜 인강

Buddhastudy 2018. 10. 16. 20:41


우리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입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 인데요, 우리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암살>인데요,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당시 일제 강점기와 독립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총 35년인데요, 1910년대, 1920년대, 1930~40년대 이렇게 3단계로 나눠지게 됩니다.

초반 1910년대는 무력으로 처단하는 시대라고 해서 무단통치시대라고 부르는데요, 군인경찰 즉, 헌병경찰이 칼을 차고 우리 백성들을 마치 노예처럼 억압했던 시대입니다.

 

,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바로 1919년 일본 집권 10년차에 3.1 만세 시위가 벌어지게 되는데요,

종로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게 되고, 만주, 연해주, 미주, 심지어는 적의 심장부인 일본에까지 만세 물결이 번져가게 되죠.

우리의 독립의지가 세계만방에 알려지는 순간이었고 일본은 더 이상 강압적인 통치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표방한 1920년대 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라고 부릅니다.

! 제목이 어떻습니까? 달달하죠, 달콤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드럽게 다스리는 척 하면서, 우리 백성들을 친일파로 회유하려는 무시무시한 기만정책이었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3.1 운동의 자신감을 가졌겠다, 거기다 표면적으로는 부드러워졌겠다, 그래서 국내에는 각종 경제적 사회적 민족운동이, 그리고 국외에서는 무장투쟁운동이 꽃피웠던 것이 1920년대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0년을 노력했건만 독립의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중에 가장 힘들었던 암흑의 시대가 바로 1930년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친일파가 되었죠.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은 점점 더 강성해져서 중국을 침공하고, 만주를 점령하는, 만주국을 수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은 희망이 보일 때 노력을 하는 법인데,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1930년 초반이었어요.

 

그런데도 뜻을 꺾지 않고, 꿈을 잃지 않고, 우리 독립군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되는데요, 1933년을 배경으로 영화 <암살>은 시작이 됩니다.

, 그럼 지금부터 실제 존재했던 독립군과 독립단체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910년대입니다.

여러분! 기득권 세력이 나라를 일본에 팔았잖습니까?

을사5적 아세요? 누굽니까?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등 이 을사5적과 함께 많은 기득권 세력들이 우리 민족의 주권과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맞바꾸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부자로 이름 나 있었던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는 가산을 전부 정리합니다. 지금 돈으로 한 600억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돈을 가지고 식솔을 이끌고 바람 부는 만주 벌판 서간도로 이주를 하죠.

그리고 거기에 세운 것이 바로 신흥강습소’ ‘신흥무관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 독립군 양성기지 신흥무관학교는 산자락을 휘어 감습니다.

18개의 교실이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산 아래의 평지에는 연병장이 있어서

오전에는 역사, 지리, 산술, 화학 등 12개의 일반과목을, 그리고 오후에는 군사훈련을 받게 됩니다.

 

왜 이론과 군사훈련을 병행했을까요?

우리 신흥무관학교의 목표는 눈앞에 있는 독립의 쟁취뿐만 아니라 독립 이후에 신국가를 건설했을 때,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양성에도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론과 군사교육을 병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약 3,500여명의 훌륭한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게 되고요, 이들은 청산리 대첩에도 참여를 하고, 의열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한국독립군 등 수많은 전투와 수많은 단체에서 활약을 하게 되니, ‘우리나라 독립군의 뿌리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속사포도 바로 이 학교 출신이 되겠습니다.

 

이번엔 1920년대로 가보겠습니다.

가장 빛나는 전투가 있었다라면 바로 독립전쟁 청산리 대첩일 것입니다.

여기 있는 청산리에 매복해 있던 우리 독립군이 3,000여명의 일본군들을 처단했던 엄청나게 큰 승리이죠. 그래서 이것을 청산리 대첩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아픔도 동반이 됩니다. ‘당시 독립군들을 숨겨주고 보호해 주었다라는 명목으로 간도에 사는 우리 백성들을 무차별 살상했으니, 이것이 바로 간도참변’, 경신년에 벌어졌다고 그래서 경신참변이라고 합니다.

 



 

당시 북미의 미국, 캐나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이 있는데요, 집집마다 한 채씩 전소가 되고, 그리고 청년들을 그 자리에서 사살을 합니다.

그리고 불타는 집에서 뛰어나오면 어린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모두 학살을 합니다.

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르면 약 3,700여명의 죄 없는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반격을 가해야 됩니다!”

의로운 일을 맹렬히 추진하는 단체가 만들어 집니다.

바로 ‘3.1운동직후에 만들어진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을 소개합니다.

 

의열단은 국내의 박재혁, 나석주, 최수봉, 김익상 등 수많은 독립전사들을 파견해서 적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경찰서에까지 모두 폭탄을 던져버리죠.

총격전을 벌이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의거 단체를 만들었으니 바로 한인애국단이라는 의거단체를 훗날 만들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의사로서 윤봉길 선생님이 계십니다.

윤봉길 선생님은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 모여 있는 적 장성들, 장군들에게 수통 폭탄을 던져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신 분이구요,

 

당시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가

, 100만 중국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했구나.

내가 앞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해주마

라는 지원을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 바로 윤봉길 의사가 됩니다.

 

영화를 보시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日王일왕을 대신해서 일본 외상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서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로 시게미스 마모루라는 자인데요, 그의 다리가 불편해진 것이 바로 윤봉길 의사의 투탄 의거 때문이라고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같은 시기 만주에서도 활약했던 부대가 있었는데요, 바로 한국독립군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지청천이라고 불리는, 이청천이라고도 불렸던 장군이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안옥윤이 바로 여기 있는 한국독립군의 저격수 출신입니다.

 

, 그러면 정말로 그 치열한 독립전쟁에서 연약한 여자의 몸을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여자가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바로 남자현 여사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3.1운동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뜻한 바 있어서 독립군에 지원을 하게 되구요, 1920년 김좌진 장군님과 함께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요,

그리고 영화의 시작과 똑같은 1933년에 만주국 수립 축하연에 참여한 일본군 장성 암살작전에는 실패하지만, 우리 독립군들은 훗날 그녀를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부르게 됩니다.

 

 

, 그런데 왜 최동훈 감독은 수많은 무장투쟁 중에서도 암살에 초점을 맞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열세였던 우리에게 개인이 은밀히 적진에 침투해서 적장을 처단하는 암살작전이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작전이었기 때문에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암살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야 했던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수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 이런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는 1945815, 빛을 다시 보게 됩니다.

바로 광복인데요!

그러나 光復광복 다음 달에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들 이념의 잣대 아래 남북이 분단되게 됩니다.

 

사회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독립군들은 북한의 인민군으로,

그리고 자유주의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독립군들은 남한의 국군으로 갈라지게 되고요,

광복 5년 뒤인 1950625, 동족상잔의 비국이 전개되게 됩니다.

그 포화 속에서 그들은 산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군들은 우리 기억 속에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광복 70주년인 2015년입니다.

당시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셨던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아직 생존해계시고, 많은 피해자분들이 아직도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그 아픔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너무 쉽게 잊혀진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봅니다.

이번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당시의 조국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많은 분들의 노고를 우리의 가슴속에 새기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상은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