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15회 내려놓음과 지혜 (20:15)

Buddhastudy 2011. 11. 27. 21:06

  방송 보기: 불교TV

 

~ 지난시간까지 생활 속에 알아차림 하는 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요, 또 삼매를 계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붓다의 호흡명상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고. 이제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설명은 드린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을 하고 알아차림을 하다가 또 시간이 되면 좌선을 통해서 호흡명상을 통해서 또 삼매도 닦고 그런 수행이 진행이 되다보면 하루 종일 여러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는 자기가 행동하고 하는 거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또 좌선 시에는 또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아주 깊이 있는 아주 강력한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그런 수행을 죽~ 하다보면, 우리의 지혜가 점점점점 성숙해집니다. 결국은 우리가 깨달음에 이르는 거는 반야지혜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 지혜가 점점점점 성숙해서 마지막에 깨달음이 일어나는 그 과정을 오늘 제가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보통 보면 우리가 세속에서도 공부를 하다보면 성장해가는 그 과정이 있듯이 이 불교에서도 이런 수행을 하다보면 우리지혜가 점차점차 이렇게 성장을 해서 그 성숙해가는 그런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우리가 지혜가 생활 속에서 알아차림 또는 호흡명상을 통해서 계속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을 하다보면 첫 번째 알아지는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제일 관심 있는게 뭐겠어요? 자기 자신이겠죠.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나라고 생각하는 게 결국은 내 몸, 주로 내 몸에 대해서 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테고, 내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활동, 그거를 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런데 보통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림 수행을 통해서 계속 관찰을 해보면, 결국은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물질적인 다시 말하면 몸, 우리 몸과 그 정신적인 현상, 마음이라고 하는 거의 결합이더라. 그렇게 이해를 하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그래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다보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거에 대한 본질은 물질과 정신의 결합이다. 또는 이걸 조금 더 세분화해서 얘기 하면, 오온. 색수상행식이라고 물질은 색온에 해당하구요, 정신은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이 마음에, 정신적인 작용은 마음에 해당하는데. 그 오온의 결합이다. 이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죠. 이게 첫 번째 수행을 통해서 변화되는 이해입니다. 그러니까 물질과 정신을 서서히 파악을 하기 시작을 하면 이제는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남자, 저 사람은 여자, 저 사람은 예쁜 사람, 저 사람은 못생긴 사람. 이렇게 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존재라고 하는 것이 오온의 결합니다. 오온이 모여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기시작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기 아무리 예쁜 여자가 지나가도 오온이 지나 간다.’ 이렇게 볼 수 있고, 아무리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도 오온이 지나간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생기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그렇게 보실 수 있으세요? 지나가면 뭐 정신이 없죠. 그죠? 그런데 우리가 지혜가 계발이 되고, 좀 더 이 세상의 본질을 명확히 볼 수 있는 지혜가 닦아지면, 부처님께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한마디로 오온이라 그랬거든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보면 오온이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결합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우리가 그 수행을 하면서 알아지는 것은 오온자체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니까 아~ 이것이 물질과 정신. 나라고 하는 것은 물질과 정신이라고 하는 것의 결합이구나.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요, 이 오온이 왜 일어나는가에 관심이 있겠죠. 그죠? 예를 들면 여러분이 왜 태어났는지. 왜 태어나서 오온이 걸어 다니고 있는지. 오온이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면 이 오온이 왜 일어났느냐? 왜 일어나는지 그거에 대한 바로 조건.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보통 인과라고 알고 있죠. 인과에 대한 이야기 또는 연기. 연기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림 하다보면 아~ 이것이 나한테 일어나는, 나한테 이런 탐욕이 있구나, 이런 성냄이 있구나. 이런 또 어리석음이 있구나. 이런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이제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이해를 하게 되는데. 그런 것을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일어나지 않고, 우리마음을 오염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한다 그랬잖아요. 그렇게 보다 보면은 바른 정보가 많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런 것은 나라고하는 오온에 집합이다. 이렇게 보게 되는데.

 

그리고 나면 각각 오온들 사이에 다시 말하면 우리 몸과 마음의 연관관계. 이런 거에 대한 이해가 되겠죠. 그죠? 예를 들면 지금 내가 화가 나요. 이 화가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집착이 일어나면 뭐에 대해서 집착이 일어나고, 뭣 때문에 집착이 일어나고. 내가 생각이 일어나는 것도 예를 들어서 제가 이렇게 손을 들면 이 손이 여러분 눈에 부딪치고, 눈하고 이게 만나면서 여러분 안식이 일어나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항상 그런 원인이 있다는 거죠.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 원인. 이 모든 것이 조건이 조건이나 원인에 의해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경전에 주로 나오는 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런 구절 아시죠? 그래서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해서 일어난다는 거죠. 조건 없이 일어나는 건 없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건 없다.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면 이건 연기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모든 것이 다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이지. 영원한 것도 없고, 그 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는다고 모든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걸 상견이라 그러잖아요. 영원히 자아라는 게 있어서 영원히 산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봤기 때문에 그런 것도 없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설사 자살을 한다 해도 죽을 때 업이 남아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안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 거는 하나의 열망에 불과한 거지. 그렇다고 해서 태어나지지 않는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이런 것도 사견에 해당합니다. 당견이라고 이라고 하는, 죽으면 끝이라고 얘기하는. 그래서 이 연기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사실은 불교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연기를 잘 이해를 하게되므로써 우리가 사견을 버리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두 번째 지혜가 물질과 정신을 파악하고 나면 물질과 정신의 연관관계, 어떤 조건과 어떤 관계에 의해서 이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그거에 대한 이해가 되는데 그거를 조건에 대한 지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조건에 대한 지혜를 조건을 파악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전부 인과법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불교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다 이거죠. 여러분이 태어나는 것도 분명이 어떤 원인이 있다는 거고,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것도 어떤 원인이 있고. 모든 일어나는 현상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뜻은 이 원인 자체도 결경에 보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조건 지어진 것도 역시 무상하고.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무슨 말이냐 하면 이것이 변한다는 뜻이잖아요. 항상 있는게 아니라 어떤 조건이 있을 때는 일어나는데 조건이 사라지면 어떻다는 이야기입니까? 조건이 사라지면 그 현상자체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렇게 소리를 내면 이 소리가 부딪히는 거에서 소리가 났고, 이 소리를 통해서 이 소리를 듣는단 말이에요. 그죠? 그런데 내가 소리를 안내면 아까 듣는 그 마음은 사라지고 제가 말하는 걸로 다시 바뀌게 되잖아요. 이와 같이 이거는 조건에 의해서 계속 변한다는 거죠. 모든 현상들이.

 

조건 따라 일어났다가 조건 따라 사라진다는 거. 이거를 우리가 불교에서는 뭐라 그러냐 하면 생멸의 지혜라고 합니다. 뭐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이 전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그런 과정을 거친다는 거죠. 여러분 몸도 지금 가만히 있는 거 같지만 지금은 보면 끊임없이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있죠? 그죠? 이것도 역시 계속 어떤 현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마음도 항상 합니까? 아침 한 3초도 가만히 있지 않죠. 금방 내가 여기 가만 있으려하면 딴 데 가고, 딴 데 가고. 끊임없이 변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여기서 생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느냐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위법, 그러니까 형성된 법들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 변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에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행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만약에 젊었을 때 미모가 영원하다면 그거는 행복이라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영원하다면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원하지가 않죠. 여러분들이 원하는 어떤 상황이 영원하지가 않으면 그건 사라질 때 오는 고통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변한다고 하는 것은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변하는 것은 무상하다고 그랬고. 무상한 것은 행복입니까? 행복이 아닙니까? 행복이 아니죠. 그래서 이걸 뭐라고 하냐하면 두카라고 그럽니다. . 괴로움이다. 이거는 본질적으로 괴로움이라는 거죠. 변하는 것에서 우리가 어떻게 즐거움을 찾을 수가 있느냐? 이건 잠깐은 행복할지 몰라도 이것이 계속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변하고 본질적으로 괴로움인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것, 또는 나, 나의 자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인이라고 내가 나라고 하는 것, 만약에 주체다. ‘내가 자아다라고 한다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집안에서 주인이라는 말은 누가 말안 들으면 너 나가할 수도 있고, 들어와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그게 주인이 할 수 있는 건데, 부처님께선 경전에 왕의 비유를 합니다. 왕이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형벌을 줄 수 있죠? 그죠? 만약에 잘하면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상을 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내 맘대로 안된다 그러면 왕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 마음도 사실은 여러분 마음대로 되던가요? 이건 조건에 의해서 변하는 것이고 또 이미 일어난 법은 사라지지 마라고 한다고 안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는 우리기 법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변하는 것은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은 생멸하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는 뜻이죠. 그죠? 그래서 이걸 통해서 이런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게 되면, 우리 마음에서 우리가 지혜가 생기게 되는데. 그 지혜가 바로 이 현상계라고 하는 것이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 고다. 그리고 무아.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의 것, , 또는 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여러분들 이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온인데. 그 오온을 관찰을 해보면 그 오온이라고 하는 것에서 나라고 하거나 나의 것이라고 하거나 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그런 게 없다는 거죠.

 

? 계속 변하고 있는데 어떤걸, 앞에 사라진 걸 나라고 해야 되겠어요? 뒤에 일어난 걸 나라고 해야 되겠어요? 그죠? 이거는 어떻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실 그 이런 위빠사나 수행이나 그 불교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런 지혜가 성숙해가는 건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본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고, 변하고 괴로움이고, 여기서는 실체가 없다. 뭔가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지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여기서부터 생기는 거죠. 서서히. 우리 마음에서 생기는데.

 

이럴 때쯤 되면은 이제 좀 소위말해서 道高魔盛도고마성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도가 높으면 마가 많아진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수행이 잘 되기 시작하면 거기서 우리를 현혹시키는 경계들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이런 수행을 하다보면 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되면 우리 마음이 지혜광명이라고 하는 광명이 생깁니다. 환하게 밝아지는 그런 현상이 생기는데. 보통 스승이 없거나 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거를 깨달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나는 뭔가 한 소식 했다. 깨달았다고 생각을 해서 그때부터 공부를 안하는 거에요.

 

와서 도인행세를 하고 이렇게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참 경계를 해야 됩니다. 수행 중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여러 가지 있어요. 이런 광명현상,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에 마하나가라고 하는 어떤 장로가 있었는데 그 제자가 이 분의 제자가 아라한이었어요. 담마딘나라고 하는 아라한이었는데. 이 분이 굉장히 지혜가 수승한 분인데 자기 스승이 도대체 공부가 잘 했나 안했나 관찰해 보니까. 그 자기 은사스님이 아라한이 된 것은 아닌데 스스로 아라한이 됐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분이 이런 광명을 자기가 깨달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아간 거죠.

 

그래서 이 분이 찾아가서 은사스님한테 여러 가지 법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천 가지 질문을 해도 다 이야기해요. 다 대답을 해. 이거는 이론적으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이때 제자가 뭐를 요구를 하냐하면, 옛날에 공부를 하신 분들은 신통도 능숙했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은사스님한테 뭘 요구를 하냐하면 아주 사나운 코끼리가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만들어라. 그런 신통으로 그런 코끼리가 은사스님한테 달려오는 모습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서 확 달려오는데 이 은사스님 마음에서 뭐가 일어났냐하면 두려움이 일어난 거에요. 자기가 죽을까봐, 두려움이 일어나서 도망을 간 거죠.

 

그러니까 옆에 있던 제자가 스승의 손을 딱 잡으면서 번뇌가 다 한 아라한도 두려움이 있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번뇌가 다했으면 두려움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겠죠. 그죠? 그런데 자기가 평소에는 번뇌가 있다는 걸 몰랐던 거에요. 그러니까 수행이 잘 되고, 수행이 힘이 강하니까 번뇌가 잘 안 일어나니까 번뇌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런 극한상황, 자기가 죽음이라는 상황에 부딪치니까 그때 두려움이 일어난 거죠. 그때서야 알게 된 거에요. ~ 내가 정말 깨달은 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그때 이 분이 제자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 안가서 다시 수행을 열심히 해서, 워낙 기본이 좋았기 때문에 수행을 해서 아라한이 됐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수행이 잘 되면 번뇌도 되게 줄은 거 같고, 또 마음의 그런 환한 광명도 생기고 또 여기 지혜도 생깁니다. 평소에 내가 경전을 봐도 잘 모르는 것들이 경전을 보면 훤히 들어오는 거 같은 거에요. 그리고 또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 기쁨이 넘쳐나는 거죠. 그래서 이런 현상들, 또는 알아차림이 아주 강해진다거나, 또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 진다거나, 그래서 이런 것들이 나타나면서 아~ 내가 드디어 도를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는 그런 집착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수행이 정체되고 더 이상 나아가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때 자기 스스로를 반조를 해보고 정말 내가 번뇌가 다한 상태인가? 이것조차도 사실은 변화는 것이라는 거,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때 알았던 지혜하고 대학교 때 알았던 지혜하고 똑같던가요? 다르단 말이에요. 고등학교 땐 이게 다라고 생각했지만 대학 들어가 보면 또 다른 게 있고. 또 나중에 박사학위나 더 높은 공부를 해보면 또 달라지는 걸 느낀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하다보면 처음에 내가 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수행을 해 나가면서 자꾸 변해가는 걸 봅니다. 그래서 이 수행을 하면서 오는 지혜나 이런 경계도 역시 변할 수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