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지안스님_선가귀감

지안스님 특별법문 선가귀감 _ 제3회 선가귀감3 (44:14)

Buddhastudy 2011. 12. 18. 22:57

  방송 보기: 불교TV

거기서 대중을 이래 모아놓고, 설법을 하시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대중 앞에 나오셨어요. 법을 설하기 위해서. 그랬는데. 대중이 귀를 기울이고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씀을 안 하셔. 그날따라. 침묵을 그대로 지키고 계셨다. 이 말이죠. 그러다가 연꽃, 불교를 상징하는 꽃 아닙니까? 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 대중에게 이렇게 들어 보였다는 거에요. 그게 擧拈花거염화. 연꽃을 들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시중. 대중에게 보였다. 이걸 靈山會上영산회상의 擧拈花거염화라 이럽니다.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인 것. 이게 두 번째 심인을 전한 거다. 이거에요.

 

그것참 이상하죠. 대중이 귀를 기울여 부처님 말씀을 들으려 했는데 아무 말씀은 하시지 않고 연꽃을 들어 보였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대중이 전부 어리둥절해버렸어요.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졌다는 겁니다. 그때 유독 백만 대중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가섭존자가 혼자 빙그레 웃었다는 거에요. 다른 대중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져있었는데 가섭존자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는 거에요. 그걸 보신 부처님께서 내게 있는 정법, 안장, 열반묘심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이랬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처님 심인이 가섭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삼처전심 가운데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얘기가 영산회상거염화입니다. 염화시중의 미소. 이렇게도 말해요. 가섭이 미소했다 해서.

 

세 번째는 또 뭐냐? 세 번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어요. 구시나가라 사라수밑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나무하고 인연이 많은 성인이세요. 다 아시고 있지만 부처님 태어나기를 無憂樹무우수 가지를 마야부인이 잡았다가 잡고 꽃향기를 맡다가 부처님이 태어났다. 그러잖아요. 룸비니 얘기에요. 지금 가보면 보리수에요. 무우수라는 거는 아쇼카나무를 무수라 하는데. 아쇼카(ashoka), 인도의 유명한 불교를 크게 장래에 보호했던 그런 임금이 있습니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을 시킨 임금이죠. 아쇼카, 한역에서는 阿育王하육왕이라 하는데. 나무에도 아쇼카(ashoka)나무라는 나무가 있어요. 그게 무우수였다. 이렇게 보는 예도 있고. 하여튼 근심 없는 나무라는 뜻이에요. 그 나무 밑에서 부처님이 태어났다는 거에요.

 

또 도를 이루는데 부다가야(Buddha Gaya) 나무 밑에서 성도 했다. 이러지 않습니까? 거 원래는 비파라 나무인데 부처님이 성도했다. 정각을 이루었다. 이래서 보리는 깨달음이라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보리수라 이름이 바뀐 것이죠. 또 설법을 처음 시작할 때도 녹야원에서 시작했지 않았습니까? 녹야원, 사슴이 살고 있던 동산이라는 뜻입니다. 역시 숲 속에요. 그것도 나무 밑 숲 속에서 설법을 했다. 묘한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 같죠. 그 다음에 구시나가라(Kusinagara). 사라수라 이럽니다. 양쪽으로 서 있었다 해서 쌍수라. 사라쌍수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 한전에서는 열반에 들고나니 나뭇잎이 학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학처럼 나뭇잎이 하얗게 변했다 해서 鶴樹학수라고도 표현하기 합니다. (학 학)자를 써서. 학수.

 

거기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거에요. 열반에 드셔서 제자들이 다 모여서. 그때도 가섭존자가 멀리 가서 도착을 안 했어요. 가섭이 말하자면 상수 제자였거든요. 목련존자와 사리불은 부처님보다 먼저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10대 제자가운데. 가섭이 상수제자란 말은 으뜸가는 제자란 말인데 마을로 치면서 제자들이 아들과 같은 입장이라면 맏아들이란 얘기요. 해서 가섭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겁니다. 대중이. 부처님, 말하자면 열반하신 몸을 우리도 각 사용하지 않습니까? 시신을 담는 . 과속에 넣어놓고 기다렸어요. 가섭이 며칠 뒤에 일주일 만인가 뒤에 왔어요. 가섭이 뒤에 와가지고 부처님 곽을 세 바퀴를 이렇게 돌았다는 겁니다. 보니까 부처님이 곽 밖으로 두 발을 쓰윽~ 내 보여줬다는 거에요. 전설적인 얘기죠.

 

그래서 삼처전심 세 번째를 槨示雙趺곽시쌍부라 합니다. 각에서 쌍부, 쌍은 쌍둥이 할 때 쌍자죠. . 두 발을 보여줬다. 이런 뜻이에요. 이거는 우리가 생각으로 궁리할 수 없는 참, 뭐라 할까? 매우 불가사의한 얘기에요. 여기에서 이 세 곳에서 선이 시작되었다. 이 말이에요. 선이. 그러니까 어느 문자를 떠나서 불법의 진리를 진리당체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바로 전하는 이심전심하는 선법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 대목에서 하는 말은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삼처전심이 뭘 말하는 거냐. 이른바 가섭의 부처님으로부터 선법을 전해 받은 가섭의 별도로 특별히 말이오. 선의 등불을 전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선의 등불을 전했다는 것이 이 삼처전심 얘기다.

 

일단 삼처전심에서 선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아시면 됩니다. 이 교과서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자면은. 부처님 일생동안 설한 법문 기간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요즘은 45년이라 하는데 과거 북전설에서는 과거 49년 동안 설했다. 이건 왜 그러냐 하면은 부처님이 과거 북전설에는 19살에 출가했다.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5년 동안은 외도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수행을 하다가 나중에 6년 동안을 본격적인 혼자서 수행을 했다 그래요. 그래서 30살에 성도를 했다. 이렇게 과거 북쪽에서 전해지던 설이라 이래서 북전설이라 그래요. 그리고 30세에 성도하고 나서 79이 될 때까지 49년 동안 설법을 하고, 북전설에서는 79에 열반에 드셨다. 이래요.

 

이 설이 나라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각각 달라요. 그런데 남방에 전해졌던 설은 부처님이 29에 출가를 해가지고 35세에 성도했다. 그리고 45년 간 설법을 하시고 난 뒤에 80살이 되었을 때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그래서 요즘은 세계에서 그 설을 그냥 준용하자. 이래서 부처님이 29살에 출가했고, 35세에 성도했고, 80에 열반했다. 이렇게 세계에 각국에서 통일적으로 하자. 불기도 그래서 통일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금은 말하는데 과거 이조시대에만 해도 서산스님 당시만 해도 남전설을 취하지 않았어요. 북전설 그대로 썼기 때문에 49년 동안 설했다. 그래서 부처님 법문을 5가지로 나눕니다. 5가지로. 이걸 오교라 하는데요,

 

첫째는 人天敎인천교. (사람인, 하늘 천) 인천교법문이다. 이런 말을 흔히 합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인과의 이치를 주로 설해서 좋은 업을 지으면은 좋은 과보를 받는다. 나쁜 업을 지으면은 나쁜 과보를 받는다. 인과법이거든요. 이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업을 짓도록 가르쳐주는 거, 다시 말해서 착하게 살도록 가르쳐주는 거. 그렇게 하면은 다음 생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가지고 지금보다는 복을 많이 받는다는 거에요. 지금 보다는 더 좋은 생활을 하게 된다는 거에요. 또 천상에 가서 태어나는 수도 있다는 거에요. 복을 지어서. 불교에서는 인간은 업을 짓는 중심지고. 인간의 천상세계나 옆에 아수라도 있죠. 그리고 악도라고 하는 지옥이나 아귀 축생도가 있습니다. 악도라. 삼악도라 이러죠.

 

이곳은 인간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받는 곳이에요. 그래서 모든 것은 인간에서 지은 행위, 업이 중심이 됩니다. 참고적으로 하셔야할, 교리적인 문제에요. 육도가 있지만은 인간에서 지은 업을 중심으로 다른 도는 선업을 지어서 선보를 받는 곳이고, 악업을 지어서 악보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인생문제, 불교적인 어떤 인생문제. 인생의 어떤 말 하자 면은 중요한 뜻이 뭐가 있느냐? 불교는 내가 지은 업을 내 자신에게 상속시키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금생에 지은 업이 총결산돼요. 총결산 되면은 이 결산된 업이 다음 생에 나에게 그대로 상속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이 중생이 어떤 존재냐? 업을 지어서 업을 상속시키는 존재다. 인간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다음에 소승교가 있는데 소승교는 우리 아까 말씀드렸죠. 불교를 구분할 때 대승소승 구분한다. 우리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입니다. 소승은 승이란 말은 수례란 뜻인데 요새 말하면 탈 것이란 뜻이죠. 타는 교통을 우리가 이용하지 않습니까? 저는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20개 달렸더라고요. 천명도 더 타겠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타데. 그게 대승이에요. 자전거 오토바이는 한두 사람밖에 못 타잖아요. 그게 소승이에요. 양적으로 비교를 해서 말할 때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데 소승은 자리적인 수행, 자기 번뇌를 끊으면 그만이에요. 내 번뇌를 끊으면은 그로써 족한 거에요. 그래서 이타원력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부터 소승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대승이에요. 소승의 반대말. 대승. 대승은 뭐 또 수행상에서 말할 때는 아공 다음에 법공까지 증득했다. 금강경 같은데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대승이라. 대승은 이타원력. 그런데 여기 인천교, 소승교, 대승교, 세교를 말하고, 그 다음에 서산스님은 돈교 은교를 추가를 합니다. 돈교라는 말은 단박에 깨치는 그런 이치를 설해놓은 경전을 돈교라 그래요. 돈교 법문. 선에도 돈오, 뒤에 가면 돈오점수 얘기가 나옵니다만 돈오하는 거, 경전으로 말하면은 원각경 같은 경전이 돈교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에 원교. 원만한 가르침. 화엄경 같은 경전을 원교라고 교상판석을 하죠. 교를 경전을 두고 이렇게 구분을 하는 거에요.

 

인천교니 소승교니 대승교니 돈교니 원교니. 이게 교인데 이 교는 유통교에 아란존자라는 말이 있듯이 아란이 전부 유통을 시켰다는 거에요. 선은 가섭이 전하고, 교는 아란이 전했다. 그러나 실제 삽삽조사의 인도에서 조사들 대를 이어 법을 전한 내력이 설명되는 말이 있는데. 거기에는 가섭에서 아란으로 법이 전해졌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선도 아란에게 전해졌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다만 아란은 부처님을 오랫동안, 20여 년을 시중을 들면서 부처님말씀을 아란이 다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래요. 다문제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십대제자 가운데. 다문이란 말은 많이 들었다는 말인데. 부처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지적인 어떤 지식이라 할까 이게 가장 으뜸 같다 이런 뜻이죠.

 

이래서 가섭은 선을 전하고 아라한은 교를 전했다고. 교를 유통시켰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교를 다시 한 번 설명하는 말이 이어져 나오는데요, 말 없는 것으로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는 것으로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이 말이 묘하죠. 선은 말없는 데서 말 없는 곳으로 가는 거다. 이르는 거. 그러니까 애초부터 말을 쓰지 않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지도록 해서 마음과 마음이 통해지면 더 이상 말할 게 없어요. 어떤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이걸 선이라 한다. 말했고. 교는 말을 설명해가지고 이치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해서 깨닫고 나면은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물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해야 될 말이 있지마는 알고 나면 할 말이 없는 거에요.

 

大梵天王問佛決疑經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靈山會上擧拈花영산회상거염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거에요. 나오기는 나오는데 이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이 중국의 유명한 전등사서의 하나인 전등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역대 선사들의 법 전해 내려온 계승한 그 얘기가 주욱~ 설해져 있는 책입니다. 이 문불결의경이 이 전등록 보다 뒤에 만들은 책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전등록에서 正法眼藏정법안장 涅槃妙心열반모심이란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중국의 선종에서 선종사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삼처전심의 얘기가. 중국의 선종사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는 거죠. 그래서 이게 경전상의 뚜렷한 출처. 이것은 없다. 다만, 대범천왕 문불결의경에 염화시중의 얘기에 관한 것만 나온다. 이런 얘깁니다.

 

이렇기 때문에 다음 말 한마디만 하고 마치죠. 이렇게 때문에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거에요. 말에 미혹해져가지고 말 배후에 있는 진정한 뜻을 알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是故시고로 若人약인이 失之於口則실지어구즉. 拈花微笑염화미소가 皆是敎迹개시교적이요. 원문에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말해서 잃어버리면은 꽃을 들고 미소한 것도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은 염화시중의 미소. 이것도 교의 자취에 불과해. 교의 자취에 불과하다는 말은 말로써 이러쿵저러쿵 말따라가는 그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得之於心則득지어심즉 마음을 얻으면은 마음에 얻는단 말은 말을 떠나, 본래의 참뜻을 마음에 터득하면 이 말이에요. 얻으면은 마음이 뭐 열렸다 할까.

 

어떤 참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어떤 직관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의해서 체험한 사람. 이런 사람의 경우에는 世間세간의 麤言細語추언세어가 이 세상의 거친 말이나 심지어 악구 욕설 같은 걸 하더라도 또는 잔소리. 이러쿵저러쿵 우리 잔소리는 말 쓰잖아요. 이게 다 교밖에 특별히 전한 선한 종지가 될 것이다. 이거 시간마저 하기 때문에 오늘은 또 여기서 마치고 다음 주에 저번 주보다 몇 분 더 오셨네. 점점 많아지면 좀 재미나게 더 잘해줄 기고 줄어들면은 그냥 나도 안 와버릴 거에요. ~ 다음 주 목요일 또 뵙겠습니다. 오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