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52. 화가 없어진 사람

Buddhastudy 2019. 3. 8. 20:20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한 스님이 숲속에서 열심히 정진을 하다가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그 깨달음을 얻은 그 기쁨에 젖어서 혼자서 법열을 느끼다가 부처님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숲속에서 일어나서 기원정사로 가고 있었어요.

그 지나가는 숲속의 한 마을에서 그때 우연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두 부부가 싸움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화가 나서 아내를 몇 대 때렸나봐요.

그러니까 아내가 울면서 집에 가겠다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이 화가 나서 갈 테면 가라. 이러면서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아내는 너무너무 억울해서 보따리를 싸들고는 친정으로 간다고 집을 떠나버린 거요.

 

남편이 조금 있다가 화가 풀린 뒤 집에 와보니 아내가 없는 거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

그때야 남편은 아내가 친정 가겠다는 하는 게 사실이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아내가 갔을 거라고 생각되는 친정 길을 따라서 뒤쫓아 갔어요.

 

막 쫓아가니까 아내가 아주 울창한 숲속으로 외길로 지나가는 거요.

그때 남편이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요.

이 숲속으로 여자가 혼자서 간다? 굉장히 무서운 길인데.

이건 필히 누군가를 만나러 가나보다.

그렇지 않고는 이 숲속으로 여자가 혼자 갈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아내를 의심하면서 그 숲속 길을 따라간 거요.

 

숲속 길을 따라가다가 마침 아까 말씀드린 대로 스님이 그 숲속에서 공부를 해서 깨달음을 얻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알리기 위해서 그 숲에서 지나갔고,

마침 여인이 남편한테 맞고는 억울해서 친정으로 가면서 오다가 그 숲속 길에서 함께 지나가게 된 거요.

그때 마침 화가 나서 씩씩대고 쫓아 온 남편이 그 장면을 본 거요.

 

그러니까 남자 생각에 자기 아내가 이 비구를 만나러 이 숲속까지 왔다.

둘이 뭔가 내통했다. 이렇게 생각이 확 미쳐버렸어요.

그렇게 해서 이 스님을 엄청나게 두들겨 패버린 거요.

 

처음에는 자기 마누라에게 남자를 숨겨놓고 있구나하고 닦달을 하니 아니라고 하니까

그러면 저 스님이라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이렇게 생각을 해서 거의 못 일어날 정도로 때려버린 거요.

 

이렇게 해서 피투성이 되어서 이 스님이 기원정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그랬더니 글쎄, 오는 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더니 이유도 없이 이렇게 두들겨 팼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 얘기를 듣고 스님들이 다 분개한 거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러면서 당신은 그럴 때 어땠소? 하고 물은 거요.

그러니까 이 스님이

나는 화나지 않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기만 해도 옆에서는 다 화가 나서 분개해 있는데, 정작 맞은 본인이 화가 나기 않았다고 하니까, 그 말이 안 된다는 거요.

거짓말 한다는 거요.

수행자가 거짓말 한다는 거요. 속인다는 거요. 자기 양심을.

본인이 괜찮다는 데 옆에서 양심을 속인다는 거요.

이렇게 해서 이게 부처님께 알려지게 된 거에요.

 

그 주위에 있었던 많은 스님들이 이 비구가 자기 양심을 속입니다.

그랬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가 이미 깨달음을 완성한 줄을 아셨기 때문에

비구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지 않느니라.

스스로 모든 고뇌와 악한 감정을 다 제거한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진심(=)이라는 몽둥이를 던져버렸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를 때린다하더라도 더 이상 성내지 않으리라./

 

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화가 일어나지 않는데

우린 아직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건 속이는 일이다. 솔직하지 못한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우리가 항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번뇌가 다한 사람은 어떤 경계에도 끄달리지 않는다. 그런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이렇게 말하죠.

 

 

제가 젊은 시절에 학원 선생을 하면서 돈을 좀 벌었어요.

그때 세속적인 친구가 한분 있었는데, 그분이 늘 나한테 자기를 속였다는 거요.

어떻게 자기를 속이는가?

 

사람이 돈을 벌 때는 돈을 벌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자동차를 사고, 좋은 집을 하고, 그 다음에 그 돈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당구치고 이렇게 하는데

자기가 볼 때는 돈은 많이 버는데, 좋은 옷도 안 사 입고, 음식도 좋은 거 안 먹고, 집도 안 가지고 있고, 차도 안 가지고 있고.

그리고 술 먹으러 가도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당구도 안 치고, 바둑도 안 두고, 놀음도 안하고, 오입도 안하고,

그러니 넌 뭣 때문에,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거요.

 

그런 걸 안하면 뭣 때문에 돈을 버느냐는 거요.

그러니 두 가지라는 거요.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는지 자기로선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다음에 하나는 너는 그걸 나한테 속인다는 거요.

넌 아마 틀림없이 그런 것들을 나없는 자리에서 따로 할 거라는 거요.

그런데 자기는 그게 섭섭하다는 거요. 왜 그런 문제를 친구인 나와 못 나누냐는 거요.

등산가고 이런 건 다 하면서 왜 그런 건 같이 안 하느냐는 거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을 합니까?

그거 말고도 인생에 할 일이 많고 재미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거를.

 

그 친구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 일에 관심 있는 그런 분이었는데.

그런데 이 분이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었어요.

10년 동안 미국에서 리 코스터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아주 잘 살았습니다.

한번쯤 미국에 가보니 집에 가보니 집도 큰 가지고 세속적인 쾌락을 누리고 살았어요.

나한테 낚시하는 자랑이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여러분도 아는 LA 폭동사건이 터진 거요.

그러니까 그 집이 완전히 흑인들에 의해 불이 질러진거요. 사람이 너무너무 놀랐어.

죽을 뻔 한거요. 이것을 계기로 해서 자기는 미국에 못살겠다. 한국에 오겠다.

 

그런데도 또 부인은 교포였어요. 미국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이오. 부인은 또 한국에 와서는 못살겠다는 거요.

이렇게 해서 남편은 한국에 와서 살겠다. 부인은 한국에 와서 못살겠다. 애들도 한국에 안 오겠다. 이렇게 해서 부부간에 갈등이 생긴 거요.

 

이런 갈등 속에서 병이 난 거요. 그래서 거의 죽을병이 될 정도로 커진 거요. 그때 제가 알게 되었고. 그때 제가 불교책을 줬어요.

그리고 깨달음장에 권유를 해서 갔다 왔어요. 갔다 와서 너무너무 기뻐하는 거요.

그때 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넌 나쁜 놈이라는 거요.

왜 그러냐?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나에게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말을 안했냐는 거요.

 

그런데 한 번도 말을 안 하기는, 제가 아마 수십 번도 더 얘기를 더 했을 거요.

그런데 귀담아 듣지 않았고, 두 번째는 친구지간에 자꾸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의리를 상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귀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안했을 뿐이지 안한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조언을 해주면서

그렇게 너무 욕심내지 마라. 인생은 돈 갖고 사는 게 아니다.

그렇게 쾌락을 즐기는 게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다 네 육신을 해치고 너의 심성을 해친다.’

이렇게 얘기해도 그게 귀에 안 들어오죠.

 

그때 그분 하는 얘기가 이제야 자네가 무슨 재미로 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거요.

그러면서 참 좋아했어요.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다는 거요.

그래서 책이란 책은 다 가져가서 읽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병이 조금 나았어.

나으니까 또 자식이 보고 싶으니까 미국으로 건너간 거요.

그리고 소식이 끊어졌어.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방문을 했더니 이미 친구가 죽은지가 1년이 넘었어요.

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알리지를 못했다는 거요.

 

 

그러니 결국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남편이 죽으니 그 아내가 아이들 키운다고 고생이고,

어머니 먼저 돌아가시니 그 어머니가 혼이 빠진 듯이 슬픔 속에 젖어 있고,

이게 욕망과 쾌락을 즐긴 과보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이런 길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많은 인생의 길이 있다.

그것처럼 여기서도

 

깨달음을 얻은 이가 성냄이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같이 늘 성내는 사람은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 양심이 속이는 게 아닌가.’

이렇게 우리는 의심을 하게 되고

의혹을 갖게 된다.

 

이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다시 들어봐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는 크고 작은 모든 생명을 괴롭히는 무기를 던져 버렸나니

생명을 해치지 않고

해치는 원인도 만들지 않았다.

나는 그를 수행자라 부른다./

 

 

또 다른 얘기에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어떤 부인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면 많은 복을 얻는다하는 얘기를 자기도 복을 많이 지어야 되겠다.

 

그래서는 어느 날 집에다가 음식을 준비해 놓고는 남편에게

여보, 저 도량에 가서 아주 훌륭한 스님 4분만 집으로 초대해 오십시오.

제가 공양을 대접하겠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마누라의 말을 따라서 수도원에 가서

저희 집에 4분의 스님들께 공양이 준비되었으니 좀 보내주십시오.”

그러니까 수도원에서 이 공양은 이미 순서가 있으니까, 이 집에다가 순서에 따라서 4명의 사미를, 어린 스님들을 보낸 거요.

 

이 어린 스님들은 나이만 어릴 뿐이지, 이미 공부를 해서 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아주 고승들이에요. 나이는 어리지만.

이 분들이 남편을 따라서 이 집에 이르렀는데, 부인이 보니까 어디 가서 어린애를 4명 데리고 온 거요.

 

자기는 공양을 잘 지어서 큰스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준비를 해놨는데

남편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어디 가서 내 손자보다 더 어린 애들을 데리고 왔다는 거요.

내쫓을 수는 없고 하니까 자리를 깔고 접대를 해야 되는데, 저 아래 4명을 땅바닥에 앉혀 놓고는 다시 가서 모셔오라는 거요.

 

그러니 남편이 마누라 성화에 못 이겨 수도원에 가서

또 저희 집에 공양이 준비 되었으니 스님 오셔서 드셔야 된다고 청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 사리불 존자를 보내신 거요.

 

사리불 존자가 와서 보니까, 공양이 4사람 먹을 준비가 되어 있고, 스님도 4사람이 앉아 있는 거요.

사미들한테 물은 거요.

공양은 드셨습니까?”

아니오.”

 

그런데 왜 4인분이

그러니까 바루를 들고 사리불 존자가 그냥 돌아가 버렸어.

마누라가 화를 낸 거요.

왜 왔다고 공양을 안 받고 그냥 돌아갔냐, 가서 다시 스님을 모셔오시오.

 

또 가서 스님을 청했는데 이번엔 목련존자가 오신 거요.

목련존자가 와서 보니까 음식은 4인분이고 스님은 4사람 앉아있는데, 아직 음식은 안 드셨어.

그래서 또 돌아가 버렸어.

 

이 부인이 남편한테 또 가서 모셔오라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약간 신화적 존재인데, 이때 하늘의 천신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이 마누라가 참 행패를 부리고 있는 거요.

이 훌륭하신 4분의 스님을 못 알아보고 형상만 보고 나이만 보고는 박대를 하고 있는 거요.

그래서 아주 늙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어.

 

그러니까 남편이 또 이 늙은 스님을 모셔간 거요.

늙은 스님이 오시니까, 그 마누라가 이제 제대로 모시고 왔다고 아주 나이도 들고 고승같이 보인다고.

그런데 이 스님이 오시더니 그 젊은 어린 사미 4명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는 그 옆에 끝자리에 가서 앉아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이 번에는 이 마누라가 화를 벌컥 내면서

어디 가서 고승을 모셔오라니까 늙어서 정신도 없는 노망끼 든 영감을 모셔왔느냐는 거요.

어린애들한테 절이나 하는 저런 정신없는 사람 모시고 왔냐는 거요.

당장 쫓아버리라는 거요.

 

쫓아내놓고 들어오니까 또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요.

또 쫓아내놓고 들어오니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요.

3번을 거듭하니까 그때 이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거요.

그때야 이 천신이 본래 모습을 나타낸 거요.

그러면서 이 부인을 꾸짖은 거요.

 

아무튼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야 그 4분의 사미는 공양을 받은 거요.

공양을 받고 정사로 돌아왔을 때, 이 식사하고 돌아 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늦게 돌아왔단 말이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하고 물어봤더니 있었던 일을 얘기했어.

 

그러자 그런 거를 보면서 마음이 어땠냐?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 4분의 사미가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거요.

주위에서 그 얘기를 들었던 사람이 그 얘기 듣는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 여자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해도 너무 했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데 이 4분의 사미가 마음이 고요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거요.

이게 또 거짓말 한다고. 마음을 속인다고.

화가 났으면 화가 났다. 성이 났으면 성이 났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났다. 이렇게 말을 해야지,

화가 났는데도 화가 안 났다. 이렇게 고상한척 그렇게 말하느냐, 이렇게 논란이 되었어.

 

그래서 다시 또 부처님께 알려지게 된 거요.

그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비구들이여, 그들은 자기의 감정과 욕망을 잘 다스렸느니라.

그리하여 자기들에게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에 대해

반대하거나 저항하려는 나쁜 감정을 다 없애버린 아라한들이니라./

이렇게 말했어요.

 

그들은 이미 이 감정과 욕망을 잘 다스리는 그런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거나 욕설을 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저항하는 마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한을 품을만한 자들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폭행하는 자들을 용서와 평화로 대하며

집착된 자들 속에서 집착이 없나니

나는 그를 진정한 수행자라 부른다./

 

원한을 품을 만한 자들에게

,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원한을 품고도 남을 그럴만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나를 때리는 폭행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방어로 대하며

집착된 자들 속에서 나는 집착이 없다.

바로 이것이 수행자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너만 나에게 안 그래 봐라.

내가 뭣 때문에 너에게 그러겠느냐.

너가 나에게 화를 내니 나도 화를 내지.”

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죠. 이렇게 되기가 쉬워요.

 

그런데 수행자는 그가 어떻게 하든

바로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

이것이 수행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경지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해서

그러지 못한 현재로부터 그런 경지에 이르는 쪽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실패와 실수를 되풀이해 가면서도

하나, 하나 나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