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56. 부처님은 여성수행자를 인정하셨을까?

Buddhastudy 2019. 4. 4. 20:07


오늘은 여성 문제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여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도 당시 사회에서 가장 차별을 받는 집단은 계급사회에서 최하층인 수드라였습니다.

, 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큰 차별을 받는 사람들은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은 당시 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남자가 사람인 거에요.

사람 가운데에서 귀하고 천한 사람이 있는 거지요.

4개의 등급이 있었다.

 

여자는 사람축에 안 넣어준 거에요.

그러면 사람이 아니고 뭡니까?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사회제도상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얘기에요.

 

여성은 남성에 의해서 그 존재가 있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어릴 때는 아버지의 딸로서 결혼하면 남편의 아내로서,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어머니로서 존재한다.

 

자기 이름을 갖고

독립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남자의 부분으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여성의 운명은 어떤 남성을 만나는가

그 남성의 이해에서 자신의 행과 불행이 결정이 된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그런데에서 엄격하게 말하면

여성은 하나의 권리를 가진 인간이 아니고

소위 남성의 한 부속품과 같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3종 지도다.

여자는 이 세상에서 평생에 3명의 주인을 섬긴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나이 들어서는 아들을 주인으로 섬긴다.

 

이 잔제가 남아서 호주제다. 호주제가 남아 있는 거요.

이제 우리나라는 이 호주제를 철폐했다 이 말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미성년자도

이제는 각각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었다.

누구의라고 하는 호주가 필요 없게 되었다.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실은 매우 큰 변화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사제계급은 브라만이었습니다.

다른 계급은 사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계급 사람들도 출생에 의한 신분제적인 사제계급은 아니지마는 출가 사문이라고 하는 형태로

소위 학습에 의한 사문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출생에 의한 사제계급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의한 사제계급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사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도 출생신분으로 볼 때는 수행자 계급, 사제계급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미 이 수행자 그룹 안에 계급 제도가 일부 허물어져서 브라만의 전유물에서 일반 다른 계급도 참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절대로 안 되었습니다.

소위 여성 사제’ ‘여성 수행자이런 말은 없었다.

 

왜냐하면 여성이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남자 없이 홀로 존재해야 된다는 뜻인데, 여성은 남자

없이 홀로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제계급이 될 수가 없었던 겁니다.

,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해탈을 한다이런 말이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종교에서는 여성은 사제가 될 수가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닮은 사람은 남자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사람이에요.

남자라는 말과 사람이라는 말을 같이 씁니다.

이제 시절이 바뀌어서 여성도 사람이다. 이렇게 변했죠.

 

그러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소위말해서 여성 수행자를 인정하셨는가? 하는 문제에요.

여성수행자 문제가 최초로 등장하게 된 것은 부처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부처님의 양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이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청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당시 석가족 안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출가를 해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아들이 출가해버리고 어머니 혼자 남은 사람 즉, 다른 아들도 없고, 남편도 없고, 부모도 없는 이런 여인이 생겨났습니다.

 

남편이 출가해 버리므로 해서 아직 아들도 없고 부모도 없는 이런 여인도 생겨났습니다.

부모가 출가해 버리고, 아직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이런 여인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경우에 이 여인은 주인이 없는 거예요.

 

여자가 주인이 없으면

마치 개가 주인이 없으면 아무나 데려가셔 키우면 되듯이

아무나 데려가도 되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석가족 여인들 가운데서는 우리도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겠다.’ 이런 많은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미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수행을 하고 있었지마는 남자들은 출가해서 수행을 하는 그런 제도가 있었는데 여자들에게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도 출가해서 수행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양모께서는 아들은 부처님이 출가했죠.

또 본인이 낳은 친 아들이 있었는데, 역시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의 아들인 손자인 라후라도 출가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양모는 주인이 없는 홀로 된 여인에 속합니다.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지마는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세속에서 보면 이것은 가장 큰 불행입니다.

 

그러나 이미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친 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한 자유, 더 이상 나의 주인이 없는 내가 주인인 그런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부처님께 출가를 요청했던 겁니다.

그때 마하파자파티 부인만이 아니고 많은 이런 석가족 여성들이 같이 부처님께 출가를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야소다라 공주도 여기에 속하죠.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남편은 출가를 했고, 아들도 출가를 했고, 그러니까 자신의 주인이 없는 상태가 되었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이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청했을 때, 인도의 전 역사에서 여성의 수행자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즉, ‘천민이 수행자가 된다이것은 불교가 처음이 아니에요.

이건 이미 부처님이 태어나신 그 시대에 이런 이른 이미 벌어졌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 조선시대로 말한다면 양반 남자만 과거에 응시를 할 수 있죠.

그러나 양반이 아닌 계급도 나라에 공로를 세우거나 어떻게 돈을 주고 사거나 해서 신분을 바꾸면 과거에 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록 공주라고 하더라도 여성이 과거에 응시는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신분제 차별보다

성차별이 훨씬 더 근원적이었다.

 

신분의 차별은 속일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지마는,

성차별은 이것이야 말로 정말 태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승낙을 하지 않으셨어요.

얼마 있다가 두 번째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또 승낙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고는 부처님께서 이 가필라 성을 떠나서 바이샬리로 가셨습니다.

 

두 번을 요청했지마는 두 번 다 거절을 당하고 부처님께서는 떠나버리시고, 그때 이 여인들은 부처님을 따라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다 머리를 자르고,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 여인들이 나선 거요.

 

이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즉, 남자에 의해서 보호받고 살고 있는 당시 사회에서 이런 노천에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당시 시대적 조건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지마는 이 여성들은 그런 결단을 내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바이샬리까지 따라간 거요.

 

바이샬리에 온 이들은 아난다를 만나고 아난다에게 출가할 수 있도록

, 마하파지파티 부인은 자신과 함께 온 여성들이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부처님께 요청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난다는 그 여인들, 다 자신의 친족들이죠.

거기에는 부처님의 어머님도 계시고, 부처님의 부인이었던 분도 있고, 또 자신의 누이들, 친척들이오. .

그들의 그 비참한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던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간곡하게 여성의 출가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또 거절을 하셨어요.

그때 아난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부처님이 아주 어린 갓난아기 때부터 젖을 먹이고 보살펴서 온갖 정성을 다해서 부처님을 키우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하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삼보에 귀의해서 부지런히 수행정진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수행의 정도로 말하면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아주 수행력이 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런 분을 출가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여성은 수행을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여성도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바르게 수행을 하면 능히 해탈과 열반을 증득할 수가 있느니라.” 이랬어요.

 

그러자 아난다가

그렇다면 부처님, 이 부처님의 양모 이상 가는 그 어떤 훌륭한 여인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그 여인들을 출가시켜라.”

이렇게 해서 출가가 허락이 된 거에요.

 

그때 부처님께서 8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8가지 조건을 가지고 가서 물어봐라. 그래도 출가하겠다면 출가를 허락하노라.

그래서 아난다가 그 8가지 조건을 제시했을 때, 마하파자파티 부인 등 여인들은 기꺼이 그 8가지를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해서 출가가 이루어졌고, 소위 최초의 비구니가 탄생하게 된 거다.

바로 이곳이 바이샬리고, 여성의 출가는 그냥 남자들의 출가와 성격이 좀 다릅니다.

 

남자들의 출가는 세속을 버리고, 수행자가 되었다 하는 의미지마는,

여성의 출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뜻이에요.

 

지금까지 사람은 사람이었는데, 사람의 자격을 갖지 못했습니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여성의 출가가 허락됨으로 해서 여성은 이제 더 이상 누구의라고 붙는 이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요.

 

누구의 딸이라든지, 누구의 아내라든지, 누구의 어머니라든지, 남성이 있고, 주인이 있고 그 주인의 종속되어있는 한 부속물이 아니다.

이제는 아무개라고 불리는 단독의 인간이 되었다.

, 인격적으로 하나의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게 된 거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여성해방의 효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왜 3번이나 거절을 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여성의 차별이 당시 사회에 얼마나 심했느냐.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하려고 했을 때 망설였던 것처럼 이 미묘한 법을 누가 듣고 깨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세상을 거스르는, 세상과 거꾸로 가는 법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법을 설하셨고, 세상 사람들은 그 법을 듣고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는 분들이 생겨나듯이,

이 여성의 출가라고 하는 것은 정말 당시 사회에서 세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 시기를 늦추셨고,

그러나 여인들의 그 강한 요청을 받자, 그 출가를 받아들일만한, 그래도 당시에 가장 진보적인, 개방된 곳을 선택하셨고, 그곳이 바이샬리라 할 수가 있고

 

두 번째는 여성들 자신도 출가하겠다고 했지, 출가해서 수행한다는 것은 부처가 된다는 얘기인데, 부처가 된다는 것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된 인간이 된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냥, ‘출가 하겠다하는 것만 갖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자리를 뜨셨을 때, 그들이 바이샬리까지 스스로 머리를 자리고 거기까지 왔다는 것은

이미 독립할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

 

출가를 해서 독립된 인격을 선언한 게 아니고,

그 여인들은 스스로 독립된 인격을 선언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선언했기 때문에

위대한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구니가 출현하게 된 거요.

그러니 오늘 불자라면 이건 정말 부처님의 지혜가 아니고는 부처님의 그 중생을 사랑하시는 대자대비가 아니라면, 이런 일이 2600년 전에 일어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서 오늘 한국의 많은 여성 불자님들은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을 공경해야 되지마는, 특히 여성 불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그 공경이 더 지극해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 중에 여성 불자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많기는 많은데 뜻을 따르는가.

이건 조금 더 검토를 해봐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