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지안스님_선가귀감

지안스님 특별법문 선가귀감 _ 제8회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 (21:04)

Buddhastudy 2012. 1. 29. 22:09

  방송 보기: 불교TV

날씨가 또 좀 추워졌습니다. 겨울은 추운 맛으로 사는 계절이죠. 겨울은 좀 추워야 되고, 여름은 더워야 되고. 계절이 우리나라가 가장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수많은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가 많지 않답니다. ,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분명하다는 것도 이게 좋은 것이거든요. 사람의 마음에도 사계의 마음이 있다. 그래요. 봄의 마음이 있고, 여름 마음이 있고, 가을의 마음, 겨울의 마음이 있다. 어느 큰 스님께서 당신 제자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당신 제자가 어느 큰 절의 주지를 했어요. 그런데 그 주지를 맡은 상좌 되는 스님의 성격이 평소에 근엄하고 아주 냉정해요.

 

이래서 사람들이 그 스님 앞에 오면은 그냥 포근한 맛이 안 느껴지고 아주 엄숙한 그런 인상을 주니까 오래 있지도 못하고 이랬는데, 편지글에 어떤 말이 있었느냐 하면은 주지는 제자를 보고 하는 말, 주지하는 동안에는 소임을 맡아 있는 동안에는 봄의 마음이 되어서 지내라. 봄의 마음. 그러니까 이 말은 봄은 온화하잖아요. 날씨도 화창하고 꽃도 피고 계절이 아주 화창한 계절입니다. 그러면서 부드러운 마음, 그러니까 소임을 맡아 있는 동안에는 봄의 마음이 되어서 누구든지 부드럽게 대하라. 부드럽게. 요 법문 아닙니까. 예로부터 待人春風대인춘풍이란 말이 있어요.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우리 봄바람이 불어올 때 훈훈하고 얼굴이 간지러울 정도로 기분이 좋거든요.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소임을 살아라.

 

이건 일반 누구에게나 일상생활 속에서 부드러운 봄의 마음이 되어서 사람을 상대해 준다면 이게 하나의 보시가 돼요. 얼굴로 보시하는 안시라는 말도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마음속에도 사계의 마음이 있다. 부드러울 때는 부드러워야 되고, 정열적으로 해야 될 때는 정열적으로.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날씨는 차갑잖아요. 냉정해질 때는 냉정해져야 되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냉정해져야 할 때는 냉정해져야 되요. 그런가 하면 조금 쌀쌀하게 방편으로다 하는 겁니다. 사람을 너무 정에 치중되지 않도록 그렇게 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사람마다 누구나 자기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도 하나의 내 문제에요.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있고, 또 가정에서도 있어요, 또 지역사회에서도 있고, 나라에서도 있을 수 있죠.

 

우리나라만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단의 비극이 남아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은 이 통일 문제가 국가적으로 볼 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풀지 못한 문제다. 이래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개인이나 단체, 혹은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풀어야 될 숙제로 남아있을 때, 이때, 이걸 화두라 이래요. 화두가 있다. 내 인생의 이 문제가 화두다. 이런 말을 언론에서도 씁니다. 화두다. 그래서 인생은 화두를 가지고 산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내가 풀어야 될 문제가 있어. 해결되지 아니한 미해결로 남아있는 이 문제. 언젠가는 풀어내야 될 문제에요.

 

이런 걸 원래 불교의 선수행에서 쓰던 용어. 화두란 말을 그대로 차용을 해서 내 화두다. 그래서 인생은 화두를 풀어야 한다. 이래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가 뭐냐? 죽음의 문제에요. 물론 태어나는 문제도 붙여서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라 이럽니다. 생사를 일대사라 하기도 해요. 생사 일대사를 생사의 큰 문제를 해결하자. 선수행의 목적을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자. 부귀영화를 누려봐도 마지막에는 죽는 문제가 남아 있잖아요. 여기에 딱 막히는 거에요.

 

석가모니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부다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고 난 직후에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아함경에 나옵니다. 나는 해탈을 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 이 말이에요.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마지막에 좀 전에 말씀드린 데로 죽음의 문제가 남아 있으면은 이게 남아 있으면은 문제하나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해탈을 했다는 말을 하고 그다음에 모든 걸 다 알았다. 一切知者일체지자란 말도 경문 속에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은 쉽게 말하면 이런 말도 있어요.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다시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생사를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 특이한 말이죠.

 

그래서 이런 말을 통해서 불교가 뭘 제시하고 있는가? 이런 것도 이제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근본 문제. 화두를 가지고 있다. 참선 수행하는 전문적인 선수행자가 아니라도 일반적인 의미로 사람 누구에게나 화두가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볼 대목에는 이 화두만 터트려 버리면은 폭탄을 터트리듯이 이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는 의심 덩어리,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만 터트려 버리면은 생사가 끝난다. 하는 말이 나와요. 108쪽에 24장 대목을 보겠습니다.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폭지일파한다. 한 생각 덩어리, 일념자란 말이 그런 뜻입니다. 간화선 수행할 때 물론 선이 화두를 들고 하는 선도 있고, 묵조선이라 해서 화두를 들지 않고 하는 선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에서는 임제종의 선풍을 중요히 여겨서 참선을 할 때는 간화선을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래서 화두 관하는 게 의심 덩어리를 말하자면 얹어놓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의심 덩어리를 일념자, 한 생각 덩어리.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 말입니다. 일념자라 했습니다. 이 일념자를 탁~ 하고 터트려버려야 된다. 폭탄이 터지듯이 그걸 터트려버려야 된다. 이런 말이 있어요.

 

만약에 생사를 대적하고자 하려면, 생사를 대적한다는 말은 저번 시간에 죽을 때 악업에 끌려간다. 이런 말이 나왔는데 악업에 안 끌려가는 게 생사를 대적하는 거요. 나고 죽는 문제를 벗어나는 것, 이겨내는 것. 이렇게 하려면 모름지기 화두에 모아진 한 생각 덩어리를 탁~ 하고 터트려야, 깨 버려야 이 말이오. 바야흐로 생사를 마친다. 나고 죽는 생사. 이걸 멈춰버린다. 스톱시킨다. 생사를 마친다. 그러니까 윤회설에 나온 얘기대로 생사는 일반범부중생의 입장에서는 계속되는 거요. 해가 떠서 지고하면서 밤낮이 교차되듯이, 나고 죽는 생사가 계속 되풀이된다. 이거요. 그런데 간화선에서는 화두를 한번 탁 터트려버리면은 생사가 끝난다는 거에요. 더 이상 나고 죽고 하는 이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는다. 이런 뜻입니다.

 

~ 하는 것은 폭지라 이랬는데. 땅에 슈류탄 같은 것이 터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시커먼 통을 부수는 소리다. 법담아 놓은 통. 옷이 검은색이잖아요. 그건 중생의 무명을 비유한 얘기죠. 캄캄한 無明漆桶무명칠통. 시커먼 통을 부수는 소리다. 시커먼 통을 부순 연후에 생사를 대적할 수 있다. 생사를 물리친다. 이런 뜻이에요. 모든 부처님들이 인지에서 부처님 되기 이전의 수행하던 시절을 인지라 이럽니다. 인지에서 법을 수행하던 것이 단지 이것이었을 뿐이다. 무명을 타파했을 뿐이다. 이 말이오. 시커먼 무명의 통을 부수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만 하면은 생사가 끝난다. 생사를 대적할 수 있다. 이렇게 좀 특이하게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 놓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얘기가 있느냐? 그래서 화두를 타파하는 걸 탁~ 하고 한 생각을 터트린다. 이렇게 표현해 놓고, 그런 다음에는 내가 바르게 깨쳤는지 안 깨쳤는지 이걸 눈 밝은 사람에게 점검을 받아야 된다. 이 말이 이어져 나옵니다. 눈 밝은 스승을 찾아 공부를 점검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록 일념자를 탁하고 터트렸지만, 이렇게 한번 터트린 후에는 모름지기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서 선배랄까, 스승벌 되는 큰 스님들을 찾아가서 내가 바른 눈을 갖추었는지 갖추지 못했는지 이걸 검사를 받아야 된다는 거에요. 점검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안을 갖추는 거 한 생각 덩어리를 탁~ 하고 터트려서 자기 바른 눈을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정안을 갖추지 못하고 바로 생각을 터트리지 못하고 스스로 착각을 하거나 공부가 미진한데도 공부가 다 된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것. 이런 경우는 큰일 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모름지기 참회를 해야 된다. 이랬습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름지기 참회를 해야 한다. 도는 큰 바다와 같아서 바다가 들어갈수록 깊어지지 않습니까? 육지 물가에서 바다 멀리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지거든요. 그 비유를 이 대목에서 합니다.

 

도는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이 말이오. 조금 ??. 만족을 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조금 해 놓고 그것이 다 된 것처럼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뜻이죠. 깨달음 후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 옛날 우유를 가지고 정제해 만든 식품이 있는데 제일 좋은 것을 제호라 합니다. 제호 같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는 수가 있다. 공부를 하다가 정안을 바로 갖추어야 되는데, 혹 그릇된 사견을 가지거나 생각이 잘못되면은 공부해 놓은 그게 오히려 독서가 된다. 독의 역할을 한다. 똑같은 물을 소가 마시면은 우유를 만들고, 독사가 마시면은 독을 만든다는 말도 있죠. 똑같은 물을 소가 마시면은 우유를 이루고, 독사가 마시면 독을 이룬다. 결과는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공부분상에도 이런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런 얘깁니다. 해서 중요한 게 뭐냐 그러면은 중요한 게, 공부에 있어서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눈이 밝아야 된다. 눈 바른 것. 정안이라 하죠. 부처님 법을 바를 정자를 붙여서 정법. 이렇게도 말하고, 또 선에서는 눈이 바르다. 이래서 정안, 바를 정자 눈 안자, 또 사자로 말할 때는 正法眼藏정법안장.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정법안장. 그래서 눈 밝은 게 가장 소중하다.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사람도 우리는 이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순수한 인간성보다는 예를 들면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또 재력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걸 가지고 사회적으로 평가하는 수도 있죠.

 

그러나 사람을 평할 때 가장 중요한 거는 그분의 인격, 다시 말해서 인간성이 어떠한가? 이게 중요한 거요. 아무리 재력이 많은 분이고, 또한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인격이 높지 못하고, 인간성이 좋지 못하면은 사람을 좋게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은 마음이 좋아야 사람이 좋은 거에요. 마음이 좋아야. 가령 한 부모 밑에 여러 형제자매가 있잖아요. 그러면 부모가 다 똑같은 자녀들이니까 다 사랑하겠지마는 그 많은 자녀들 중에서도 가장 바른 마음을 가지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자녀가 있다면 그게 부모 눈에 그런 사람이 먼저 들어오는 법이에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거는 사람에 있어서 마음이 어떠하냐? 이걸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 거죠. 물론 옛날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네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身言書判신언서판이라 해가지고 신은 몸매, 풍채가 있어야 된다. 이런 뜻이죠. , 말을 조리 있게 정연하게 잘해야 된다 이거요. , 글을 잘 써야 된다는 거요. 글씨 같은 거, 판은 판단, 그래서 옛날은 인물평을 할 때 그 평가의 기준이 신언서판이었다. 이런 말도 전해지기는 하지마는 이거는 어떤 세속적인 특정 가치기준에서 한 말이고, 사람은 역시 마음 가지고 보는 거에요. 마음 가지고. 그래서 불교는 마음이 법이다.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