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3분인문학(2019)

[3분 인문학] 양심과 공리주의의 차이 _홍익학당.윤홍식

Buddhastudy 2019. 4. 30. 19:54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아닙니까?

맞는 말이에요.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행복한 게 양심에 맞지 않을까요?

어떠세요?

그러면 보통적인 양심이 아닙니까?

 

내가 당해서 싫은 것 남한테 하지마라.

내가 받고 싶은 거 남한테 해줘라.

그러니까 이왕이면 최대다수가 최대행복한 일이 더 옳은 일이다.

양심적이잖아요. 그럼 공리주의네요.

 

뭐가 다를까요? 이게 양심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실제로 콜버그의 도덕이론에서도요, 양심 단계는 단계가 더 높아요.

그 아랫단계가 공익단계에요.

 

공익에 좋으니까 선이다. 하는 단계가 그 아랫단계이고요

더 높은 단계는 양심에 맞으니까 선이다 하는 단계에요.

 

2개가 어떻게 다르냐?

요것만 들으세요. 짧게 설명 드릴게요.

 

그러니까 내 양심에,

내가 당해서 싫은 거 남한테 하는 거 못 견디겠어요. 찜찜해요. 양심이 아니래요.

그래서 하는 게 선이다 하는 그런 경지는

도인들의 경지이고 불보살, 사도들의 경지입니다. 군자들의 경지입니다.

 

최대다수한테 최대로 행복이 가는 게 좋지 않냐?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게 좋지 않냐?

말은 좋은데 인간의 꾀로 계산을 해서 내려고 하면 공리주의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가 되냐?

지금 여기서 한명이 죽으면 다 살 수 있어요.

그럼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한명 손해 봐서 여럿이 사니까 남는 장사에요.

그래서 한명 손해 볼 사람만 정하면 되요.

 

양심은요? 그래야 된다하더라도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아파하면서 그 한명에 대해서도 아파하면서 결정을 내리면 양심적인 거고요,

공리주의자들은 매정합니다. 한 명 손해 봐서 다수 살렸으면 이득인 거예요.

? 거기서 양심을 빼고 얘기하면.

 

결국 공리주의도 제대로 돌아가려면 그 기준의 판단근거가 양심이 되어야 되요.

왜 공리주의가 옳을까요? 양심에 맞으니까요.

 

그런데 양심을 배제하고 공리주의적 계산만 하다보면, 매정해집니다.

소수의 희생이 당연하게 되요.

다수가 이득을 보면 소수는 희생해라가 되요.

 

뭐가 빠졌죠? 양심이요.

양심만 들어가면 공리주의도 양심이랑 맞아서 함께 돌아가는데, 양심 빼고 공리주의만 얘기하면 주장만 하면 그것은 양심하고 어긋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겁니다.

 

오묘한데 달라요.

판단기준이 뭐냐하는 거예요.

 

내 양심이냐,

모든 사람한테 이득이 되면 소수는 손해 봐도 된다는 그런 발상이냐 하는 거예요.

다르죠. 같으면서 다르죠.

 

그런데 들어가 보면 또 하나인 게

공리주의가 왜 우리가 다 옳다고 여길까요? 공리적 관점을?

양심에서 옳다고 하니까요.

 

이해되세요? 오묘한 얘기인데.

양심에 맞다고 하니까 옳다고 하면서 양심을 배제하고 계산을 해버리면

오히려 양심에 어긋난 결과물이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공리주의는 항상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거예요.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더 많이 이득 보면 좋은 거잖아요.

그 말은 분명히 옳아요. 우리 양심에서 지지해요.

그런데 양심을 빼고 그 계산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누구는 이득 보는데 누구는 손해 보는 경우, 이럴 때 답이 안 나옵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공리주의라면 많은 사람의 이득을 추구해야 맞는데, 소수의 손해에 대해서 어떻게 여러분이 처리하실 건가요?

 

그럼 그런 답을 다시 어디서 찾아야 되요? 양심에서 찾아야 되요.

그 자체 내에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공리주의자들이 흔히 선악이 없다이런 거를 자꾸 주장하시면서

한명 손 해봐야 되는데 그게 옳으냐, 그르냐 하는 이런 딜레마를 끌고 나오는 거예요.

왜냐? 공리주의 안에서는 복잡하거든요.

 

그 한 명의 손해를 어떻게 볼 것이냐

무시하고 갈 건지

그 한명 때문에 다수가 손해 볼 건지 계산의 관점이 그런 쪽으로 가요.

그러면 공리주의식 계산입니다.

 

양심은요?

모두를 남을 나처럼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가는 거예요.

비슷한데 다릅니다. 구분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