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65. 욕심이 있기 때문에 좌절이 생긴다

Buddhastudy 2019. 6. 6. 20:27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술을 무척 좋아하는 노공이 있었다.

아난이 가서 권유하여 부처님이 처소에 오기를 원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날 술에 대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나무에 부딪혀 넘어져 많은 상처를 입고 후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노공에게 물으셨다.

 

오백차에 가득에 실린 섶을 태워버리고자 한다면 몇 차의 불을 쓰면 되겠는가?”

많은 불은 필요치 않습니다. 팥알만 한 불로 잠깐 사이에 태워버립니다.”

공은 그 옷을 입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1년 됩니다.”

그 옷을 씻어서 때를 지우는 데는 몇 해나 걸리겠는가?”

물 한말이면 잠깐 동안에 깨끗이 씻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노공에게 쌓인 죄도 500차의 섶과 같고 또한 1년 된 옷 때와 같다.”

이 말을 들은 노공은 곧 깨달아 5계를 받아 지니고 뜻이 환하게 열렸다.//

 

여기는 경전에서 아주 짧게 써놨는데요, 원래 이 분은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석가족이에요. 부처님 친척 되는 사람이에요.

늘 술에 취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다녀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부처님 설법 듣고 술 그만 먹고 수행 좀 하라고 권유해도

에이, 나는 이미 버린 몸이다. 나같이 이렇게 업이 두터운 놈이 수행한다고 되나,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우리 부처님같이 태어날 때부터 아주 특별한 그런 사람이나 해야 깨닫지, 나 같은 이 업이 두꺼운 술고래가 새삼스럽게 수행한다고 깨달을 수가 없다.”

아예 자기는 안 된다고, 아예 법문도 안 듣고 수행도 안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참 사람은 아주 심성이 착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아난존자가 하도 그 집안 어른이니까, 이 부처님 법문만 조금만 들으면 저분이 참 공부를 잘할 수 있을 텐데, 이런 마음에서 몇 번을 권유해도 이 분이 자기는 안 된다고 그렇게 거절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 경전에 나와 있듯이 어느 날 술에 만취가 되어서 오다가 나무에 부딪히고 언덕에서 떨어져서 완전히 심한 상처를 입은 거요.

그렇게 해서 몸져 누워있게 되니까, 자기가

, 이 술이 정말 나를 헤치는구나.” 완전히 요번에 죽을 뻔한 거요.

 

그래서 약간 뉘우치는 마음이 있었어.

지금까지 늘 자기를 합리화 했는데.

그래서 부처님 뵙기를 청했던 거요.

 

자기가 성할 때는 부처님 안 찾아가고 자기가 아파서 몸져누워있으니까 부처님 말씀을 들을 마음을 냈는데,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신 거요.

 

그러니까 이 분이 하는 주장, 자기는 너무 세속에 물들었고, 술 좋아하고, 욕심 있고 그래서 자기는 수행해 봐야 안 된다. 이런 주장을 늘 펴왔기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에 늘 빠져있는 사람이죠.

그때 부처님께서 물은 거요.

 

500차에, 섶 아시죠? 짚 같은 이런 거요.

그걸 태우려면 불이 몇 차나 있어야 되느냐? 이렇게 물었더니

그 태우는데 성냥불 한 개만 있으면 태울 수 있다는 거요.

또 당신이 입은 이 옷이 얼마나 되었소. 1년 되었다는 거요.

1년이나 때가 묻었으니까 지우려면 얼마 걸려요? 아무리 안 걸려도 1년 더 걸려야 되잖아. 그죠?

때를 씻으려면 얼마나 걸리느냐? 잠깐 씻어버리면 깨끗해진다는 거요.

그때 탁 깨쳐버린 거요.

 

여러분도 이 말 듣고 깨쳤어요?

우리 사암큰 스님께서 하신 법문 중에 이런 게 있죠.

 

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을 밝히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

전깃불을 탁 켜면 천년 있다 밝아지느냐? 아니다.

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도 불 탁 켜면 순식간에 밝아진다.

반대로 천년동안 밝혔던 동굴의 불을 딱 끄면 천년 있다가 어두워지느냐?

아니에요. 금방 어두워져요.

 

그래서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업이 두껍고 죄가 많더라도

탁 깨치면 금방 해결이 되는 거요.

 

이게 일확천금 욕심 같은 게 아니에요.

그렇게 또 이해하시면 안 되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긴 악몽 속에서 헤매던 사람이 눈을 딱 뜨면 그 꿈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일시에 사라지지,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고 눈뜬 뒤에 하루 지나야 악몽이 끝납니까?

아니죠. 눈 딱 뜨면 사라지는 거요.

 

그것처럼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가 탁 깨뜨려지면

바로 밝아지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단박에 깨닫는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래서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깨쳤고

그 오랫동안 기생생활을 했던 연화생녀도 깨쳤고, 바보같은 주리 반특도 깨쳤고, 똥군 니다이도 깨쳤고.

이 어떤 꿈을 꿨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요.

눈뜨면 다 꿈일 뿐이에요.

 

그런데 꿈속에서는 다 달라요.

악몽을 꾼 사람하고, 좋은 꿈을 꾼 사람하고, 꿈속에서는 천양지차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면서 가난하게 살거나, 병든 몸을 갖고 살거나, 감옥에 가서 죄를 받고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유하고 잘 먹고 살거나, 지위가 높거나 이런 사람하고 비교하면 완전히 천양지차죠.

그것은 꿈속에 꿈의 종류에 불과하다는 거요.

눈뜨면 다 꿈일 뿐이에요.

 

딱 깨달으면

과거에 깨닫기 전에 내가 어떤 고통을 겪었냐,

이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자꾸 이 꿈속의 얘기를 갖고 자꾸 하는 거요.

꿈속의 얘기를 갖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부처가 되셨다. 그리고 마가다국의 서울인 왕사성과 코살라국의 서울인 사위성에서 두 나라의 왕이 다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의 그 명성이 전해져서 가필라성 고향에까지 전해진 거요.

 

아들이 출가하고 늘 근심걱정에 쌓였던 정반왕이 그 국제적인 인사, 인물이 되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고국으로 초청을 하고 싶었던 거요.

왕으로서는 자기 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고향으로 초청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거 아니겠어요.

 

우린 뭐, 그런 게 아니라도 우리나라 사람이 유명하게 외국에 가서 성공을 하면 고국에 초청할 때 금의환향이라 해서 다 초청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이 사신이 갔단 말이오.

기원정사로 부처님을 초청하러 갔는데, 부처님의 설법을 뒤에 앉아서 듣고는 그냥 출가해버린 거요.

그래서 왕이 심부름 보낸 건 잊어버리고 그냥 출가해서 수행승이 되어버렸다.

또 보내놓으면 또 그렇게 되고, 또 보내놓으면 그렇게 되는 거요.

이걸 우리나라에서는 뭐라고 그럽니까? 함흥차사다 그러잖아요.

 

왕이 실망하게 된 거요.

이 도대체 똑똑한 대신들을 보내놓으면, 그것도 선발해서 앞에 간 사람이 그렇게 되니까 문제가 있다 싶어서 선발해서 보내놓으면,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요.

 

그래서 왕이 낙담하고 있는데, 우다이라고 하는 대신이 자기가 가겠다고 자원을 한 거요.

그래서 왕이 하는 말이 이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안 보내겠다. 그랬어.

? 가면 다 함흥차사가 되니까. 누구도 믿을 수가 없는 거요.

그동안에 왕이 신복으로 생각했던 몇 사람을 보냈는데도 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러니까 우다이가 웃으면서

대왕이시여, 전 다릅니다.”

이 우다이라는 사람은 소위 말하면 여성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분이에요. 요즘 말로하면 플레이보이에요.

 

그러니까 수행자, 아이 그건 나하고 관계가 없다. 이거야.

저는 그거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저는 충분히 가서 부처님께 전할 거라는 거요.

그럴 염려. ‘수행자가 된다.’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거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갔는데, 기원정사에 천명 이상의 대중이 산다니까 본인이 생각할 때는 굉장히 왁자지껄할 거로 생각했는데, 숲에 도착했는데 숲이 조용~~~~한 거요.

 

그러니까 마음이 어떻게 되었나하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처님이 어디 딴 데 가버렸나, 아무도 없나이런 생각이 든 거요.

그러니까 마음이 자기 나름대로 건방지게 들떠있다가 조용한 것 하나에 이 마음이 압도가 되어서 좀 조심성 있게 된 거요.

 

그래서 숲속으로 들어갔더니 이에 기막힐 일이에요.

천명의 대중이 탁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데, 정말 보스락 소리도 하나 안 나고 조용~~~~ 한 거요.

 

그러니까 주위가 엄숙하면 자기도 엄숙해지잖아.

그러니까 원래 이 사람은 자기는 부처님 만나서 전하면 된다. 이렇게 건방진 생각하고 갔는데, 그 조용한 분위기에 자기도 마음이 조용~~~ 해져서 뒤에 엄숙하게 앉아서 있으니까 부처님의 설법이 귀에 솔솔솔솔 들어올 거 아니오.

딱 듣고 깨쳐버렸어. 그래서 출가를 해버렸어.

 

그런데 우다이는 약속은 지켰다고 그래요.

출가는 했지만 부처님께 초청의 내용을 전했다.

 

그럼 여러분들이 이런 생각이 들 거 아니오.

아니, 스님이 되더라도 초청한다는 얘기는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게 우리가 이해를 잘 못하는 거와 같은 거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꿈에 어머니가 어떤 가게 심부름을 보냈어.

그래서 심부름을 가다가 눈을 떠서 깨버렸다고 칩시다.

그러면 깬건 깬거고 아무튼 심부름은 갔다 옵니까? 아니죠.

그와 같은 거요.

 

그런데 우다이는 그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과 지내는 걸 좋아하는 이런 업이 있었기 때문에 출가해서 스님이 된 뒤에도

대신 이 기능이, 업하고 결합을 해서 여성들에게 설법을 했는데, 인기가 아주 좋았데요. 하하.

그래서 출가한 뒤에도 그냥 남성으로서 보다는 스님으로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앙상 많은 여자 재가신자들이 존경을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분이 업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냐하면 이렇게 훌륭한 수행자가 되었는데도, 가끔은 그 옛날 버릇이 나왔나 봐요.

그래서 어느 날은 왕궁에 탁발을 하러 들어갔나 봐요.

그런데 당시에 풍속은 출가수행자는 어디든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감옥이고 어디든 간에 제한이 없어요.

 

그런데 아마 왕궁의 내궁, 여자들만 있는 거기에 들어가게 되었나봐요.

거기는 아무도 안 들어오니까, 왕비와 궁녀들이 좀 편안한 옷차림으로 이렇게 있다가 사람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이 우다이 스님이 오니까 그 왕비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옷이 벗겨졌나봐요. 그래서 몸을 봤어.

 

돌아와서는 스님들한테 앉아서, , 나는 오늘 빔비사라왕의 제일 좋은 것을 봤다.

이런 식으로 소위 말하면 농담을 하고 있다가 부처님한테 들켜서 야단을 맞는 이런 기록이 나오거든요.

 

법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법이 아닌 얘기일 때는 뭐해라?

침묵해라. 이게 성스러운 침묵이죠.

 

침묵을 하든지

입을 열려면 법에 대한 이야기만 해라.

법에 대한 얘기가 아니면 침묵을 해라.

이런 지침이 나오게 되는데,

 

아무튼 이런 버릇을 그는 버리지 못해서 결국은 우다이 스님을 좋아했던 어떤 여인이 공양물을 늘 올리고 하다가 우다이스님을 유혹했는데, 우다이 스님 자신은 어때요?

이미 그런 거로부터 떠났어요. 농담은 하고 이랬지만.

그래서 그걸 거절을 했는데, 그 여인이 이것이 알려질까 봐 겁을 내서, 자기 또 남자 애인을 시켜서 결국은 우다이를 살해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이런 인연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그래서 우리가 업을 바꾸지 못하면 과보는 받게 된다.

이 과보를 받더라도 이거로 끝이죠. ? 어떤 마음속의 내면에 그런 집착과 번뇌가 없었기 때문에 이걸로 끝이지 그는 다시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 일은 없어지죠.

 

이런 데에서 우리가 아무리 지은 죄가 많다 하더라도

수행을 통해서 이 업을, 무지를 단박에 깨칠 수는 있다.

그래서 이 마음속에 번뇌는 끊을 수가 있다는 거요.

 

그러나 몸에 밴 습관 있지 않습니까.

이 업은 우다이의 경우처럼 못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그것까지도 다 소멸을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깨쳤다 하더라도 습기는 닦아야 된다. 이렇게 주장하면 됩니까?

돈오점수가 되는 거죠.

그러나 번뇌는 깨치고 또 닦는 게 아니다.

단박에 탁 깨치면 끝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뭐가 된다?

돈오돈수가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깨침이라고 하는 이것 자체는 바로 단박에 끝이 납니다.

번뇌는 완전하게 딱 깨치면 번뇌는 끝이 나지만

우리들 몸과 마음에 밴 습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계속경계하고 정진을 해나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연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죠.

 

이런데서 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이 불을 켜면 단박에 밝아지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활해 왔던, 어떤 처지에 있었던 어떤 과보를 받았던, 거기에 상관없이

 

무지가 깨어지면 번뇌는 사리지고

여러분에게 기쁨이 즉, 해탈의 기쁨이 주어지게 된다.

누구나 다 증득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여기서 부처님께서 얼마나 참 상대가 깨달을 수 있도록 좋은 예를 들어주셨습니까.

500대의 섶을 태우려면 그만큼 많이 태우려면 불도 몇 차가 있어야 될 거 아니오.

그러나 그건 작은 성냥불 하나면 되고, 1년 동안 묻은 때는 씻는 데는 잠시면 되는 거지,

1년 동안 때가 쌓았다고 씻는데 1년이 필요하고,

500섶에 불을 태운다고 불이 수십차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다생겁내로 쌓은 무명업식이 아무리 무겁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정진을 해서 무지를 깨치면

번뇌는 즉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부지런히 정진은 해야 된다는 거요.

 

그런데 오늘날 이런 단박에 깨친다. 이런 말이

욕심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힘들게 수행할 거 뭐 있나, 그냥 한마디에 탁 깨쳐 끝내버리지.’

이런 것은 욕심이에요.

 

여기에서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에요.

일확천금을 바라는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부지런히 일해서 하나하나 저축해서 생활하려고 안 그러고

복권하나 사서 한 번에 끝내려고 하는 그런 욕심으로서의 수행적 관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단박에 깨친다는 말이 그런 개념이 아니다.

 

악몽을 꾸다가 눈을 딱 뜨면 그 꿈속에 모든 것들이 사라지듯이

그런 의미의 단박이라는 말이에요.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고, 눈 딱 뜨면 단박에 사라지듯이

우리가 무지가 탁 깨어지면 번뇌가 단박에 사라진다. 이런 뜻이지,

가서 공부를 짧게 비법이 있어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단박에 탁 깨쳐버린다.’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오늘날 수행하는 사람이 이렇게 욕심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급해하죠.

 

깨치지 못했다고, 다리 뻗고 비탄에 빠져서

아이고, 내가 수행생활 30년이 되었는데 깨치지도 못하고

이렇게 번뇌를 일으키면

이거는 내가 사업을 30년이나 했는데 돈도 한번 크게 못 벌어봤다.’

내가 정치를 30년 했는데, 국회의원도 한번 못해봤다.’

내가 가수를 30년 했는데 인기도 한번 못 얻어 봤다.’

그래서 실패라고 생각하고 좌절하는 거와 똑같은 거요.

 

그러니까 그 뭔가를 얻기 위한 수행을 하기 때문에

깨침이라고 하는 뭔가의 상을 그려놓고 얻으려고 하는,

이런 욕심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수행에 좌절이라는 건 없습니다.

좌절을 한다는 건 이미 욕심이 있기 때문에 좌절이 있는 거요.

 

그런데서 우리가 정진을 해가다가 무지가 탁 깨어지면 바로 이렇게 인생이 바뀌게 되는 거요.

이런데서 여러분들도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