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23화 - 인생의 학습 시간표

Buddhastudy 2019. 7. 16. 20:28


, 전우용의 픽입니다.

··, 국어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 3글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한국인은 전혀 없죠.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시하는 3과목입니다.

3과목에 투입하는 학습량이 다른 모든 과목을 합친 것보다 많죠.

 

특히 영어는 중고등학교 때뿐만 아니라 대학 다닐 때에도 취업을 위해서 토익토플을 준비하면서 공부해야 하구요, 취업한 후에도 지속적인 영어학습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배우게 되어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따져보면 현대 한국 성인들, 평생 몇 시간이나 영어 공부를 했을까요?

수천시간은 당연히 넘고, 만 시간 이상 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쏟아 부었지만 막상 영미권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영어학습에 쏟아 부은 시간의 총량에 비교하자면 시쳇말로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공부가 영어공부가 아닐까 합니다.

왜 그럴까요?

 

뭐 이건 영어교육 방법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영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 국어교육에 대해서 말씀드려 볼까합니다.

제목은 인생의 학습 시간표로 잡아봤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에는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 첫 대학입시는 19466월 해방이후 10달 만에 치러졌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경성제국대학이었구요, 이때는 제국두 글자를 떼어버리고 경성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신입생을 모집했죠.

 

그런데 입시 요강, 또 입시 과목 발표를 앞두고 학교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교수회에서는 원래 국어 과목을 시험 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국어 학자였던 당시 법문학부 조윤제 학장이 이 결정에 반발해서 사표를 냈고, 당시 미국인 대학 총장이었던 안스테드는 자기나라 언어를 시험 치지 않고 학생을 모집하는 대학이 어디 있느냐며 이 교수들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교수들은 당시에 무슨 생각에서 국어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했던 것일까요?

사실은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들 역시 국어시험 치른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들도 아무리 해방된 나라에서 신입생을 뽑는 그런 시험이지만 학생들에게

배우지도 않은 것을 시험 치르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판단했던 것이죠.

 

대학에서 보는 국어시험은 일본어 시험이었구요, 또 각급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어도 일본어 교육이었습니다.

우리말은 조선어라고 하는 별도의 과목으로 배치돼 있었죠.

 

당시 경성대학은 개교 이래 입학시험과목에 조선어를 넣은 적이 없었습니다.

조선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1938년에는 조선어가 선택과목이 되었고, 1943년에는 그마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말모이가 있죠.

많은 분들이 우리말 지키려는 당시의 학자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했습니다마는,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조선어학회사건은 조선어 교육 폐지 직전인 1942년에 일어났습니다.

 

영화에서도 현대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제의 악랄한 민족말살정책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 대학진학을 꿈꾸었던 최상위권 학생들과 그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이 조치를 오히려 반겼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이나 일본 내 대학이나 국내의 관립전문학교에 진학하는 데에는 조선어가 아무 쓸모없는 과목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진학 하는데 쓸모없는 과목을 억지로 배우게 하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민족 차별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지요.

 

1938년 조선어가 선택과목이 되기 전까지 조선인들이 다니는 보통학교와 보통보통학교는 조선어가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목을 공부해봤자, 상급학교인 전문학교, 전문학교 중에서 조선인이 많이 갔던 연희전문, 보성전문학교같은 경우는 조선어를 입시과목에 넣었습니다마는, 일본인들이 많이 갔던 관립전문학교는 이런 과목을 넣지 않았죠.

 

그래서 관립전문학교나 대학에 가는 데에는 아무 쓸데없는 과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이 조선어 과목은 뒷전으로 돌리고 일본어 과목만 열심히 공부했죠.

그런데 그래도 조선인 학생들이 일본어 과목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일본인 학생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 언어하고, 학습용 언어에 괴리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경우에, 연도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습니다마는 전체적으로 입학생의 1/3정도만이 조선인이었습니다.

응시생은 조선인이 더 많았는데, 합격자는 언제나 일본인이 두 배 이상 더 많았던 거죠.

이 결과를 두고 당시 조선의 지식사회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일본 총독부권력이 의도적으로 합격자수를 조작한 결과다 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교육 당국은 순수하게 공정하게 성적순으로 뽑은 결과가 이런데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고 대학진학률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증거다, 이런 식의 정치공작, 또는 정치선전을 하곤 했었죠.

 

일제교육당국이 합격자수를 조작한다는 정황증거는 있었지만, 당시 조선지식인들은 이 주장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성제국대학의 입학시험에서 당락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 당시 이름으로 국어, 그리고 요즘 기준으로 하면 일본어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보다 일본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일본인 학생정도로 공부해야 절대로 일본어 학생의 일본어 수준을 따라 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 일본어 학습을 더 많이 하자니 자연히 다른 과목공부를 상대적으로 소홀이 할 수밖에 없었구요,

일본어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같은 점수를 받게 되면 다른 과목 점수가 떨어지고, 다른 과목에서 일본인 학생들보다 나은 점수를 받더라도 그렇게 되면 거꾸로 일본어 점수가 불리해지고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던 겁니다.

 

그러니까 외국어를 주요 언어로 국어로 쓰던 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나타났구요.

그래서 학력에서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겼던 겁니다.

 

해방직후에는 한국지식인들 중에 한글을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해방이후 몇 년 동안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 일본어로 쓰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른바 일본어 교육, 일본어를 중심으로 했던 교육이 남긴 후유증은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해방이후의 교육환경은 완전히 달라졌죠.

 

그럼에도 한국학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실력을 쌓으려면 전체학습 시간의 절대량을 늘리거나 영어학습 시간을 늘리고 다른 학급 학습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경성제국대학에 수석합격한 조선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외국 유명대학에 합격하는 한국인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보자면 한국학생들은 외국학생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더 나은 학업능력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학생들에게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한국어가 영어와 굉장히 다르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영어가 일종의 핸드캡으로 작용하는 셈이겠죠.

 

얼마 전 길을 걷는데 한 외국인 청년이 제 앞을 가로막더니 제게 스마트폰에 몇 마디하고서는 화면을 보여주더군요.

짧은 말이라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문장이 그 화면에 떠 있었습니다.

길을 묻는 그런 이야기였고, 마침 가까이 있는 건물이었기에 손가락질만으로 가르쳐줄 수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을 인용한 인공번역기의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어떤 분들은 조만간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도 이 인공지능 번역기가 전 세계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바꿀 것이다. 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런 시대가 머지않아 온다하더라도 영어를 모국어만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외교면에서 또 고급학문에서 또 다른 영역에서 그런 일들이 꼭 필요하겠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국민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갖기 위해서 공부하는 걸까요?

개인적 사회적 집단적 노력과 시간, 비용, 합당한 현상일까요?

세상이 변화하는데 속도를 맞추어서 보조를 맞추어서 이제쯤이면 외국어 학습, 특히 영어학습에 대한 그동안의 태도를 좀 성찰해야 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이죠.

한국인들이 지난 수십 년간 1인당 평균 5,000시간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입했으며 그렇게 투입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좀 냉정하게 성찰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우용의 픽, 오늘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