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지안스님_선가귀감

지안스님 특별법문 선가귀감 _ 제14회 한 번 진심을 일으키면 백만 장애의 문이 열린다 (42:56)

Buddhastudy 2012. 3. 11. 21:59

  방송 보기: 불교TV

원컨대 스님이 염부제에 돌아가거든. 다른 스님들 보도록 써 놓은 거거든요. 염부제, 인간세상. 누구를 만나거든. 이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전해달라 이 말입니다. 내 꼴을 말해주어 뒷사람을 견책하시오. 내 이런 처지를 남에게 알려가지고 공부 도중에 수행정진 도중에 화내는 일 없도록 하라 하시오. 전해 달라 이 말이죠. 천당이나 부처님 세계나 또는 지옥이 육도 가운데 천상도를 천당이라고도 합니다. 지옥아귀축생 삼악도도 있죠. 그래서 천당이나 부처님 세계나 또는 지옥이 오직 사람의 마음이 원인을 만드니. 거기에 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 마음가지고 어떤 업을 짓느냐? 거기에 달려 있다는 거요.

 

선인선과, 악인악과잖아요. 인과법인.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얻기 어렵고, 사람 몸 한 번 잃어버리면은 다시 사람 몸을 얻기 어렵다는 거요. 진심을 길이 끊어버려야. 성내는 마음, 이거 완전히 끊어져야 깨달음에 이른다 하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이오. 간절하고 묘한 뜻을 품었으나 말을 할 수 없어서. 내가 전생에는 스님, 사람 몸 받은 스님이었는데, 사람은 잃고 구렁이 뱀 몸 받았으니 말은 할 수 없다 이 말이오. 꼬리로 글을 써서 내 심정 토로하노니. 꼬리로 글을 써가지고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밝히나니 이 말이오. 원컨대 스님들은 이 글을 베껴서 벽 위에 걸어두고, 내가 재 위에 써놓은 글을 그대로 배겨가지고 자기 거처하는 방 벽에 붙여 두시오. 이 말이오.

 

진심이 일어나려 하거든 얼굴을 들어 글을 보시오. 뭐 화가 나려 할 때는 이거를 벽에 붙여 놓고, 얼굴을 들어서 읽어 보시오. 이런 내용이에요. 그래서 이게 유명한 설화로 전해지고 있고 제가 사는 통도사에도 병풍에 큰 병풍 있지 않습니까? 병풍에 이 홍도비구, 자기시를 써가지고 만들어 둔 것이 있습니다. 설화 한 토막을 소개했어요. 그러니까 오늘 이 법문 들었으니까 집안 편안하겠다. 성내는 일 다 없어지니까. 성내는 일 없어지니까. 다음은 참지 못하면 수행을 이룰 수 없다. 앞서 한 말 하고 같은 뜻입니다마는 인욕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한다. 참고 살아야 된다. 이미자씨가 옛날 부른 노래 여자의 일생이라는 가사에 보면 참아야만 한다기에. 이런 가사가 있더라고. 참아야만 한다기에.

 

요새는 못 참는 사람들이 많아요. 세상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성질도 급해지고 인내심이 약해진다.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문이 수행의 문이 비록 한량이 없으나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된다. 자비와 인욕. 불교정신을 한마디로 할 때는 자비정신, 이렇게 말합니다마는 또 하나 더 보태서 말할 때는 자비와 인욕이에요. 부처님도 과거 오백생을 인욕선인으로 있었다고 금강경에 설해져 있죠. 또 중국에 유명한 인욕군자, 행자가 있었답니다. 춘추전국시대 사람이었는 모양인데. 형님이름은 밝혀져 있어요. 누사덕이라고. 누사덕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남들이 인욕군자라고 불러줄 정도로 화를 내는 일이 없고, 어떤 모욕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참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동생이 누사덕의 동생이 저 변방으로 보통 사람들이 가기를 싫어하고 또 설사 가도 제대로 그 소임을 맡아 하지 못하는 아주 텃세가 심하고 이런 곳에 작은 지방 관리의 관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임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동생이 임지에 떠나기 전날 형님인 누사덕에게 인사를 하러 간 거요. 형님, 내일 제가 임지로 떠납니다. 그동안 편안하게 잘 계십시오. 쉽게 말하자면 이렇게 형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형이 그곳이 다른 사람들은 가기를 꺼려하고 갔더라도 소임을 제대로 못 보고 중간에 그냥 나와 버리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 자기 형제를 남들이 인욕군자 형제라 하니까 잘 알겠지마는 다른 사람들은 그 곳에 가면은 제대로 소임을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나오고 실패를 하는데 자넨 이왕 임지로 가는 한 잘 소임을 마치고 돌아오도록 해라. 형으로서 동생에게 이렇게 충고랄까? 조언을 했다. 합니다. 그랬더니 동생이 형의 말을 받아서 형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형님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형제를 인욕군자라고 부르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참고 견뎌 무사히 소임마치고 돌아오겠다. 이렇게 말을 했어요. 그러면서 한 예를 들어요.

 

그 예를 드는 말이 어떤 말이었느냐하면, 누가 내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면서 욕설을 하고 화를 내어도 내가 그 사람이 내 얼굴에 뱉어놓은 침을 손으로 문질러 닦아버리고 그냥 피해 나오겠다 이거에요. 자리를 뜨겠다 이 말이오. 이렇게 형님한테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들은 형님이 안 된다. 이래. 안 돼. 그래선 안 된다 이 말인데. 왜 그러냐하면은 말 중에 누가 내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면서 욕설을 하고 화를 내어도 내가 얼굴에 뱉어놓은 침을 손바닥으로 딱~ 문질러 닦아버리고 피해 나오겠다 이랬는데, 손바닥으로 얼굴에 뱉어놓은 침을 닦지 말고 그냥 나오라는 거에요.

 

뱉어 놓은 침을 가래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으면 한 번 더 뱉을 수가 있으니까. 아예 그 사람 보는 데서는 얼굴에 뱉어 놓은 침이나 가래를 닦지 말고 그냥 피해 나오라. 이렇게 동생에게 일러주었다는 거요. 얼마나 극진한 얘기요. 이런 설화가 전해져요. 그러니까 인욕군자죠. 그래서 사람은 착한 마음으로 마음을 보내면은 한없이 착해지고, 악한 마음으로 마음을 보내면 또 한없이 악해지거든요. 요즘 사람들이 확실히 참지를 못해요. 걸핏하면 사람도 죽이고, 심지어 부모를 죽이는 경우도 있잖아요. 한해 범죄도 통계가 나오는데. 그런 패륜 행위가 50건 이상씩 발생한다. 이런 통계가 있답니다. 이조 오백년 사에 세종대왕 때 일어났다. 그래요. 경상도에서.

 

경상도 감사가 조정에 보고를 한 거에요. 어떤 보고를 했느냐? 어떤 패륜아가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했다. 보고가 들어왔어요. 세종대왕이 이 보고를 받고 잠을 못 잤데요. 나라 안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그래서 그 당시 변계량이 대재학으로 있었는데, 아침에 조정에 들어가서 세종대왕을 뵈오니 잠을 못자가지고 눈이 충혈 되 있더라. 이렇게 글에 보면은 쓰여있습니다. 노기를 띤 세종대왕이 나라 안에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자식이 애비를 죽이는 일이 어째서 일어나느냐? ~ 분노가 치솟아가지고 대재학인 변계량에게 다그쳐 물은 거에요. 어떻게 벌을 줘야 되느냐? 이거에요.

 

했더니 변계량이 폐하, 우리가 백성을 잘못 가르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벌주는 게 능사가 아니고 백성을 어떻게 도덕적으로 바로 되도록 가르쳐야 되나? 이걸 다시 연구해 봐야 될 거 같습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에게 변계량 대재학이 고했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조 때 오백 년 동안에 한번 그 사건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온갖 범죄가 다 증가 되가지고 많이 일어난다. 이렇게 다들 개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서 인욕행. 인행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우리가 참는다. 하지만 이 선 공부는 참아도 참는 게 없는 거에요.

 

이게 불교는 인간의 행위가 중요하다. 선업을 짓고, 악업을 짓고, 그 과보가 다르고, 모든 것이 행위에 의해서 업이 결정된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그 근본은 전부 공한 거에요. 없는 거에요.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오느냐? 참는 마음은 허깨비 꿈이요. 이런 말이 있어요. 忍心인심은 如幻夢여환몽이오. 이렇게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참을 것도 없이 참는다. 뭐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라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욕경은 모욕을 당하는 경계. 욕경은 거북이 털과 같으니라. 거북이라는 동물이랄까 거북이는 털이 없어요. 토끼는 뿔이 없고. 그래서 없는 것을 나타내는 말에 토끼 뿔이다. 하는 말이 있고, 거북이 털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모욕을 당해도 모욕당하는 경계가 없다는 거에요. 없는 거라는 거에요.

 

그래서 근본 실체는 없는 것이다. 이런 얘기요. 이런 뜻에서 설해 놨습니다. 수행이란 결국 번뇌를 극복하여 탐진치, 삼독을 없애가는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 반야심경에 나오는 사리불 존자가 있었지 않습니까? 사리불에게 어떤 예도가 와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불교에서는 이 말이오. “열반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는데,” 열반이 불교의 목적이지 않습니까? 해탈이라는 말로 달리 쓰기도 하지마는 열반이 뭐냐?” 물어요. 불교에서 열반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반야심경에도 구경열반이란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끝에 가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 말이오. 그 열반이 뭐냐?

 

이 질문을 받은 사리불이 어떻게 대답해 줬느냐? 하면은 탐진치 삼독, 탐욕, 진심, 분노라고도 말할 수 있죠. 어리석은 미혹한 마음. 탐진치 삼독이 사라진 것이 열반이다.” 이렇게 대답을 해 줬어요. 탐진치 삼독이 사라지면은 화낼 일 없어지잖아요. 욕심낼 일 없어지잖아요. 마음이 항상 밝아져 지혜로워져 있으니까, 어리석은 미혹에 휩싸일 수가 없는 거에요. 그게 열반이에요. 그러니까 진리라는 게 마음에 있는 거거든요. 마음. 부처도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 선가의 어록에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마음밖에 법을 구하지 마라. 모든 건 마음 안에 있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이 순수해지고 본래의 청정성을 회복하면은 그게 부처님 마음이라는 거, 이건 많이 들어온 얘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이게 중요하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참을 것도 없고, 나를 모욕되게 하는 경계도 없다. 따지고 보면 없는 것이다. 이런 얘기에요. 이어지는 말은 본래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정인이다. 이 말 참 또 좋은 말이죠. 守本眞心수본진심이 第一精進제일정진이라. 이랬습니다. 본래의 참 마음을 지킨다. 탐진치 삼독이 없는 마음이 그 마음이죠. 설명을 하자면은. 본래의 마음, 전에 우스개 삼아 얘기했지 않았습니까?

 

어느 스님이 해제가 되어서 선방에 한철 나고 주지하는 도반스님을 만나보고 싶어 찾아갔더니 스님이 외출을 하고 절에 아무도 없어요. 마침 법당에서 어느 신도님이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가려다가 혹시나 절에 자주 와서 기도하는 신도님 같으면 절 사정을 좀 알려나 싶어서 주지스님이 어디 멀리 가셨냐고 언제쯤 오시느냐? 물어보려고 법당문을 살며시 열고 기도하고 있는 보살님을 불렀다는 거요. “보살님. 보살님.” 부르니 못 듣는가? 대답을 안 하더래요. 그래서 음성을 좀 크게 해서 보살님. 보살님불렀더니 금방 돌아보면서 신경질을 부리면서 왠 스님이 와서 남 기도하는데 불러재끼느냐고 말이야. 화를 내 버리더라는 거요.

 

그래서 그 스님이 뭐라고 했다 했죠? “나는 보살님 몇 번밖에 안 불렀는데, 그렇게 화를 내는데 관세음보살님은 보살님께 얼마나 화를 내겠습니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자꾸 불러 댔으니까.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렀지만, 순간적으로 본심은 못 지켰잖아요. “어떻게 오셨습니까사실 내가 주지스님하고 도반인데 한번 만나러 왔는데 안 계시는데. 보살님 혹시 주지스님 어디 멀리 가셨는지 아십니까?” 물을 때 한마디 대답해주고 또 기도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본심을 못 지킨 거야. 염불하는 노보살님들 앉아서 폼 잡고 염주 굴리고 염불한다. 누구 손자나 누가 와서 옆에서 안기려 하면 저리 가라. 내 염불 할끼다.” 그 본심 못 지키는 거야. 안고 그냥 하면 되거든.

 

마음 쓰는 게 이렇게 부드러워야 되는 거에요. 상을 너무 만들면 못써요. 관념적인 고집을 일으키는 것을 상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말 참 좋은 말입니다. 이게. 본래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정진이다. 보충 설명을 하기를 만약에 정견 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는 망상일 뿐이오. 거짓이오. 진짜가 아니다. 이 말이오. 그게 이제 모든 것을 상을 떠난 상태에서. 달리 말하면 무위심으로 해야 된다. 몇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정진이 아니다. 이거요. 그러므로 옛날 선사스님들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 소개하는데요.

 

망상을 하지 마라. 망상을 하지 마라. 했느니라 했느니라. 망상을 하지 말라는. 원래 운문문언 선사 어록에 나오는 말인데, 망상을 하지 마라. 망상을 하지 말라면 이것 저것 따져 분별하지 말라 이 말이오. 본래의 순수한 마음 그대로 있으라 이 말이오. 망상을 하지 마라. 망상을 하지 마라. 그런데 게으른 사람들은 해태자 경우를 얘기합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항상 뒤를 발해서 미뤄둔다. 이 말이오. 나중에 하지. 나중에 하지. 게으른 사람들이 꼭 그렇게 핑계 대거든. 나중에 하면 된다. 나중에 하면 된다. 그거 안 되는 거에요. 나중에 하면 된다. 나중에 하면 된다.

 

요새 사람들은 뭐하면 바쁘다 바쁘다. 뭐 바빠? 사람은 누구나 하루 24시간밖에 안 가지고 있어요. 네가 가진 시간도 24시간, 내가 가진 시간도 24시간. 그런데 아~ 요새 바빠서. 무상사 법문 들으러 가고 기도하러 가야 되는데. 아이~ 바빠서 요새 절에 법문 들으러 갈 시간도 없다. 그거 새빨간 거짓말이오. 그렇게 핑계 대는 사람들은 자기 바쁘다는 그 말하자 면은 생각 갖고 바쁘게 살겠지. 중요한 거는 다 잃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쁜 사람은요. 중요한 거는 다 잃어버려요. 그런데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뭐에요? 중요한 게 중요한 거거든. 인생에 중요한 게 중요한 건데. 중요한 거는 다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필요 없는 일에만 바쁘거든요. 필요 없는 일에.

 

뭐 계 모임. 부산에 사는 어떤 신도님. 옛날에 자랑을 하면서 하는 말이, 한 달에 계를 스무 개를 하고 있데요. 미쳤지 그거는 완전히. 완전히 그거는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라. 내가 볼 때는. 그래도 그걸 교류를 많이 한다. 사교를 많이 한다. 이런 뜻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자랑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살아야 돼요. 단순하게. 절제하고 살아야 되요. 하고 싶은 거 좀 줄이고 살아야 이게 내 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겁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은 이게 망업이 지어져서 내 페이스가 무너지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절제를 해야 돼요. 절제. 그래서 항상 나중에 하겠다. 나중에 하겠다. 이러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汾陽無業분양무업선사라는 스님은 누가 와서 법을 물으면은 항상 망상을 피우지 마라. 망상을 피우지 마라. 이렇게 대답을 했데요. 그래 이게 하나의 공안으로 채택이 되었답니다. 그게 왜 그 스님은 무슨 말을 하든지 물으면은 망상 피우지 말라. 하는가? 이게 화두다. 이 말이오. 이게 화두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