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지안스님_선가귀감

지안스님 특별법문 선가귀감 _ 제15회 주력으로 숙세의 업장을 소멸 한다 (42:56)

Buddhastudy 2012. 3. 18. 21:17
  방송 보기: 불교TV

아무튼, 주력으로써 숙세의 업장을 소멸하는 방법이 있으니 선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 자꾸 망상이 떠오르고 번뇌가 치성하게 일어나는 사람은 참선이 잘 안될 때 주문을 한번 외워봐라 이 말이오. 주문을. 이 주문을 계속 외우면은 선정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또 우리가 염불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염불이 습관적으로 되면은 익혀져 있으면, 가령 염불은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명호를 계속 부르는 것이거든요. 뒤에 염불 얘기도 나옵니다마는. 그럼 이게 습관이 돼요. 관세음보살. 또는 나무아미타불.

 

이런 불보살명호를 계속 외워나가서 이것이 내 마음속에 베어 있으면은 습관이 되면 말이죠. 또 이걸 예를 들어 말하면은 잠을 자다가 혹, 꿈을 꿔가지고 괴로움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는 수, 건강이 안 좋거나 특별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악몽에 시달리던 사람이 염불을 하던 습관이 있으면은 꿈속에서도 부처님이나 보살님 명호를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꿈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다가 부처님이나 보살님 명호를 부르면은 습관이 된 사람은 꿈속에서 저절로 불러져요. 염불이 돼요. 악몽이 없어져요. 악몽이 없어진다는 거요.

 

이러한 것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얻게 되는 하나의 영험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또 예배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선가귀감은 앞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불교의 수행방법을 아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참선 수행 위주로 설하지마는 경을 보는 거, 앞서 설명 드린 주력을 하는 거, 염불을 하는 거, 또 절을 하는 것. 지금은 절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예배는 우리 예불 드리는 게 예배 아닙니까? 예배. 원래 이 교회를 옛날에는 예배당이다. 이랬죠. 원래 전부 불교에서 쓰던 말입니다. 기독교 용어 중에 원래는 다 불교에서 쓰던 말이에요.

 

장로라는 말도 장로수보리 금강경에 나오잖아요. 금강경이 402년에 번역된 경이에요. 서기 402년에. 신방, 이것도 신사방도. 불교에서 쓰던 말입니다. 스승을 찾아가서 도를 묻는 것을 신사방도라 그래요. 이것을 줄여서 신방 이러잖아요. 예배도 여기에. 서산스님이 임진왜란 때 스님 아닙니까? 이때 우리나라 기독교는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예배라는 말이 있잖아요. 절하는 걸 예배라 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공경, 또 조복하는 것이니. 굴복시킨다. 이런 말. 복 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절을 하는 것은 공경한다는 뜻에서 절을 하고, 또는 굴복, 혹은 조복,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조복하기 위해서 절을 한다.

 

공경진성하고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하는 것이니라. 내 무명업장할 때 무명. 그래서 절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이 말이에요. 예배의 의미는. 참된 성품, 그게 곧 부처죠. 선에서 말할 때 마음이 부처다 할 때 그 마음자리가 참된 성품이거든요. 진성을 공경하고 무명, 중생의 무명업장. 무명업력. 이렇게도 말하죠. 이걸 또 달리 말할 때는 이 불교수행에 있어서 하심이라는 말을 중요한 뜻으로 쓰고 있는데. 아만을 부리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 (아래 하), (마음 심). 이 말이 마음을 낮춘다는 말이오. 일반적인 말로는 겸손해하는 거, 겸손해하는 겸양. 이게 미덕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 절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말이오. 절을 하는 방법. 그래서 예배를 하면서 자기 마음을 닦는다. 신구의가 청정한 것이 곧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니라. 아주 좋은 말이죠. 내 몸의 세 가지 업, 흔히 삼업이라 안 합니까? 신구의. 몸으로 하는 행위. 말도 행위에 속하거든요. 입으로 하는 말. 또 생각도 행위입니다. 업이 행위이란 뜻이거든요. 업이. 까르마라는 범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 이 말이 행위를 뜻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신구의 세 가지가 깨끗해진 것이 청정해진 것이 이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온 거다. 이거에요. 부처님은 신구의 삼업이 청정한 분이에요.

 

그래서 밀교에서는 아까 밀교 얘기했습니다마는 三密加持삼밀가지라 해가지고 부처님 신업이 아주 비밀스러운 큰 덕을 가지고 있다 할까? 중생에게 가피를 주고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신밀, 구밀, 의밀. 부처님의 삼업의 비밀스러운 이력으로 중생에게 가피를 입혀준다. 이래서 三密加持삼밀가지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밀교에서는 기도를 아주 체계화시켜서 설명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은 첫째는 업장소멸 얘기 쭉~ **데서 설해졌습니만은 자기 숙세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고. 또는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또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죄의 악을 내어 쫓고, 복을 받게 된다. 遠禍召福원하소복. 우리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부른다.

 

이래서 한자로 사자성어처럼 원화소복이란 말을 쓰고 또는 영복추객이란 말을 씁니다. 복은 맞이하고 액은 물리친다. 이런 아주 우리 사람들이 평범한 그런 자기 현실 속에서 어떤 염원을 가질 때 그게 전부 복을 맞이하고 싶고, 궂은일 액을 물리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거든요. 기도하는 마음을 깊이 일으켜서 그런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말이 참 좋은 말이었습니다. 신구의가 청정한 것이 곧 부처님이 세상에 나온신 것이다. 불교사찰을 절이라 안 합니까? 그런데 왜 절이라 하느냐? 절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게 맞는 말이에요. 그냥. 절을 왜 절이라 하느냐? 이게 우스갯말 같죠? 지어낸 말 같죠?

 

절은 원래 승가란, 중은, 여러 가지 범어 어원을 가지고 설명하는 말이 있는데, 순수한 우리말로 절 안 합니까? 근래는 왜 절이라 하느냐? 절에 가면 절을 많이 해야 돼요. 대중처소 살면은 절을 하루에 반 배도 절 아닙니까? 합장하고 고개만 가볍게 숙인 이것도 절이거든요? 저는 통도사 큰 절에서 오래 살았는데 큰 절에 살다 보면은 하루에 절을 수십 번 합니다. 노스님들 어른들 나오면 마당에 지나가도 합장하고 반배해야 되고, 같은 동료들끼리도 만나면 합장하고 반배해야 되고. 그래서 절에 가면 자연히 절을 많이 하니까 좋은 거에요. 예의상으로도 좋은 거고. 그게 자기 자신을 하심 하게 만들어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겸손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절도 수행의 한 방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염불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염불.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뜻이죠. 염불이라는 말은.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데로 불보살의 명호를 항상 입으로 외우는 것을 염불이라 합니다. 염불에 대해서 서산스님은 특히 중요시 여기라는 뜻에서 풀어 설명을 하면서 在口曰誦재구왈송이요. 입에 있는 것은 외우는 것이요. 입으로 말만 발음만 하는 것은 단지 소리를 내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이오. 입으로 외우는 것. . 독송한다 할 때 송자. 在心曰念재심왈념이니, 마음에 있는 것이 염불할 때 염이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염은 생각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냥 발음만 하는 것은 외우는 것에 불과하고 염불을 하면서 진정으로 부처님을 생각해야 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徒誦失念도송실념하면은 한갓 외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 하면은 불교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 중생의 마음을 말하자면은 변화시키는 거. 바꾸어가는 거에요. 흔히 우리 불심이란 말 안 합니까? 불심. 불심. 불교를 깊이 믿는 신도님들을 두고 신심이 깊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불심이 깊다. 이렇게도 말하죠. 불심. 그대로 부처의 마음이라는 뜻인데. 부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이걸 간단히 한번 정리해 보자면요. 중생의 마음은 탐진치 삼독이 있어요. 세 가지 독소가. 그래서 욕심을 자주 부리고. 또 화를 자주 내고 성내는 거.

 

저번 시간에 한번 화를 내서 뱀 몸 받았다는 홍도 비구 스님의 얘기 소개했지 않습니까? 어리석음이오. 어리석다는 거는 뭐에요? 생각을 잘못하는 게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다는 것을 쉽게 설명하자 면요. 생각을 잘못하는 게 이게 어리석음이에요. 미혹. 예를 들면 동쪽인데, 동쪽을 서쪽으로 누가 생각한다면 그거 생각 잘못하는 거잖아요. 그게 미혹이거든요. 방향을 잘 못 아는 거. 그래서 중생의 마음은 탐진치 삼독이 들어있는데. 부처님 마음에는 이 삼독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처님 마음은 욕심이 없어. 부처님 마음은 성내지 않아. 부처님 마음은 항상 생각이 바르게 일어나. 무분별지니까. 부처님은 분별이 없는 지혜니까.

 

이래서 이제 중생의 그릇된 상태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이 되도록 바꾸는 거. 이게 불심이에요. 신행적인 입장에서. 수행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래서 불심을 다시 말하자면은 결국 탐심은 괴로워지는 거거든요. 진심도 괴로워지는 거에요. 치심도 괴로워지는 거. 그 괴로움 속에 또 어리석음도 있고, 선악으로 나눌 때는 악이 있어요. 그래서 괴로운 거는 편치 못한 마음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도록 하는 거. 괴로움을 여의도록 하는 거. 또 사람의 마음에 악한 의지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악한 의지를 일으키지 않고 선한 의지. 선한 의지. 또 어리석은 상태에서 지혜로운 상태로. 이렇게 바꾸는 거. 이게 불교 하는 거에요.

 

탐진치 삼독을 바꾸는 거. 이게 불교 하는 마음. 불심을 키우는 마음이다. 이래 볼 수 있습니다. 한갓 외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아니하면은 도에 아무런 이익이 없느니라. 다음 196쪽 보면은 경전을 듣는 것에 대해서 또 설명해 놓는 대목이 있습니다. 경전을 듣는 것. 聽經청경이라. 경전을 들으면은 有經耳之緣유경이지연과 隨喜之福수희지복이라. 이랬습니다. 길을 스치는 인연과 수희라는 말은 보현행원에도 隨喜功德願수유공덕원이라 말이 있는데. 따라 기뻐한다는 뜻이에요. 따라 기뻐하는 복이 있게 된다. 우리 사람이 노래가 없으면 정서적으로 삭막해진다 그래요. 노래가 없으면 하루 사람의 정서가 삭막해진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노래를 부르고 산다. 정서적으로 이렇게도 말해요.

 

저 미국에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에이브러헴 링컨(Abraham Lincoln 1863.1.1.)대통령이 결국 남북 전쟁에서 승리를 해가지고 노예제도를 해방시키잖아요. 그전에는 특히 남쪽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가지고 큰 농장에 일을 시켰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흑인영가라든지, 참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곡들이 많이 나왔죠.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요. 흑인들이 목화밭에서 일을 하면서, 목화를 따고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백인들이 노래 부른다고 회초리를 가지고 말을 타고 다가가 지고 때리는 거요. 노래를 부르지 마라. 노래를 부르면은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래서 노래를 못 부르게 했어요. 노래를 못 부르게 했더니 이 흑인들이 입술만 달싹이는 거에요. 노래 곡이 나오지 않도록 발음을 하지 않고. 그래 그거는 뭐 소리가 안 나니까. 그래서 나중에 흑인 대표되는 분이 그걸 술회를 합니다. 그 목화밭에 백인들의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그렇게 일을 할 때, 노예생활을 할 때, 노래가 없었으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 말을 하더라고요. 노래가 없었으면은. 그래서 노래를 불렀고. 나중에는 노래를 못 부르게 했을 때 전부 입술을 놀리면서 입을 달싹이며 노래를 불렀다. 이런 얘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우리가 요새 흔히 젊은 사람들 음악을 듣는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전부 레시바같은 거 귀에 꽂고 다니더라고요. 옛날보다 더 많이 들어. 옛날 어른들보다.

 

그런데 노래 듣는 것이 그만큼 정서적으로 좋은데. 우리는 불교인. 불교신행을 하는 분. 경을 듣는 거는 그보다 노래를 듣는 거보다 더 가치가 있거든요. 말하자면 컴퓨터 용어로 말하면 버전이 높아요. 상위 버전이요. 상위버전. 그래서 경을 요즘은 어느 스님의 독경한 음성을 녹음을 해가지고 카세트 같은데 플레이어 시켜서 듣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경을 들으면 어떤 점이 좋으냐? 귀를 스치는 인연. 有經耳之緣유경이지연. 이건역제라는 말이 있어요. 불교는요, 신장에도 이 말은 나옵니다. 가령 우리가 귀로 무슨 말을 한번 들었다. 듣고도 기억이 안 되면은 모르는 상태가 되죠. 듣고도.

 

한 번도 안들은 거는 아예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듣고도 기억이 안 되어서 잊어버린 거. 아예 안 듣고 전혀 모르는 거. 다르다는 거에요. 머릿속에 기억이 나지 않아도 한번 들은 거는, 유식 적으로 설명하자면은 아뢰야식 속에 뭔가 종자가 심어져 있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듣고 안 듣고 가 차이가 있다는 거에요. 차이가 있다는 거. 그래서 귀를 스쳐 가는 인연과 따라 기뻐하는 복이 있다. 경을 들으면. 幻軀환구는 有盡유진이나. 허깨비 같은 몸뚱아리. 허깨비 같은 몸뚱아리는 이건 다 믿거니와. 죽을 때가 있다 이 말이죠. 실행은 실다운 수행, 진실한 수행은 없어지지 않느니라. 몸은 닳을 때가 있지마는 수행해 놓은 건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도 참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더 높은 거에요. 우리 종교를 갖는 사람들, 특히 불교인들은 좀 더 정신적으로 수승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진 분들이에요. 세속적으로. 어제가 부처님 출가절이었죠. 2월 달에는. 음력으로 2월 달에는. 8일은 출가절이고 15일이 열반절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찰에서는 특별히 기도 정진 기간을 설정해가지고 많은 불자들이 정진을 하고 있죠. 그래서 출가하는 이 정신이 자기 자신의 정신적 가치를 좀 높여서 삶의 의미를 더 높여서 살고 싶다 하는 마음이라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불교를 신행하면서 살면 그렇지 않은 상태보다도 삶의 질이 더 높아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여기서 마치고 다음 주에 또 하죠. 그래서 대충, 대충. 마치겠습니다. 한주 또 편안히 잘 계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