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15회 권속장수원 (20:47)

Buddhastudy 2012. 4. 29. 21:09

  방송 보기: 불교TV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놀라운 경전이 있는데,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도 아미타경을 찬탄하셨습니다. 왜 찬탄하셨느냐라고 그러면 일체 모든 중생이 저 아미타불의 세계를 믿어야 된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믿어야 된다라고 하는 말은 내가 곧 부처님처럼, 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하는 것, 그리고 내가 저 아미타불부처님의 화신의 세계가 곧 자기 자신이라는 거에요. 요걸 확인해 가는 과정이에요. 요걸 깨우쳐가는 거에요. 요거를 알아차린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작은 삶에 대한, 그러니까 금생이 작은 작은 이런 시간들이, 요런 삶들이 점점점점 영글어져서 하나의 이게 습관화 시키고, 또 연습하게 되고 또 복습하게 되가지고 그것이 오래 자기 자신을 어둡게 보는 것을 오래 보고 있으면, ~ 병들을 수밖에 없어요. 딱 불행한 일이 우리한테 닥쳐오게 돼 있거든요. 그걸 다른 말로 일어서 습기업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이걸 習業습업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래서 대다수의 고초를 겪는 것은 과거전생의 인연이기도 하지만 그 인연보다는 금생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이런 연습이 잘못된 방향으로 연습을 해오고 있었으면은 요게 이제 문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허지 않으려고 지금 우리가 경전을 배우는 거거든요. 15번째에요. 권속장수원이라고 하는 거죠. . 페이지는 38쪽입니다. 그래서 요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게 뭐냐 하면, 일체 생명이 다 편안하시기를 발원하는 거에요. 일체중생이 다 편안하기를 발원하는 거에요.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나는 희생당하고, 나는 뭐해줬는데, 나는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데, 당신을 어떻게 내가 사랑했는데, 이러잖아요. 화엄경의 말씀은 먼저 믿어야 된다. 이랬거든요. 믿어야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먼저 믿으셔야 돼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먼저 전제가 좀 되셔야 돼요.

 

불자는 지나간 것이 어떻게 돼 있다 하더라도,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허므로 해서 지금 주어져 있는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선에서 지금부터라도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지금이라도 발원을 딱 세우시고 원을 세우고 그 원을 하나둘씩 자기의 마음으로 옮겨 가시게 되면, 어떤 불자라도 다~ 좋아지게 돼 있어요. 그게 불설아미타경의 설법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일체가 다 아미타부처님의 화현이시다 라는 거에요. 이거 안 믿어지시죠? 그죠?

 

우리가 이제 자기 자신이 들여다보는 안목이 곧 자기 자신의 세상이라는 거에요. 그게 곧 자기 자신의 현실을 만들어 가는 줄을 요걸 알아차리면 요게 아주 훌륭한 해탈법이에요.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미타부처님의 세계를 잘 설명해놓은 세계를 이게 불설아미경이거든요. 이것은 석가세존께서 설법을 하시고,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 다시 이 자리에서 다시 불설아미타경을 우리가 배워야 되요. 그리고 이것을 이해해야 되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겨가시면, 어느 누구라도 곧바로 해탈지견이 우리한테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이걸 편하게 말씀드리면 편안한 세계가 자기한테 열린다는 뜻입니다. 걱정 근심은 없어지게 되고 편안함이 보다 많아진다는 거에요. 그럼 이것을 알아차린 사람도 그러면 성질안내냐 그러면 똑같이 성질내거든요. 그런데 성질내는 사람들, 잘 안 되는 사람들도 불경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을 빨리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부르시면, 나무아미타불 세계가 곧 나 자신의 화현이라는 뜻입니다. 일체가 다 아미타불의 화현이라고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은 내 남편도 내 아내도 내 자녀도, 이렇게 만나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 자체가 저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이시라는 뜻입니다. 일체 생명이 다 편안해지시기를 발원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권속장수원이라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권속이라는 게 뭐에요? 가족이죠. 같이 사는 사람들이에요. 가족이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가족 같아요? 안 가족, 가족 같지 않잖아요.(발음이 센다. ^^)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제 이 가족이 있으려면은 가족이 올바르게 편안하게 잘 성장해 가시려면은 가족이 서로 믿음이 있으셔야 되요. 요거 아주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족끼리 믿음이 있으셔야 되요. 도반끼리 믿음이 있으셔야 되요. 스님과 불자님들 관계도 믿음이 좀 있으셔야 되요. 이렇게 믿음이 있는 바탕에서, 그러니까 믿음의 바탕은 뭐에요? 저 불설아미타경에는 뭐라고 그러냐 하면은 부처님의 법을 따르고, 경전을 읽고 배우고 실천해 가서 반드시 해탈을 얻기 위한 거에요. 그리고 알아차리는 거에요. 부처님의 실질적으로 가르친 말은 뭐에요? 저 아미타부처님과 나하고는 같지 권속과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기원정사에서 그의 제자 사리붓다. 사리불을 상대로 하여 아미타불과 그가 머물러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공덕을 설명했거든요. 공덕을 설명하셨어요. 여기 좀 보세요.

 

사람이 잘살려면,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 넉넉한 삶을 살고, 건강을 많이 유지하고, 또 즐거운 생활을 많이 하고, 보다 다복한 삶들이 우리한테 더 많이 채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공덕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요걸 자기가 짓는 것에서 출발한다라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미타불의 역할을 뭔가? 저 아미타부처님이 나하고 권속과 같다 이랬죠. 가족과 같으니까 절에 오면은 스님을 뵙고, 절에 오면은 불상을 뵙고, 그리고 그 불상을 통해서 영원불멸한 불성을 만나시는 거거든요. 이게 뭐냐 그러면, 석가세존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내용은 이 사바세계는 공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에요. 다 얘기가 그거에요.

 

공덕은 개별적인 공덕도 있지만, 우리의 내면 안에는, 내면 안에는 일체가 다 부처님과 같은 공덕이 가득한 그런 존재라는 거에요. 그런데 중생이라는 것은요, 우리가 이웃이라고 말하는, 내가 보는 대로만 고것만 받는 거에요. 자기가 들여다보는 공덕은요, 자기 공덕만 갖는 거에요. 고것만 자꾸 헤아리니까, 그 공덕이 언제든지 바닥이 날 수도 있고, 또 모자를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고 이렇잖아요. 그런데 이 생각이 바꾸는 거에요. 어떻게요? 껍데기의 불성이 아니라, 저 부처님이 아니라, 불성의 세계로 들여다보는 거에요. 아미타불부처님 안에는 무량수 무량광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 무량수 무량광의 세계가 우리한테도 그대로 그 공덕이 가득하시다는 뜻입니다.

 

불교를 통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면 누구든지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풍요롭게 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요걸 자기가 확인하셔야 돼. 아무리 돈은 많이 벌어도, 아무리 많은 그 금전이 나한테 돈이 들어와도, 절대 불성에서 오는 부처님의 가치력은 이게 누가 와서 시비 걸 때가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정리가 되셔야 돼. 거기에는 불성처럼 얼마나 갔다 써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아미불의 세계에요. 그걸 우리한테 일러주기 위해서 경전을 가르쳐주시고 법장비구께서는 15번째 권속이라는 말을 설명하고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저 불성과 나는 한가족과 같은 존재에요.

 

그런 사람이, 그런 불자가 왜 신음 고통 할까요? 왜 불안해할까요? 왜 어두워할까요? 왜 슬퍼할까? 왜 자꾸 우울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 세계로 자꾸 밀어 넣는가? 그건 바른 가르침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부터 털어내셔야 돼. 연연해 할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뿐이지. 자기 마음의 그림자죠. 이것은 형체도 마찬가지고 물질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똑같이 연결돼 있습니다. 아미타경은요,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그 두 가지가 뭐냐 하면 하나는 공덕을 설명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장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장엄이라는 것은 뭐예요?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공덕은 내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공덕이고요.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거에요. 이게 똑같은 말인데, 의미구조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뜻이거든요. 내가 지금 쌓아가는 것을 공덕이라고 말한다면은 장엄은 본질적으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이 극락세계라는 것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다시 거꾸로 어떻게 설명해요? 우리가 보는 대로 세상이 나타난다. 그러고, 보여지고 있고, 만져지고 있고, 이해되고 있고, 끄집어낼 수가 있죠. 그런데 이거 거꾸로 설명하면은 이 세계를 곧 뭐라고 본다고요? 극락세계로 보자는 뜻입니다. 자비의 세계로 보자는 거에요. 사랑스러운 세계로 보자는 거에요. 그죠.

 

지금 주어져 있는 상태 요대로를 우리는 어떻게 해요? 아주 귀하고, 미묘하고, 아름다운 상태를 자기 스스로 안목을 자꾸 키워가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키워 가면은 이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에는 뭐든지 공급이 이루어진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두 번째 아까 뭐랬죠? 이 세계를 우리가 믿어야 되요. 내가 꼭 극락세계처럼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좋아져 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꼭 믿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럼 이걸 내가 스스로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요? 발원하는 데로 가요. 원하는 데로 가져가신다는 뜻입니다. 정리되죠. 그죠. 그래서 첫 번째가 뭐죠? 믿음이에요. . 신심이에요. ~ 믿는 마음이 신심 아니에요? 그죠?

 

정리가 잘 되시죠? 그죠? ~ 안 되도 된다고 하셔야 돼. 시간상 그렇게 많지도 않고. 이게 보면요,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한테 필요한 것이 신심이에요. 두 번째 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뭐라고요? 그죠? 발원이라는 것이 있으세요. 발원. 보통 불교식 개념으로는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수행이거든요. 그런데 아미타경에서는 요게 뭐냐 하면 염불로 바꿉니다. 이게 바뀝니다. 다른 데서는, 이게 불자거든요. 불자가 해야 될 것 중에 골자에요. 믿는 줄 알아야 되요. 믿는다는 건 뭘 믿느냐 그러면, 자기 믿음은 다 허공처럼 비어 있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들여다보는 것만큼 내가 원하는 것만큼 고대로 이루어진다고 그랬잖아요.

 

믿는 마음을 가지시고 하셔야 돼요. 이때 믿는 마음은요, 내가 지금 좋아져 간다는 거에요. 내 안에 뭐가 깃들고 있다고요? 누누이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불성명이라는 거에요. 불성생명이라는 거에요. 자기 자신이. 이 생명은 반야심경에 오면은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불생불멸이에요. 이게 자기** 생각하셔야 돼. 이게 뭐냐 하면 이것이 공덕이라 그랬잖아요. 아까 조금 전에 이걸 뭐라고 그랬고요? 하나는 공덕이고 하나는 장엄이라고 그랬죠. 이것은 현실적으로 사는 싸움하는 곳이라고 말하면 이건 본질적인 거거든요. 이게 개인적인 거고 이것이 본질적이라고 표현을 하잖아요. 그럼 이걸 끄집어내는 거에요. 내가 공덕을 쌓는 것을 뭐라 그러냐 하면 마중물이라는 거 아시죠? 마중물은 옛날에 펌프에 물을 부어서 그게 마중물이에요. 마중하는 것을 마중한다. 이랬잖아요.

 

그럼 내가 공덕을 지으면 요걸 믿음으로 먼저 집어넣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불상을 믿는다든가 무슨 그런 것도 다 믿음이죠. 절에 오는 것도 믿음이고. 그런데 정말로 믿음은 뭐라 그래요? 여러 번 말씀 드렸죠? 그죠? 자기 자신 안에 살아있는 불성을 들여다보는 것. 그걸 확인해 가는 것. 영원불멸하게 이게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렇게 정리가 되시면 안에 이게 마중물처럼 조금만 집어넣고 이게 발원 아니에요? 그죠? 집어넣으면 장엄의 세계는 광대무변하다고 그랬거든요. 불설아미타경에. 여기서 뭐죠? 한량없는 뭐가 생겨요? 공급이 이루어지는데, 공급을 요걸 믿어야 되요. 믿고 발원하셔야 되요. 원하면 반드시 원이 와진다니까요. 좀 해보세요. 목욕가야지. 그럼 꼭 목욕하러 가요.

 

그래서 요게 옮겨 오면은 뭐라고 표현 되냐 하면 수행으로 옮겨지거든요. 닦는 마음이다. 이렇게 돼요. 행복해지는 마음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불교식으로 불설아미타경 식으로 옮기면 뭐라고 말해요? 稱名念佛칭명염불이다. 칭명이라고 그래. 칭명 일컫는다. 이렇게 말해요. 칭명염불로 변해갑니다. 이렇게 칭명하는 거거든요.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것에 그렇게 큰 공덕이 있다는 거에요. 나무아미타불 하나씩 하나씩 부르는 것에는 공덕이 쌓여 오른다. 그랬죠? 이 공덕은 똑같은 것인데, 장엄세계, 장엄공덕세계를 일깨워내서 뭐라고요? 원색으로 일러준다는 뜻이에요. 이렇죠. 그죠. 전체(신심, 발원, 수행)가 뭐라고 그래요? 전체가 마음이라고 그러죠.

 

이것을 보고 염이라 그러고 이거 자신을 나라고 표현하는 존재성을 **한다는 거에요. 나는 본래 공성이거든요. 나라고 하는 건 다 비어있어요. 내가 뭔지 평생 살아도 자기 모르잖아요. 아는 사람 손 들어봐요. 진짜에요. 나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절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불교식으로 정리가 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길이 어떻게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아는 거에요. 그래도 성질을 한 번씩 내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런 거에요. 이게 정리가 안 되면은요, 80이 되도, 90이 되도, 내가 뭔지 몰라요. 우주공상에 주인이 없는 거에요. 아니 그러니까 이거 엄청나게 어려운 얘긴데도 너무 다 알아들으시는 거 같애. ^^ 알아들으시죠? 몰라도 들어도 그냥 들은 거에요.

 

가다 보면 다 알아지게 돼 있어요. 믿으셔야 돼. 자기 자신을 믿는 거에요. 뭐라고요? 그죠? 나는 불성의 존재에요.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게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은 육체도 공한 것이고 오온이 다 공한 것이거든요. 안이비설신의가 무 안이비설신의라고 누누이 설명 드리거든요. 육체가 없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런데도 살아있어요.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거에요. 아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 들여다봐요. 이게 잘 안되는가 봐.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냥 한 번씩 기절을 하는데. 너무 훌륭해서 어떻게 **줄 수가 없어. 안 믿지. 표정이 전혀 그거하곤 거리가 먼 얘기야.^^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죠.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의 삶에 대한 것들을 연세가 아무리 들어도, ** 교수를 하고 뭘 권력가를 하고 해도 주체가 있어요? 그죠? 정말로 물어보면은 자기가 뭔지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전부 공성이에요. 모두 비어있어요. 나라는 건 사실은 비어있거든요. 존재가 없어요. 그런데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가 한방에 보면 오행에서 보면 기라는 게 있잖아요.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도 반드시 기는 있잖아요. 주체는 없어도 전부 이게 나라는 것을 내세울 것은 없어도 반드시 나는 지금 살아 있잖아요. 지금 살아계시잖아요. 으음. 혹시 안 살고 계시는 분들이 와계시는 분이 있나? 몰라요 지금. 왔다 갔다 하면서 다 잊어버리시면요, 지금 살아있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