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6.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3월 02일 방송 - 결과를 생산하는 장소에 따른 업의 분류 (23:01)

Buddhastudy 2012. 5. 13. 19:41

  출처: 유나방송

 

현상은 어차피 일어났다가 또 사라지고,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갔다 하는 건데, 떠나게 돼 있는 것을 가지 말라고 붙들게 되면 그런 굉장히 큰 고통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탐욕을 통해서 오는 여러 가지 부작용. 그리고 고통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도 불선업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성냄, 이 성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악업을 지었습니까? 순간 요즘은 보면 요즘 세상에는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이런 일도 많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는데, 어떤 살인자가 놀이터에 앉아있는데 그 옥탑방에서 가족들이 아주 행복하게 웃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게 분노가 일어서 이유 없이 가서 죽였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이런 분노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단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또 자기에게 일어나는 그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그냥 총을 들고 나가서 난사를 한다거나, 이런 것도 다 분노에 바탕을 둔 업이 되겠죠. 그래서 이런 분노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섭습니다. 우리가 10년을 사귀던 친구도 이 분노하나 때문에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 분노라는 것은 참으로 경계해야 될 부분이고요, 또 우리가 탐욕도 보면 그자기의 성욕이나 아주 감각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어린 학생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고 이런 사건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것도 탐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가를 드러내 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견, 마지막으로 사견이라는 것도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이 사견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옳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이 바로 사견입니다. 확인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견해들을 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집착을 하는 것을 우리가 사견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장 대표적인 사견이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견이죠. 아견이라고 이야기하고, 아상, 그러니까 내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나부터 잘되고 남은 뭐 죽든 말든 나부터 잘돼야 된다. 이게 기본적인 생각이겠죠. 그래서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부처님께서 모든 것은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서 나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은 내가 잘돼야 되고, 결국 그것은 에고 의식. 그러니까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아주 강해집니다.

 

그래서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 이런 식의 생각도 갈 수가 있겠죠. 그래서 뭐 인신매매라든가, 마약을 팔고 자기가 먹고살려고 이런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은 상당히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견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고요. 또 단견, 그러니까 대표적인 견해가 단견인데 이거는 뭐냐 하면 죽으면 끝이다. 우리 삶에는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내가 나쁜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거로 인해서 과보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는 죽으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예를 들면 자살을 한다거나, 자살하는 것도 일종의 단견에 뿌리를 둔 생각들이 바탕이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가 현실에서 받는 이 고통이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불교적으로 보면, 업이 있으면 내가 아무리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하더라도, 업이 있으면 다시 태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것도 죽을 때 우리가 그런 이 세상에 대한 불만족, 분노, 이런 것이 바탕이 돼서 죽는다면 그것은 불선한 마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가 악도에 떨어지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고통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고통이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삿된 견해는 우리가 행복의 길을 가는 것을 근원적으로 방해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견해를 가지면 행복의 길을 갈 수가 있지만, 삿된 견해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행복이라고 생각을 하고 가지만, 그것은 사실은 행복이 아닌, 고통의 길로 가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견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올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방향성을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서울을 가고자 한다면 서울로 가는 길을 가야지 사견이 있게 되면 우리 목적은 서울로 가야 되는데 부산이 목적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거기로 가는 거나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견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악처에 떨어지게 하는 근본 원인 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우리가 선한 마음이 있고 불선한 마음이 있는데, 모든 불선한 마음은 다 불선업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특히 지금 말씀드린 이 열 가지 불선업은 악처에 태어날 수 있는 아주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사소한 불선업이라도 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불선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나 이 열 가지 불선업은 절대로 짓지 않도록 해야만이 우리가 욕계 악처라고 하는 고통이 주로 있는 이런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불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다 불선업에 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열 가지 선업을 우리가 악처에 태어나기가 악처에 태어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십불선업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특히 열 가지 불선업을 지으면 지옥아귀축생수라라고 하는 욕계 악처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욕계 선업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욕계 선업이라고 하는 것은 욕계 세상 중에서 인간계나 욕계천상계에 태어날 수 있는 업을 욕계 선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욕계 선업의 대표적인 것은 아까 말씀드린 열 가지의 불선업. 그러니까 십불선업이라고 하는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면 십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생을 하지 않는 것,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 또 사음을 하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거친 말 하지 않고, 잡담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성을 내지 않고, 사견을 내지 않고 정견을 바로 세우는 것, 이것을 우리가 욕계의 선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불선업을 좀 다른 각도에서 설명을 드리자면, 크게 나누면 네 가지 형태로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시에 해당합니다. 보시. 그리고 계율을 지키는 것, 지계. 이 두 가지. 그리고 수행으로 인해서 우리가 닦는 것은 선정과 지혜, 그러니까 빨리어로는 사마타 위빠사나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수행을 통해서 욕계선업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수행을 이야기할 때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릴 테고요, 지금은 그냥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이 보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귀중한 거, 정당하게 얻은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욕심을 드러내고, 또 남에게 주기 싫어하는 성냄을 드러내는 아주 쉽고도 좋은 수행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통해서 욕계 천상이나, 태어난 경우는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초기에 법문을 하실 때 재가자들에겐 주로 보시와 계율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보시나 계율만 잘 지켜도, 보시를 행하고 계율만 잘 지켜도, 욕계천상세계, 욕계 선처에는 태어날 수 있다. 인간이나 천상세계. 그래서 보시를 많이 행하고 계율을 잘 지켜라.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지켜야 될 계율은 세속오계. 그러니까 다섯 가지 계율이죠.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그리고 거짓말 하지 말라, 술 먹지 마라. 이 다섯 가지 계율만 잘 지켜도 여러분들이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최고 제자 중에 신통 제일이라고 하는 목련존자가 있습니다. 이 목련존자는 신통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가끔씩 앞에서 말씀드린 욕계 천상세계 중에서 33천이라고 하는 천상세계에 가끔씩 가셔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당신은 무슨 업을 지어서 여기에 태어났느냐? 또 당신은 무슨 업을 지어서 여기에 태어났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와서 재가자들에게 그런 법문을 해줌으로써 많은 재가자들이 신심이 보시를 많이 하고 계율 잘 지켰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한 천인에게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은 무슨 업을 지어서 이렇게 천상세계에 태어났느냐? 처음에는 말을 잘 안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재차 물어보면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수행자에게 그냥 무 한 뿌리를 보시했습니다. 그 무 한 뿌리 보시한 것 때문에 이런 천상계에 태어났다는 거죠. 그만큼 이런 보시 공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율을 잘 지키는 것, 다시 말하면 살생하지 않는 이런, 또는 도둑질하지 않는, 이것만 잘 지켜도 천상계에 태어난 이는 아주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욕계에서 짓는 선업 중에서 가장 쉽고도 가장 손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보시를 행하는 것과 계율을 지키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보시와 계율을 지키는 거에 대해서 주로 재가자들에게 법문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 조금 더 지혜가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선정과 지혜수행, 그러니까 선정은 어떤 우리 마음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평화로움을 이끌어내는 수행이고요, 지혜수행은 이 세상에 대해서 무상고, 무아로써 이해하게 하는, 그런 지혜를 개발하는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정수행을 열심히 하면, 지난번에도 한번 말씀을 드렸지만, 삼매라고 하는 아주 고도에 고요해진, 아주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이런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하면 이걸 본 삼매, 아주 깊은 삼매라고 이야기를 하죠. 이런 본 삼매에 들어가는 것은 색계선업에 해당하는데요. 본 삼매에 들어가기 전에, 삼매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과정, 이 과정은 일종의 욕계 선업에 해당합니다. 아직 선정엔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욕계선업에 해당하고요. 지혜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건 출세간의 업이 되지만, 출세간의 마음이 돼서 깨달음이 일어나는 거지만. 이 위빠사수행, 다시 말해 지혜수행을 하는 이 자체는 욕계선업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보시와 지계를 하는 것도 물론 좋은 욕계선업에 해당하지만, 선정을 닦고 지혜수행을 하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마음의 고요함을 닦고, 이런 지혜를 개발하는, 삼법인. 무상고 무아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이런 지혜를 개발하는 것은 욕계에서 닦는 선업 중에서 가장 수승한 선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삼매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수행을 한 공덕은 보시와 지계보다 훨씬 뛰어나서 설사 우리가 선정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욕계 선처에 태어날 수 있는 아주 좋은 선업이 되고요. 또 다음 생에 다시 또 수행을 할 수 있는 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좋은 뿌리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좋은 선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욕계에서 짓는 선업은 아까 말씀드린 십불선업을 하지 않는 것. 이렇게 말씀드릴 수도 있고, 보시와 지계. 그러니까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 이것이 아주 수승한 선업이다. 이렇게 욕계선업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욕계선업은 욕계선처인 인간계나 욕계 천상계 여섯 가지 천상계 중에 한곳에 태어날 수 있는 업이 되기 때문에 욕계 선업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색계 선업과 무색계 선업. 그리고 기능에 따른 분류에 대해서 또 계속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