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18회 임종현전원 (41:13)

Buddhastudy 2012. 5. 20. 20:59

  방송 보기: 불교TV

 

그런데 절에 2030년 불자로 간판 쓰고 다니시잖아요. 그런데도 자기가 뭐 하는지를 몰라. 이러면 심각하거든요. 그래서 요거 정리를 해 가시는 거에요. 뭐라고 정리를 하셔야 돼요? 내가 불자에요. 무슨 불자? 내가 불성으로 존재하는 불자에요. 그냥 시시한 불자가 아니라. 주종이 있는 그런 이~ 추종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벌써 내면에는 이미 다 불성 부처님이 같이 동행하고 있는 그런 존재라는 거에요. 고걸 설명해주고 계신 것이 석가세존께서 가르쳐주신 거죠. 몸은 자동으로 어떻게라도 건강해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이기려고 엄청나게 애를 씁니다. 나쁜 병균이 들어오면은 몰아냅니다. 상처가 나면은 스스로 복구를 합니다. 엄청난 복구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치유력도 있고요.

 

그런데 이기지 못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이기지 못하는 데 훨씬 더 장애가 있습니다. 건강체로 보셔야 돼요. 사랑체로 보셔야 돼. 자비체로 보셔야 되는데. 아이고~ 늙었지. 병들었지. 이래. 그래서 이코르? 괴롭다. 힘들다. 억울하다. 분하다. 이런 게 이제 자기가 더 많이 자기를 지배하니까. 그거는 저~ 괴롭다 힘들다. 억울하다. 분하다. 이런 것은 중생의 마음이거든요? 오욕이 작용하고 있고, 저 뭐죠? 오만이 작용하는 그것이 중생 세계거든요. 늘 괴로움이 쫓아다니는 거에요. 그래서 이거를 부처님 말로 바꾸는 거에요. 자꾸. 그렇게 자꾸 좋은 적응을 자꾸 시켜 가면 갈수록 기도는 발원선택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좋아지고요. 스스로 이뻐집니다. 스스로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러시죠? 으음.

 

요거 한 구절 더 읽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운명은 매 순간 매시간 좋아져 가는 중이에요. 아주 요즘 이쁘게 표현해야 돼. 행복하게 이렇게 표현하시는 거에요.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그렇죠? 하나만 따라 하겠습니다. 오직 감사합니다. 오직 고맙습니다. 오직 사랑합니다. 오직 기도합니다. 이렇게 이제 자기를 바꿔가는 과정을 겪으시면 부처님의 불설이 이제 들리기 시작해요. 알려지고 있고 들려지고 느껴지게 돼요. 책은 가지고 계시죠? 그죠? 가지고 계시니까, 으응~ 아까 저 보신데서 다시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13쪽을 좀 여십시오. 그동안 중간에 과정 때문에 조금 늦게 좀 찾아보게 됐는데, 13쪽에 세 번째 줄에 보면은 사리불 이렇게 있습니다. 고 위에 보면

 

其土衆生기토중생이 그 중생이 13쪽입니다. 불설아미타경. 13쪽이요. 그 중생이 聞是音已문시음이 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다 진실로 실다이 염불하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고 스님을 생각한다. 이렇게 표현하죠. 이때 불법승 삼보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이 경전에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저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생활공간소리.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소리가 다 부처님 가르침. 부처님의 본질, 부처님의 실현. 이것을 일러서 설명 드린 것이 실, 皆悉念佛念法念僧개실염불염법염승이렇게 돼 있죠. 그러고 나서 다시 오늘 검토해서 배우실 것이 舍利弗사리불이여. 汝勿謂여물위 이렇게 돼 있거든요? 너희를 위하여. 此鳥차조 이렇게 돼 있거든요? 차조. 이 소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차조는 (새 조)자죠. 새가 소리를 우는 거에요. 차조. 이 소리는 實是罪報所生실시죄보소생.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그러면, 실로는 죄가 생하는 소리가 아니며, 所以者何이러한 고로 彼佛國土無三惡趣이 불국토에 저 불국토에는 저 삼악도. 삼악도가 없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 얼굴 들어 저 좀 잠깐 보세요. 여기서 표현한 것이 차조라고 하는 말은 새를 얘기하고 있거든요. 새는요, 여기서 새를 표현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일러서 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차조. 으음. 이거를 저 복잡하게 연결시키면은요, 그 납득하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다시 한 번 살펴보시면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게 새거든요? 새는 무슨 말이냐 하면 차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돼 있거든요? 이것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이다. 이렇게 표현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리에요.

 

우리가 살아가면 골목에 가면 싸우고. 차 소리 나고, 매연 일어나고 이런 것들을 다 일러서 이 세상을 일러서 차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안에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실로는 죄가 생하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요걸 좀 설명하기 위해서 아까 내내 말씀을 드린 거거든요. 실로는 이 생한 모든 것에 죄가 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마어마한 이야기거든요? 우리가 내가 죄를 짓기도 하고 생활 속에 하지만, 나의 본질성에는 아무리 죄가 많아도 거기는 죄가 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으음. 내 이웃집에서는 처음부터 죄가 많다고 얘기해 왔거든요. 그 말도 맞기는 맞아요.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껍데기를 인정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맞는 이야기인데. 그런데. 여기서 불교식의 얘기는.

 

이 세상이 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지금? 所以者何소이자하. 어찌하여 저 그 불국토는 말하거니와 無三惡趣무삼악도에요. 삼악도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삼악도가 뭐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죠. 탐진치죠. 그죠? 그래서 이 세계는 뭐라고 표현하냐 하면 탐진치. 이렇게 돼 있겠죠. 그죠? 이때 탐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뭐죠? 이게 욕심이고, 이건 뭐죠? 성냄이고, 이거는 어리석음이죠. 이렇게 세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볼 수가 있죠. 그죠. 이거 삼악도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은 요 얘기를 절 좀 보셔야 됩니다. 눈을 뜨고 보셔야 됩니다. 이게 뭐냐 그러면요. 우리한테 본질적으로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 본래 없다는 뜻입니다. 정리되세요? 안돼도 되셔야 돼.

 

그런데 나한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가? 이건 왜 뭣 때문인가? 그 얘기죠. 그죠. 그러면 내가 탐내는 것은 자기 욕심이라는 거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불성의 세계는 탐진치 삼독이 본래 없는데도 이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세계 중생심의 세계는 어떤 세계에요? 그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 계속 더 많이 지배하고 있죠. 그래서 둘로 나눠봅니다. 하나는 이게 내가 하나 있고, 아래에 이게 이제 있거든요? 이렇게 두 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뭐죠? 참된 것이라 그래서 眞我진아라고 말하고. 이것은 우리가 일러서 假我가아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실제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이건 동시에 있어요.

 

여기도 몸이 있고요, 여기에도 정신이 있고, 여기에도 영혼이 있어요. 여기에도 똑같은 거에요. 그죠? 여기에도 몸이 있고, 여기에도 영혼이 있고, 여기에도 정신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교의 핵심이 뭔가 하면요 이 세상을 딱 들여다볼 때 석가세존께서 이건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실제로 죄를 생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럼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자기가 가지는 자기 생각이 욕심에 옳다라고 내세우는 오만과 저 불편스러운 것이 자기라고 착각하고 있는 동안은 계속 요 틀에서 못 벗어나는 자기를 만들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보고 뭐라고 말해요? 그죠? 우리가 말하는 중생심의 작용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죠. 으음. 몰라도 그냥 안다고 가야 돼. 으음. 안 그러면 오늘 안 끝나요. 으음.

 

여기 좀 보십시오. 이거 중생심이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이렇게 돼요. 똑같은 몸인데. 그러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너무 지나치거나 아까 말씀드렸죠? 받아들이는 것은 많이 공급이 은혜로움으로 왔는데도 그릇은 요다만 하니까 불균형이 딱~ 생기는 거에요. 매주가 다 아직 발효가 안 된 상태인데 먹으려고 덤비는 게 욕심이에요. 납득이 되세요? 매주가 쓸모가 있다니까. ^^ 우리 봐요. 익지 않은 것을 덤비니까 이게 노력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에요. 이치가 없이 먹으려고 드는 거에요. 욕심이라는 거에요. 그 욕심이 깊어지면은 뭐가 깨지냐 하면, 첫 번째 몸이 깨지는 거에요. 뭐가 들어요? 몸에 병이 든다. 이게 정설이에요.

 

자꾸 성질을 화딱화딱 내잖아요. 그러면 정신적 장애가 딱~ 생깁니다. 정신적 장애가 나한테 생깁니다. 어리석은 짓을 자꾸 반복적으로 자기가 한다면은 이 사람이 절대적으로 뭐가 안 돼요? 행복해지지가 않습니다. 행복해지면 이게 잘못 돼 있는 거에요. 그럼 불교의 가르침은 요게 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건 뭐에요? 지금 요 자체를, 요 구조를 요 위 구조로 바꾸자는 뜻입니다. 그럼 이게 모양이 구분이 되느냐 그러면 절대 안 되거든요? 진짜 가짜가 우리 구분이 안 되잖아요. 나라는 게요. 두 개가 아니잖아요. 이걸 구분해서 설명하니까 둘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이 안에 지옥도 가지고 있고 부처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선택하기를 지옥 같은 구조를 지 거라고 자꾸 말하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걸 지 거라고 계속 우기고 있는 동안은 절대적으로 안 깨어난다는 거에요. ~. 여기 좀 보세요. 그죠? 다 알아? 으음. ^^ 여기 좀 보세요. 그럼 반대로 말하면 요것이 조금 이 세상에 소리만 듣는 것만으로도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뭐죠? 죄 없고가 거기는 생하지 않는다라고 요걸 믿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요거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서 수행하고 온전하게 받고 가면은 이 몸이 같은 몸이라 그랬죠. 요게 조금씩 바뀌어가면은 몸은 반드시 뭐가 생겨요? 건강함이 깃들어오고. 첫 번째 건강한 것이 깃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시스템이 건강시스템이 분명히 완벽하거든요. 육체 시스템이라는 게.

 

정신은 이게 뭐예요? 마음이 평안해가지고 정한 것이 생겨요. 평안한 것이 생긴다고. 그리고 뭐죠? 어리석은 삶 속에서 행복한 것을 우리를 지배해요. 이게 갖추어지게 되거든요. 이게 보면은 어리석은 것이 자꾸 반복적으로 할 때는 요 아래 쪽에서는 불행감이 자기를 자꾸 지배하거든요. 어리석으면. 구분을 못 하는 거에요. 뭐가 뭔지 구분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요걸 연습해서 바꾸는 과정을 이 스스로 얘기를 하되 근원적으론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어둠이 본래 없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내용은 뭐냐 하면 실로는 일체중생이 다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지금 이 사바세계 얼마나 어려워요. 이 어려운 것을 불자만이라도 이것을 좋게 보기 시작하자는 뜻입니다.

 

이거를 밝게 이해하자는 뜻입니다. 희망의 씨앗을 우리가 갖고 산다는 뜻입니다. 불자 안에 불성의 생명 그 자체가 우리한테 지배하고 산다는 뜻이죠. 그렇죠. 그죠. 경전에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제보, 제보가 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그랬죠? 그러한고로 결정적으로 뭐라고 그래요? 無三惡道무삼악도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걸 지가 자꾸 끌어안고 있으니까 삼악도가 있죠. 어떤 사람이 나는 욕심 없습니다. 이러는 사람은 욕심 있습니다. 이 얘기와 똑같은 얘기거든요. 아 그럼 욕심 없는 사람이 욕심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건데요. 나는 욕심도 없는데. 욕심이 있으셔야 돼요. 그런 욕심이 아니라, 욕구에 동기가 좀 있으셔야 돼. 삶은요.

 

그런데 그게 이기적인 자기 입장에서야 오만이 갖춰진 그런 불편스러움을 욕망으로 채워갈 때 이게 안 되는 것이지. 믿는 발원. 믿는 욕구. 바른 믿음. 바름에 대한 믿음의 욕구는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거죠. 밝아져야 된다는 욕구는 있을수록 더 좋은 것이죠. 사랑스러워야 된다는 욕구에는 훨씬 더 더 강하게 작용하셔야 돼. 이런 욕구는 제쳐놓고 좋지 않은 욕구만 채워가니까 몸이 깨져나고, 재산이 깨져나가고, 생활도 불편해지고 삶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삶의 고통 속에 우리가 살아요. 이걸 바꾸는 방법이 오직 부처님의 감사행을 행하셔야 돼. 감사 명상을 꼭 하셔야 돼. 所以者何 소이자하. 無三惡趣무삼악도에요. 분명히 설하고 있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운 세계에 삼악도가 세상에 두 번 다시 제쳐 놓을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경전에선 뭐라고 그랬냐 하면 無三惡趣무삼악도에요. 우리들안에 저 뭐죠? 지옥아귀축생이 본래 없다는 뜻입니다. 저 고통이 본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게 고 아니에요. 그죠? 지옥아귀축생이죠. 탐진치가 이게 뭐죠? 지옥아귀축생이거든요. . 엄청나게 복잡해졌네. 이게 지옥이거든요. 지옥은 곧 고통이잖아요. 생의 고. 이게 본래 없다는 뜻입니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가난이라고 그랬죠. 이건 치심이라고 하는 건 병, 불행이거든요. 너무 간단한 거에요.

 

이것을 딱 설명 드려서 뭐라고 설명했냐하면 無三惡趣무삼악도. 舍利弗사리자여. 其佛國土그 불국토에는 더 중요한 게 뭐냐 하면 其佛國土그 불국토에는 無三惡道항상 없어. 뭐가 없어요? 악도가 본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얘기를 쉽게 거꾸로 설명하면 저 좀 보셔야 돼. 이 얘기를 거꾸로 이해하시려면 뭐로 보셔야 돼. 나한테 불행이 없는 거에요. 지금 경전에서 2500년 석가세존께서 말하고 지금 저와 더불어서 같이 이것을 다시 수신하고 있는 거거든요. 2500년 전에 벌써 발주한 것이 지금 여기 우리 가슴속에 하나씩 돌아오는 거잖아요. 이럴 때 받아들일 때 항상 없어. 생활 속에서 항상 없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거구로 뭐에요? 내 생활 속에서 가난이 있으면 이거 비정상이에요. 뭔가 잘못 실천하고 계신 거에요.

 

불자는 가난하게 살 이유 없습니다. 가난. . 불행. 이걸 제거라고 생각하고 사는 어리석음에서 빨리 벗어나고 그게 안 되니까 하나하나씩 무엇 때문에? 기도해야 돼요. 조금씩 옮겨가시는 거에요. 너무 쉽죠? 그죠? 尙無三惡之名상무악도. 그러거든요. 그 이름조차도 없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무슨 얘기에요? 내 삶 속에서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내게 없다는 거에요. 병 불행이 내게 없다는 뜻입니다. 고통이 본래 없다는 거에요. 무삼악도니까. 그 얘기를 경전에서는 철저하게 정리하고 철저하게 설명해주고 계시거든요. 그게 아미타경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고로. 이러한 고로. 뭐라고 그랬냐 하면. 이 안에 보면 뭐라고 그랬냐하면 이게 惡道之名악도지명이고 그다음에 뭐냐 하면 何況有實하황유실이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실제로는 그게 없다는 거에요. 何況하황이라는 것은 이게 뭐예요? 어찌 하물며 그것이 실제로 있겠는가? 이름조차가 없는데, 어찌 실제로 그 가난과 병과 불행이라는 그런 나쁜 시스템이 내게 있겠는가? 이런 뜻입니다. 딱 절이 되죠. 그죠? 되긴 된 거 같은데. 아이 그게 딱 맞게 돼 있어요. 부처님 설법이라는 게 저는 부처님 설법을 늘상 배우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요. 어떻게 이 2500년 전에 저렇게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저걸 정리를 했을까? 그럴 정도예요. 너무 놀랍죠. 그죠? . 진짜 놀라워요. 으음.

 

그 고런 의미 구조로 잘~ 마음속에서 생기셔야 돼요. 나쁜 일은 본질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나쁜 남편이 없고 나쁜 아내가 없는 것입니다. 으음. 나쁜 자식이 없습니다. 나쁜 부모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미타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 법칙이에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고맙게 받아들이세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고맙게 감사하게 받아들이세요. 생활 속에서 기도를 놓치지 마세요. 한순간, 한순간 자기를 사랑한다면, 자기를 존귀하게 생각한다면, 불교를 저버리시지 말고, 부처님 가르침 저 버리지 말고, 그 법을 전하는 스님들을 저버리시지 않으셔야 돼. 불법승삼보에 꼭 귀의하고, 그 사실을 꼭 믿는 마음으로 채우세요. 그리고 발원하세요. 그리고 실천으로 옮겨서 다 이 사바세계가 다 아미타부처님의 화현이시거든요. 그 화현으로 원을 세우셔서 쫓아가도록 발원하십시다.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