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9.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3월 23일 방송 - 죽음직전의 모습 (32:06)

Buddhastudy 2012. 6. 10. 19:10

  출처: 유나방송

 

먼저 죽음 바로 직전에 나타나는 그 인식과정에서 업이 나타나는 경우, 이 업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도를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어떤 일을 행할 때 선한 의도, 또는 불선한 의도를 우리가 업이라고 표현을 하죠. 그래서 이 업이 나타날 때는 내가 예를 들어서 살면서 남에게 아주 선한 행위를 했을 때, 그때의 마음이 우리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의 대상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우리가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그 마지막 마음에서의 그 대상이 업이 되는 경우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이생에서 지었던 가장 대표적인 업. 다음 생을 생산하는 업이 업 그 자체로써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께서 수행을 열심히 하셔가지고 수행으로 인해서 아주 큰 지혜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 지혜가 있는 마음, 이 자체는 선한 업 중에서도 아주 수승한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업이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에서 나타났다면 그때 나타난 업. 예를 들어서 수행하면서 지혜가 생긴 그 마음, 아주 현상계가 무상하다고 인식한 또는 이해한 그 업이 나타났다면, 그 업에 의해서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바로 생산업. 그러니까 다음 생을 생산하는 그 업이 됩니다. 그래서 이 업은 바로 그다음 생을 생산하는 그 업자체가 드러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반대로 살생을 했다거나 도둑질을 했다거나 이런 업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그 불선업에 의해서 이 불선업이 생산업이 되어서 다음 생에 악처에 떨어지는 그런 과보가 일어나게 되겠죠. 그래서 죽음 직전의 인식과정에서 첫 번째 이거는 제일 쉬운 경우입니다.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에서 업이 드러난다면 아~ 내가 다음 생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이 업에 의해서 생산하는 거구나 하는 거를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것이고요. 두 번째는 업의 표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경우는 우리가 지었던 업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표상의 형태, 다시 말하면 영상의 형태로 드러나는 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거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꽃을 공양할 수가 있습니다. 또는 음식을 공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꽃을 공양하거나 음식을 공양할 때 우리 마음에서 일어난 선한 마음, 보시하는 선한업은 그것은 업이 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을 때 했던 그 업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거나 꽃을 올리는 그 장면이 떠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 영상이. 그러면 이 영상자체는 업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이 영상이 의미하는 것은 그때 당시에 이 영상을 통해서 내가 어떤 업을 지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업을 지을 때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업과 연관된 그런 어떤 상황들을 영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걸 업의 표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업의 표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요, 그 업을 지을 때 아주 핵심 대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도구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꽃을 공양을 올렸을 때 꽃이라는 것은 아주 핵심적인 거죠. 그런 것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주변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고. 하여간 이것은 내가 업을 지을 때의 그때 상황. 또는 업을 지을 때 우리가 사용한 도구 같은 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업의 표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을 드리면, 우리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선업을 지을 때 부처님이나 부처님 전에 음식이나 꽃을 공양할 때 그때 나타나는 것은 선업의 표상이 되겠죠.

 

우리가 보시할 때의 그 선한업, 선한 의도를 드러내는 영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살생을 많이 했어요. 도살업을. 해서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람이 잘못해서 불선업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만약에 그런 업이 나타난다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 업 자체가 나타난다기보다 내가 그 소를 죽일 때의 그 장면이 떠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칼로서 소를 죽이는 그 장면이 떠오르는. 이런 것도 내가 살생업을 짓는 업을 드러내는 영상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업의 표상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이 업은 우리가 일생동안 지었던 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업이 나타난다고 그랬죠. 지난 시간에 무거운 업. 그리고 임종 직전에 지은 업. 그리고 습관적으로 지은 업. 이미 지은 업. 이 네 가지 순서에 따라서 업이 나타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순서가 의미하는 것은 업의 강도를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어떤 업이 가장 강력한 업이냐? 거기에 따라서 나타나는데, 이 강력한 업이 드러날 때 이런 업의 표상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거죠. 그래서 이 업의 표상이나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으로 드러나는데.

 

이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 세 가지 중에 이 업이. 그러니까 우리가 전생에 지었던 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업이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여러분들이 좀 체계적인 수행을 해서 선정, 그러니까 아주 강한 마음이 아주 고요해지고, 강력해진. 그러니까 집중력이 아주 강력해지고. 또 여러분들이 알아차림의 힘이 아주 강력해진 상태가 되고. 또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여러분들이 조금 주의 깊게 관찰을 해서 이것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이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이런 것들. 다시 말하면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면 물질과 정신에 대한 분석. 이 두 가지 지혜가 잘 갖추어진 사람들은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삼매력.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색계 사선정 정도의 삼매. 그런 힘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이생에서부터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가 최초에 태에 들어가는 그때로부터 거슬러가서 과거 전생을 기억하는, 다시 말하면 전생을 우리가 찾아내는 그런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생을 살면서도 이생에 있었던 가장 뚜렷한 기억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우리가 기억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생에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은 그 생에서 지었던 업 중에 가장 뚜렷하고 강력한 업이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린 그런 삼매력과 선정의 힘과 그리고 물질과 정신을 이해하는 지혜가 충분하다면 비록 전생이라고 해도 그걸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행을 통해서 우리가 전생에 일어난 그 죽음 직전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난 대상,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을 찾아내는 수행을 실제로 미얀마의 파옥센타라는 곳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어떤 죽음 직전에 일어난 업을 이해를 함으로써 아~ 이생에 오게 만든 것이 어떤 절대자의 역할도 아니고, 우연히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생에 지었던 업들의 결과로써 일어나는구나 하는 인과를 연기법을 인과법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이 업의 표상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렇게 실질적인 수행자들이 아주 심오하고 깊이 있는 수행을 통해서 자기 전생을 이렇게 관찰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가 바로 이 업의 표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수행을 해보면 이런 죽음 직전의 인식과정의 형태 중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이 경험적으로 업의 표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업의 표상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서 제가 조금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뭐냐 하면 태어날 곳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태어날 곳의 표상은 우리가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생산업에 의해서 우리가 앞에서 말씀드린 삼계 중에서 서른한 가지 세상 중의 한곳에 태어나게 되는데요. 그 서른한 가지 세상 중에 한 곳의 모습이 미리 우리에게 보여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축생계에 태어날 거 같으면 축생계의 모습이 보여진다거나.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는 축생계에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축생들이 뛰어놀게 될 들판이나 숲. 이런 것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사람으로 태어날 경우는 사람의 내가 태어나게 될 곳, 그러니까 자궁의 우리 부모님의 어머님의 자궁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고요. 지옥에 태어나는 경우는 내가 지옥에 태어나서 고통받게 될 지옥의 불길이나 그런 지옥에서의 저승사자들.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천상에 태어나는 경우는 내가 천상에서 살게 될 궁궐이라든가 나를 시봉 들게 될 천녀들. 이런 천상의 수레. 등등이 보이는 것이 태어날 곳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대표적인 경우가 담비까라는 재가신자가 있었습니다.

 

이 단비까라는 재가신자는 평소에도 많은 선업을 짓고 계율도 잘 지키고 그래서 죽음 직전에 가까이 갔을 때 이분에게는 뭐가 보였느냐 하면은 욕계의 여섯 가지 천상세계 각각에서 수레가 왔다고 합니다. 여섯 개의 수레가 와서 이 담비까라는 재가신자를 서로 태워가려고 서로 자기 천상세계에 모셔가려고 싸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와서 담비까라는 재가 신자가 죽음에 가까이 가니까 자식들이 스님들을 초청해서 이 분을 위해서 염불을 해달라고 청을 했습니다. 보통 남방에서는 죽음 직전에 가면은 염불을 우리나라에서도 금강경을 읽어주죠? 그런데 남방에서는 주로 대념처경을 읽어줍니다.

 

그런데 대념처경이라는 경전을 읽어주고 있었던데, 갑자기 이 담비까라는 재가 신자의 눈에는 여섯 대의 수레가 보인 거죠. 그래서 그 수레를 보고 나중에 아들, 자식들에게 물어봅니다. 천상세계 중에 어느 천상세계가 가장 즐거우냐? 그러니까 자식 중에 한 명이 도솔천이 감각적인 즐거움은 가장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니까 그러면 나는 도솔천에서 온 수레를 타고 가겠다. 라고 이야기를 해서 도솔천에 태어났다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런 경우가 내가 태어나게 될 곳의 모습이 죽음 직전에 미리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태어날 곳의 표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악업을 많이 지은 아까 말씀드린 돼지백정 쭌다라고 하는 백정은 죽기 직전에 뭐가 나타났냐 하면 지옥의 불길이 나타났습니다. 그거는 자기가 거기 태어나서 내가 고통받게 될 곳의 모습이 보여지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경우도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기 직전에 여러 가지 내가 지은업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전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제일 마지막. 죽음 직전에 우리가 죽기 바로 직전에 일어나는 생각, 인식과정에서의 대상은 업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거나, 그 업을 표시하는 업을 드러내는 업의 표상이 나타나거나,

 

또 우리가 태어날 곳의 모습인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나거나, 이 셋 중의 하나가 나타나서 그 세 가지는 결국은 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때 드러난 그걸 통해서 드러난 그 업의 생산업에 의해서 우리가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어떤 대상이 나타나느냐가 우리가 윤회하는 데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시간에 이 죽음 직전에 드러나는 이 모습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