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10.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3월 30일 방송 - 생산업이 다음 생에 미치는 영향

Buddhastudy 2012. 6. 17. 18:51

  출처: 유나방송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우리가 죽음 직전의 모습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죽음 직전에 다음 생에 윤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이생에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직전에 일어나는 그 인식과정,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대상, 어떤 대상이 드러나느냐? 그것이 이제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 대상에는 업이 드러날 수도 있고.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에 업이 나타날 수도 있고. 또 업의 표상. 그리고 태어날 곳의 표상.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가 드러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업의 표상은 업을 나타내는 영상이고요. 태어날 곳의 표상은 그 업에 의해서 우리가 태어날 세상의 모습을 드러나는 영상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이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 이 세 가지는 업을 드러내는 한 방편이다. 한 모습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 직전에 바로 직전에 일어나는 이 인식과정의 대상이 가장 중요하지만 실제로 죽음 직전에만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죽기 벌써 얼마 전부터 우리 마음에서는 그런 죽음 직전의 인식과정에서 나타날 대상의 징조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주 뚜렷한 선업을 지었거나 또는 아주 뚜렷하게 악업을 지은 사람들은 그 나타나는 모습이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선한 쪽으로만 나타나거나 아니면 불선한 방향으로 괴로움이 느껴지는 쪽으로 나타난다거나. 이 두 가지 방향성이 있는데. 그런데 조금 애매한 경우는 뭐 선업도 그럭저럭. 또는 악업도 그럭저럭. 그래서 두 가지 업이 경중이 없는, 그런 상태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때로는 선한업이 나타났다가. 때로는 악업이 나타났다가 이 두 가지 업이 교차하면서 나타나게 되는데요. 이런 경우는 죽음, 우리가 그 상황에서 죽기 전부터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서 다음 생의 향방이 결정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앞에서 제가 설명 드린 죽음 직전에 죽음에 가까이 가서 지은 업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까 중한, 무거운업이 없는 경우는 죽음의 가까이 가서 지은업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형태, 선한업과 불선한업이 교차하는 경우는 여러분들이 이런 공부를 했던 사람 같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마음을 가져서 그 상황에서 자꾸 선한업이 생각나도록. 선한업이 기억되고 선한업을 죽기 전에도 선한업을 더 지어서 선한 업이 더 뚜렷해지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여러분들이 두 가지가 섞여서 나타나는 경우는 선처에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이제 그 윤회를 이해함으로써, 윤회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를 함으로써 우리가 죽음에 가까이 가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죽음 바로 직전에 오늘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삶이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때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좋은 곳에 올바른 방향으로 윤회가 일어날 수가 있는지를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업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는 죽음에 가까이 가서 여러분들이 선업을 많이 짓거나 일생동안 지었던 선업을 더 많이 기억하므로써 좋은 표상, 선한 표상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앞에서 한 번 예를 들어 드린 쏘나 존자의 아버지 이야기. 그것도 마찬가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는 조금 더 한 걸음 나아가서 어떻게 보면 불선한 표상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어요. 그때 쏘나 존자의 아버지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검은 개가 쫓아오는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때 그분의 흐름은 지옥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는데 그때 그 쏘나 존자의 아들인 아라한이 옆에서 도와줌으로써 오히려 그 선한업이 죽음 직전에 짓게 되어서 방향이 바뀐 그런 대표적인 경우죠. 그래서 이렇게 원래 불선한 쪽으로 흘러갈 업도 옆에서 도와주거나 자기가 죽음 직전에 아주 큰 선업을 짓게 되면 그 방향성이 바뀔 수가 있는데, 두 가지 업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사실을 잘 이해를 해서 주위에 있는 친척들이나 여러분들이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것들을 잘 활용을 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전생에 지었던, 또는 죽음 직전에 나타났던 이런 업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과거에 죽음 직전에 나타났던 이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중의 하나가 생산업이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 형태로 드러나잖아요. 그러면 이 생산업이라는 것이 전생의 업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이것을 간단히 살펴보면요.

 

첫째는 우리가 지금 죽음 직전에 나타났던 그 생산업이 바로 이생에 바로 최초에 일어나는, 우리가 다시 새로운 생을 받을 때 최초로 일어나는 재생연결식이라고 하는 최초의 마음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이 생산업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재생연결식이 일어나게 되고요. 이 재생연결식이라는 것이 어떤 세상에서 일어나는가를 그 생산업이 결정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인간세상에서 재생연결식이 일어날 수도 있고, 천상계에서 재생연결식이 일어 날 수도 있고. 색계나 무색계에서 재생연결식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재생연결식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생산업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업을 지으면 어떤 곳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느냐? 이것이 어떻게 보면 어떤 업을 지으면 어느 세상에 태어나느냐? 이 말과 같은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윤회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업에 의해서 어느 세상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느냐? 이것과 관계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이 생산업이 이생에 최초로 일어나는 재생연결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두 번째는 이생에서 일어나는 그 마음의 형태를 들여다보면 여러분들도 뭐 조금만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관찰해보시면 우리가 바깥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형상이나 소리, 냄새, , 그리고 몸으로 오는 감촉, 생각.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고 있는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인식과정이 일어나는 상태가 있고요.

 

또 하나의 상태는 그런 것들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멍한 상태죠. 여러분들이 아마 요즘 봄이죠. 봄에는 여러분들이 따뜻한 햇볕 아래서 가만히 있다 보면 졸음이 살짝 오면서 생각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몽롱해지면서 멍해지는 듯한 그런 상태가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우리가 초기 불교에서는 반가 상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반가라고 하는 상태가 바로 우리가 보통 멍하다고 하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사실은 이 멍하다는 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데요, 생각이 일어나긴 일어나는데 아주 특이한 형태로 일어납니다. 이때 일어나는 마음은 아까 말씀드린 생산업,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생산업의 결과로써 과보로써 일어나는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때 일어나는 이 마음도 바로 생산업에서 일어난다는 거죠. 이것이 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 어떤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그 여섯 가지 대상을 인식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렇게 멍한 상태의 반가의 마음이 계속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데요. 이 반가 마음을 한국말로 번역을 하면은 참 번역하기 어려운데요, 이걸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잠재의식이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잠재의식이라는 말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그냥 우리 인식과정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그런 마음이다. 이런 의미로서만 이해를 하면 됩니다.

 

여기에 뭐가 저장돼 있다 이해를 하는 것은 약간 좀 본질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반가, 잠재의식이라고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도 바로 죽음직전에 일어났던 바로 생산업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생각들은 크게 나누면 인식과정이 일어났다가, 반가가 또 일어났다가, 인식과정이 일어났다가 반가가 지속 되다가 또 인식과정.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쉽게 말하면 생각이 움직이다가 멍해졌다가, 생각이 움직이다가 멍해졌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 멍해지는 상태를 잠재의식 또는 반가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까 죽음이라는 걸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 죽음이라는 것은 또 다른 표현으로 하면은 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생에서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이생에서 최초로 일어나는 마음이 재생연결식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생에서 제일 마지막, 이생을 마감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을 죽음의 마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는데 이 죽음의 마음의 원인도 바로 전생의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생산업, 그 생산업의 과보로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죽음의 마음이다. 이렇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과정이라고 하는 다시 말하면 색성향미촉법, 이 여섯 가지 대상을 받아들이면서 그 대상에 대해서 분석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하는 이런 과정이 있는가 하면, 그런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생에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생산업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 다시 말하면 이생에 최초로 일어나는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고 하고요, 이생에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마음을 죽음의 마음이라고 하고, 그 재생연결식과 죽음의 마음 사이에서 인식과정이 일어나지 않을 때. 다시 말하면 어떤 대상을 막~ 분별하고 판단하는 그런 마음의 움직이는 상태가 일어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마음을 잠재의식 또는 반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재생연결식 그리고 잠재의식 또는 반가, 죽음의 마음. 이 세 가지가 바로 전생의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생산업, 그 생산업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 하면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인식과정하고 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식과정은 현재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관계가 있다면 이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은 전생에 업하고 관련이 있는 마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셔야 될 것은 이 세 가지 마음. 그러니까 재생연결식과 잠재의식 또는 반가, 죽음의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은 전생에 죽음 직전의 업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첫 번째 전생의 업 때문에 일어나는 과보의 마음이다. 또는 결과 마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고요. 둘째, 우리가 모든 마음은 대상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인지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마음의 대상이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인식과정의 대상과 동일하다는 겁니다. 이 무슨 말이냐?

 

만약에 죽음 직전에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그 업의 표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업의 표상이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의 대상이었다고 한다면 그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업의 표상,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 꽃이나 음식을 공양 올리는 그 장면이 여러분 이생에서 여러분들 마음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반가의 마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죽음의 마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러니까 어떤 인식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때에는 항상 전생에 공양을 올릴 때,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그 장면을 계속 떠오르고 있다는 거. 그렇게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삶의 영향을 좀 크게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생에 보시 공덕으로 이생에 온 그런 분들은 이생에도 보면 보시를 잘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거죠. 또 다른 예로서 만약에 여러분들이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것이 앉아서 위파사나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여러분들이 좌선상태에서 어떤 현상들을 물질과 정신 현장들을 무상고 무아로 통찰하는 이런 인식과정, 그런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수행을 하던 그 모습이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에 나타났다고 칩시다. 그러면 좌선하는 그 모습이 나타나겠죠. 그죠? 그런 경우는 업의 표상이 나타난 거겠죠.

 

그 업의 표상이 나타났는데 그때 지은 업은 위파사나의 지혜입니다. 지혜. 그래서 생산업은 위빠사나의 지혜가 생산업이 되겠죠. 이 위파사나의 지혜가 생산업이 되면 그로 인해서 우리가 방가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 반가의 대상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좌선하던 모습입니다. 그것도 열심히 지혜를 닦던, 그 좌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이생에 태어나서도 태어날 때부터 수행에 관심이 많고, 또 수행을 접하면 되게 익숙하게 느껴지고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생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전생의 업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생의 우리가 죽음 직전에 일어났던 그 생산업이 이생에도 재생연결식과 반가. 또는 잠재의식과 죽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특히 이 반가라고 하는 것은 이생에서 많은 영향을 줍니다. 전생에 우리가 가져온 업이 작용하는 거기 때문에 그건 영향을, 일종의 우리가 바라밀, 또는 바라밀 공덕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전생에 그런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그 반가의 그런 전생 바라밀의 흔적이 남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생에도 수행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재생연결식이 일어날 때 그 전생에 생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걸로 인해서 우리가 이생에서 일단 태어나게 되는 거죠. 어느 세상에 태어나느냐? 악처에 태어나느냐? 선처에 태어나느냐? 그것을 결정해주는 것이 바로 전생의 생산업이기 때문에 그 죽음 직전에 일어난 그 생산업은 우리 삶의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 직전에 그 드러난 그 세 가지 대상, 그러니까 죽음 직전에 인식과정에서 드러난 세 가지 대상 중의 하나인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 그 세 개 중에 하나라 바로 이생에서 재생연결식, 이생에 최초로 일어나는 재생연결식. 그리고 이생에 제일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죽음의 마음, 그리고 인식과정과 인식과정 사이를 이어주는 잠재의식, 또는 반가의 마음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전생의 생산업의 과보로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좀 잘 이해를 해주시고요.

 

그래서 그 전생에 그 생산업이라고 하는 것이 이생에 반가, 죽음의 마음, 재생연결식의 형태로 해서 이생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 삶의 일정 부분 많은 영향을 주면서 우리 삶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들을 좀 이해를 하시고요. 그러면 이렇게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우리가 모습, 그러니까 일생동안 지었던 업이 마찬가지로 이생에도 아까 말씀드린 두 가지 형태, 인식과정이 일어나는 거를 통해서 업을 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생동안 지었던 업들이 이생에 마지막을 죽음이 오기, 고 직전에 또 이생에서 지었던 수많은 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업이 또 생산업으로 작용을 해서 다음 생의 또 재생연결식, 죽음의 마음, 반가. 잠재의식 이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키게 되죠. 그러면 또 그것에 의해서 또 다음 생이 진생이 됩니다. 다음 생이 이끌어가면서 또 재생연결식이 일어난 다음에 반가. 인식과정 또 반가, 인식과정. 이것이 반복되다가 또 죽음을 맞이하면 그 생에 지었던 수많은 업 중에 또 하나의 업이 생산업이 되어서 다음 생을 또 이끌어 내게 되고. 이렇게 해서 무한히 반복되는 것을 우리가 윤회, 윤회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생에 지었던 생산업. 선업이나 불선업이라고 하는 생산업이 있는 한에 있어서는 윤회라는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더 이상 새로운 생산업을 짓지 않음으로써 다음에 생에, 죽음 직전에 그런 업이 다음 생을 생산할 수 있는 업이 나타날 기회를 안 주게 되면 우리가 더 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 그런 것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이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즈음에 일어나는 그 모습들이고요. 그로 인해서 다음 생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죽음 직전 인식과정의 대상, 그러니까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일으키는 그 마음의 대상이 중요하다. 그 대상은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에 하나로 나타납니다. 나타난다. 그렇게 말씀을 드린 거죠. 그래서 이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이 세 가지 대상 중의 하나는 결국은 하나의 생산업을 표시하는 세 가지 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죠. 이 생산업에 의해서 우리가 그 업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욕계 악처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욕계 선처에 태어나기도 하고, 색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무색계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가 이제 어떤 업을 지으면 욕계 선처에 태어나고, 어떤 업을 지으면 욕계 악처에 태어나고, 또 어떤 업을 지으면 색계나 무색계에 내어나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다음 시간에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요, 다음 시간에 그 우리가 짓는 업에 따라서 태어나는 세상, 그것에 대해서 또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