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6회 나라연신원 (22:04)

Buddhastudy 2012. 7. 29. 20:25

  방송 보기: 불교TV
 

오늘 48대원, 26번째, 나라연신원이라고 이렇게 돼 있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천금의 金剛力士금강역사인 那羅延나라연과 같이 견고한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라는 요런 질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는 것, 그 중에 무엇 때문에 사람이 가장 아파하고 고통스럽고 힘들어할까? 라고 이런 걸 몇 개를 정리를 해 보니까. 돈이 없으면 제일 괴롭다고 그러고요. 그다음에 인과 관계가 무너질 때 마음과 마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편안함이 무너질 때 가장 고통스러워요. 그리고 세 번째 가면 몸이 아프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쫓아다닙니다. 이게 어떤 것이 1번이고, 어떤 것이 3번이고, 4번이다 나눠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물질적 결핍이 생기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분노가 생기고, 원망이 깃들어질 때, 더 사람을 괴롭게 하거든요. 그러고 이건 남에게 표현할 수 없는 내가 갖는 육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사람과 사람을 힘들게 해요. 이거는 남한테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육체가 힘들어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돈이 있는 사람도 힘들어하고요, 가난한 사람도 힘들어하고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도 힘들어해요. 그러니까 온전하지 않은 세계에 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이 사실을 부정하고 살면 안 되는 거에요. 그걸 보고 우리는 아주 쉬운 말로 이것을 뭐라고 그러냐 하면 현실세계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현실세계는 전체적으로 불교식으로 얘기하면은 고라고 표현해요. 모든 종교를 따르고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모든 수확하고, 우리가 학교를 만들고 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은 뭐죠?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보다 넉넉하기 위함이고, 보다 편안하기 위함이고, 보다 많은 행복감을 느끼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하고 기도하고 예경하는 것이 다 똑같은 것이잖아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데 이 고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셔야 된다. 라고 이렇게 석가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요. 인정이라는 것은 내가 현실 속에서 있는 뭐죠? 고통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행해지는 원인이 뭐냐 그러면은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늘 고통이 더 양산할 뿐이고, 고통 이걸 보고 우리는 고통이라고 이렇게 말해요. 거기에 하나를 더 갖다 보태면 고통이 배가 된다는 걸아시죠? 그죠? 불교의 핵심은요, 너무 쉬운 것에서 출발이 돼요. 내가 병이 들었어요. 우리가 병이 들었거나, 또는 재정적인 문제가 있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게 삐딱해지는 경우가 이게 다 고통이잖아요. 환경에서 맞지 않거나 환경에서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서로 융화되지 않으면 고통스러움이 따르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을 일러서 전체적으로 만일에 병든 사람이 그 고통을 자꾸 나는 병들었어. 나는 힘들어, 나는 억울해. 나는 분해. 왜 내가 병들었어? 왜 내가 암에 걸렸어. 이렇게 한탄을 한다면 이 사람한테는 고통에는 고통 플러스밖에 남는 게 없고. 이게 참 요한 거에요. 고통이 있는 사람한테는 정말 아파서 소리 지르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되요. 그런데 불교의 핵심이 뭐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뭘 해야 된다고요? 염불, 칭명염불을 하시면 그 고통이 가리어져요.

 

아주 고통스러운 병자도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거나, 관세음보살 부르거나,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포 작용이 스스로에게 이득 되는 세포로 변해가서. 그렇다고 해서 병든 사람이 병들지 않을 수가 없고, 늙은 사람이 늙지 않을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기존의 세계라고 표현해요. 기성세계라고 표현해요. 현실에 주어져 있는 것들은 받아들이되, 될 수 있으면 그 고통은 좀 적게 하고, 그 고통을 줄여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 우리는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 때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고라고 하는 것은 이건 어려움이라고 그러고요. 우리가 말하는 건 힘들다라고 말하죠. 그죠.

 

그다음에 다른 말로 뭐로 말해요? 할 수 없다. 또 하나는 못한다. 우리말로는 어쩔 수 없다. ~ 너무 쉽잖아요. 그런데 자기 입을 자기가 봐요. 현실에서 자기가 어떻게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자기 스스로를 딱~ 점검하시게 되면 현실세계가 어떤지 그대로 자기에게 드러나고 있어요. 그죠. 그런데 문제가 뭐에요? 고통스럽지 않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게 석가세존이에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게 영원히 가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당신이 아무리 많은 채무 속에 있거나, 아무리 많은 병고 속에 있거나, 아무리 많은 불행 속에 있다 하더라도 깨우침을 가지면, 자기 밑바탕에서 깨달음의 씨앗이 하나 싹이 딱 일어나는 거에요. 이것을 근본 뿌리를 바꾸는 과정이 염불수행이에요. 그게 불교의 수행이에요.

 

생로병사를 벗어나는 길을 일러서 가르쳐준 게 석가세존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게 불설아미타경에는 뭐라고 여러 면으로 표현하고 나타나는 것인데, 그러므로 해서 현실을 지금 가지고 있는 현실세계를 일단 자기가 아~ 나이가 들어서 안 돼, 병들어서 안 돼. 그렇죠. 그죠. 머리카락이 길어서 안 돼. 입술이 안 발라져서 안 돼. 이러고. 뭐든지 안 돼. 안 되를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그거는 불교하고 아무 관계 없는 삶을 사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자기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현실세계를 이거를 바꾸는 것이 어떻게 바꿔요? 이거를 일단은 인정해줘야 돼.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이 매일매일 머리카락이 자라듯이 안 좋은 일은 꾸물꾸물씩 일어나는 거에요. 불행한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지 말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이겨갈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그러면 전점점점 불행한 느낌이나 불행감이나 이런 것들은 점점점점 내게서 적어지고. 다복한 세계는 저절로 저절로 열려오게 돼 있다니까요. 그걸 보고 우리는 현실세계라고 말을 하는데. 이 현실세계를 불경을 빌어서 말씀을 드리면, 이 현실세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계를 불행한 세계다. 이렇게 다 들여다보고 이렇게 보지만, 부처님 눈은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계시냐 하면. 이걸 보고 뭐라고 그러냐 하면. 다 공덕의 세계라고 이렇게 봐요. 이 현실세계를 공덕의 세계라고 그래요.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최대의 공덕 터라는 거에요. 어떻게? 되시죠. 그죠? 안 되도 된다고 그러셔야 돼. 지금 먹고살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공덕을 안 쌓으면, 금생에 맨날 헛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세계를 들여다봅니다. 현실세계를 제일 먼저 자기가 사는 세계를 공덕세계라고 꼭 보셔야 돼. 두 번째, 은혜세계라고, 은혜가 가득한 세계. 은혜로움이 충만한 세계라고 이렇게 보셔야 돼.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이 현실세계를, 지금 현실을, 지금 이 자리에 오셔서 공양하고, 예경하고, 받들어서 공양하고 하는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자체가.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하시는 불자님들이 다 자기 안에 은혜공덕이 충만한 존재를 깨우치라고 하는 거거든요.

 

이걸 왜 깨우치지 않느냐 그러면은 전부 요렇게 보니까. 자기 삶이 전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점첨되있다고 점차적으로 연습해 왔으니까. 그걸 습업이라고 그래요. 습업. 여적지 연습을 그렇게 해온 거에요. 그러니까 이거를 정말로, 정말로 이것은, 현실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이것의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셔야 되요. 오해하시면 또 큰일 나요. 묘한 거에요. 자기 말에 플러스가 생기고, 거기에 씨를 붙이고, 거기에 물을 주고, 힘을 거기다 보태주잖아요. 그러면 어둠의 힘이 점점점점 자기를 강하게 만들어내요. 그래서 인생이 캄캄한 인생을 사는 거에요. 행복하곤 거리가 멀고, 금생에 이렇게 눈뜨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이 자체가, 이게 다 기적이잖아요. 기적 속에 살잖아요.

 

이 세상은요, 은혜 공덕 속에 꽉 들어차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그래서 이 세상이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이 세계를 이 현실세계가 곧 나 자신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줘요. 깨달음의 세계. 왜 그러냐 하면 오관이 있어야 만이 깨닫는 거거든요. 현실이 있어야 만이 부처를 깨달을 수가 있고. 현실이 있어야만, 내가 들여다보는 눈이 있어야 세상이 보이거든요. 눈이 이게 다쳐가지고 안보이잖아요. 며칠 눈이 닫혀서 안보여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눈을 뜨고 봐야 돼요. 그런 과정 안에서 이 세계는요, 이걸 뭐라고 하죠? 깨달음의 세계에요. 현실세계가 이 세계가 바로 무슨 세계에요? 극락세계라고 하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

 

이 현실세계가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이 현실세계가 그대로 무슨 세계? 극락세계를 느끼고 깨우치게 되면은 다른 어떤 것을 다 줘도 금생에 태어난 공덕은 이미 갖추어졌어요. 그런데 묘한 것이 있어요. 이 세계의 주인은 아마타불이거든요. 글자 그대로 아미타불의 세계에요. 이 세계는 곧 아미타불의 세계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면 거꾸로 봅니다. 자기 자신 안에 이것이 전부 나라고 하는 존재성이 지금 현세에 있어요. 이것은 이쪽으로 말하는 것은 이것은 가상의 나고, 이쪽의 세계는 뭐죠? 진성의 나거든요. 진성이라고 그러죠. 우리가 말하는 것을 이것을 진성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진불, 진짜 부처님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이건 가불이라 그러고 가짜 부처님이고, 이건 진짜 부처님이죠. 이 얼굴이 잘생겼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건 껍데기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용하고 쓰는 마음태도는 곧 진짜 부처님이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나라고 하는 세계를 봐요. 그럴 때 봐요. 이 세계 사바세계는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현실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셔야 돼.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안 되는 것에 대해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것, 자기 입장에서 소통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다 고통이라고 받아들이고 살면, 계속 이 사람한테는 고통 플러스 고통이 계속 연결 되가지고 죽는 순간까지도 깨우치지 못하는 거에요. 뭘 느끼지 못해요? 삶을. 인생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교를 공부하고, 저랑 이렇게 아미타경을 공부하시는 원인은 뭐죠? 잘 들여다보면 볼수록 고맙고 감사한 것만 들어차 있는 인생이 되면은, 그러면 앞날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 전혀 없어져 버려요. 26번째 보면 사람의 몸은 금강연신과 같다. 이렇게 말해요. 그것 참, 이게 말이 어려운 말인데. 우리가 말하는 것이 金剛금강이라 그러잖아요. 金剛延身금강연신이라고 말해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건 연신원이거든요. 요걸 원신원이라고 말해요. 연신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 우리가 말하는 불멸을 표현하고 있고요, 영원불멸. 금강_이것은 뭐죠? 무너지지 않는 생명이라고 표현해도 다르지 않죠. 거꾸로 설명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을 해도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오늘 여기서 말하는 것이 나라연신원이라고 돼 있죠? 이 연신원이라고 하는 것이 이게 뭐냐 하면, 이 생명은 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뭐라고 말했어요? 이게 뭐죠? 那羅나라라고 돼 있죠? 이런 의미가 있거든요. 那羅나라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은 저 혼자 존재하는 것이나, 다 같이 연결돼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이 얘기를 다시 말하면, 영원한 이것을 좀 쉽게 표현하면 건강한 몸이다. 이렇게 표현해도 연신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거거든요. 그런데 이 건강의 몸은 영원하다는 거에요.

 

사실은 영원 불멸하다는 거에요. 인생을 먹고 살아가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도출돼 있다는 것은 전생에 비하면 요게 적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평생 고난으로 산 사람은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자기가 나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거에요. 이 사람이 나쁘다라고 하는 뜻이 아니라.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늘 싫은 생각, 원망한 생각, 차가운 얼굴 보이고, 찡그리고 삶을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자기가 안 편해지는 거에요. 이건 분명한 답이에요. 누구든지 저한테 와서 따져도 어쩔 수 없어요. 삶을 바꾸어가는 것은 자기 마음에 있다고요. 자기 마음태도에 따라서 그 밑에 광명이 깃들거든요. 자기 몸도 좋아지고요.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서 말하면은 금강연신이라고 하는 것이 나한테 있다는 거에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그것을 붙들고 앉아서 계속 그것에 매달려 있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지나가도 거기서 못 벗어나요. 되시죠? 그죠? 어디에 어디에 머리에 내 종양이 하나 붙었고, 어디에 뭔가 조그만 게 하나 붙어있어. 그것 때문에 암 하나 붙어가지고 나머지 있는 세포는 바글바글 거리고 평생 살고 바글바글 하는데, 주인이 전체를 통치하는 자기 주인이 그거를 아이고 병들어서 병들었어. 이러고. 치유하면 되죠. 요즘 세상에 좋은 의료 시설이 좋은데. 그렇게 사는 거에요.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지. 다른 것에서 무엇을 더 바랄 거에요. 부처님의 가치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지는 거에요.

 

저는 머리 깎고 사는 동안 이게 내가 맞다고 생각해요. 내 고집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이 그렇다는 거에요. 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가르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없는 거고, 중생이 편안해지지 않은 가르침이나 수행이나 이런 것들은 나를 이롭게 해주지 않는 거에요. 그러니까 비로소 제대로 된 불법이고 가르침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은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은 어떻게 표현 하냐 하면, 초등학교 학생처럼 따라 하겠습니다. 나는, 나는, 건강한 육체가 있다. 나의 건강은 완전한 것이다. 너무 쉽죠. 정말 쉬운 일 중의 하나에요. 이게 나라, 나라연신원이에요. 금강연신이라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에요. 물들지 않는, 신음고통 하는 그런 육체가 아니에요. 그렇죠. 그죠.

 

저 좀 보세요. 지금 약 하나 안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에요. 아마 손들어 보라고 그러면 안 먹는 사람 몇 사람밖에 없을 거에요. 그러나 약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병원 가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연세 드시면 자주 가셔야 돼. 병원에 내가 홍보하는 것도 아닌데 큰일 난다. 그런데 보세요. 그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불법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지고 좋아져 가는 과정을 부처님 세계에서 깨우치게 되요. 하나하나씩 깨우쳐 가시게 돼요. 그렇게 나의 건강이 본래 원만하고 완전한 존재거든요. 내 건강 자체도. 요거를 마음속에 먼저 두시면 돼요. 그러면 작은 것은 지가 살다가 그냥 가게 돼 있어요.

 

암이 나는 45기 됐다는 말은 못 들어도, 그렇게 된 심한 사람도,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사람도, 단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하루에 만 번씩 하라고 그랬더니 6개월 지나고 나서 암이 호전 돼서 사라지는 것을 봤어요. 이건 제가 정리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당신들, 치수에서 나타난 것이니까. 제가 그런 거를 어떻게 알아요? 모르죠. 그런데 이 단순함이, 단순한 내가 말 한마디가 말이 전체거든요. 우리가 내 말은 세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영원세계를 키워줘요. 거기 위신력이 있어요.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종교가 뭐를 채택하고 있어요? 소리를 채택하고 있어요. 그렇죠. 그죠. 소리. 말씀. 그렇죠. 그죠. 그리고 분위기가 있죠. 미술. 종교미술 있잖아요. 이런 것을 채택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