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다른 종교인들과 진리를 논할 때 답답합니다

Buddhastudy 2020. 12. 1. 19:34

 

 

스님께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다른 종교지도자분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통의 범위를 벗어나서 진리인 담마에 대해 논할 때 스승님께서는 이러한 소통에 장애가 없었는지 여쭙고 그 가르침을 배우고자 합니다//

 

 

다른 종교인들과 이렇게 수십 년간 좋은 관계를

거의 친한 친구 형제보다도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요인은

우리 질문자처럼 담마를 그들과 논하지 않는다는 거요.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노터치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같으면 절에서 밥을 준비하면 불교식으로 기도하고

교회에서 준비하면 기독교식으로 기도하고

이래야 하는데

 

우리는 절에서 밥을 준비 하더라도

기도는 늘 목사님한테 시켜요. 기도를..

아이고 목사님 기도해주세요하면

기독교 목사님들은 밥 먹으면서 많이 하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

죄와 허물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러면서 밥은 내가 했는데 다 하느님이 했다고 그러고

그렇게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끝에 같이

아멘도 해주고

어떨 때 어디 가난한 동네 가서 자기가 봉사를

수행하는데 가서 봉사를 해주고 왔다고 막 자랑삼아 얘기하면 제가 지난번에는

할렐루야이렇게 해준 거요.

 

그러니까 나중에 메일로 왔어요.

스님께서 할렐루야 해줬다고 고맙다고.

 

이렇게 서로 봉사를 했다는 건 나쁜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하이고 봉사 그거 돈 그거 몇백만 원 가서 혼자 가서 봉사한 거

그거 돈 3만원 나눠준거...

우린 그보다 수십배 수백배 더한다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게 비판이 되죠.

 

그러니까 그 작은 일이라도 그렇게 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환영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기뻐할 일을 하셨습니다이런 게 할렐루야거든요.

 

아멘하는 거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이런 거니까 이렇게 하면서 지내는 거요.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고

그들을 인정하는 거요.

 

그러면 우리는 만나는 목적이 뭐냐?

종교를 갖고 만나는 게 아니고 북한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하는 거는

신앙을 이렇게 갖든 저렇게 갖든 신부든 목사든 관계없이

북한돕기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인단 말이오.

 

스님들 중에도 북한돕기 하는데 동의 하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그놈들 왜 주느냐이러는데

목사님들 신부님들은 북한돕기 하는데 다 동의한단 말이오.

북한 정부가 어떻게 하든 그건 정부 얘기고

불쌍한 주민은 도와야 한다. 이 문제에 동의한다.

 

북한 정부가 아무리 못되게 하든 전쟁은 안된다.

남북간의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건 이 분들이 동의를 한다는 거요.

 

그분들이 기독교가 옳다, 뭐 옳다 이런 거는 터치를 안해야 돼.

환경운동, 환경을 위해서 우리가 적게 먹고 쓰레기 적게 나오는 이런 일을 하자면

오케이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오.

 

그런데 스님들이라도 이걸 동의 안하는 스님이 많다. 이거요.

환경운동할 때는 환경운동에 관심 있는 신부, 목사, 일반인들하고 같이하고

북한돕기할 때는 또 그거 같이하고

또 뭐.. 해외 가난한 사람들 돕는 일일 때는 그거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요.

 

그러면 저는 환경운동도하고 북한돕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 돕기도 하고 남북평화도 하고 이러는데

목사님들 중에는 그렇게 다 나처럼 관심있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는 환경은 관심있는데 북한은 싫다는 사람

북한은 관심있는데 환경운동은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

그럴 때는 그 종류에 맞게끔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해나간다.

그런데 거기에 신앙문제를 다루면 당연히 그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인이 종교에 담마가 있다, 진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그것이 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종교는 믿음이에요.

그걸 진리라고 주장해도 진리라는 믿음이에요.

 

그러니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거예요. 믿음은.

자기가 그렇게 믿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어디 있노?

신이 어디 있노? 너 봤냐?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 사람은 그렇게 믿는다는 거요.

그 믿음을 인정한다. 존중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믿음도 있어요.

극락이다, 복을 많이 지으면 다음 생에 복 받는다.

이런 건 다 믿음이거든요.

 

그 무슨 증거가 있는 거 아니잖아. 그죠?

그런데 정토회에서 하는 거는 그런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불교가 아니고

객관적 사실이 뭐냐, 진실이 뭐냐를 추구하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다.

과연 그게 진실이냐.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는 기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불교인 하고도 진실을 갖고 논하면 안 돼요.

 

극락이 진짜 있습니까? 정말 천도재 지내면 천당 갑니까?”

이런 논쟁을 하면 안된다는 거요.

그건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믿음의 영역이 있고

그다음에 이해,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이해의 영역이 있어. 그걸 철학이라고 그래요.

믿음의 영역은 종교.

이해의 영역은 철학.

그 다음에 체험, 자기가 직접 해보니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

이걸 수행이라고 그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적 요소도 있고, 철학적 요소도 있지만,

주가 체험의 요소다, 실천의 요소다.

 

그래서 우리 정토회에서는

본래 석가모니부처님이 가르쳤던 수행으로서의 불교

, 체험을 중요시하는

실제는 내가 경험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런 거를 중심에 둔다.

 

우리도 다는 아니에요.

일부가 종교적 요소도 있고 일부가 철학적 요소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즉문즉설을 할 때도

진실이 뭐냐를 갖고 얘기를 하지마는

이게 다른 종교에서 이렇게 접근하면 어렵습니다.

 

이거는 다른 종교만 어려운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절에서 다니는데도 이렇게 적용하면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스님에게 어떤 분이

천도재 지내면 극락갑니까?”이렇게 물으면 스님이 뭐라고 그러겠어?

 

그래서 내가 일반 절에 가서 법문을 잘 안하려고 하는 거다.

그거 뭐 절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런데 가서는 진리를 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말이오.

나는 진리를 논하지만 그게 그들에겐 정신적인 충격을 주거나 논쟁을 유발한다.

 

윤회를 인정한다 안한다라는 문제는

그건 믿음에 속하는 거란 말이오.

그건 노터치.

 

확인할 수 없는 걸 갖고 우리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건 각자 자기대로 믿으면 되는 거다.

 

그러나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하는 거는

진실에 대한 탐구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지,

기독교 다니거나 다른 절에 다니는 사람하고

부다담마를 가지고 논한다. 이런 생각을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그들이 물으면 얘기해 줄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그거는 믿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걸 대화를 해서 믿음을 일치시킨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신이 있다. 신이 없다 하면

그건 진짜 있느냐 없느냐 이거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에요.

한 사람은 있다고 믿고 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

믿음이 서로 다를 뿐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거기서 대화를 끌고 갈 토론을 끌고 갈 이유가 없다.

 

두 사람 믿음이 다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아무런 갈등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 다니는 사람들하고 아무리 친구가 되고 해도 괜찮아요.

그냥 종교 얘기 나오면 들어주고

, 저분은 저렇게 믿구나이렇게 생각하면 되고

 

나에 대해서 물으면

나는 이렇게 믿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하면

비판을 하면

아 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하고 견해가 생각이 좀 다른 거 같네.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야. 생각은 서로 다른 거니까.”

이렇게 넘어가는 게 제일이요.

 

..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게 현실인데.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여당이 조금 야당을 포용해주면 어떨까?

야당도 너무 저렇게 남북대결을 강조하고 저렇게 너무 안하고 조금 대화를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하는데 어떻게 할 거요.

 

북한도 일리있는 어떤 주장도 있지만,

어떤 건 우리가 보면 저런식으로 해서 어떻게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하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

, 저러면 저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위신이 추락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분을 지지하는 사람이 절반이 있다는 거요.

그러니 그걸 어떻게 할 거요.

그거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 예측을 하죠.

, 저렇게 하면 사회가 붕괴되는 쪽으로 가겠구나이렇게 하면

이게 성장은 하지만 이런 갈등 속에서도 우리 성장해 왔잖아요.

그러나 성장이 둔회되겠다든지 또 어떻겠다든지 예측은 할 수 있죠.

 

태풍이 오겠다고 예측한다고 불안해 하면 안되잖아요.

태풍이 온다하니까 둘러보고

, 지금 고추대가 너무 크니까 바람불면 넘어지겠다하면

미리 지주를 좀 세운다든지

그렇게 못하고 넘어지면 또 일으켜 세운다든지

그래도 못하면 포기한다든지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하지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한다 해서

남을 때리는 것도 아니고

남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뺏는 것도 아니고

성추행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는데

그거 뭐.. 특별히 그걸 문제삼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

 

그분들도 자기도 가끔 그런 얘기 좀 들어주고

가끔 스님법문 중에 도움이 될만한 거

가끔 미친 척하고 카톡을 하나 보내주고

이렇게 하다보면 계기가 되어서 깨닫는 사람도 있고

못 깨닫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요.

 

왜냐면 자기는 물고기 잡을 때

물고기 없는데 가서 그물을 쳐요?

물고기 많은데 가서 그물을 치겠어요?

그래.

 

그러니까 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든지, 교화하기가 쉬운 쪽으로 주로 주력을 많이 하고

거기에 투자 많이 해봐야 건져지기 어려운 데는 외면은 안하고

거긴 조금 투자를 적게 해야 돼.

그래야 효율적이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