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7회 소수엄정원 (20:20)

Buddhastudy 2012. 8. 5. 19:00

  방송 보기: 불교TV
 

오늘 그~ 공양을 모실 그~ ~ 불설아미타경, 48대원 발원 중에 27번 회 보면 所須嚴淨願소수엄정원이라고 하는 과정을 같이 공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고 있는 내용 중에 17쪽 상단 두 번째 세 번째 또한 사리불께서 極樂國土극락국토는 衆生生者중생생자는. 요렇게 시작되는 길이 있습니다.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께서 지혜제일을 설명하신 제자 중에, 10대 제자 중 아주 으뜸인 그런 부처님의 제자셨죠. 이 제자하고 문답을 통해서 설한 것이 불설아미타경이었거든요.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사리불이여.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게 돼요. 그래서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답이나요. 그러니깐 저 좀 보십시다.

 

이 세상에 극락세계가 있어요? 없어요? 극락세계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니 나무아미타불~ 어쩌면 좋을까? 극락세계 세상에 있어요. 사람이 행복하다든가, 사람이 기쁘다든가, 사람이 유쾌하다든가, 사람이 즐겁다든가, 사람이 유복해진다든가, 먹고 사는 것이 넉넉해진다든가.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해진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극락이에요. 이 사바세계는 눈을 뜨고 보면, 깨우치고 보면, 자기가 잘 살피지 못해서 그렇지, 자기가 자기를 잘 살펴보는 안목을 갖는 순간부터 이 사바세계는 곧 뭐죠? 극락세계라는 거에요. 불설아미타경은 지금 그걸 설명하고 계신 거거든요.

 

그래서 極樂國土극락국토가 국토라고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를 전체적으로 극락세계라고 보는 거에요. 그래서 불교적인 개념은 모든 불교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훌륭해지는 사람은 대 긍정의 세계를 믿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다 세상에 큰일들을 해내고 살아가는 거에요. 믿음이 그렇게 딱~ 들어차시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생각이 그렇게 돼 있는 거고, 마음상태가 그렇게 이미 뭐죠? 긍정적 사고방식이 우리한테 알게 모르게 이게 생활 속에서 이게 스며들어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특히 불자가 부정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고약한 일을 세상에 만나도, 내가 불성이고 부처님께서 가르쳐주고, 나한테 일러주고, 기도법을 가르쳐줬고, 참선하는 법을 가르쳤고,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전체적으로 이 삶이 아무리 고난이 있고, 아무리 고초가 많고, 아무리 장애가 많아도,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대 긍정의 힘을 믿는 거에요. 그게 이제 우리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신심이다. 이렇게 말해요. 부처님 쪽으로 가면 대 신심을 일으키신 거에요.

 

석가세존 당시에도 우리가 똑같이 이러고 살았던 거에요. 어떻게요? ~ 힘들다. 이래 말했어요. 2500년 전에도 아이고~ 내 인생 힘들어. 이러고 살고요. 요즘도 어디 뭘 하다 보면 아이고~ 힘들어. 이러잖아요.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목이 뜨이면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어둡고, 똑같이 힘들지라도 거기에 광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실천해 가는 사람은 거기에는 뭐가 있어요? 극락세계의 국토가 거기에 딱~ 자리해 주는 거에요. 요거 이제 안 믿어지는 거에요. 다시 한 번 거꾸로 묻겠습니다. 이 사바세계에 우리 삶 속에, 우리 생명 속에, 우리 영혼 속에 극락세계가 있나요? 없나요? 반드시 있습니다.

 

세상에 이게 극락세계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요.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런 말 하는 사람하고 똑같애. 나한테 좋은 거라고는 껌딱지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와 똑같으세요. 세상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거에요. 내가 나이든 만큼. 그거 시비할 거 없어요. 병든 거 시비할 거 없어요. 하나둘씩 하나둘씩 나가면 되거든요. 경전에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게 뭐냐 하면 衆生生者중생생자는 이렇게 말해요. 내가 태어난 것을 내가 스스로 중생이라고 말하는 사람한테는 언제든지 거기 지옥이 있고, 언제든지 거기에는 가난이 깃들고 결핍이 따라다니는 거에요.

 

그래서 다툼이 쫓아다니고 불행이 쫓아다니고, 괴로움이 거기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쫓아다니는 것을 衆生生者중생생자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에 태어난 자는 이게 다 중생으로서의 중생, 태어난 중생은 다 보리심에서, 저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이렇게 이제. 이게 皆是阿鞞跋致개시아비발치라고 그러거든요. 그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태어난 자는 중생들은 다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其中그중에 多有一生補處다유일생보처라. 그중에 부처에 이르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요. 저 지옥 같은 삶을 살아도 그 안에 불성이 늘 깃들어있기 때문에 그 깃들어있는 것을, 깃들어있는 불성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행을 가지시면은 다 뭐죠? 부처님처럼 원만하고 완전한 생명의 삶을 구현시킬 수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一生補處일생보처라고 표현해요. 들어보셨죠. 그죠?

 

그런 가운데 보리심을 버리지 아니한 사람한테는 뭐가 있어요? 一生補處일생보처가 생겨요. 일생동안 살면서 부처님의 가호지력이 나를 지배해주는 거에요. 이런 놀라운 것이 있어요. 그죠. 그래서 저~ ~ 이것은 이런 일생보처를 가지고 있는 그런 부처님의 가호지. 불성의 가호지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처는 어디 따로 하나 있고, 중생은 다 중생이다. 이렇게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는 거에요. 지금 경전 내용이 그거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살펴보지 못하고, 자기의 분수를 자기가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의 껍데기가 자기의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하고 있는 인생 속에는, 다 거기 일생보처가 생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살펴보면은 그 숫자는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부처님이 나한테 갖추어져 계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죠. 경전은 그렇게 여실하게 그걸 설명해주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一生補處일생보처가 이들이 너무나 많고 많아서 빛이라 그랬어요. 헤아릴 수 없다고 그랬어요. 算數산수. 所能知之소불능지.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한테는 선지식도 있고. 그만큼 뭐죠? 요즘 말로 쉽게 표현하면은 보다 풍요롭게 사는 생명 그 자체가 우리한테 수없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는 거에요.

 

가족을 들여다보는데도 안목이 결여 돼 있어 가지고 그 행복과 고맙고 감사한 것을 보지 못하는 거에요. 이웃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거에요. 所能知之소불능지. 알 수 없는 거에요. 그럼 거꾸로 좀 보십시다. 내가 이걸 산수_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나쁜 것만을 계속 헤아리고 사는 것이 중생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탐착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시비분별하지 말자. 요거 부처님 가르침 중에 핵심 중의 핵심이에요. 그러면 다 뭐가 생겨요? 그죠? 一生補處일생보처가 생겨요. 부처님의 길이 되는 거에요. 원만하고 완전한 생명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씩 구조가 됩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생각 바꾸고 마음 조금 바꾸고 말 조금 바꾸시잖아요.

 

그러면 암도 녹아지고.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생생한 세포가 더 많이 나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고기에다만 자꾸 집중을 하는 거에요. 아픈 것만, 망한 것만, 안 된 것만. 자식이 뭐 좀 안 되잖아. 그죠? 그러면 끌어안고 울고불고, 머리끈하고 동여매야 돼. 그런 생각 벗어나셔야 돼. 헤아릴 수 없는. 이게 헤아릴 수 없다는 거에요. 자세히 자세히 싹~ 돌아다보면 뭐가 생겨요? 헤아릴 수 없는 은혜공덕이 세상에 가득가득하다는 거에요. 그걸 설명해주는 것이 이 불설아미타경에서 사리불 존자와 석가세존께서 대화 중에 이게 나오는 거에요. 너무 쉽다. 但可단지. 다만, 無量無邊무량무변. 이렇게 돼 있거든요. 無量無邊무량무변은 한량없는 시간과 그 뭐죠? 끝이 없다. 이렇게 표현해도 다르지 않죠 .

 

그래서 그것이 아승지설을. 阿僧祇說아승지설은 阿僧祇劫아승지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우리가 생각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 공간을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아승지설. 그런 설법이 지금도 설해지고 있다는 거에요. 지금도. 과거에도 이런 설법이 있었고, 지금 현재도 설법하고, 앞으로도 이런 설법을 하신다는 거에요. 이 얘기는 거꾸로. 저 좀 보세요. 저도 자세히 보면 메주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봐야 돼요. 이게 아승지겁 동안 설법하고 계시다는 거에요. 지금도 석가세존께서 우리한테 설법해주고 계신다는라고 하는 이런 느낌이 바로 가슴에서 일어나셔야 돼. 그러면 뭘 설법하고 있어요? 그죠?

 

당신은 중생의 모양을 가지고 있어도 실로는 뭐라고요? 불성 부처님이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우리가 불성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믿고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깨우치는 것이 우리 가슴에 조금만 느껴지기 시작하면, 제 현실세계에서 모든 삶에 대한 것들은 원만하게 다 풀어져 간다는 거에요. 이걸 확인해 가기 위해서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조금씩이라도 기도하고, 조금씩이라도 법문 듣고, 조금씩이라도 수행하고, 조금이라도 명상을 해야 돼요. 그 법칙은 놀라워요. 다시 舍利弗사리불이여. 衆生聞者중생이 듣는 자, 應當發願응당발원. 이게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죠? 衆生聞者중생문자에요.

 

일반 우리가 삶을 중생이라고 그러잖아요. 일반적인 삶을 사는 것을 중생이라 표현해요. 괴뇌도 따르고, 핍박도 따르고, 결핍도 따르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아픔도 있고. 이런 것이 우리 중생이잖아요. 이런 중생, 이런 사람들이 이웃들이 듣는 자, 듣는 사람은 應當發願응당히 반드시 감응이 생겨서 마땅히 발원해야 된다는 거에요. 스스로 발원이 이루어져요.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이 법문을 듣는 자, 우리한테 뭐가 생겨요? 응기가 생겨서, 발원이 생겨서 원하옵건대 그 국토에 彼國피국토에, 피국이라고 하는 그 국토거든요. 여기서 아까 말했죠? 극락세계를 얘기하죠. 願生彼國원생피국 그러거든요. 所以者何소이자하. 이건 왜 그런 까닭인가?

 

왜 내가 지금 듣는 자. 이 법문을 듣고, 나무아미타불~ 단 한마디를 하는 자에도 다 그것을 석가세존께서, 저 우주 삼라만상 우주 천체가 다 이것을 응기한단 말이에요. 들어 받아서. 들어서 발원하거니와 발원하는 이는 반드시 어디에요? 극락세계에 난다는 거에요. 그러면 극락세계는 죽어서 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마음상태. 우리 정신상태. 우리 몸 상태. 우리의 사고방식상태, 우리의 살고 있는 마음 상태. 말을 사용하는 요 상태. 요런 상태에서 지금 즉시에 뭐죠? 국토에 적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거에요.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세계에 있다고 그랬죠? 처음부터 시작할 때? 극락세계가 반드시 있어요. 어디 있어요? 저한테 있어요.

 

가족에게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고, 이 법당에도 있고, 우리 마음속에도 있고, 우리 들여다보는 의식 속에도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딱 한마디 뭐에요? 듣는 자만이, 이 법문을 듣는 사람만이 반드시 응해서 저 국토에 저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곧 나한테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런 뜻입니다. 그게 극락세계 아니에요? 그죠? 하여튼 저는 그래요. 이러한 고로 所以者何소이자하. 이러한 고로, 得與如是득여여시. 얻는 게 반드시 생긴다는 거에요. 그게 득여여시 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것을 얻게 되는가? 이게 뭐냐 하면 諸上善人모든 상선인이 되요. 상선인이라고 하는 것은 저~ 우리가 삶속에서 높은 선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선인이라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착한 사람은 억울한 일이 뭐가 생겼어요. 힘이 없어서 내가 물러나 억울하고 분해. 속에서는 막~ 원망과 이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바글바글 일어나잖아요. 그죠? 요거 착한사람 아니에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 복 짓는 복이 생기는 일이구나 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물러설 줄 알 때, 이렇게 허는 것이 불자에요. 열 번을 당해도 열 번을 용서하고, 열 번을 자비로 대해주는 것이 그게 불자입니다. 그게 불교공부에요. 참 그게 내가 손해난 거 어떻게 하고요. 이러거든요. 제가 여기서 요렇게 법문하고 나면요. 나가서 내가 이번에 뭐 당한 거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해결할까요? 그러면 금방 와. 참 희한하죠. 그죠?

 

열 번을 억울해도 열 번을 다 뭐죠? 그거 밝히지 말라 그랬어요. 시비 분별하지 말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나중에 저도 어렸을 때 몰랐거든요. 시비를 하면 할수록 괴로운 거에요. 인과가 자꾸 쌓여갈 뿐이고, 업만 자꾸 쌓여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자기가 스스로 몰려갈 수밖에 없어요. 자기 어리석기 때문에, 내가 손해 볼 짓을 내가 하거든요. 억울한 짓을 내가 만들거든요. 그걸 잘 살펴보면은 자기 이기와 욕심에서 출발되기 때문에, 이게 조복 받아주는 과정이에요. 절대 나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억울하고, 매일 매 맞고, 이래도, 그래도 그걸 악으로 갚으려고 하거나, 보복해야 되겠다든가, 이런 생각으로 갖지는 않으셔야 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걸 갚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딱~ 드는 순간부터 업이 생겨나는 거에요. 좋지 않은 업이 생겨요. 그러니까 불자님들께서는 큰~ 원력과 큰~ 대 긍정심을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으세요. 그래야 세상을 이깁니다. 그래야 원 성취를 챙겨가는 그런 불자가 됩니다. 반드시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내가 지금 이 듣는 자나, 이 법문을 듣거나, 옆에서 염불을 듣거나, 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좋은 경전을 읽거나, 또는 내지나 불설을 좀 읽으시잖아요. 그런 것은 반드시 뭐죠? 應當發願응당발원하게 된다는 거에요. 응당 나를 도와주게 하고 내가 스스로 발원하게 된다. 이런 뜻입니다. 되시죠? 그러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생할 때 어디에 생겨요? 바로 나한테 생긴다. 이런 뜻입니다. 彼國피국이라는 말이 요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그렇습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 이러한 고로. 得與如是득여여시. 얻는 것은 더불어 얻게 되는데. 여시하다. 무엇이오? 모든 상선인. 모든 착한사람이 얻게 되고, 또 그것이 모든 것이 一處일처. 아까 말했죠? 일생보처라고 그랬죠. 부처의 가호지력이 도움이 일어나고, 지켜주는 그 원력이 나한테 전부 모여서 갖춰지게 돼요. 혹시 제 지금 말씀드리는 것에 이해가 안 되면 안 돼 거든요. 몰라도 무조건 압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반드시 반드시 이렇게 모여서 갖추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리불이여.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요. 석가세존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이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상선인이 내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어떻게 하면 저 一生補處일생보처가 저 불성 부처님이 나를 늘 한꺼번에 해주는, 그렇게 동행해 주는 그런 위대한 이게 뭐죠? 갖춰지는 힘이 어떻게 갖추어지겠습니까? 라고 이렇게 묻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