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18.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6월 1일 방송 - 지혜수행

Buddhastudy 2012. 8. 12. 19:34

  출처: 유나방송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선정수행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고. 선정수행은 빨리어로는 사마타 수행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마타 수행, 선정수행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색계 사선정까지 어떻게 수행을 하는지 간단한 그림만 보여 드렸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런 선정수행을 해야 되는가? 선정수행을 하지 않고는 지혜를 계발할 수는 없는가? 사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지혜수행을 하는 것인데. 왜 이런 선정수행이나 사마타 수행을 해야 되는지. 거기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을 하고,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 오늘은 간단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위빠사나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감정이나 이런 것이 개입되지 않고 그 사물이 있는 그대로를 통찰함으로써, 이렇게 통찰해보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 또는 현상들은 물질적인 영역과 정신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항상 변한다는 성질을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한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항상 변화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러니까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항상 괴로움을 유발하기 때문에 고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그리고 변하고 안정적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실체가 있겠느냐? 그래서 이거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쉽게 말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또는 우리 사람, 인간들, 존재들, 이런 모든 것들이 물질과 정신의 범주에 포함돼 있고, 그런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해를 먼저하고, 그런 물질과 정신이라고 하는 것들이 무상하다. 그러니까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실체가 없는 무아다.

 

이런 식으로 무상고 무아에 대한 통찰, 이런 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 것을 위빠사나 수행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현상을 무상고 무아로 통찰하는 것은 현상에 대해서 염오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이 변하고 항상 본질적으로 괴로움이고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해서 항상 아름답게 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배신할지 모른다. 이런 마음으로 혐오의 지혜, 또는 염오의 지혜라는 지혜가 일어납니다. 염오감이 일어나면 그 대상을 쥐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쥐려고 하는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이욕. 그러니까 욕심으로부터 멀어진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욕이 되는 순간이 바로 깨달음이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물질과 정신, 또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놓고, 그 열반이라고 하는 쪽으로 대상이 바뀌어서 열반이 궁극적으로 믿을 만한 것이고, 진정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데요. 이런 것을 해탈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무상함을 이해를 하면 염오의 지혜가 일어나고,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지 않는 거죠. 이 염오의 지혜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서 욕심이 멀어지게 되고, 욕심이 멀어지게 되면 해탈하게 된다.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위해서, 해탈을 위해서, 우리가 쥐고 있는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런 위빠사나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탐욕이나 성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개입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 보통 사람들은 감정이 개입됩니다. 좋아하는 것은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좋은 면만 보려고 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안 좋은 쪽만을 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들을 극복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아주 고요한 그런 마음상태가 필요한데, 이 선정의 상태가 일시적으로 아주 그런 마음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까 선정상태에서 예를 들어서 색계사선정에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 마음에 선정상태에 있었던 그 힘 때문에 선정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마음이 너무나 맑고 깨끗한 상태가 장시간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선정상태는 삿띠,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알아차림의 힘이 극대화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정상태에서도 다른 번뇌들, 탐진치가 일시적으로 가라앉아있었고, 그 가라앉은 마음이 선정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한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우리가 사물을 바라본다면 그 사물을 왜곡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상태, 최적의 마음상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선정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을 더욱더 잘하기 위한 그런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또 반대로 선정을 닦기 위해서도 지혜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지혜라는 것이 있어야 다른 번뇌가 일어날 때, 번뇌속성을 이해를 하고, 그 번뇌가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내버려 두면 사라진다. 저것은 무상한 것이다. 그런 이해를 통해서 다른 번뇌들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요. 그로 인해서 더 깊은 선정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지혜라고 하는 것은 선정을 더 깊은 선정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고요. 또 선정은 우리 마음의 고요함은 또 이 고요한 마음상태에서 더 현상의 본질을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선정은 또 지혜를 더 깊게 해주고, 또 지혜는 더 고요한 선정을 이끌어내고, 이와 같이 선정은 지혜를 도와주고, 지혜는 선정을 도와주는. 서로서로 아주 상승,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소 잘못된 이해 중의 하나가 선정과 지혜를 너무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정은 오히려 위빠사나 수행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선정을 닦는 것과 지혜를 닦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정을 단순히 집중하는 걸로만 이해를 한다면, 이런 이해가 이런 오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단순히 집중만 하는 것을 선정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다른 이해가 없이, 어떤 대상에 무조건 몰입만 하는 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수행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기보다 좀 잘못된 이해를 이끌어 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어린애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습니다. 놀고 싶은데 그 마음을 누르고 방안에만 있어요. 부모님이 나가면 혼을 낸다. 그러니까 방안에만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비록 방안에만 있지만, 마음은 항상 밖에 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에서 노는 게 훨씬 재미있고 그것이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내가 나가지 않고 누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거는 본질적으로 내 마음이 그렇게 변화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B라는 아이는 밖에 나가는 것은 위험한 것이 많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방안에 있는 것이 나에게 훨씬 이익이다. 이런 이해를 통해서 만약에 방안에 있는 거라면 몸도 안에 있지만, 마음도 역시 오롯하게 방안에 있을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바깥의 경계를 차단하고 하나의 대상에만 몰입되고 집중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어떤 현상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저런 현상들이 나에게 이익이 없고, 저것들은 어차피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내가 붙잡을 이유가 없다. 라는 것을 이해를 함으로써 들숨 날숨, 또는 호흡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하고, 호흡만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기 때문에 이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 있습니다.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집중을 하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바깥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집안에 있는 어린애와 같이 마음 자체가 어떤 번뇌들에 대해서 쉬는 내려놓는 그런 형태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선정은 아주 바람직하고 부처님께서 권유했던 선정이라고 할 수 있고요. 단순히 집중만 하는 그런 선정은 외도의 선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이 아니라 외도들이 하는 선정이고. 이런 선정은 설사 선정을 깊이 닦았다 하더라도 마음의 번뇌가 없어지거나, 또는 마음의 어떤 자기 성격의 변화가 있거나. 그렇게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안 좋은 부분이 더 강화될 수도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꼭 이해를 하셔야 될 것은 선정과 지혜라고 하는 것. 사마타와 위빠사나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도와주는 관계고, 또 항상 사마타 속에도 위빠사나가 있어야 됩니다. 선정을 닦는데도 지혜로서 어떤 다른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내려놨을 때 더 고요한 선정이 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도 순간순간의 삼매. 그걸 찰나삼매라고 합니다.

 

이런 찰나삼매가 없이는 또 위빠사나 수행을 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지 사마타 수행, 다시 말하면 선정수행은 대상이 하나로 돼 있다는 측면이 좀 다르고, 하나의 대상에 알아차림을 하기 때문에 집중, 고요함이라는 요소가 좀 더 강조돼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고요. 위빠사나 수행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현상.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로 주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고요함보다는 지혜 쪽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수행을 하거나 선정과 지혜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도와주고 항상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 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선정수행은 제가 앞에서 설명 드렸듯이 우리가 지혜를 닦는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익이고요. 이 이외에도 우리가 뭐~ 신통을 닦을 수 있다거나, 또 이생에서 아주 행복을 느낄 수가 있고, 또는 색계 무색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 또 나중에 멸진정이라고 하는 깊이 있는 선정을 닦는 토대가 된다는 것. 이런 것도 함께하는 큰 이익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선정수행에 이익이고, 또 선정수행을 하는 것은 깊이 있는 지혜를 계발해서 결국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놓지 못하고 있는 그런 집착. 집착을 놓고자 하기위한, 다시 말하면 탐진치를 버리고 열반을 증득하기 위함이 어떤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이 다 마찬가지로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모든 수행의 방향성은 번뇌를 버리기 위하는 방향성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사마타 수행은 이런 집중, 마음의 고요함과 아주 깊은, 아주 높은 알아차림. 삿띠의 힘을 기름으로서 고도의 지혜를 기르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더 깊은 지혜를 위해서 닦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다면 우리가 선정수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혜수행. 다시 말하면 위빠사나 수행에 도움이 크게 되는가 하는 부분을 아마 여러분들은 많이 느끼셨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선정을 바탕으로 해서 이제 다시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는데요.

 

이 위빠사나 수행은 아까 기본적인 설명은 드렸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앎으로써 현상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앎으로서, 그 현상의 본질이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라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 이로 인해서 결국은 집착을 놓고자 하는 것이 이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은 언제 어떤 식으로 할 수 있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요. 이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첫 번째로 여러분들이 먼저 주의를 하셔야 될 것은 첫째는 현재를 중요시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나간 과거나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 후회 등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자나가 버렸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에 살아가는 거나 똑같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대로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과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기도 합니다. 내가 나중에 이렇게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나중에 행복해지겠지. 하고 현재 자기 몸과 마음을 함부로 하고, 돌보지 않고,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수행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는 사실 믿을 수 있는,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변화의 여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 현재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로 떠다니지 말고, 현재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보면 어떤 실험을 하거나, 어떤 것들의 데이터를 얻을 때는 그 하나의 실험에 대해서 반복해서, 실험을 반복하거나 해서, 계속 데이터를 종합해서 거기서 아주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 나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이러이러한 것들로 이뤄져 있구나. 나라고 하는 것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런 이해가 이루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그것도 현재 내가 뭘 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이런 위빠사나 수행에 아주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고요. 두 번째는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현상,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따지고 취사선택하지 마십시오. 취사선택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괴롭게 합니다. 이거는 좋은 것을 자꾸 취하려고 합니다. 취하는데 내가 원하는 데로 취해지면 다행인데 취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하는 것을 항상 구할 수 있는 거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이 많아질수록 괴롭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좋아하는 것만 오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이것을 좋다 싫다. 이렇게 취사선택하지 마시고, 그냥 일어나는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 아~ 이런 것도 일어나는구나. 저런 것도 일어나는구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대게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나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계속 거기에 대해서 이 생각, 저 생각, 생각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걸로 인해서 우리가 고통받게 됩니다. 그래서 취사선택하지 말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냥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만으로 끝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시계가 하나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되는데, 여기서 저 시계는 뭐 저런 모양이라서 마음에 안 들고, 저건 저래서 안 좋고, 저래서 좋고. 저걸 내가 가지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진행이 되기 시작을 하면, 그것은 또 번뇌가 발생을 하는 거기 때문에, 이거는 올바른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마음을 혼란 시키게 되고, 그러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일단은 어떤 현상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석하고, 생각을 자꾸 이어가거나, 그것을 취사선택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그대로, 어떤 거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것으로 끝나라. 알아차리기만 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내려놓는 것이다.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고통을 주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로 알고 버려야 된다. 이겁니다. 뭘 알고 버려야지 무조건 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뭘 바로 알아야 되느냐? 어떤 것이 우리 삶에 이익이 되고, 어떤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지를 바로 알아야 되고, 또 어떤 현상들이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걸 잡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그것을 바로 앎으로서 어떤 우리 삶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버리는 것. 이것이 어떻게 보면 수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놔라. 내려놔라. 버려라. 하니까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조차도 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이런 것을 내려놓는 거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간혹 봤습니다. 그렇지만 수행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을 버리고, 이익이 되는 것은 계발해야 됩니다. 오히려 선한 법, 다시 말하면 알아차림이나 지혜. 자비. 이런 것을 계발함으로써 탐진치를 버려서 결국에는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 이것이 바른 수행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로 알고, 바로 알고, 내려놔야 됩니다. 그냥 이해도 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이걸 이해하고 내려놓는 것, 또는 바로 알고 내려놓는 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탐진치를 내려놓는 것. 탐진치가 위험하고. 탐진치라는 것이 우리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탐진치를 내려놓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취사선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어떤 다른 번뇌가 일어나면 그 번뇌를 통해서 번뇌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런 번뇌가 우리 삶에 이익이 되지 않고, 또 이거는 그냥 조건 따라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즉시즉시 내려놓는.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이 이런 위빠사나 수행의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선정수행을 이야기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어떤 번뇌가 일어났을 때 그 번뇌와 싸우거나 다투려고 하지 말고, 그 번뇌를 이해를 하고, 그 번뇌라는 것이 삶의 이익이 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거라는 것을 이해를 하고, 그 마음을 즉시 다시 현재 일어나는 것으로 돌리는 것. 그런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상에서 내가 번뇌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번뇌와 싸우려 하지 말고요. 단지 그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잘 알아차리고, 즉시 내려놓는. 이런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수행을 하든 간에 그 수행은 모두 탐진치를 포기하기 위한, 탐진치를 버리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고, 어떤 번뇌들에 대해서 다투려고 하지 말고, 그냥 즉시 이해를 하고 내려놓는,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억지로 버리려고 한다면, 이해 없이 그냥 무조건 번뇌와 다투게 되면, 그러면 수행하는 과정 과정들이 대개 힘들어집니다. 바로 버려지면 다행인데, 저 번뇌를 없애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가 다시 분노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분노로 인해서 우리 삶은 또 힘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는 것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인데. 오히려 수행을 함으로써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번뇌가 일어나는 것과 다투지 말고, 그 번뇌를 잘 이해를 하고, 번뇌의 속성을 잘 이해를 해서 내려놓는, 그런 노하우를 수행과정에서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잘 이해를 해서, 수행이라는 것을 행복이 돼야 됩니다. 이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고 험난한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에 따라서 수행을 하는 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수행을 하다가 수행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고맙고, 또 수행이 잘 안 된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뭐~ 수행이 1, 2분밖에 잘 안 되고, 나머지는 수행이 잘 안 된다. ~ 왜 이렇게 수행이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 우리가 12분이라도 수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이것이 훨씬 나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수행에서 작은 거지만 자꾸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수행이 즐거워집니다. 수행이 괴로운 일이 되면 여러분들이 수행을 오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소소하고 쏠쏠한 즐거움들을 많이 찾는 그런 시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상으로 이제 제가 그~ ~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 개요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러면 개요와 수행하기 전에 주의해야 될 점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 속에서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이런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하고, 위빠사나 수행 간단히 말씀드린 것을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이끌어 가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를 해서,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