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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방송] 고요한소리_7장 생각, 생각­과정 및 심찰나 (고요한소리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7)

Buddhastudy 2020. 12. 30. 19:35

 

 

...

 

어느 언어에 있어서나, 어떤 단어와 표현들은

정확성을 기하기보다 인습적으로 느슨하게 적당히 사용되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해가 뜨고 진다는 말을 쓰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5장에서 우리는 마음이 결코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것이 아닌데

마음이란 단어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듯 느슨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이 장에서는 생각이라는 단어가

마음처럼 역시 느슨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아볼 것이다.

영국 태생의 맥두걸이 그의 저서 심리학에서

의식에 관한 사실들을 기술하다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나 단어들이 분석적 기술 작업에 매우 부적절함을 발견한다.”고 했던 말을 새삼 상기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란 어떤 대상을 의식하거나 알아차리는 것이다.

생각의 대상은 밖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면의 것일 수도 있다.

의식상태에서든 무의식상태에서든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는 찰나는 없다.

불교 심리학에서는 생각을 하나의 단일한 개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생각-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느슨하게 부르는 것이 실은 생각-과정인 것이다.

 

효과적 사고를 저술한 조셉 제스트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각이란 정신의 진행과정들이 복합적으로 모인 것을 지칭하는 편리한 이름일 뿐이다.”

 

* 생각과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앞에서 마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의 연속으로서,

무언가 영원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각각의 생각이 그 다음 생각을 뒤따르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마음은 단일체가 아니라 하나의 진행과정이다.

다만 어떤 특색이 한정된 진행과정이라는 점, 다시 말해 17심찰나들이 각각의 뒤를 잇는 한정된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과정이 된다.

 

사람이 나무를 보고 바로 나무라고 인식했다면, 그것은 나무에 대한 자각 혹은 의식이 그 사람 안에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일이 단 하나의 정신작용에 의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나무에 대한 자각 혹은 의식, 아니면 생각이 온전히 일어나려면 17단계 혹은 17심찰나들이 이미 일어났을 것이다.

나무를 본 사람은 17단계 혹은 17심찰나들을 모두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들 정신적 과정의 어떤 부분 특히 초기과정은 마음의 바왕가 즉 무의식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각-과정을 마치거나 완성시키는 데는 17단계 혹은 17심찰나들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추측하면 잘못이다.

 

오히려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극도로 짧음을 강조하기 위해

주석가들은 생각-과정을 번갯불이나 눈의 깜박임에 비교하곤 했다.

생각-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그만큼 극미하다.

이들 17단계 혹은 17심찰나들의 구성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심찰나란 무엇인가?

하나의 생각-과정의 지속시간을 측정하는 단위는 심찰나인데 이 또한 시간을 무한히 작게 분할한 것이다.

모든 심찰나들은 마치 바다의 파도가 솟구쳐서는 덧없이 짧은 찰나동안 머물렀다가 가라앉아 버리듯이

의식단계의 마음에서 일어나 한 찰나 거기에 남았다가는 무의식단계의 마음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하나의 심찰나가 거치는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시작단계 혹은 발생단계

(2) 지속단계

(3) 사라진단계

 

이들 세 단계 역시 더할 수 없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이렇듯 짧디 짧은 하나의 심찰나조차도 그냥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첫째에서 둘째 단계로, 둘째에서 셋째 단계로 번개처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 심찰나와 생각과정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생각-과정은 17심찰나로 이루어지며

각 심찰나는 다시 세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의 생각­과정을 끝내어 완성시키려면

17심찰나들이 각기 일어났다가, 머물렀다, 사라져가야만 된다.

 

17번째 심찰나의 정지단계가 사라지고

다음번 생각-과정에서 첫번째 심찰나의 발생단계가 일어나기 전 바로 그 연결점에서,

하나의 생각-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의식단계의 마음은 가라앉고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활동하여 다시 나타난다.

 

이 무의식단계의 마음도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이 역시 덧없이 짧은 한 찰나 동안 무의식단계의 마음에 남았다가 사라져 다음 생각-과정이 의식단계의 마음에 떠오른다.

이 새로운 생각-과정도 17단계 혹은 17심찰나들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러면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다시 나타난다.

이런 방식으로 식의 진행과정이라는 끝없는 개울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이와 같은 여러 식의 상태나 작용이 열차의 객차가 칸칸이 연결되듯, 그러한 모양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보면 잘못이다.

하나하나의 식의 단계는 그 다음 단계로 고스란히 녹아든다.

각 식의 단계와 그 다음 단계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없다.

 

그러므로 한 심찰나의 발생단계와 그에 이어지는 지속단계 사이에

혹은 지속단계와 정지단계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생각-과정과 다음 과정 사이에도 뚜렷한 구분선이 없다.

 

하나의 의식적 생각-과정이 끝나고 다음 것이 시작하기 전에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나타난다고 비록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뚜렷한 구분선은 없다.

 

왜냐하면, 앞 장()에서 기술했듯이

의식단계의 마음은 무의식단계의 마음으로 녹아들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뚜렷한 구분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나 또 어떤 상황 하에서나 각 정신단계는 다음 것에 그처럼 합쳐진다.

그래서 죽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의식하는 식의 단계도

그 다음 생의 태아의 첫 번째 식의 단계와 합쳐진다.

 

이는 심적 현상이지 물리적 현상은 아니기 때문에 거리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는 사람의 마지막 의식단계의 정신적 상태가 갖는 합성력은

어떤 특정한 육체적 요인들과 더불어 다음 생 태아의 명색 즉 12연기의 4번째 항목을 이루게 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