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109

대행 스님 법문_ 문이 없는 문을 찾는 공부

집이 몸뚱이로서는 문을 꼭 찾아서 들어가야 들어갈 수가 있죠? 그런데 마음은 말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갈려면 어떻게 나가야 마음이 나가죠? 예? 집에 갔다 오실…, 지금 이 자리에서 집엘 갔다 와 보세요. 어디로 나가야죠? 지금 마음이 문을 찾아나가야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나가야 될까요. 예? 난 여기서 저 건너 저기 나 방에 있는 데를 그냥 벽도 봇장도 없이 그냥 뭐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나가지는데…, 저 건넌방 가는데요. 건넌방 가는 데도 그렇고 고 사이가 지구를 전체를 돈다고 하더래도 고 사이밖에 안 돼요. 또 다른 우주에 태양에 또 다른 혹성에 이렇게 간다 하더래도 차이가 나지 않아요. 한 생각 딱 하는 거하고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내 몸속에서 수없는 입자가 만약에 벽도 없..

대행 스님 법문_ 자기가 한다는 마음 자체를 떼어라

수염이 나도 달마고 수염이 안 나도 달마고 그렇다면 무효죠? 그렇죠? (예. 그렇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그런데 그런 표현으로 해서 꽃이 피는 게 아닙니다. 붉게 익은 꽃이 피려면 그런 말대답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차적으로 말할 때 분별은, 분별은 분별입니다. 분별을 하되 분별이라고 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지금 연구를 하신다고 그랬는데 모든 거를 생각하되 함이 없다 이겁니다. 함이 없는 줄 알아라 이거예요. 그럼 댁의 육체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들어있죠? 그러면 더불어 같이 생각을 하지 왜 당신이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공(空)했죠? 그럼 공체(共體)로서 공심(共心)으로서 생각한 게 아닙니까? 자기 혼자만이 그 생각을 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봤다, 자기가 생각한다 이런 마..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면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런데 댁이 어떠한 고통이든지 막론해 놓고 어떠한 고통의 용도든지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거 하나 지나고 나면 또 오고 또 오고 이런 게 있어. 사는 게 그렇고 진리가 그러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나한테 닥쳐올 때마다 자기 주인공인, 즉 말하자면 자기 몸뚱인 싹과 같고 자기 주인공은 뿌리와 같은 거야, 불성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 싹은 뿌리를 믿고 거기에다 모든 것을 ‘너만이 할 수 있어.’ 이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거든. 그러니까 어떤 거든지 처리할 수 있는 그 구성된 하나의 바로 불성이니까. 불성이 중심을 꿰어서 바퀴가 돌아가듯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너만이 모든 거를, 마음이 의욕이 생기고 편안케 할 수 있고 너만이 병을 ..

대행 스님 법문_ 우주를 삼키는 큰 도둑이 되려면

첫째, 되려고 해도 아니 되고 다 집어삼키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나하고 같이한다 해도 아니 되고 또 아니 한다 해도 아니 돼. 그런 사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라 일체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대로 여여하게 그대로 발을 떼어놓고 다니다 보면 날아도 다니겠지, 날개가 생겨서. 그리고 또 구석구석이 자기가 없어야 그것이 일치되는 거지, 자기가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자기 못난 놈이 있다면 아니 되지.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야 되겠지. 그 못난 놈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거기에 해당이 되는가, 둘 아니게. 모두가 내가 없어야 벌레 하나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있다면 벌레 하나뿐만 아니라 모두 미운 건 다 버려야 하고 나쁜 건 다 버려야 하고 이렇지..

대행 스님 법문_ 죽은 세상에 가는 공부

이거 봐요. 기복이라기보다요, 당신이 만약에 늙어서 죽을 때에, 죽을 때 남의 걱정하게 됐소? 내가 부지런히 지금 급해서 길을 가는데 옆에서 싸운다, 옆에서 나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냥 그 길을, 그냥 급하게 달려가지 여기서 참섭하고, 급하게 지금 가서 일할 거를 폐지 시키겠소? 그렇지? 그럼 또 한번 극치적으로 생각해 봐. 죽어서 우리가…, 지금 죽으려고 깔딱깔딱 할 때 옆에서 잘못하고 잘한다고 그거 참견하게 생겼느냐고.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게 무슨 공부를 하느냐 하면 자기가 나왔던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거기서, 나왔던 구멍에다가 자꾸 관하니까 거기에서 자꾸 힌트를 주는 거지. 힌트를 주고 어떤 때는 잘되게 했다가 안되게 하는 수도 있어. 그런데 안 되게 하는 거를 ..

대행 스님 법문_ 일체를 다스리게 그냥 주인공에다 맡겨놔라

사람이 말이에요. 항상 이쁘나 미우나 볼 때에 아주 긴 여행이 아니라 짧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죽은 송장이나 아니, 죽은 송장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나 산 영혼이나 똑같애요. 50프로가 산 영혼이라면 50프로가 죽은 영혼이죠, 보이지 않는 영혼. 그렇다면 내가 볼 때는 평등해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리고 현실로 이렇게 수억겁을 살아나온 그 과정의 모습들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 여러분들도 잘 아시라고 몸뚱이 속에 있는 그 모습들을 한번 생각해 봤느냐고 하죠.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인연으로 인해서 모두 한 데 한 개체가 된 거라고요. 그런데 '죽어야 한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이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구. 자기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다면 그 자동차..

대행 스님 법문_ 우리가 왜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그것도 우리가 생각을 가만히 해봐요. 바람이 있고, 흙먼지가 있고, 물이 있고 이건 스스로 자생으로서 그냥 생기는 거죠. 이건 자연의 원리면서 자연의 이치예요. 그렇게 생겨서 모아지고 모아지고 하다보니까 온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생명체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날까지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도 제일 나중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제일 나중에 돼서 살아가면서, 살다 보니까 진화도 되고, 살다 보니까 물리도 터지고 살다 보니까 모든 게 물리가 터져서, 지금 보세요 얼마나 방대하게, 의학이나 과학이나 많이 방대해졌나. 그러나 우리가 최초에 내가 어디서 온 거를 모른다면 모두가 아주 귀한 과학자가 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자가 아니죠. 남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고 남의 일을 모두 우습게 생각하고 깔보는..

대행 스님 법문_ 조상과 후손이 함께하는 공양의 의미

그렇게 되면 그거부터 얘기해야겠군요. 내가 항상 말하기를 “위패를 정해놓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죠. 우리가 살 때에 자유스럽게 사는 것과 죽은 사람도 체가 없이 사는 도리를 알게끔 된다면 관습과 습이 없어진다면 자유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하기 위해서 위패를 정해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냐하면 천리만리라도 손가락 하나만 끄덕하면 다 모이는데 왜 그것을 거기다 묶어놓고 있습니까? 그러면 공부하는 데도 지장이 있고 스님네들한테도 지장이 있고 여러분들한테는 물론이고, 그렇게 된단 얘깁니다. 그러니까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부를 못하고 그런 것만 알면 연방 찰나찰나 영령들이 이렇게, 조상님들이 집이 들으셨다가도 그 도리를, 집이 마음을 읽어보고 가시는 거예요. 마음을 읽어보시는데 마..

대행 스님 법문_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자기 근본을 믿고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잖아.’ 하는 거는 진짜로 믿으니까 그렇죠? 또 ‘둘이 아니잖아.’ 하는 거는 즉 말하자면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잖아.’ 이 소리가 나오죠. 결국은 우리가…,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유전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결과든지 다 유전에 의해서 모두 대대로 유전으로 인해서 그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수천 년을 내려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유전이라는 게 그 잠시 잠깐에 그 유전을 해치시킬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이 공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모두 어저께가 과거입니다. 어저께가 과거고 아까 한 시간 전이 과거니까 우리가 과거다 미래다 또는 현실이다 하실 게 없이 그대로 공해서 그대로 공해서 우리가 항상 이렇게 하되 자기가 하는 게 아니죠! 얼른 쉽게 말해..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불성이라는 생명력이 선장이다

여러분들의 이 몸체가 공체共體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도 빠질 것도 없고 들여놓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유를 해서 따진다면 방편으로써 선장으로 진짜 마음, 진정한 마음을 선장으로 하고 자기 육신 속에 있는 생명들은 중생으로 하고 이 모습은 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만이 그 배에서 움죽거리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냥 비바람이 치고 뇌성벽력을 하는데도 잠자코 그냥 무사히 타고 건너갈까요? 건너오기도 하고. (오직 그 선장만을 믿고서 믿고 간다면 거기에는 딴 하자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분이 다 자기 불성이라는 그 생명력을 즉 말하자면 선장이라고 비유한다면 아주 어떠한 비가 온다 하더라도 비가 안 올 것이고 또 어떠한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바람이 안..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마음이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본래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은 그게 아닙니다. 상대를 보고 해달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형상과 내 형상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요 그 뜻도 또한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부처님이 내 몸과 둘이 아니고 마음이 둘이 아니라면 해 달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네 마음을 먼저 알아야 내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뒤에는 "만약에 네 마음이 전깃줄이라면 내 마음이 또 전깃줄이라면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치면 불이 들어올 뿐이지 거기서 ‘해달라 안 해달라’ 이런 게 붙지 않느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복이라는 얘기가 지금 나오는데 부처님이 가르치실 때는 ..

대행 스님 법문_ 내 마음의 문이란?

ㅎㅎ 질문 쳐놓고는 아주 가까운데 두고 질문을 찾으시는군요. '문이 없어 문을 찾지 못하고 문이 많아서 문을 찾지 못하고' 하는 소리는 우리 자체가 이거 말로 할 수는 없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 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문이라 딴 데서 문을 찾아서는 아니 되죠.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입니다.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 많아도 문 찾기 어렵고 문이 없어서 문 찾기 어렵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가운데 어디에 문이 있는가. 바로 내 빗장문을 열어야 열리는 거지 내 빗장문을 열지 않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대답이 알쏭달쏭합니까? (일체 생명은 자신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대중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같은 생각은 편..

대행 스님 법문_ 둘이 아닌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주고받고 삽니다. 더불어 살지 혼자 사는 사람 없어요. 옷도 더불어 같이 주고받고 입었고 먹는 것도 주고받고 먹고 모두가 일체가 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둘 아니게 실천을 하느냐 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분명히 줬고 분명히 받았는데 어째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이렇겠죠? 그런데 내가 전깃줄 얘기를 가끔 하죠. 전기, 전력이 들어왔을 때는 이게 불이 들어옵니다. 전력이 끊어졌다 이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면에 전깃줄을 갖다가 이렇게 이어야 전기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들어오듯이 이것은 이거를 주고받을 때, 이걸 줄 때 이걸 받을 때, 이게 한 순간은 같이 이 마음이 즉 말하자면 정신계가 둘 아니게 이어진단 얘깁니다. 이어지..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금을 늘려가는 관법

가만히 보면 여러분들이 참 답답할 때가 많이 있지만 나는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ㅎㅎ 너도 예전에 저렇게 몰랐었지? 내 모습 같구나!’ 이렇게 하면 정말 진정코 애달프고 애처롭고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저걸 몰라서, 저거…’ 이렇게 되질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고요. 여러분들이 지혜가 풍부해야 자비도 조건 없는 자비도 나오지 지혜가 풍부치 못하면 조건 없는 자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한다 하더라도 자유스럽게 놔두고 행해야지 말로나 행동으로나 억압하고 이렇게 한다면 즉 말하자면 마음이 넓어지려야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고 저 산천초목의 모든 푸르름도 가만히 보세요. 제 이파리가 져 떨어지고, 져 떨어지는 것이 거름이 되고, 거름이 되고 또 거기서 잘 ..

대행 스님 법문_ 내 안에 천차만별로 쓸 수 있는 샘물이 있어서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질문으로 알고 이 코를 만지든, 귀를 만지든, 다리를 만지든 그 모든 몸이 한 군데에, 내면 한 군데서 들이고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자기 잡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자기를 그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그게 몸뚱이 하나를 하나로 돌아가게 하죠. 그걸 아셔야 이 우주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걸 아시게 됩니다. (스님께서 앞에 설법을 다 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 올리겠습니다. 마음의 용(用)에 있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통 살아나가는 데 그런 생각들을 안 하시고 사시죠. 우리가 공생(共生)으로 삽니다. 공생으로 살죠? 우리 몸뚱이 하나를 보더라도 공생입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 까닭에 공심(..

대행 스님 법문_ 경전을 보되 자기 없는 자기가 보게 하라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보실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 자비도 나오고 자비를 할 수가 있어야만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이 전자 줄이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이건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 주는 자와 만지키는(만지도록 하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믿고 말을 할 때는.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자 줄과 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대행 스님 법문_ 내 주인공에 연결돼 한마음으로 상응하는 수많은 부처님

그러면 이 말씀 뜻에서 몇 마디 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전부 필요한 점이니까요. 서방정토에 아미타라고 합니다. 또는 화엄경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즉 말하자면, 무아의 정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냥 이게 부처님들 이름이 수 많지마는, 또 우리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천차만별로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또 천차만별의 차원이 있고요. 그 가운데는 천차만별의 업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업보라는 건 무엇인가? 업보라는 것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건 나중에 잇도록 하고…, 이 수많은 부처님들 이름들이 여래불이니 부처님이니 이렇게 하고, 또 아미타니 이렇게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 생각을, 이걸 깨닫지를 못해서 생각을 미..

대행 스님 법문_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것

여러분들이 의심나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싶으면 질문해요.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만났잖아. (다 답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요.) 그래, 지금 지구가 돌아가든지 우주가 돌아가든지 그게 돌아가는 데에 에너지가 나오는 것도 한 구멍에서 나오지 두 구멍도 아냐. 천차만별로 용도가 다르지마는 나오기는 한 군데서 나온다는 얘기야. 우리 쓰는 사람들이 용도가 ‘이래야 되겠다’ 하면 그 용도가 바뀌니까 그렇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우리가… ‘믿어라’ 하는 것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믿어라.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면 못 믿는 게 되니까 그냥 믿어라. 그냥 네 발과 같다, 네 발에도 눈이 있고 그 발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그 손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눈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이게 말로는 그거를 ..

대행 스님 법문_ 꽃이 피면 웃고 물 흘러가듯 사는 도리

우리가 모이자니 한 그릇을 만들어서 이렇게 같이 앉았지 않소? 그러니까 이것도 방편이자 현실이지. 그러니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똥 마려우면 그냥 양면 아무 생각 없이 똥 누고 시원한 느낌을 느끼고 또는 배고프면 밥 먹고 그냥 배고프지 않구나 하는 거, 그냥 무심코 가는 거 졸리면 그냥 자는 거 그렇듯이 우리 생활이 다 그렇거든. 그러니까 함이 없이, 공 했으니까 함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뜻이지. 함이 없이 살고 있다고 하는 그 소리는 정말 50% 그 정신계의 모든 거를 하고 갈 수 있으니까 함이 없다 이런 거지. 물질계로다가 우리가 함이 있다면 그건 진짜 함이 아닌 것이지. 물질계로만이 아니라 물질계로, 정신계에서 물질계로 나와서 움죽거리게 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그냥 그냥..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도리를 조상과 후손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

우리가 예전에 큰 사찰에서 스님네들이 열반하시면 꼭 화장을 했습니다. 다비식을 했죠. 그것은 왜냐하면 살아서도 공해서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집착을 하고 만약에 땅에다 묻는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그냥 공부 안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삼혼이 있다고 합니다. 삼혼이 진짜, 집에 하나 있고 하나는 돌아다니고 하나는 산소에 갑니다. 이게 이렇게 해서 집착을 하게 되면 사람이 사는 데도 영령들이 가면 이게 ‘먹는다’ ‘입는다’ ‘산다’ 애착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그 애착에 잠겨서 영 움쭉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영령들이. 그래서 자기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헤매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몰라서 우리가 고생하는 거와, 고생이라고 하고 고생하는 거와 영령들이 또 고생을 하고 있는 거와 둘이 아..

대행 스님 법문_ 유전성이라는 이름도 없는 자리

그게 여러분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못났든 잘났든 살아나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겼을 때 바로 생긴 자체가 내가 내 근본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종자가 있으니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자를 믿어야죠? 믿는다면 아무 문제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믿으면 그냥 훌떡 넘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유전성이라는 건 생각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유전성이 이렇게 있구나.’하는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앙금이 지워지지 않는 걸 그냥 무조건 그냥 믿는다. 이런다면 그냥 그 앙금도 없어질 텐데, 이럭하면 없어진다는 건 아는데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 앙금마저도 없애려면 진짜로 믿어야 한다. 믿다가도 조금 저거하면 그냥 이렇게…, 예를 들어..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조차 없는 이름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죠. 그건 옛날뿐이 아니라 어떤 중이 시장에 무엇을 사러 가면 쭉 한바탕 돌아봐요. 어린애를 업고 앉아서 요만큼 갖다 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네들이 또 뭘 갖다가 요렇게 조금 놓고,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고 빨리 그게 참, 애가 타는 거죠. 그러면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그거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을 위해서 그걸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죠.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걸 몰아서 그런 것 쫓아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 분들을 위해서 한다고 그러면 이거는 잘못돼 돌아가는 거예요. 내 마음이 편하게 하자고 해서…. 이 다리가 없는..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를 진짜로 믿고 관하는 이유

우리가 그것을 아무, 댁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아무 일도 없이 해 놨으면 댁이 이런 생각도 못했죠. 왜 선으로만 한다더니 왜 그렇게 나쁘게 그렇게 했나 하고요. 만약에 길을 가는데 구덩이가 있는데 구덩이가 있어서 ‘너 가지마라’ 이런다면 그냥, 어린애들은 그냥 구덩이가 있든지 말든지 그냥 가거든요. 그래서 구덩이가 있다는 거를, 넘어져 봐야 구덩이가 있다는 걸 알거든요. 가지 말라는 건 이게 구덩이가 있어서 가지 말랬구나 하는 걸 알게끔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알게 되는 거죠. 그 법칙이 자기 게 돼 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벗겨준다’ 이런 뜻이에요. 그렇게 열심히 잘 믿고 잘…, 남을 언짢게 하지 마세요. 언짢게 하지 않는 것도요 이렇게 댁한테 너무 억울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냥, 그 사람도 그..

대행 스님 법문_ 한생각이 바뀔 때 현실의 생활도 바꿔진다

우리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내가 항상 그러죠. 한 가정에, 갖추어서 사는 가정이 있는데 이것이 공 덩어리 같다. 그러면 우리가 즉 말하자면 “얘, 아무개야!” 부를 때에 “네.” 그러고 아들 노릇을 하지 딴 사람 노릇을 하지 않죠? 그렇게 모습은 그대로 있는데 그렇게 바뀐단 말입니다. 바뀔 때는 보이지 않는 데서 아들로 그냥, 과거로 그냥 되는 거죠. “아버지!” 할 때는 또 아버지 노릇 하느라고 바뀌죠? 속에서는 바뀌는 거예요. 거죽 모습은 안 바뀌어도. 속에서는 바뀌어서 돌아가는 겁니다. “여보!” 하면 또 남편 노릇을 하는 데도 그냥 바뀌는 거죠. 바뀌는데 찰나에 바뀌는 거죠. 두고두고 바뀌는 게 아니라 찰나찰나 이렇게 바뀌는데 바뀌는 것마다 가만히 보세요. 바뀌는데 그 어떤 것이 어떤 걸로 내가 ..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이라는 종자를 발현해내려면

지금 말씀하셨는데 이게 우리가 목마를 때 물 마시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똥 마려울 때 똥 누고 잠 올 때 잠자고 이러는 처지라면 이건 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건데 자유스럽게 못 사는 것은 자기를 자기가 못 믿기 때문입니다. 그 습성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다면 자기가 망가지지 딴 사람이 망가집니까? 못 믿는 것도 믿는 것도 바로 자기가 자기를 믿는 거죠. 우리는 지금 주머니 속이라는 공기주머니 속이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알궁달궁하고 여럿이 그냥 거기 다 들어서 살고 있어요, 지금. 그 주머니는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돌고 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 볼 때에 바로 이 몸뚱이도 우리가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이 속에 있는 생명들은..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자유스럽게 하세요. 우리 사는 게 의도적으로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유스럽게 그렇게 안으로 내면의 ‘참 나’하고 ‘나 아닌 내 모습’하고 말을 하려면 아주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죠. 자연적으로 말을 하고 또 그게 끊어지면, 끊어진 게 아니라 그냥 잠시 이렇게 갔다가도 그냥 다른 거를…. 즉 말하자면 엎드러지게 한 놈도 그놈이고 일어나게 한 놈도 그놈입니다. 그런데 일어난 놈이 일어나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너 아까 엎드려지게 했잖아. 그런데 또 지금 일어나게 했잖아. 그럼 네가 어떻게 한 거야?’ 하니까. 그 내면에서 하는 말이 ‘네가 밝으면 밝은 데로 찾아가고 어두우면 어두운 데로 가지 말아야지, 네가 어두운 데를 밝음이라고 생각하고 가니까 엎드러지는 것 아니야?’ 하거든요. 그러..

대행 스님 법문_ 공부를 꾸준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가는 길

...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살고 계셨어도 한시도 눈을 떼어 놓고 그냥 눈을 감고 살지 않습니다, 송장처럼. 그냥 눈을 감았어도 살고 있습니다. 벌떡 벌떡 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땜에 자도 참선이요 일어나서 섰어도 참선이요 일을 해도 행선이요 앉았어도 좌선이다 이 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그대로 있다는 얘기죠. 그것을 다, 이게 네 가지가 다 겸해서 돌아가고 있다. 앉으나 서나 일하나 또 서서 다니나 모든 게 같이 더불어 하고 있다. 이거는 왜냐하면 내 몸뚱이 속에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몸뚱이 하나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만약에 이 한국 나라다 이런다면 한국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또 같이 하고 가야 되겠죠. 또 한국이 아닌 딴 나라가 또 있다면 지금 올림픽 하는 호..

대행 스님 법문_ 내가 공했다는 것을 알면

제가 법문을 할 때에 그대로 담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그릇을 크게 해서 여러분들의 말이 자유스럽게 이 진리와 틀리지 않게 하시라는 거죠. 이게 내가 법문하는 대로 그대로 한다면 막말로 한다면 따라서 하는…, 뭐라고 그럴까요? 따라서 하는 사람밖에 더 돼요? 그러니까 그 법문이 어떤 내용인가 그래서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댁에서 그 말의 뜻을 말할 수가 있죠. 부처님의 말씀도 경에서 읽는 대로 그대로 읽는 건…, 예전에 그랬습니다. “원숭이가 흉내 내듯 하지 말고 네 소리 좀 해라.” 이렇게요. 그러니까 그대로 담지 말고 그 뜻을 말을 담지 마시고 그 뜻을 담으시란 얘깁니다. 그러면 댁의 게 되죠. 모든 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한 사이가 없고 앞으로 한다는 말도..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이 아무리 많아도 한 부처님이라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맨 끄트머리로 가서는 뭐가 생기느냐 하면 공생(共生)이 돼. 공생인 거를 알게 돼. 그러고 공심(共心)인 거를 알게 되고. 사람뿐이 아니라. 그러고 공체(共體)라는 거를 전부 알게 돼. 그러고 또 공용(共用)이라는 거를 전부 알게 돼. 내가 움죽거림으로써 네가 움죽거리고 네가 움죽거려서 주는 게 있으면 내가 너를 주고, 이렇게 해서 서로서로에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부 공용으로 살게 되고 그리고 공식으로서 사는데 ‘일체 만법을 내가 어찌 들이고 내는 거를 알았으리까’ 하는 이치나 같애. 그래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도 조금도 걸림 없이 들이고 낼 수 있다라는 얘기. 그러니까 댁이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야, 관세음보살을 찾았는데 그럼 관세음보살 다르고 주인공 다르..

대행 스님 법문_평범한 생활 속에 도道가 있으니

... 그렇죠. 우리가 도(道)는 생활이 도예요, 생활이. 딴 데 도가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을 버리고 도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우릴 버리고 부처가 있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부처도 우리와 둘이 아니고 도라는 이름도 우리와 둘이 아니고 그냥 평전한 생활에 다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를 깨우쳤다, 깨우치지 못했다 이거를 뛰어넘으세요. 이거를 버리고 뛰어넘으세요. 버리라니까 아예 그냥 저 개천에다 꼬라박지 마시고 자기 원소에다가, 자기 주인공에다가 그냥 놔 버리세요, 그냥. 놔 버리시고 이렇게 하세요. 그런다면 그냥 그게, 그렇게 하는 게 도예요, 그냥. 무슨 별다르게 이게 도는 별다르게 해야만 되느냐 그게 아니에요. 남을 원망 안하고, 실질적으로 남을 괴롭히지 않고, 예를 들어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