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136

대행 스님 법문_ 세 번 죽는 도리

주인공을 일심(一心)으로 발견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거지든 거지가 아니든, 남자든 여자든, 중이든 중이 아니든 막론해 놓고, 말입니다. 아까도 얘기한 바와 같이, 동자 얘기를 했듯이 사람은 다리 절름발이가 돼서는 아니 됩니다. 즉 무심(無心)과 유심(有心)이 절름발이가 돼서는 아니 됩니다. 동시에 같이 돌아간다는 자체를 아셔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본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거와 동시에 돌아가죠? 어디 따로따로 돌아갑니까? 눈과 귀가 따로따로 돌아갑니까, 어디? 얼굴이? 그러니까 이것을 동시에 악과 선도 거기 놔라. 악한 거는 놓고 '선하게 이끌어줄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놓고 선하게 돌아가는 거는 감사하게 놓고 모든 거를 한군데다가, 놓는 것이 자기가 공해서 본래 ..

대행 스님 법문_ 편안한 경계를 좋아하면 잘못된 건가요?

...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 내 마음이 편안하면 이 육체 안에 있는 중생들도 편안하기 때문이지. 모두가 한데 뭉쳐서 놓을 수 있는, 그 주인공에다 놓을 수 있는 작업이 물러서지 않는 진실이라면 바로 그 마음은 한마음으로 돌아가니까 편안함이 오고 끄달리지 않는 법이지. 그럼으로써 이 우주의 천체는 근본 하나로 돌아가지만, 평등하게 돌아가지만 용도에 따라서 끌어 쓰는 용도는 다 달라요. 그러니까 평등하게 둘로 보지 말고 내 주인공에다 모두 일임해서 놨을 때 그러고 자기한테 용도에 따라서 다가오는 그 모두를 건건이 거기에다가 놓고 거기서 만이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진실하게 가질 때 하늘이 무너져도 거기다가만이 할 수 있을 때 죽고 사는 것을 탓하지 않을 때 그런 때에 비로소 편안하면서도 그 모두를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으로 자기를 다스려서 놔라

일체에 놓는 거라고 그러는 거는 우리가 지금 걸어오셨지마는 뒤 발자취를 남기지 않고 짊어지지 않고 오셨습니다. 고정됨이 없이 그냥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본래는 그냥 놓고 가는 거죠. 놓고 간다는 말 자체도 할 게 없는 거죠. 헌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만날 마음으로 끼워 잡고, 착을 두고, 욕심을 두고, 집착을 하고 이렇게 모두 하니까 그걸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되풀이 해서 말씀해 드리는 거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망상으로써 모든 거를 끄달리고 이렇게 하는 것과 지금 놓는 것과 어떤 것이 더하냐고 했는데, 망상은 망상이 아니라 그대로 자생을 길러내는 원소 자체의 그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고요. 그러니까 망상이라고 할 게 없다 이런 거죠. 그 생각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목석이지 그게 ..

대행 스님 법문_ 지금 말을 하게 하는 주인공을 믿어라

스님 법문에서 주인공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그 주인공은 제 몸 속에 있는 것인지, 우주에 다, 허공 법계에 꽉 찬 것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그러면 염불이나 기도는, 주인공에 맡길 경우 꼭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사람은 뭐, 문이 여기도 많죠. 염불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禪)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이, 이 문 저 문이 많죠. 그러나 문밖에 나가면 그저 다른 문이 아니죠. 이 주인공(主人空)이, 이 마음 자체가 내놓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없습니다. 이 허공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허공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렇다면 그와 같은 겁..

대행 스님 법문_ 마부의 지혜로운 다스림

불씨는 우리 원소의 에너지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불씨로 하여금 마음을 내게 할 수 있는 그런 활동력이 있죠.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치면 불이 들어오듯이 그렇게 불이 들어올 수 있게끔 마련한 그 자체가 바로 원소 자체의 에너지입니다. 그러면 그 에너지, 불씨라고 합시다. 불씨가 없으면 마음을 낼 수 없고 마음을 낼 수 없다면 육체가 움죽거리지 않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삼합이 동일하게 하나가 돼서 지금 움죽거리고 말을 하고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로 소를 타고 피리를 분다 이 소리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소를 타고 달구지를 끌고 다닙니다. 예를 들어서 마부는 마음이요 바로 육신은 달구지요 소 는 자기의 주인공, 바로 조상입니다. 과거에 살던 자기, 현실에 사는 자기. 현실에 사는 자기는 달구지..

대행 스님 법문_ 경전을 대하는 마음 자세

부처님께서는 49년을 설하고 경전을 편집해서 냈어도 이날까지도 그 마음을 모두 모르고 모르면서 그 마음을 움죽거리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로서는 경전을 봐야 옳다 경전을 안 봐야 옳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이 오장육부 속에도 천차만별의 모습들도 다르고 행도 다르고 모두 다르듯이 이 세상만사의 모든 마음 내는 그릇은, 마음 자체는 다 똑같지만 마음 내는 자체는 다 다른데, 천차만별로 다른데, 그건 그릇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할 뿐이지 누구가 봐야 옳다, 안 봐야 옳다 할 수는 없죠. 그러나 우리가 참고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경전을 써놨어도 풀이를 해 놨어도 기복으로 풀이를 많이 해놨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기복으로 써놓은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참고적으로 우리는 지혜를 넓혀가고 ..

대행 스님 법문_ 자문자답하는 자생중생들의 관리인

그러한 생각이 어떠한 생각이 들든지 안에서 일어나든지 바깥에서 닥쳐오든지 간에 어떠한 자기가 좀 놔야지 왜 놓질 못하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때 그때 호령을 치세요. “요놈아, 그래도 너라고 자꾸 그래? 놓지 못하구!” 자문자답.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됐다가 바로 자기가 중생이 됐다가 둘 아니게 항상 같이…, 이렇게 답답하게 나오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지 딴 데서는 안 나와요. 딴 데서 주고 뺏아가는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어떠한 문제가 나오더라도 “허허 참, 너 감사하게 하는구나.” 이러고 말이에요. 참 그게 재밌잖아요? 또 어떤 때는 “야, 그것 좀 놔라.” 이러기도 하고, “그것 참, 너 참 슬기롭게 잘해 나가는구나.” 하고 자기 손을 들어서 자기 궁뎅일 쳐줘요. ㅎㅎㅎ “야, 너 슬기롭게 참 잘..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 속에서 나온 것 주인공 속에서 해결하라

모르니까 그렇죠. 지금, 지금 주인공이 그 종이 한 장을 들고 이럭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주인공이 일거일동하는 거예요, 하고 돌아가는 거죠. 시공을 초월해서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냥. 그러니까 표현을 할 때 수레라고 했습니다, 수레! 수레바퀴와 같이 돌아간다. 근데 그 수레를 누가 굴리느냐? 바로 심봉이 끼워져 있기 때문에 그 수레는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깐 너를 돌아가게 하는 그 불성 자체 기둥을 믿어야지 어딜 믿느냐?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심봉이 바로 너의 주인이지 어디 있느냐 이런 겁니다. 주인은 주인인데 돌아가는 게 또 있으니까 ‘공(空)’ 이랬습니다. 주인(主人) 공(空)! ㅎㅎㅎ 그래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이니라’ 그랬지요. 그 가운데에 바로 부처는 있느니라. ... 본래 한..

대행 스님 법문_ 종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의 주인이 돼라

왜 우리가 이렇게 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우리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우리 하나하나만 살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옛날에 사람이 되기 전에 생물들이 생겨서 모두 극악하고 잡아먹고 모두 무서웁게 그렇게 살다가 그게 없어지고 진화가 돼서 사람이 돼서 이렇게 할만 하니까 또 다른 건 다 없어지면서 이게 사람이 진화해서 이렇게 해 나가는데 사람이 진화를 해서 이렇게 해서 참 진짜로 부처님같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세세생생을 두고 그분은 영 죽는 게 아니죠. 죽는 게 아니고 그냥 모습은 없지만 그 일대사의 인연을 다 지으셨다고 하는 뜻이 뭐냐 하면 어떤 사람이든 다 응신이 돼 줄 수 있단 얘깁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보살이에요. 다른 게 보살이 아니고. 부처님의 마음이 보살이란 말입니다. 마음은 한..

대행 스님 법문_힘든 경계속에서 수행이 더 깊어지나요?

공부하는 태도가 말입니다. 아까도 저 부처님 따로 보되 자기로 다 돌렸지마는 사람 사는 게 천차만별의 그 모두 어느 가지가지를 헤아릴 수 없는 생활 속에서 귀찮게 어떻게 그렇게 갈가리 찢어서 살 수가 있겠소? 그러니깐 공부하는 것도 저 부처님을 보되 나의 모습을 보되 모든 거를 자기 모습과 둘 아니게 그냥 둥글려서 그냥 주인공으로 하나로 보란 얘기죠. 그렇게 하면 편리할 거를 그냥 마음으로 요렇게 짓고 짓고 해서 예전에 고사를 지내도 요기 갖다놓고 조기 갖다놓고 조기 갖다놓고 조기 갖다놓고 이렇게들 모두 공평치 못하게 살거든요. 그리고 아까 어려운 경계가 없으면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그랬죠? 그랬는데 사실은 그것도 마음 먹기 달렸어요. 왜 어렵게 만들어서 공부를 하느냐 이거야. 어렵지 않은 처지에서는 어렵..

대행 스님 법문_ 왜 놓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당신 뿌리에 놓으라고 하니까 모두 어떻게 놓느냐고 합니다. 어떻게 놓습니까? ‘놓으려고, 놓으려고 애를 써도 놓아지지 않습니다’ 하거든요. 왜 그럴까요? 본래 콩씨와 콩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인데. 그래서 콩씨가 콩싹으로 화하려면 수분도 필요하고 흙도 필요합니다. 가운데는 그 부분들은 다 놔두고라도 정자, 난자를 비롯해서 자기가 싹으로 화합니다. 싹으로 화하는데 그 싹이 어디 가서 내 콩씨를 찾겠습니까? 네? 뿌리로 과거로 돌아가서 뿌리로 찾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미래로 찾으러 가겠습니까? 그러면 형상에게 내 뿌리 씨를 달라고 하겠습니까? 이름에게 달라고 하겠습니까? 중들의 고기 덩어리한테 달라고 하겠습니까? 누구한테 달라고 하며 누구를 믿으며…. 그런데 그 콩씨만은 바로 자기 콩씨를..

대행 스님 법문_ 찰나찰나 회향

회향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이죠, 회향도. 지금 현재에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인생의 회향을 하느냐, 인생의 회향을 어떻게 해야만 잘했다고 하느냐는 회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술을 자시고 집안을 난가를 만들고 이렇게 해서 인생의 회향을 마치느냐? 또는 두 첩, 세 첩씩 두고 이렇게 서로 은혈이 지게끔 해놓고 회향을 하느냐? 또 그렇지 않으면 수수하게 잘 살다가 회향을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둔다는 그러한 일념으로써 살아나가면서 회향을 하느냐? 또 우리네가, 이러한 공부를 하는 스님네들로 하여금 일체 회향이 있습니다. 일체 회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서 회향을 해야 하는 겁니다. 죽어서 회향은 없습니다. 즉 말하자면 회향이 있는 까닭에 살아나온다 죽는다 이런 언어가 막히는..

대행 스님 법문_ 안되는 게 없다면 배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좀 더 넓게 써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걸 표현하자면 잘되는 것만 있고 안 되는 건 없으면 진리가 아니에요. 꼭 상대성이거든요. 우리가 차를 타고 갔다 하면 꼭 내려야 하죠. 꼭 내리고 꼭 내렸다가 또 타고 올라와요. 그 잘되는 것만 있다면 이 진리는 끊어져 버리죠. 모두 여러분들의 마음의 차원에 의해서 잘되는 것이 있고, 중(中)이 있고, 하(下)가 있죠. 그래서 이게 둥글러 가면서 자기 마음에 따라서 차원이 달라지면서 하로 사는 사람, 중으로 사는 사람, 대(大)로 사는 사람 이렇죠.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요렇게만 생각하세요. 차를 여기에서, 아니 예를 들어서, 광주에서 여길 타고 왔는데 타고만 다니는 게 아니죠. 내려서 볼일 다 보고 또 타고 올라가야죠? 그러니까 종점과 시발점이..

대행 스님 법문_ 믿는 만큼 없어지는 도리

내가 항상 저 나무들 뿌리하고 싹 얘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누구나가 다 나무 싹과 뿌리가 있듯이 그렇게 본래 그냥 그렇게 달려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네 뿌리는 바로 네 주인공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 일체 우주 전체를 한데 쌓아봤자 이 콩 알갱이 하나로도 할 수 있고 요런 데로 하나도 할 수 있고 한 사발로도 할 수 있고 한 주먹으로도 할 수 있고 아주 없이도 할 수 있단 얘깁니다. 그 모두를 하나로다가 이렇게 했을 때 그 콩 하나를 갖다 짊어지니까 세상에 짊어질 수도 없고 무겁더라. 그런데 그거를 어떡하면 빨리 해소를 시킬 수 있나. 그래서 그냥 무조건 관하라고 그런 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믿는 것만치 없어질 거고 믿지 못하고 ..

대행 스님 법문_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 놔라

오늘은 한자리한 분들이 모두 청년분들일세. 그러고 너무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다 줘서 감사해요. 그러고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 강당에 앉아 계셔도 모두가 한자리라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청년분들이니까 더더욱 우리가 생각을 깊이 해야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좀 깊이…, 우리가 평상시에 어렵지 않게 살면서도 한번 뒤집는 그런 거를 한번 생각해 봐요. 뭘 가지고 뒤집는다고 그러느냐 하면 항상 얘기하죠. ‘이건 잘못될 거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건 잘될 거다’ 하고 뒤집는 거 말이야. 그걸 번연히 잘못된 걸 알면서도 ‘잘될 거다’ 하고 뒤집는 거, 무조건. 이건 스님네들도, 공부하는 스님네들도 그렇거니와 사회적으로 지금 사는 분들도 그래요. 필요해요, 아주. 자기는 과거 정신계하고 자기 현실 물질계하고 포함이..

대행 스님 법문_ ‘참 나’와 ‘가아’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가 나(假我)’도 없고 ‘참 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기둥 하나가 이렇게 방편으로 있다면 굴레가, 거기에 끼고 돌아가는 굴레가 있습니다. 기둥은 움죽거리지 않지만 그 굴레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그 수레가 역시 댁에서 지금 살고 있는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일일이 가(假) 내가 믿고 찾는 거 또는 진짜 참 나가 하는 거 이렇게 따로 따로 찾지 마세요. '주인공' 했으면요 그 기둥째, 수레째, 내가 찾는 나와 더불어 같이 지금 댁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수레에서 굴러 나오는 거와 같습니다. 수레에서 자꾸 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댁에는 자꾸 수레에서 나오는 대로 그 수레에다 다시 집어넣는 겁니다, ..

대행 스님 법문_ 내일을 대비하는 마음가짐

근데 사시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요 쓸데없이 생각해요.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그저 살아오던 그 생각을 하고 예를 들어서 얼른 쉽게 말하자면 이사를 가도 뭐를 봐야 한다. 어디로 가야 되나. 동서로 가야 되나, 남으로 가야 되나, 북으로 가야 되나 이런 것도 보고요. 그것이 그것뿐만 아니라 살아나가는 데 24시간에 우리에(게) 아주 해당하는 것이 절대로 이렇게 오게 되면 벌써 낌새가 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 뜻이 옵니다. 오면은 거기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라 하는 것이 그냥 생각을 하지 말고 그거 오면 어쩌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마시고, 그냥 한생각으로 그냥 공식(共食)으로 해버려라 이겁니다. 한생각으로 공식으로 해 버려라. 살생이 닥쳐올 때는 공생(共生)으로 해 버리고 또 근심이 닥쳐올 땐 공심(共..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촛불재

우리가 왜 촛불재를 그렇게 하느냐? 귀중하게 해야 되느? 이 마음의 촛불재를 하는 것이 방편으로서의 그 마음과 더불어 즉 자신과, '자(自)'는 이 몸이 되고 '신(神)'은 자기 불성(佛性)이 되는 겁니다. 이게 자·신이 다 둘 아니듯이 촛불재를 하는 것도 마음에 없으면 그 촛불을 들 수가 없습니다, 들질 않게 되죠. 마음에 있으니까 촛불재를 하는 겁니다. 그 촛불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이 가설이 돼 있다고 항상 얘기하죠?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한 가정에 내 자식이다 내 부모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다 가설이 된 겁니다, 그게. 다 가설이 되고 그것을 넓게 지혜롭게 모르는 사람은 전체가 가설이 돼있다는 걸 모를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라도 그것을 알아야 전체가 다 가설이 돼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 이름만 찾고 계신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주인공 찾기를 이름만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네, 많이 찾고 있어도요 맷돌에 물건을 넣지 않고 굴리는 거와 같죠. 그러니까 이 깊은 마음속에 진짜로 믿는 것은요 잘 된다 낫는다 못 낫는다 이걸 떠나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대로 자기 주인공이 자기를 이끌어가는 겁니다. 자기를 형성시켰구요. 그러니까 진짜로 그냥 죽으나 사나 믿는 거죠. 낫기 위해서 믿는 것도 아니고 잘 되기 위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통신이 되질 않죠. 그러니까 진짜 이 콩씨, 콩과 콩싹이 어디 하나가 없어도 안 되죠? 콩이 콩싹을 만들지 않으면 콩싹이 콩이 보이지 않구요. 그러니깐 콩싹이 없어도 콩이 없고 콩이 없어도 콩싹이 없죠. 그러니까 둘이 아니에요, 주인공이랑. 그런데 자꾸 둘로 보시고..

대행 스님 법문_ 안달복달하지 말고 지혜롭게 믿고 맡기세요

그건 나더러 할 소리가 못 됩니다. 항상 여러분들한테 해드리기를 그것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여러분들의 자가 발전소에 있다고 말을 해드렸죠.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여기 있는 스님네들한테 말씀해도 관(觀)하는 거 가르쳐 드리고 진짜로 제 나무가 제 뿌리를 믿어서 관하는 도리를 알려 드릴 겁니다. 제대로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통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대에 통신이 되지 않고 또 건너편에 아들과 같은 뿌리에 통신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모두가 여러분들의 그 믿음에 의해서 자기 불종을 믿고 그 불종을 믿음으로써 자기 뿌리가 되고 바로 자기 뿌리가 됨으로써 자기 싹이 됨으로써 그 싹도 금갑옷이라 그랬습니다, 금갑옷. 금으로 만든 갑옷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그것을 올바로 하지 못하시고 ..

대행 스님 법문_ 그냥 그대로 무조건 믿어라

이 24시간을 일을 하는데요. 주인공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고 생각을 합시다. 그런데 24시간이 지나서 주인공 생각이 났단 말입니다. 그랬으면 그게 24시간을 공간을 두고서 띄어졌나요? 그냥 무시거든, 무시, 무시라고. 무심, 무시라고. 그러니까 24시간 뒤에 생각난 것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24시간이 있지 24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도 초월해서 그냥 그 시간에 생각났으면 그 시간에 난 거지 24시간이 왜 거기 붙느냐 이거예요. 그리고 24시간이 붙기 이전에 또 관하는 게 생각이 났든 안 났든 그대로 뿌리와 싹이 같이 붙어있는데 무슨 찾고 안 찾고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 그냥 그대로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이 세상에 난 것부터 벌써 났으니까 있는 거다. 그러니 그대로 무조건 믿어라. 자기..

대행 스님 법문_ 잘났든 못났든 나를 먼저 믿어야

우리가 공부하는 도리는 시공도 없고 공간도 없고 모든 게 다 없지만 우리 사람들이 살려니까 시간도 만들어 놓고, 또 일 년, 해우년도 만들어 놓고 몇 해니 몇 해니 하고 나가는데 그거를 질서를 지키기 이전에 그냥 순서대로 살아나가기 위해서 방편으로 여러분들이 해놓고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편 더 생각해 볼 때는 이 마음이 아니라면 몸이 움죽거리지 않는다는 거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고 믿고 자기의 그 마음의 영혼이 빠지면 송장이 된다는 것도 잘 아실 거고. 그러니까 옛날에 부처님께서도 그랬고, 역대 조사들도 그랬습니다. 공부할 때, 이 들이고 내는 구멍은 한 구멍이다. 자기가 여기 있으면 부처도 여기 있는 것이고 바깥에 나가면 바깥에 나가는 대로 자기가 있는 자리에 부처가 있는 것이다. 변소엘..

대행 스님 법문_ 뿌리를 알면 가지 잎새는 저절로 알아집니다

사람마다 다 본체가 있습니다, 근본 본체. 즉 말하자면 본체라는 것은 근본과 이 체와 둘이 아닌 그 자체를 본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를 들어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본성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대로 있기에 그 불성 자체가 하늘과 땅을 기준으로 해서 불기둥이라 한다면 ‘불’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합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기둥이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렇게 돼 있으니까요. 직결이 돼 있고 우주와도 직결이 돼 있고 이 모든 일체 만물이 자라는 땅과도 합류화가 돼 있습니다. 천지가 합류화 돼 있듯이. 그래서 그 기둥이 있으면 그 기둥을 끼고 수레가 돌듯이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우리 생사윤회 모든 일체가 돌아가는 것이 그 기둥을 끼고 돌아가는데 그 기둥은 움죽거리질 않습니다. 움죽거..

대행 스님 법문_ 왜 심부름꾼이 참섭을 합니까?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오늘을 잡아놓고 오늘 질문을 할 것을 공부하는 데 질문 또 자기가 공부하면서 체험 이런 거를 서로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오늘부터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자에는 그냥 설법을 그냥 했는데 너무 여러분들하고 나하고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것 같애서요 오늘서부터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이 그렇게 힘듭니까? 보세요. 싹은 무조건 자기 뿌리에 의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싹이 말입니다. 한 줄기가,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힘들어!' 이런다면 그 뿌리는 뭐라고 할까요? 뿌리로만이 성립이 되고 싹은, 뿌리가 썩질 않아야 만이 싹도 싱싱하게 푸르르게 살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괜히 뿌리를 놔두고도, 그 능력 가진 뿌리를 놔두고도 그 싹은 이파리 하나하나..

대행 스님 법문_ 한마음으로 세우는 원

이 원이라는 건 둥근 것이 원이죠? 그래서 원심을 낸 거죠. 한마음이 된 거죠. 한마음으로 구성해서 통신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그냥 이렇게 공부하는 거 같지만 이거는 심성의학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천문학이기도 하고, 천체물리학이기도 합니다. 그건 왜냐? 내가 전체의 그 몸속에 있는 의식과 모든 걸 한마음을 냈습니다, 한마음으로. 원이라는 그 말이 한마음이란 뜻입니다. 그래 한마음을 냈는데 한마음으로 내가지고 보니까 바깥 경계도 한마음으로 되돌아가더란 얘기죠. 안에서 한마음이 다 이렇게 한다고 말을 할 땐 내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자에서 입자로 화(化)해서 다 조절을 한다, 한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한마음을 냈는데 그것이 어떻게 비는 겁니까..

대행 스님 법문_ 진짜로 믿는다면 두려울 게 없다

이거 보세요. 내 몸뚱이는 내 몸뚱이가 아니에요. 모든 생명들의 집이죠. 그런데 그 생명들을 다스리는 바로 자기 마음의 근본이 있거든요. 근본을 진짜로 믿는다면 두려운 게 없어요. 진짜로 믿어서…, 그 믿는다는 걸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될까? 진짜로 믿는다면요 아무 의심도 없고요. 죽느냐 사느냐도 거기에 의심이 가지 않아요. ‘죽이든지 살리든지 너 알아서 해라.’하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뭐 두려운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죽는 것도. 죽는다 산다 이런 것도 두려움이 없고요. 또 뭐라고 그랬죠? 두려운 거하고…. 내세운다. 믿지 못하니까 나를 내세우죠. 내가 몸속에 있는 생명들과 더불어 물 한 컵을 마시되 지금 이 성대든가 이 위에서 날더러요 물을 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심부름 해줬죠, 지금. 그런데 이 심..

대행 스님 법문_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체험하는 공부

누구나가 다 자기를 자기가 몰라서 길을 잃고, 길을 헤매고, 길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그 길을 찾기 위해서 그거를 자기가 정립시키고 나가면서 체험하고 나가는 거죠. 체험하고 나가다가 보면 '아, 이런 거로구나! 이렇게 아주 틀림없는 사실이구나!' 하는 거를 알았으면 그것을 놓고, 또 딴 데로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시구요. 또 딴 것도 또 자연스럽게 오는 것도 대치할 수 있게끔 이렇게 한번 해보시구요. 모든 걸 이렇게 살림살이 속에서 모든 걸 다 해보세요. 찍어서 안 먹혀지는 게 없어요. 이 세상을 다 한주먹 안에다 넣고 한 입에 털어 넣으려도 털어 넣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이 도리를 아셔야 해요. 이 삼라대천세계를 한 ..

대행 스님 법문_ 문이 없는 문을 찾는 공부

집이 몸뚱이로서는 문을 꼭 찾아서 들어가야 들어갈 수가 있죠? 그런데 마음은 말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갈려면 어떻게 나가야 마음이 나가죠? 예? 집에 갔다 오실…, 지금 이 자리에서 집엘 갔다 와 보세요. 어디로 나가야죠? 지금 마음이 문을 찾아나가야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나가야 될까요. 예? 난 여기서 저 건너 저기 나 방에 있는 데를 그냥 벽도 봇장도 없이 그냥 뭐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나가지는데…, 저 건넌방 가는데요. 건넌방 가는 데도 그렇고 고 사이가 지구를 전체를 돈다고 하더래도 고 사이밖에 안 돼요. 또 다른 우주에 태양에 또 다른 혹성에 이렇게 간다 하더래도 차이가 나지 않아요. 한 생각 딱 하는 거하고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내 몸속에서 수없는 입자가 만약에 벽도 없..

대행 스님 법문_ 자기가 한다는 마음 자체를 떼어라

수염이 나도 달마고 수염이 안 나도 달마고 그렇다면 무효죠? 그렇죠? (예. 그렇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그런데 그런 표현으로 해서 꽃이 피는 게 아닙니다. 붉게 익은 꽃이 피려면 그런 말대답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차적으로 말할 때 분별은, 분별은 분별입니다. 분별을 하되 분별이라고 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지금 연구를 하신다고 그랬는데 모든 거를 생각하되 함이 없다 이겁니다. 함이 없는 줄 알아라 이거예요. 그럼 댁의 육체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들어있죠? 그러면 더불어 같이 생각을 하지 왜 당신이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공(空)했죠? 그럼 공체(共體)로서 공심(共心)으로서 생각한 게 아닙니까? 자기 혼자만이 그 생각을 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봤다, 자기가 생각한다 이런 마..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면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런데 댁이 어떠한 고통이든지 막론해 놓고 어떠한 고통의 용도든지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거 하나 지나고 나면 또 오고 또 오고 이런 게 있어. 사는 게 그렇고 진리가 그러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나한테 닥쳐올 때마다 자기 주인공인, 즉 말하자면 자기 몸뚱인 싹과 같고 자기 주인공은 뿌리와 같은 거야, 불성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 싹은 뿌리를 믿고 거기에다 모든 것을 ‘너만이 할 수 있어.’ 이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거든. 그러니까 어떤 거든지 처리할 수 있는 그 구성된 하나의 바로 불성이니까. 불성이 중심을 꿰어서 바퀴가 돌아가듯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너만이 모든 거를, 마음이 의욕이 생기고 편안케 할 수 있고 너만이 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