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124

대행 스님 법문_ 경전을 보되 자기 없는 자기가 보게 하라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보실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 자비도 나오고 자비를 할 수가 있어야만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이 전자 줄이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이건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 주는 자와 만지키는(만지도록 하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믿고 말을 할 때는.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자 줄과 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대행 스님 법문_ 내 주인공에 연결돼 한마음으로 상응하는 수많은 부처님

그러면 이 말씀 뜻에서 몇 마디 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전부 필요한 점이니까요. 서방정토에 아미타라고 합니다. 또는 화엄경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즉 말하자면, 무아의 정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냥 이게 부처님들 이름이 수 많지마는, 또 우리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천차만별로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또 천차만별의 차원이 있고요. 그 가운데는 천차만별의 업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업보라는 건 무엇인가? 업보라는 것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건 나중에 잇도록 하고…, 이 수많은 부처님들 이름들이 여래불이니 부처님이니 이렇게 하고, 또 아미타니 이렇게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 생각을, 이걸 깨닫지를 못해서 생각을 미..

대행 스님 법문_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것

여러분들이 의심나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싶으면 질문해요.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만났잖아. (다 답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요.) 그래, 지금 지구가 돌아가든지 우주가 돌아가든지 그게 돌아가는 데에 에너지가 나오는 것도 한 구멍에서 나오지 두 구멍도 아냐. 천차만별로 용도가 다르지마는 나오기는 한 군데서 나온다는 얘기야. 우리 쓰는 사람들이 용도가 ‘이래야 되겠다’ 하면 그 용도가 바뀌니까 그렇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우리가… ‘믿어라’ 하는 것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믿어라.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면 못 믿는 게 되니까 그냥 믿어라. 그냥 네 발과 같다, 네 발에도 눈이 있고 그 발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그 손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눈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이게 말로는 그거를 ..

대행 스님 법문_ 꽃이 피면 웃고 물 흘러가듯 사는 도리

우리가 모이자니 한 그릇을 만들어서 이렇게 같이 앉았지 않소? 그러니까 이것도 방편이자 현실이지. 그러니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똥 마려우면 그냥 양면 아무 생각 없이 똥 누고 시원한 느낌을 느끼고 또는 배고프면 밥 먹고 그냥 배고프지 않구나 하는 거, 그냥 무심코 가는 거 졸리면 그냥 자는 거 그렇듯이 우리 생활이 다 그렇거든. 그러니까 함이 없이, 공 했으니까 함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뜻이지. 함이 없이 살고 있다고 하는 그 소리는 정말 50% 그 정신계의 모든 거를 하고 갈 수 있으니까 함이 없다 이런 거지. 물질계로다가 우리가 함이 있다면 그건 진짜 함이 아닌 것이지. 물질계로만이 아니라 물질계로, 정신계에서 물질계로 나와서 움죽거리게 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그냥 그냥..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도리를 조상과 후손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

우리가 예전에 큰 사찰에서 스님네들이 열반하시면 꼭 화장을 했습니다. 다비식을 했죠. 그것은 왜냐하면 살아서도 공해서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집착을 하고 만약에 땅에다 묻는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그냥 공부 안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삼혼이 있다고 합니다. 삼혼이 진짜, 집에 하나 있고 하나는 돌아다니고 하나는 산소에 갑니다. 이게 이렇게 해서 집착을 하게 되면 사람이 사는 데도 영령들이 가면 이게 ‘먹는다’ ‘입는다’ ‘산다’ 애착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그 애착에 잠겨서 영 움쭉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영령들이. 그래서 자기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헤매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몰라서 우리가 고생하는 거와, 고생이라고 하고 고생하는 거와 영령들이 또 고생을 하고 있는 거와 둘이 아..

대행 스님 법문_ 유전성이라는 이름도 없는 자리

그게 여러분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못났든 잘났든 살아나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겼을 때 바로 생긴 자체가 내가 내 근본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종자가 있으니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자를 믿어야죠? 믿는다면 아무 문제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믿으면 그냥 훌떡 넘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유전성이라는 건 생각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유전성이 이렇게 있구나.’하는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앙금이 지워지지 않는 걸 그냥 무조건 그냥 믿는다. 이런다면 그냥 그 앙금도 없어질 텐데, 이럭하면 없어진다는 건 아는데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 앙금마저도 없애려면 진짜로 믿어야 한다. 믿다가도 조금 저거하면 그냥 이렇게…, 예를 들어..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조차 없는 이름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죠. 그건 옛날뿐이 아니라 어떤 중이 시장에 무엇을 사러 가면 쭉 한바탕 돌아봐요. 어린애를 업고 앉아서 요만큼 갖다 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네들이 또 뭘 갖다가 요렇게 조금 놓고,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고 빨리 그게 참, 애가 타는 거죠. 그러면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그거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을 위해서 그걸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죠.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걸 몰아서 그런 것 쫓아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 분들을 위해서 한다고 그러면 이거는 잘못돼 돌아가는 거예요. 내 마음이 편하게 하자고 해서…. 이 다리가 없는..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를 진짜로 믿고 관하는 이유

우리가 그것을 아무, 댁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아무 일도 없이 해 놨으면 댁이 이런 생각도 못했죠. 왜 선으로만 한다더니 왜 그렇게 나쁘게 그렇게 했나 하고요. 만약에 길을 가는데 구덩이가 있는데 구덩이가 있어서 ‘너 가지마라’ 이런다면 그냥, 어린애들은 그냥 구덩이가 있든지 말든지 그냥 가거든요. 그래서 구덩이가 있다는 거를, 넘어져 봐야 구덩이가 있다는 걸 알거든요. 가지 말라는 건 이게 구덩이가 있어서 가지 말랬구나 하는 걸 알게끔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알게 되는 거죠. 그 법칙이 자기 게 돼 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벗겨준다’ 이런 뜻이에요. 그렇게 열심히 잘 믿고 잘…, 남을 언짢게 하지 마세요. 언짢게 하지 않는 것도요 이렇게 댁한테 너무 억울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냥, 그 사람도 그..

대행 스님 법문_ 한생각이 바뀔 때 현실의 생활도 바꿔진다

우리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내가 항상 그러죠. 한 가정에, 갖추어서 사는 가정이 있는데 이것이 공 덩어리 같다. 그러면 우리가 즉 말하자면 “얘, 아무개야!” 부를 때에 “네.” 그러고 아들 노릇을 하지 딴 사람 노릇을 하지 않죠? 그렇게 모습은 그대로 있는데 그렇게 바뀐단 말입니다. 바뀔 때는 보이지 않는 데서 아들로 그냥, 과거로 그냥 되는 거죠. “아버지!” 할 때는 또 아버지 노릇 하느라고 바뀌죠? 속에서는 바뀌는 거예요. 거죽 모습은 안 바뀌어도. 속에서는 바뀌어서 돌아가는 겁니다. “여보!” 하면 또 남편 노릇을 하는 데도 그냥 바뀌는 거죠. 바뀌는데 찰나에 바뀌는 거죠. 두고두고 바뀌는 게 아니라 찰나찰나 이렇게 바뀌는데 바뀌는 것마다 가만히 보세요. 바뀌는데 그 어떤 것이 어떤 걸로 내가 ..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이라는 종자를 발현해내려면

지금 말씀하셨는데 이게 우리가 목마를 때 물 마시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똥 마려울 때 똥 누고 잠 올 때 잠자고 이러는 처지라면 이건 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건데 자유스럽게 못 사는 것은 자기를 자기가 못 믿기 때문입니다. 그 습성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다면 자기가 망가지지 딴 사람이 망가집니까? 못 믿는 것도 믿는 것도 바로 자기가 자기를 믿는 거죠. 우리는 지금 주머니 속이라는 공기주머니 속이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알궁달궁하고 여럿이 그냥 거기 다 들어서 살고 있어요, 지금. 그 주머니는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돌고 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 볼 때에 바로 이 몸뚱이도 우리가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이 속에 있는 생명들은..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자유스럽게 하세요. 우리 사는 게 의도적으로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유스럽게 그렇게 안으로 내면의 ‘참 나’하고 ‘나 아닌 내 모습’하고 말을 하려면 아주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죠. 자연적으로 말을 하고 또 그게 끊어지면, 끊어진 게 아니라 그냥 잠시 이렇게 갔다가도 그냥 다른 거를…. 즉 말하자면 엎드러지게 한 놈도 그놈이고 일어나게 한 놈도 그놈입니다. 그런데 일어난 놈이 일어나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너 아까 엎드려지게 했잖아. 그런데 또 지금 일어나게 했잖아. 그럼 네가 어떻게 한 거야?’ 하니까. 그 내면에서 하는 말이 ‘네가 밝으면 밝은 데로 찾아가고 어두우면 어두운 데로 가지 말아야지, 네가 어두운 데를 밝음이라고 생각하고 가니까 엎드러지는 것 아니야?’ 하거든요. 그러..

대행 스님 법문_ 공부를 꾸준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가는 길

...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살고 계셨어도 한시도 눈을 떼어 놓고 그냥 눈을 감고 살지 않습니다, 송장처럼. 그냥 눈을 감았어도 살고 있습니다. 벌떡 벌떡 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땜에 자도 참선이요 일어나서 섰어도 참선이요 일을 해도 행선이요 앉았어도 좌선이다 이 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그대로 있다는 얘기죠. 그것을 다, 이게 네 가지가 다 겸해서 돌아가고 있다. 앉으나 서나 일하나 또 서서 다니나 모든 게 같이 더불어 하고 있다. 이거는 왜냐하면 내 몸뚱이 속에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몸뚱이 하나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만약에 이 한국 나라다 이런다면 한국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또 같이 하고 가야 되겠죠. 또 한국이 아닌 딴 나라가 또 있다면 지금 올림픽 하는 호..

대행 스님 법문_ 내가 공했다는 것을 알면

제가 법문을 할 때에 그대로 담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그릇을 크게 해서 여러분들의 말이 자유스럽게 이 진리와 틀리지 않게 하시라는 거죠. 이게 내가 법문하는 대로 그대로 한다면 막말로 한다면 따라서 하는…, 뭐라고 그럴까요? 따라서 하는 사람밖에 더 돼요? 그러니까 그 법문이 어떤 내용인가 그래서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댁에서 그 말의 뜻을 말할 수가 있죠. 부처님의 말씀도 경에서 읽는 대로 그대로 읽는 건…, 예전에 그랬습니다. “원숭이가 흉내 내듯 하지 말고 네 소리 좀 해라.” 이렇게요. 그러니까 그대로 담지 말고 그 뜻을 말을 담지 마시고 그 뜻을 담으시란 얘깁니다. 그러면 댁의 게 되죠. 모든 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한 사이가 없고 앞으로 한다는 말도..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이 아무리 많아도 한 부처님이라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맨 끄트머리로 가서는 뭐가 생기느냐 하면 공생(共生)이 돼. 공생인 거를 알게 돼. 그러고 공심(共心)인 거를 알게 되고. 사람뿐이 아니라. 그러고 공체(共體)라는 거를 전부 알게 돼. 그러고 또 공용(共用)이라는 거를 전부 알게 돼. 내가 움죽거림으로써 네가 움죽거리고 네가 움죽거려서 주는 게 있으면 내가 너를 주고, 이렇게 해서 서로서로에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부 공용으로 살게 되고 그리고 공식으로서 사는데 ‘일체 만법을 내가 어찌 들이고 내는 거를 알았으리까’ 하는 이치나 같애. 그래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도 조금도 걸림 없이 들이고 낼 수 있다라는 얘기. 그러니까 댁이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야, 관세음보살을 찾았는데 그럼 관세음보살 다르고 주인공 다르..

대행 스님 법문_평범한 생활 속에 도道가 있으니

... 그렇죠. 우리가 도(道)는 생활이 도예요, 생활이. 딴 데 도가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을 버리고 도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우릴 버리고 부처가 있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부처도 우리와 둘이 아니고 도라는 이름도 우리와 둘이 아니고 그냥 평전한 생활에 다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를 깨우쳤다, 깨우치지 못했다 이거를 뛰어넘으세요. 이거를 버리고 뛰어넘으세요. 버리라니까 아예 그냥 저 개천에다 꼬라박지 마시고 자기 원소에다가, 자기 주인공에다가 그냥 놔 버리세요, 그냥. 놔 버리시고 이렇게 하세요. 그런다면 그냥 그게, 그렇게 하는 게 도예요, 그냥. 무슨 별다르게 이게 도는 별다르게 해야만 되느냐 그게 아니에요. 남을 원망 안하고, 실질적으로 남을 괴롭히지 않고, 예를 들어서 여..

대행 스님 법문_ 몸은 부지런히 마음은 편안하게

우리가 항상 몸을 보시면 아신다고 그랬죠. 몸을 보실 때 공체(共體)죠. 이게 간단히 말해서, 공체로 우리가 살죠. 그런데 딴 사람도 공체란 말입니다. 딴 사람도 공체고 나도 공체고 전부 여기 있는 분들 다 공체입니다. 공체고 공생(共生)이고, 공심(共心)이고 공용(共用)을 하시고 사시고 또 공식(共食)으로서, 우리가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공식으로서 그냥 들이고 내고 사십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전체가 공해서 둘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근데 여러분이 사시는 것도 역시 그래요. 지수화풍으로 생겨서 사는데 지수화풍이 있어야 또 살죠. 지수화풍을 먹고 살죠. 근데 여러분들이 보는 눈 하나를 본다고 하더라도 눈으로 여기저기 보지 한 군데만 보고 사는 분 없죠. 듣는 귀도 그렇고요. 모두가 몸 전체가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정성이 지극하다면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데 답답하게 사시는 현상이 비치는 게 많아요. 그 왜냐하면요, 지금 그렇게 하신다고 그랬죠. 축원을 해드리고 또 나중에 관하고 이렇게 하신다고요. 그런데 어느 분이든지 다…, 그럼 이렇게 표현을 하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당에 올라가서 절을 삼배를 하는데 삼배가 똑 삼배만 올리고 칠배를 올리고 팔정례를 올리고 이렇게 하는데 그거를 꼭 따라서 꼭 해야만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마음에서는 일배를 하고도 팔배가 되느냐 이러고 물었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바쁠 때는 삼배를 올릴 거를 일배를 삼배로 올리고 일어나도 그건 삼배가 되느니라.’ 그건 아무나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말이라는 건 한 사이가 없죠? 걸음을 걸어도 디딘 사이가 없고요.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바쁠..

대행 스님 법문_ 내 한생각으로 결정을 짓는 이치

... 그렇게 하세요. 사람들이 모두 ‘야, 이거 생각하니까 이거는 이렇게 해서 안되잖아.’이거 생각합니다. 모두 얘기하는 거 보면 ‘이거는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거기 때문에 관하지도 않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러고 스님한테도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는 거죠. 근데 그랬어요. 이 부처님 법이라는 진리는 내가 이렇게 살아오면서 습관으로 알고 배우고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이걸 떠나서 ‘그냥 결정을 짓는 것이다’라는 얘기요. 그래서 모두 여러분들이 급한, 급한 무슨 일이 생기는데 그 급한 일이, 회사에 부도가 나면 다 죽는다 뭐 어쩐다 하는데 그것도 내 한생각에 결정적이면 그건 멈춰집니다. 그러고 자기가 손해를 볼 일이 있으면 또 자기 손해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대행 스님 법문_ 우주와 직결돼 있는 전화가 내게 있다

내가 항상 이렇게 말하죠. 예전에 임제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네가 주장자가 없다면 내가 뺏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있다면 내 주장자를 너에게 줄 것이니라.” 하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요. 첫째는 이 마음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다면 마음을 줄 수가 없죠. 또 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고 두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아주 숭배하고 받아들인다면 얼른 마음이, 그 아주 기특한 마음이 들어가고 좋은 마음이 들어가죠? 그러니까 주는 거죠. 그런데 얄밉게 해보세요. 그것을 아예 그냥 뺏음과 같은 거죠. 또 고걸 이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까 전화 얘기 했습니다. 전화를, 내 마음에 전화를 놓지 않았다면 전화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어요, 전화가. 그러니까 내 전화가 있음으로써 전화를 임제스님이 전화..

대행 스님 법문_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이 믿어야

... 이거 보세요. 믿고 이렇게, 나하고 믿는 자리하고 둘을 놓고 “믿는다” 이러지 마시고 그냥 나무가 뿌리가 있으면 그냥 뿌리와 나무가 그냥 붙어 있구나. 돌아가요 머리가? 붙어 있으니까 무슨 믿는다 안 믿는다가 없이 그냥 죽어도 살아도 그냥 그걸 믿는 거라고 할까요. 댁에네들은 말을 해도 모르니까 그냥 그렇게 해서 다 그냥 확 바꿔버리세요. 진짜 당신 정신계의…, 알아듣기 쉽게 하느라고 이렇게 말을 해요. 정신계의 보이지 않고 듣기지도 않고 말도 안하지마는 당신은 꼭 정신계와 이 모습 물질계가 있어요. 근데 그게 둘 아니게 돌아가죠, 지금. 그러니까 이 보이는 물질계, 보이는 내 모습은 정 신계의 바로 당신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너만이 다 해결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자꾸 끄달리지..

대행 스님 법문_ 참 사람이 될 수 있는 공부

물론 높다고 하면 높은 자리가 따로 있죠. 또 두 번째, 우리가 이 모습을 가지고 남을 구제하고 산다, 이런 것도 보살의 한 등, 이차적인 문제죠. 또 삼차, 그럼 중생으로서 아주 이런 걸 모르고 그냥 편안하게 사느냐. 남한테 악한 짓 안하고 사느냐. 이런 중생으로서의 그냥 삶을 산다는 거, 이런 것이 삼차적으로 있겠죠. 근데 우리가 삼차적으로 사는 거는 좋은데 삼차적으로 살다가 보면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고 다시 선하게 살아도 악한 것이 거기에 또 끼어들어서 이거는 선한 것도 악하게 되고 이렇게 될 수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길을 찾을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났다’ 이런다면 여러분들 몸과, 우리들의 몸과 같이 이렇게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다니다가도 좀 얼..

대행 스님 법문_ 한 발짝을 뗐으면 그대로 놓고 가라

... “기억하지 말라” 하는 것은 우리가…. 한번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속에서 대답을 하되 “내가 대답한 것을 기억을 하지 말라!” 여러분들한테 아마 그랬으면 그 뜻이 무엇인가를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중에 한마디 대답해 보십시오. 무슨 뜻인가. (모든 것을 놓고 가라는 말입니다.) 그렇기도 하죠. 그래서요, 이 한 발짝을 떼어놓는 바람에 한 발짝은 다른 데를 떼려고 놓습니다. 벌써 한 발짝 떼 놓으면 이 발자국은 과거가 됩니다. 그런데 이 한 발짝 떼어놓는 사이에 벌써 이거는 놔야 될 건데, 그걸 붙잡고 늘어져야 되겠습니까? 기억을 하지 말아야지. “기억을 하지 말라” 하는 그 언어가 좀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언어를 하지(붙이지) 않으면 그 뜻을 달달달달…, 그 속으로 ..

대행 스님 법문_ 할 수 있다 없다도 한 생각에 달린 것

대행 스님 법문_ 할 수 있다 없다도 한 생각에 달린 것 ... 그거는 댁의 생각이에요. 빈약한 생각이에요. 사람은 물질로써 보시를 하는 거보다도 한마음을 해서… 여기 일체제불의 노래가 있죠. 이 한마음을 음파를 통해서 이 전 우주에 음파가 되도록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 음파를 통해서 전부, 마음들이 전부 개선이 되고 지혜로워지고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일전에 이런 말을 했죠. 물질 하나를 보시하는 거보다도 그건 당장 쓰고 나면 그만이고 먹고 나면 그만이지만 이 무주상보시를, 공심으로써 무주상보시를 한다면 그거는 끊어지지 않는 삶을 얻을 수 있다. ‘얻게 해 줄 수 있다’ 이런 게 있죠. 그러니까 이 무주상보시라는 것이 너무도 크고 광대해서 무주상보시를 모르고 있죠. 그저 ..

대행 스님 법문_내 자성 부처로 인정해준다면

... 항상 그거를…, 우리가 간단하게 그냥 비유하려고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어린애가 죽어서 그 어린애를 살리기 위해서 저 지옥고를 들어갔답니다. 지옥고를 들어갔는데, 지옥고를 들어가다 보니까 물이 물로 보여서 건널 수가 없고 불이 불로 보여서 건널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불에 타 죽을까봐 건널 수가 없고 물에 빠져 죽을까봐 건널 수가 없고 온통 귀신들이 그냥 욱시글득시글하니까 귀신들한테 말려 죽을까 봐 못 들어갔고 그래서 애를 쓰는데 어떤 노승이 나타나더니 '불도 불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요, 귀신도 귀신이 아니니라. 따로 없느니라.' 하는 말에 그만 그 불로 그냥 어청어청 들어가니까 그것은 자기가 그려놓은 모습이지 모습이 없으니까 불에 탈 리가 없죠.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서 그 어린 애 영혼..

대행 스님 법문_ 스스로 지켜나가는 계율

계율이라 하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에 계율이 다 있는 것입니다마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면 벌써 자기가 상식과 교양, 교육 다 받고 잘못된 것 잘된 것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벌써 그것은 근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말은 안 해도 좋지만 사회에서 사시는 분들은 사회의 계율이 있고, 질서가 있고, 상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승려들이 사는 도량에는 도량은 또 여러분들이 사는 데나 우리 승려들이 사는 도량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도량”하면 전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도량에서 사는 승려들은 승려들대로 계율이 있고 그렇지마는 그 계율 무시하고 공부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 계율도 거기에 근본적으로 밸런스가 맞아야지 만약에 맞지 않는다면 그건 어긋나는 것입..

대행 스님 법문_ 나를 빼고 더불어 같이하는 한마음

... 본래는 말입니다, 깨우친 역대의 조사들이나 부처님들은 어느 곳곳마다 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거를 공부하시면서 한번 인제, 언젠가는 땅을 치고 울 때가 있고 하늘을 보고 기가 막혀서 웃을 때가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 다들 공부하시면 그럴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러냐. 이 모든…, 즉 말하자면 ‘이 마음을 공부해서 증득했다, 그런데 증득한 것도 없다’ 이런 도리는 직접 그 마음은 체가 없어서 이 마음의 씨라는 거는 아무리 많이 헤아릴 수 없이 내놔도 내놓은 사이가 없는 겁니다, 마음의 씨라는 건. 그래서 물에 가면 용신이 돼 버리고 용신이 지금 부처님들 그 모두가 용신이 돼서 살고 있고 지신이 돼서 살고 있고 모두 각계각층의 어느 곳곳마다 어느 혹성마다, 태양계도 그렇고 어디도 다 직결..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과 자기가 따로 있지 않도록

...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사람이라야 열쇠를 맡길 수 있죠. 믿는 사람 아니고는 열쇠를 맡길 수가 없죠. 아주 진짜로 믿는다면 열쇠를 탁 줘서 맡길 수가 있습니다. ‘주인공’ 하면 벌써 자기의, 자기를 이끌어 가는 운전수인 줄을 알아야 되는데 이게 아리송하면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다는데….’ 하고서 ‘주인공’ 하고선 맡겨놨다 도로 뺏어가는 겁니다. 서류라 한다면 서류를 줬다 뺐었다, 줬다 뺐었다 이러니까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들이…, 자신이 생각해 보세요. 금방 맡겼다가도 금방 맡긴 그것이 믿고 맡겼는데, 믿지 못하고서는 아이구, 또 겁이 나고, 또 그냥…, 그러는 것이 도로 뺏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로, 서류를 도로 뺏으니까 일을 못하죠...

대행 스님 법문_ 오신통에서도 벗어나야

여러분! 오신통을 여러분들이 생활 속에서 그냥, 생활이 그냥 오신통으로 그냥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여러분들이 보시죠? 들으시죠? 그리고 마음으로 좋고 나쁜 걸 아시죠? 그리고 벌써 말을 통해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죠? 그리고 가고 오는 것도 가고 오고 이러시죠? 고정된 게 없이 그냥 가고 오고, 말도 고정된 게 없이 하고 이러는 게 그대로 오신통 아닙니까? 아, 오신통을 하고 지금 가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오신통을 하되 오신통은, 오신통 안에서도 벗어나야 진짜 오신통을 굴릴 수 있느니라 이런 소립니다. 오신통을 굴리고 지금 사는데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려면 아까 내가 얘기했죠. ‘내가 했다, 내가 줬다, 내가 살고 있..

대행 스님 법문_ 모두가 함께 해나가는 공용共用의 도리

지금 ‘부처님의 제자로서’ 즉 말하자면 ‘스님의 제자로서’ 이렇게 말을 했죠?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넓게 생각을 한다면 풀 한 포기 하나도 스승 아닌 게 없어요. 부처님만 스승이 아니에요. 나만 스승이 아니고요. 이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강도짓 하는 사람을 보고도 깨닫는 게 있어요. ‘나는 저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죠. 그러니까 어떤 거, 풀 한 포기에도, 돌 하나에도, 물 흘러가는 것도 스승이에요. 그러니까 스승 아닌 게 없으니까 그거를 한데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그런 거예요. 모두 일체 만물 만생 또는 삼세, 과거 현재 미래 그것을 한데 합쳐서 삼심, 삼세, 모든 것을 한데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한 거니까 그 주인공 하나만 생각하면 뜻으로다가 그냥 둥글려지죠. 그렇게 간단하게..

대행 스님 법문_ 모두 빠짐없이 성취하라는 뜻

팔탑이든 구탑이든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팔층이 아니라 일곱 원으로 구성된 일곱 층의 탑으로 알고 있습니다) 칠탑이요? 칠탑도 여러분들의 몸과 같은 겁니다, 칠탑도. 왜,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을 깔죠? 칠성판을 깔죠.ㅎㅎ 육(肉) 속에 진짜 주장자가,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거를 하나 세우고…, 그래서 칠성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 칠탑이라고 그러는 것도 여기다 대도 맞고 저기다 대도 맞습니다마는 칠탑도 없고, 칠탑이 한탑이요, 한탑이 칠탑입니다.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닌데 이것을 우리가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에 이 모든 것을 맞게, 전부 살아나가는 그 모두를, 질서를 정연하게 써놓고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런 것이지 이 마음의 도리로서는 칠탑도 없고 한탑도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 너무 탑이 많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