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정동교회에 새로운 목사가 부임해 옵니다.
남녀 교인석 사이를 가르던 휘장
손정도 목사는 낡은 잔재들부터 거둬냅니다.
남녀도 신분도 빈부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설교 때마다 일제 침략을 규탄했던
손정도 목사
그에게 감명 받은 여러 청년들이
생을 건 결심을 합니다.
“이제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대한독립만세”
손정도 목사에겐
민족의 독립이 종교적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자,
조국을 사랑한다.
-손정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기초를 닦은 손정도 목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2대 의장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용단 조직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소속/
1912년, ‘일본 총리 암살 음모 사건’
주모자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신께 의지하며 그 참혹한 시간을 지켜낸
손정도 목사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
없는 죄를 있다고는 못하겠다.
너희가 내 육신을 죽여도
하나님이 내 영혼을 지켜주실 것이다”
3개월간 계속된 참혹한 고문
1년 유배형 선고
고문후유증으로 내내 고통 받던 그는
일제가 운영하던 병원에 입원했지만
하루 만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가족 하나 없는 타지에서
고단했던 삶을 쓸쓸히 마감한 손정도 목사
중국 지린성에서 49세로 순국
나는 제 몸으로
더러움을 닦아내는 걸레 같은 삶을 살겠다.
여러분은 힘 있는 조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주시오.”
손정도
(1881.7.26 ~ 1931.2.19)
김동완,
손정도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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