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법륜스님의 하루

[법륜스님의 하루] 강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가족들이 키우자고 합니다. (2026.4.3.)

Buddhastudy 2026. 4. 8. 20:29

 

**'강아지 트라우마가 있는 아내와 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을 담고 있습니다. 

1. 트라우마는 '민주주의'의 다수결 대상이 아니다

  • 권리의 존중: 단순히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물린 기억으로 인한 '두려움(트라우마)'이 있다면, 이는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 진정한 민주주의: 100명 중 1명이라도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질문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할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2. 남편을 위한 '인간 강아지' 전략

  • 남편이 '반겨줄 존재'가 없어 외로워한다면, 질문자가 퇴근하는 남편을 강아지처럼 밝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노력을 해보세요. "강아지를 데려오는 대신 내가 강아지가 되겠다"는 유머 섞인 대응은 가족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3. 현실적인 타협안: '한 달 임시 보호' 실험

가족의 요구가 너무 강해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면 다음의 조건을 전제로 타협해 볼 수 있습니다.

  • 시한부 실험: 완전히 입양하기 전, 한 달만 빌려오거나 임시 보호를 통해 미리 살아봅니다.
  • 책임 소재 명확화: 배변 처리, 먹이 주기 등 돌봄 업무를 가족들이 전담한다는 계약서를 쓰고, 질문자에게 절대 전가하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 최종 결정권 유지: 한 달 후, 질문자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면 아무 조건 없이 파기(반환)한다는 합의를 미리 해두어야 합니다.

핵심 요약: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은 다수결로 강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단호하게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가족의 화목을 위해 노력한다면, 철저한 돌봄 분담과 시한부 체험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하고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식구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어서 강아지가 있는 집에 가면

저를 강아지로부터 막아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그때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까

강아지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할 것 같아서

남편도 저도 강아지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남편은 집에 왔을 때 반겨줄 사람도 없다며

내년에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와 키우겠다, 말리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식구들이 모두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엄마만 싫다고 못 키우게 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고

키우다 보면 저도 좋아하게 될 거라며

저에게 생각을 조금만 바꿔 달라고 조릅니다.

강아지가 오면 제가 무서운 강아지를 어떻게 마주하고 지내야 하는지,

그리고 식구들이 바빠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저라도 돌봐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식구들도 저도 모두 직장과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빈집에 강아지만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강아지도 불쌍하고, 지저분해져서

어질러질 집안도 걱정되고, 벌써 걱정되고 마음이 불안합니다.

기르기 시작하면 한 생명을 끝까지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너무 걱정이 되고 자신이 없어서

저는 계속 절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과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이 상황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방법이 있을까 하여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하는 정도니까

절대 안 된다고 하세요.

내 죽는 꼴 보려면 해라이렇게 세게 나오세요.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절대 안 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것만은 안 된다.’ 이렇게 딱 막으세요.

 

여태까지 그렇게 막아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막으세요. 지금까지도 막았는데, 앞으로 왜 못 막겠어요

 

그런데 제가 혹시 동물들에게 마음이 넓지 못하고

사랑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 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사과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사과를 사랑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질문자는 어릴 때 강아지한테 물렸든 어떤 이유로든

강아지한테 트라우마가 있고,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 물린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나 남편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고,

질문자는 강아지에게 트라우마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똑같이 놓고 민주적이라고 하는 말은 안 맞아요.

백 명이 다 좋아해도

한 명이 강아지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있다면

우리는 그 한 명을 고려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그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강아지 키우는 것은 안 된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릴 때 물려서 그런지, 무엇 때문에 그런지 나도 모르지만

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안 되니까

너희가 양해해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남편이 집에 오면 반기는 사람이 없어서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내가 강아지가 돼서 반겨줄게요.’ 하고

질문자가 남편이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쫓아가서 막 손잡고 강아지처럼 해줘야죠.

 

.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들은 다음 날 남편이

퇴근할 때 문 앞에서 남편을 반기고

수고하셨다, 어서 오시라, 옷도 받아주겠다라고 했는데

남편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갑자기 왜 이러느냐, 지금 정상인 거냐?’

이렇게 농담이었겠지만 어색하게 웃더라고요.”

 

하도 안 그러다 갑자기 그러니까 어색하지요.

 

평소에 저희가 그런 게 부족하긴 합니다.”

 

그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좋아집니다.

그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강아지 사 온다고 해서 내가 강아지가 되기로 했습니다.

나는 강아지 사 오는 것보다

내가 강아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오늘부터 강아지가 될게요.’ 이렇게 얘기하세요.

질문자도 웃으면서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제가 스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가족들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아이들도 강아지를 싫어하던 사람도 좋아하게 된 사람이 많다.

엄마가 안 해봐서 그렇지,

강아지를 좀 자세히 잘 보고, 같이 있고 하면

엄마도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엄마가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

엄마가 좀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얘기를 적극적으로 합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이제 타협해야 하겠죠 한집에 사니까요.

그러면 강아지를 사 오지 말고

조그마한 강아지를 한 달만 빌려서 데려와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그러면 강아지 먹이 챙겨주는 일은

아들이 책임진다, 딸이 책임진다, 남편이 책임진다.

나한테 절대 부탁 안 한다는 약속 하겠냐라고 질문자의 조건을 다 얘기하세요.

 

너희들이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강아지를 딱 한 달 데리고 살아보고 다시 의논하자.

대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

내가 양보해서 데려오니까

한 달 후에 내가 싫다면 안 키우기로 약속하세요.

한 달간 있어 보니 강아지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질문자가 바뀌든지

질문자가 도저히 안 바뀌어서 자식이나 남편이 포기하든지 하겠지요.

질문자가 우려하는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으면, 일지를 쓰세요.

나는 언제 놀랐고, 언제 너희가 책임을 안 졌고

이것이 장기화하면 나한테 위험이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은 못 하겠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대신, 강아지를 완전히 데려오면 안 돼요.

강아지도 생명인데, 키우다가 못 키우겠다고 갖다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딱 한 달간 계약서를 쓰고

빌려 와서 실험 삼아 키워보세요.

 

제가 볼 때는 질문자의 상황이라면

질문자에게 권리가 있어 보입니다.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키울 수 없다는 권리요.

그건 다수가 아니라도 양해받는 것이 민주주의예요.

다수로 하는 그런 민주주의는 옳지 않습니다.

신체 장애가 있는데, 그걸 다수로 결정하면 안 되잖아요.

불편한 사람에 전체가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계단을 설치하는데,

계단을 놓을 거냐,

신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경사면으로 할거냐로 논의할 때 다수로 정하면 안 됩니다.

신체가 불편한 사람이 백 명 중에 한 명 있더라도

그 한 명을 위해서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그냥 싫은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니까

그럴 때는 자기를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는 것이 제일 낫고

질문자가 생각할 때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본인도

뭔가 노력하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면

그 노력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한 달간 계약서를 딱 쓰고

어떻게 서로 업무를 나눠서 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질문자는 그 강아지 때문에

나중에 인생이 피곤해지고,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남편하고도 사이가 벌어지고, 아이들하고 사이가 나빠지니까

그것이 가족의 화목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화근이 될 소지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 건 미리 막는 것이 제일 낫고

안 그러면 사전에 충분한 타협을 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