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해 오르내리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과 올바른 수행의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1. 감정의 출렁임은 '나의 업식' 문제
- 남편에 대해 좋고 싫은 마음이 크게 오가는 것은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 질문자의 **'호불호가 강한 업식(성격적 특성)'**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 남편을 피아노 연주자, 내 마음을 건반 소리라고 생각해보세요. "내 업식이 지금 저 소리에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알아차림'이 곧 해법
- 수행의 핵심: 마음을 억지로 평평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 자동 조절: "마음이 들뜨네?", "마음이 가라앉네?" 하고 그저 알아차리고만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 출렁임의 진폭은 점점 줄어들어 평온한 상태로 돌아옵니다.
3. '애쓰는 마음' 또한 집착이다
- 수행의 함정: "빨리 평온해졌으면 좋겠다"거나 "깨닫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 역시 돈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형태의 집착입니다.
- 무위(無爲)의 정진: 수행은 죽기 살기로 애쓰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도나 욕구도 내려놓고, 찰나찰나 일어나는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진정한 공부입니다.
4. 실천 지침
- 첫째: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의 반응을 꾸준히 살피십시오.
- 둘째: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민감함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늘 자각하십시오. 알아차림이 유지될 때 비로소 업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감정의 기복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그저 **"내 마음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십시오. 애쓰는 마음까지 내려놓고 가만히 지켜볼 때, 출렁이던 마음은 자연스럽게 고요해집니다.
저는 현재 남편과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결혼생활을 돌아보면, 저는 남편의 행동이나 말에서 싫은 마음이 아주 크게 일어납니다.
반면 또 어떨 때는 좋아하는 마음도 아주 크게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편에게 일어나는, 좋고 싫은 마음의 폭이 아주 큽니다.
요즘 저는 이렇게 출렁이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좀 더 평평하게 할 수 있을까요?//
평평한 게 좋아요?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좋아요?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러면 좀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볼게요. 질문자는 등산할 때 늘 평지로만 다니시나요?
“등산할 때는 산이 가파른 줄 알고 그냥 갑니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좀 평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호불호가 강해서 그런 겁니다.
어떤 건 굉장히 좋아하지만, 또 어떤 건 아주 싫어하는 성향을 갖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걸 보면 마음이 가파르게 들뜨고 싫어하는 걸 보면
또 가파르게 내려가는 겁니다.
질문자의 업식이에요.
남편의 모습에 따라 질문자의 업식이 반응하는 거예요.
남편의 행동은 눈에 보이고, 남편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고,
남편의 냄새는 코로 맡고, 남편의 맛은 혀로 느끼고,
남편의 감촉은 피부로 느끼고, 남편에 대한 의식은 머리로 합니다.
이렇게 6가지를 통해 질문자의 업식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오르내린다면 그걸 그냥 피아노 치는 소리라고 생각해 보세요.
남편이 피아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드릴 때마다
내 업식이 이렇게 저렇게 오르내린다는 것만 알아차리고 있으면 돼요.
그렇게 내 마음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만 있으면 됩니다.
가수들이 노래할 때도 고음도 좀 지르고 저음으로도 좀 내야 듣기 좋잖아요.
잔잔하게 부르면 졸기 쉽고요.
--질문자의 반응은 질문자의 업식이 반응한 것
또한 질문자는 그런 반응이 남편의 문제가 아닌
질문자 자신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셔야 합니다.
남편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질문자의 업식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예요. 사람의 업식이 서로 다르면 다를수록 그 출렁이는 폭은 더 커집니다.
‘그 폭이 크면 좋겠다.’ 또는, ‘그 폭이 작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도
질문자의 업식이 일으키는 호불호임을 아셔야 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빠져있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은 나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태가 이렇구나’하고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올바른 수행입니다.
‘내 상태가 이랬으면 좋겠다.’ 또는 ‘저랬으면 좋겠다’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이죠.
질문자가 가진 ‘욕구’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수행자는 어떠한 욕구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편에 대한 질문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마음은 멈추고
‘남편에게 내 마음이 이렇게 반응하는구나’하고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출렁임은 잦아들 것입니다.
만약 출렁임이 커진다면,
그것은 질문자가 현재 알아차림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피아노 소리에 따라 질문자가 반응하는 것이죠.
질문자가 스스로 그런 마음을 딱 알아차리고 있으면
그 진폭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약간 올라가면 ‘어, 약간 올라가네!’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어느새 내려올 것입니다.
너무 내려갔으면 ‘어, 너무 내려갔네!’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평평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어느 정도 오르내림이 있지만 적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찰나 찰나에도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진폭이 너무 잔잔해져서 출렁임을 알아차리기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너무 잔잔해서 반응이 거의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때로는 지금 마음이 약간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합니다.
기분이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어요.
‘마음이 반응하지 않는다’라는 분석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 반응이 너무 미세해서
마치 출렁임이 없는 것과 같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온전할수록 업식의 반응은 점점 미세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점점 커지게 됩니다.
‘남편에게 일어나는 마음이 출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마음먹는다고
질문자의 업식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은 ‘깨달았으면 좋겠다’하고 의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찰나찰나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는 것이 올바른 수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수행도 어떤 욕구나 의도를 가지고 합니다.
돈에 집착이 있는 사람이 애쓰며 돈을 버는 것과 다르지 않고,
명예에 집착이 있는 사람이 애써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한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깨달음에 집착해서 애쓰며 합니다.
이런 수행은 다만 그 집착의 대상이 바뀐 것뿐입니다.
깨달음이라는 또 다른 집착에 빠졌을 뿐이에요.
--진정한 수행은 모든 집착과 욕구를 내려놓은 것
사업을 10년간 애써 해도 돈을 벌지 못해 낙담하는 사업가처럼
수행도 10년간 애써 했는데도 깨닫지 못해 낙담한다면
그것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깨달음에 집착한 것입니다.
바른 수행의 관점으로 보면 둘은 서로 다르지 않아요.
‘내가 선방에서 10년이나 참선을 했는데 아직 깨닫지 못했네’하고 낙담하는 스님이나,
‘내가 정토회에 10년이나 다녔는데 아직 깨닫지 못했네’하고 낙담하는 정토행자라면
모두 수행이라는 것에 집착했을 뿐, 바르게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수행이라는 이름으로만 했을 뿐 또 다른 대상에 집착했을 뿐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모든 집착과 욕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집착이나 욕구가 일어나면 그저 알아차릴 뿐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다만 알아차림만 유지하면 됩니다.
애쓰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수행도 돈에 눈이 먼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죠.
수행은 애쓰는 마음으로 하면 안 돼요.
질문자는 첫째,
자신의 마음이 시시각각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진폭이 줄어들 거예요.
둘째,
자신이 상당히 민감한 사람임을 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나 외부의 어떤 상대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질문자의 마음이 굉장히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업식은 생각만큼 쉽게 바뀌지 않아요.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내 삶은 내 업식대로 흘러갈 뿐이에요.
그걸 운명대로 산다고 하죠.
그런데 알아차리고 있으면 들뜬 마음도 어느새 가라앉고,
처진 마음도 어느새 돌아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알아차림이 가장 중요합니다.






'법륜스님 > 법륜스님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법륜스님의 하루] 악플과 혹평에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초심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2026.4.6.) (0) | 2026.04.09 |
|---|---|
| [법륜스님의 하루] 자녀가 없는 부부인데,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2026.04.05.) (0) | 2026.04.09 |
| [법륜스님의 하루] 강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가족들이 키우자고 합니다. (2026.4.3.) (0) | 2026.04.08 |
| [법륜스님의 하루]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중 하나입니다. (2026.4.2.) (0) | 2026.04.07 |
| [법륜스님의 하루] 가장 핵심은 방법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2026.4.1.) (0)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