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저의 많은 고통이 시비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태도가 양비론에 빠지거나
옳고 그름의 사리 분별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모든 걸 초월한 듯한 태도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불의에 눈감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부당한 상황을 개선하는 사회활동을 해나갈 때
분노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불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얼마 전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종교인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요즘 TV에서 정부의 외교정책을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제가 수행이 부족한 겁니까?”
그러자 기독교 목사님이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그것을 정당한 분노라고 합니다.
그런 분노가 있어야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분노를 정당한 분노라고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이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중에는
‘그럼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스님은 아무것도 안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항상 선택을 하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면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분노하지는 않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일본의 침략을 막는 일을 할 겁니다.
필요하면 저항 운동을 내가 선택해서 하겠다는 거예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편에 서서 일을 하든지,
그건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거예요.
그럴 때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증거입니다.
빨리 마음을 돌이켜서 화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야 됩니다.
그런 상황일 때 나는 이런 선택을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북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저항이 있습니다.
빨갱이라고 부르든지, 북한에 가라고 하든지, 온갖 비난을 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서로 이기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면서
북한에서 인공위성을 쏘면 평화를 위협한다고 비난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북한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남한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가면 결국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전쟁은 쌍방에게 엄청난 손해이다.’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듯이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러나 무력으로 살상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집회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조입장에서는 그럴 만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불법 시위라고 판단해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하는 게 나을지, 노동자 편에 서는 게 나을지, 정부 편에 서는 게 나을지는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에 따르는 과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혜의 등불로 나를 비추면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지혜의 등불로 주위를 비추면 주위의 고통을 내가 알게 됩니다.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없애는 데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특징은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깨달음의 지혜는 다시 지혜와 자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혜의 등불을 자기 쪽으로 비추는 것은 지혜라고 하고,
타인을 향해서 비추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 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볼 때는 그렇다는 것이지
그 사람이 틀렸고 내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이 경우에는 이 입장을 취하겠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고, 믿음도 서로 다르며, 생각도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하나의 믿음으로 인정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을 없애는 붓다의 길을 선택한 겁니다.
이것만 옳고 저것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여러 방법 중에 저는 이 길을 선택하겠다는 거죠.
이런 관점을 가지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 다른 체제에서 사는 사람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부탄에 가도 왕이 있고, 중동에 가도 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3.1 운동을 하면서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세웠기 때문에
저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왕이 세상을 다스리는 나라를 인정합니다,
그런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난 5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지향하고
그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나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성이라고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계급과 계층으로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피부 빛깔로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저는 사람을 그렇게 차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며 살겠다는 겁니다.
어디에서나 이런 작은 차별이 일어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또한 인정하겠다는 관점을 갖는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내가 인천에 살고 있다면 서울 가는 방향이 동쪽이라고 제안을 해야 합니다.
저는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검소하게 살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비는 확대하지 말자.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해서 너무 많은 소비를 하지 맙시다.’
이런 주장을 늘 합니다.
재산이 많고 적고 간에 개인이 소비를 자꾸 늘리면
우리 모두가 함께 써야 할 재화를 개인이 과도하게 쓰게 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존에 위협을 주고,
지구 환경의 위기를 초래하여 모두를 고통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저는 과소비가 큰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범죄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죠.
저는 그걸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법으로는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소비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정토회는 환경을 살리는 쪽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쪽으로,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쪽으로 가자는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을 빌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롭지 않은 삶을 살자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이런 입장이 분명히 있는데
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남방불교의 스님들 중에는 본인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사람과는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단식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 같이 앉아서
고기 먹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면 대화를 할 이유가 없지만 필요하면 대화를 합니다.
저는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본인은 그렇게 하겠다는 걸 어떡하겠어요?
물론 그런 행동이 남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권유하자는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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