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며칠 전 사고로 인해서 지금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제가 작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어머니께 신경을 많이 못 써 드렸어요.
그래서 술에 의존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도 그 원인으로 인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에 외할머니께서 치매로 돌아가셨고
몇 개월 뒤에 외삼촌이 자살하신 것을 어머니께서 직접 목격하셨어요.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어머니 곁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도 조금씩 무너지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가 질문자 때문에 쓰러졌어요?
질문자가 밀어서 떨어지신 것은 아니잖아요?
질문자가 술을 많이 드시도록 권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은 질문자의 생각이고요.
질문자가 어머니의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를 한 것은 아니잖아요?
질문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내가 좀 더 어머니를 잘 돌봤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하는 것은
질문자의 생각일 뿐이지요.
‘그때 안 그랬으면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말은
역사에서도 수없이 많이 할 수 있죠.
‘조선 말엽에 지도자들이 정신을 좀 차렸으면 일본에 나라를 안 뺏기지 않았을까?’,
‘해방 뒤에 서로 싸우지 않았으면 분단이 안 되지 않았을까?’
얼마든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가 도래하면
‘우리가 욕심을 조금만 덜 부렸으면 인류가 멸망의 길은 가지 않았을 텐데’ 하며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를 직접 밀어서 사고가 났거나
질문자가 직접 어머니에게 술을 드시게 했더라면
질문자에게 책임이 좀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질문자는 이미 성인이 된 별개의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든 그건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질문자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어머니께 도움이 되는 일 중에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못 하는 겁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이유는 질문자가 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직 스무 살이 안 되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려움이 생기겠지만
질문자는 이미 스무 살이 넘은 성인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과 질문자의 인생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일로 질문자가 인생을 살기 싫어졌다면
그건 정신질환이지 어머니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유방암보다도 더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잘 치러드리면 됩니다.
그래도 마음에 계속 걸리면 천도재를 지내드리면 됩니다.
그것이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질문자가 과거에 유방암으로 어머니께 신경을 못 써드린 것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것은
정신질환이지 어머니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정신질환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거나 지난 과거로 돌리는 행위예요.
예를 들어
부부가 싸우면서 그 책임을 사주팔자에 두거나, 궁합에 두거나, 전생에 두는 것도
모두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과거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에요.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갈등이 왜 생겼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아, 내가 고집을 피워서 그렇구나’ 하고 자각이 되면
고집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이렇게 현재의 문제를 풀어 가야 해요.
책임을 계속 과거로 돌린다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풀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어머님이 병원에 계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입니다.
이제 자식들에게 남은 일은
어머니의 연명치료에 관한 결정입니다.
돌아가시면 장례를 잘 치러드리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따라서
불교 신자는 천도재를 하면 되고, 기독교 신자라면 추도 예배를 할 수가 있겠죠.
종교가 없으면 이런 의식을 안 해도 됩니다.
모두 질문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엄마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질문자가 스무 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아적 사고를 하는 겁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들이 다 돌아가셔도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독립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주위에 지인들이 돌아가시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은
본인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처럼 나이가 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형제 중에 연로하신 분이 먼저 돌아가시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어릴 때는 주위에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게 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소식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나이를 점점 먹어간다는 징후이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암도 요즘은 큰 병이라고 할 수 없어요.
암치료 받는 것을 가지고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께 병문안을 갈 수 있으면 가고,
갈 수 없으면 안 가도 됩니다.
어머니도 의식이 없으니까 질문자를 못 알아보잖아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분담한다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할 수 없는 일을 갖고 고민하는 것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
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 하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 탓을 하기는 쉽지만 자기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꼭 부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돌이켜 보고 문제점을 찾아서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후회를 하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탓을 하는 거예요.
‘나는 잘못할 사람이 아닌데 잘못을 했다’ 하는 마음이 후회입니다.
상대를 미워하듯이 본인 자신도 미워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내가 그때 잘 몰랐구나.
앞으로는 제대로 알아서 바르게 행동해야 되겠다’ 하고 깨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못을 했을 때 주저앉는 것은
자기를 탓하는 것이고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도 많고, 틀리는 것도 많고, 잘못도 많이 하는 존재입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잘한다’ 이런 과대망상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틀렸는데도 틀리지 않았다고 고집하고
잘못해 놓고도 잘했다고 우기는 거예요.
결국 이런 행동이 우리 스스로에게 고뇌를 가져다주는 데도 말입니다.
항상 부족한 줄 알면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면서
삶을 가볍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도 그렇습니다.
다들 그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오죽하면 인간을 범부중생이라고 하겠어요.
어리석은 중생이 그 정도라도 하면 잘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모른다고 야단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잖아요.
아이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잘 파악해서 가르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지
아이들을 탓하기만 한다면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 제일 낫다’ 하는 자긍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는 부족하지만
완전을 향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존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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