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법륜스님의 하루

[법륜스님의 하루]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중 하나입니다. (2026.4.2.)

Buddhastudy 2026. 4. 7. 20:39

 

부처님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열반(涅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죽음과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습니다.

 

1. 일상으로서의 죽음

  • 부처님은 죽음을 특별하거나 두려운 사건이 아닌, **'조용히 잠드는 것과 같은 일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 결혼이나 여행처럼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일 뿐임을 몸소 보여주셨으며, 장례 절차조차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두라"며 특별 대우를 거부하셨습니다.

2. 마지막 순간까지 빛난 자비와 배려

  •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린 것은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 임종 직전 찾아온 노인의 질문을 물리치지 않고 끝까지 대화하며 깨우침을 주신 모습은 부처님의 삶이 곧 수행이자 일상이었음을 증명합니다.

3. 열반(涅槃)의 진정한 의미: 여여(如如)함

  • 죽음을 있는 그대로, 아무런 저항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한 상태가 바로 열반입니다.
  • 죽음마저 일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시련이나 문제도 더 이상 우리를 흔들 수 없게 됩니다.

4. 살아있을 때 나누는 진정한 인사

  • 한 노스님의 사례처럼, 죽은 뒤의 화려한 장례식보다 **'살아있을 때 마주 앉아 나누는 담소'**가 훨씬 소중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때가 되면 담담히 인사를 건네는 것이 수행자의 태도입니다.

5. 결론: 자유로운 삶과 마음 지키기

  • 수행의 목표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내가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에 있습니다.
  • 일상 속에서 분별심에 흔들리더라도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음 지킴'**을 통해, 스스로 자유롭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열반의 정신을 이어가는 길입니다.

 

오늘 열반일을 맞아 열반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부처님께서 여든의 삶을 마치시면서

조용히 잠들 듯이 생을 마감하신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잠들듯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죽음을 맞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아무런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늘 저녁에 내가 열반에 들겠다.’라고 미리 알리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고지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지 못해 아쉬워할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들의 마음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의 죽음에, 혹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와서 만나 보고 가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마을에도 알리도록 하여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생을 마무리하려는 데

한 노인이 찾아와 부처님을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아난다는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번거롭지 않겠느냐고 여겨

이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며 고집했습니다.

그 노인은 부처님이 돌아가시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물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부처님은 그 노인이 부처님을 귀찮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문에 집중하여 그런 것이라 여기셨습니다.

이에 그를 들여보내라고 하고 같이 대화를 나누며 그를 깨우친 후에,

조용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일상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든 특별하게 여깁니다.

외국에 간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다녀온 뒤에도 한동안 힘들다고 쉽니다.

군대에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결혼도 함께 살아가는 일상일 뿐이고

죽음 또한 하나의 일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특별한 일로 여기며 크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남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죽음 또한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해서도

특별히 따로 생각할 필요 없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두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일에서 일상으로

 

우리는 죽음을 우리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일로 여기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무 일도 아닌 일상처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앞으로는

죽음을 지나치게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절차대로 49재를 지낸다면 지내면 됩니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쉬움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는 순간에도

혹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와서 보고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노스님께서 저를 한번 보자고 불렀습니다.

네가 바쁜 줄은 아는데, 너를 부른 이유는 내 장례식에 올 것이냐,’고 물으셔서

제가 당연히 오겠다고 하자,

스님은 장례식에 와도 자네는 나를 못 만나고, 나도 자네가 왔는지 모르니,

살아 있을 때 서로 만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두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주일 뒤 그 스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특별하게 보지 않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되었으니, 인사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인사할 사람이 열 명쯤 떠올라,

그들에게 연락해 한번 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오면 보고, 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바빠서 바로 가지 않고

한 일주일 뒤에나 시간이 되면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에 연락할 일이 없는 분이 갑자기 연락을 주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변경하여 다음 날 바로 찾아갔습니다.

만약 일주일 뒤에 찾아갔다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만남이 될 뻔했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열반(涅槃)입니다.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들

 

이러한 열반의 의미를 새기며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설파하고

몸소 보여주신 부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 가르침을 통해 내가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수행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이르렀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관점일 뿐입니다.

그래서 열반절을 맞아

이러한 열반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일주일간의 특별 정진을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앞으로 활동을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항상 잘 지켜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순간은 분별이 일어나거나 흔들릴 수는 있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세로

이 어려운 세상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