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16강-베트남 VS 바레인/
이날 경기에서는 후반 종료 2분 전에
베트남 축구팀이 바레인의 골문을 흔들며 기적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한다.
“하노이는 마치 지진이 난 듯 흔들렸습니다!”
“시민들은 국기를 꽂은 오토바이를 타며 질주했고
거리에는 베트남 국가가 흘러나왔어요.”
외신들은 뜨거웠던 이날의 상황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베트남 국민이 한 목소리로 외친 이름
“박항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 팀 감독이자,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이 사람 박항서.
베트남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인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보자.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선수로 데뷔한 박항서 감독
그는 166cm의 작은 키와 7년간의 짧은 선수 생활로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면서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00년에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고
12월 한일 경기 전에서 임시감독으로 활동하였으며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사령탑이 된 후
그는 히딩크와 대한민국 선수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살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달려가 품에 안긴 사람을 기억하는가?
그가 바로 당시 코치로 있던 박항서 감독이다.
하지만 그 명성도 잠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박항서 감독은
생애 첫 감독으로 최정예 월드컵 멤버들과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였으나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그치고 만다.
경기 이후 그는 비난을 받으며 감독직에서 해임됐고,
이후 자신이 몸담았던 구단과 갈등을 빚게 되면서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팀 감독 부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베트남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의 3부 리그팀’을 이끌던 사람을 대표팀 감독으로 데려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전 더 이상 돌아갈 곳도 내려갈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의구심을 품었지만
마지막으로 주어진 이 기회를 이 악물고 해내겠습니다.”
대표적인 약체 팀으로 불리던 베트남 축구를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시작하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박 감독은 “쌀국수 대신 우유‘를 주장하며
선수들이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바꿔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며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이들은 박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 아시아 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대회'
그는 베트남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고 가면서
부임 3개월 만에 모든 의구심과 불신을 잠재우고
“베트남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국민들은 거리에서 ‘박항서’를 외쳤으며
베트남 국가주석은 그에게 3급 노동훈장을 수여했다.
“저의 조국은 대한민국이고
저는 조국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죠.
어디서, 어떤 팀과 대결하든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서 책임과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멋지게 이겨내고
‘아버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자
베트남의 영웅, 아버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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