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
무대 천정에서는 스르륵 하얀 천이 내려와서 말로만 듣던 활동사진이 그 위에 펼쳐졌습니다.
장충단과 남대문, 청량리와 같은 도시 풍경은 물론이고
달리는 전차와 자동차의 움직임
당시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기록되는 한국영화 제1호
‘의리적 구토’의 한 장면입니다.
의붓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자란 주인공이 훗날 복수한다는 내용...
구토란 복수를 뜻하는 일본식 한자 표현이라는데...
100년 전의 첫 영화는 내용이야 그렇고 그랬지만 영화를 제작한 단성사 사장 박승필은 움직이는 세상의 경이로움을 하얀 천 위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칸의 선택은 봉준호만 빼고는 전부 틀렸다”
-르 피가로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BBC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되게 이상한 영화’로 주목받은 감독
그 역시 100년을 이야기했습니다.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
제가 어느 날 갑가지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그의 영화적 성취는 ‘의리적 구토’ 이후 100년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요.
또한 같은 날, 노르웨이 오슬로의 ‘미래도서관’
(미래도서관: 미공개 작품을 100년 뒤 출판하는 노르웨이 공공예술 프로젝트)
작가 한강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도 존재하지 않을 100년 뒤의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100년 뒤에 인쇄하여 출간할 작품을 깊이 봉인하는 행사
“나는 백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을 믿어야 한다”
-한강 작가
작가는 미래의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종이책이 남아 있을 것인가를 의심했지만
그래도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려 했습니다.
두 사람이 그려낸
그래서 훗날의 사람들이 기억해줄 오늘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상생과 공생이 아닌 ‘기생’이 화두가 되어버린 세상
“5.18사태는 폭동”-전두환
“북한 특수군의 게릴라전”-지만원
피 흘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모욕을 멈추지 않는 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세상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축적을 말하고 100년이라는 시간 뒤의 희망을 말하는 지금
그들이 한결같이 던지는 화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옳은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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