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아들아
오래 누워있어서
얼른 가지 못해 미안하구나
바깥엔 몇 번이나 계절이 지나가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어머니는 입술을 움직인다.
봄이 와도 미안하구나
가을이 와도 미안하구나
계절 바뀌는 것도 송구하다며
안 가고 오래 살아 죄인 같다며
떨어지는 꽃잎처럼 물기 다 빠진
입술 달싹거려 사죄한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감정 표현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 한다는 말은 못 했지만
구부러져 불편한 손으로도
어머니는 문병 온 사람에게 손들어 인사를 했다.
겨우 손목을 세워 흔드는듯 마는듯하는 인사였지만
그건 이번 생에선 다시 못 볼 지인들을 향한
작별의 말 같은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죔죔하듯
쪼그러져 볼품없는 손으로 하는 그 인사는
보는 이의 마음속에 꽃 한 송이씩을 피웠다.
꽃이 별것이겠는가
꽃은 나무가 피워 올린 탄식 같은 것이다.
수많은 탄식이 쌓여 산을 이루고
그 산을 등에 진 채 우리는 한세상을 넘는다.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오므렸다가 펴는 어머니의 그 손을
우리는 연꽃손이라 불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연잎을 떠올리게 하는 그 인사를
우리는 연꽃인사라고 불렀다.
연꽃은 지고 계절은 가을로 넘어갔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가을날 새벽
어머니의 연꽃인사는 낙엽과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꽃은 지고 나면 다음 해에 또 피지만
사람은 가고 나면 돌아올 줄 모른다.
어머니께 하지 못한 한마디는
오래오래 내 가슴속에 후회로 남아 있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하지 못한 시간을 돌아보며
손가락 움직여 나는 허공에 ‘엄마’라고 써본다.
아무도 없는 허공 위로
“사랑해요”하고 불러본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후회만 남는 법
아끼지 않아도 되는 말을 아꼈다는 자책으로
나는 어둠 속에 탄식 하나 토해놓는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언제라도 사랑한다는 말은 늦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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