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은 어느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그냥 깨달았다.
이것을 일러 중도라고 한다.
여기서 가운데 중자는
치우침이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모든 착을 놓아버림으로써 순수 본연의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세존의 증도는 곧 그냥 있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고
따라서 깨닫고자 한다면
그냥 깨달으면 된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 없기에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 자리에서 깨달을 수 있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깨달음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다면 세상에 부처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거듭 말하자면 깨달음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 즉시 이루어진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서 깨달음이 요원하게 된 것이다.
세상엔 금강발원을 세우고
목숨을 바쳐 가면서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필자는 여태껏 깨닫고자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문헌을 아무리 뒤져도 깨달으려는 마음을 지닌 수행자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물론 용수나 달마 같은 극소수의 수행자들은
결국엔 깨달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깨닫게 됐지만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깨달음을 구하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런 사실엔 변함이 없다.
수행자들은 으레 참된 자아를 찾아 진리를 깨우치고
나아가 붓다가 되려고 한다.
중생에서 붓다로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깨달음과 역행한다.
이건 단지 아상이 극한대로 발휘된 괴상망측한 분별일 뿐이다.
그래서 못 깨닫는 것이다.
세존 이후에 붓다를 보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완벽한 존재인 붓다가 되려는 발원이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겠는가?
5차원 불성은 삼라만상 그 자체이기에 지극히 단순하다.
그래서 깨닫는 데에 필요한 1초와 숙성하는 데 필요한 1분이면 충분하다.
이런 점을 보면
돈오돈수가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럴진대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깨달음에 매달리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뭔지를 모르니
붓다를 목표로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문하에 유독 깨달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수행자가 한 분 있다.
그렇다고 수행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얼핏 보면 뜨뜻미지근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는 도계가 낮은 탓도 있지만 열띤 도담의 현장에서 늘 뒷전이다.
하지만 이 수행자는 그냥 있는 상태에 수시로 들락거리다가
마침내 대각의 문고리를 쥐게 되었다.
아상이 일으킨 구도욕 대신
실존에서 우러나오는 복귀의 흐름에 순응했단 탓이다.
이처럼 일심인 평상심이 곧 깨달음에 대한 참된 발원인 것이다.
이 점을 화두로 잡고 통찰해 보기를 바란다.
아마 몇몇 수행자들은 이 대목만 가지고도 대오각성하게 될 것이다.
세존이 무상정등각을 이룬 뒤에 성찰과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당신께선 엷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상념을 일으켰다.
‘나는 여태껏 깨달음을 구하는 대신 아상을 떠받들고 있었구나!
깨달음을 원하면 그냥 깨닫게 되는 것을...’
세존의 중도와 ‘그냥 있는 상태’ 그리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다.
따라서 당신에게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깨달음은 그냥 열린다.
왜냐하면 당신 자체가 깨달음이며 붓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깨달아라.
제발 엉뚱한 것에 매달리지 말고 그냥 깨달아라.
만일 그냥 깨닫는 것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부터 방편을 설하겠다.
*그냥 있는 상태
금강경에 나오는 응무소주와 이생기심에 자유로운 상태.
무에 빠져 무를 각성의 척도로 삼게 되면
‘그냥 있는 상태’를 멍때리거나 맹한 사람으로 곡해할 소지가 있다.
마구니들은 예외 없이 무와 맹한 것을 아주 좋아한다.
무는 도를 위장하기에 안성맞춤이고
또한 제자들의 이성을 흐리게 해서 영혼을 지배하고
재물을 착취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와 더불어 맹한 것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특히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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