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도가 아니야. 편안하지가 않는 거야. 본인은 자꾸 큰 착각인데 본인이 편안하다는데 지금 본인이 편안하지가 않은 거야 지금. 남편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본인이 편안하면 이런 얘기도 안 나오지. 뭐. 이런 의문이 드는 것 자체는 불편 하다는 얘기야. “내가 너무 편해서 문제가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는 거는 그게 너무 편한 게 아니고 지금 불편하다는 뜻이야. 그거 자체가. 어떻게 가 아니라 본인이 지금 마음이 불편한 거요. 본인이.
본인이 불편한 걸 불편한 줄 알아야 “왜 불편할까?” 이렇게 찾아야 해답이 나오는데, 본인이 불편한데 나는 안 불편하다. 이러니까 그 다음은 진척이 될게 없지. 안 그래요? 지금 내가 불편한 걸 불편한 줄 알아야 불편하지 않는 길로 나가는데. 불편한데 안 불편하다고 생각을 해버리니까 다음단계로 갈 수가 없지.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릇이 하나 깨졌다. 그런데 남편이 그릇 깨진 것보고 마음이 불안해. 나는 그릇 깨진 거 보고는 괜찮아. 그런데 남편이 그릇 깨진 거 보고 불안해하는 그 남편을 보고 나는 불안해. 같은 거야 이게.
그런데 나는 그릇 깨진 거 보고 안 불편한데 당신 뭣 때문에 그릇 깨진 거 보고 불편하냐? 이거는 남편이 불안해하는 걸 보고 내가 시비심을 일으키는 거요. 남편이 그릇 깨진 거 보고 시비심을 일으키듯이 내가 남편을 보고 또 시비심을 일으키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같은 거요. 남편이 그릇 깨진걸 보고 시비심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남편이 시비심을 일으키는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똑같은 거란 말이오. 그렇게 말해 줄 수가 있다는 거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남편도 “인생을 사는데, 그릇 깨진 거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같은 거야. 그게. 사람은 어떤 사람은 그릇 깨진 거 보고 시비심을 일으키는데 어떤 사람은 그릇 깨진 거는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걸 보고는 시비심을 일으키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돈은 이런 하나를 갖고 달달 떠는데, 명예는 그게 욕을 얻어먹든 말든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명예는 털끝만큼 손상이 나도 완전히 사람이 큰일 나는데 돈은 있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사람도 있어. 사람마다 다 뭐다? 성격이 다른 거야. 아시겠어요? 내가 시비심을 일으키는 그 방식이 남편하고 나하고 다르다는 거야. 그 차이밖에 없어. 그러면 내 시비심은 어떻게 없어지느냐? 남편이 시비심을 일으킬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봐야 돼. “아~ 저분은 저런 문제로 힘들어하구나. 그릇 깨진 걸 가지고 저분은 힘들어 하구나. 아~ 저분은 성형이 저렇구나.”
“나는 그런 거 갖고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분은 저렇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는 왜 그러냐? 그거 갖고 뭐 그러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내 눈에는 빨갛게 보이지만 저분 눈에는 파랗게 보이구나.” “나는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사람한테는 큰일로 보이구나.” 나는 도고 저 사람은 도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이 경우에 내 성향이야. 저 사람 성향은 여기에 큰일처럼 생각하는 저 사람의 성향이란 말이야. 그 사람의 성향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내가 그 사람을 보는데 편안해 지는 거요.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거요. 쉽게 얘기하면 남편을 이해하면 보살님이 편해져.
보살님은 지금 남편이 이해가 잘 안 돼. “뭐 그만한 일로 갖고 저렇게 해쌓나. 별것도 아닌 거 갖고 그래봐야 너만 고생이지.” 자꾸 이런 생각이나. 남편 하는 짓이 내가 보기에 좀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요. 그러니까 남편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요. 그러니 남편을 이해해야 돼. “아~ 저런 일에도 저분은 가슴이 아프고 저런 일로 저분은 잠을 못자고. 아~ 저런 일에도 저분은 심리랑 저렇게 반응을 하구나.” “저럴 필요가 없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가 아니고 “아~ 저 사람도 저렇게 반응을 하는 거구나.”
이렇게 남편을 이해하면 지금 예를 들어서 남편에 대한 죄의식도 남편에 대한 답답함도 싹~ 없어져버리지. 인생에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없어. 부처님도 뭐라고 그랬어? 내가 일체중생을 구제하되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바가 없다. 이렇게. 수십 번 금강경 초장부터 지금까지 얘기하잖아. 다만 할뿐이어야 돼. 보살은 다만 남편을 이해하면 그게 곧 뭐다? 남편을 도와주는 건데, 남편을 이해하면 내가 편안한데 남편한테는 도움이 안 되지 않냐?
남편이 술을 먹고 오는 걸 내가 괴로워 못 살겠다 에서. “아~ 술 먹을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다.” 내가 받아들이고 “아이고 많이 드셨네요. 오늘 좀 적게 드셨네요. 해장국을 끓여드릴까요?” 이러면 누가 편할까? 내가 편하지. 그런데 보살은 이때 뭐라나? “나는 편하지마는, 남편은 술을 먹고 건강이 나빠지지 않느냐?” 이런 생각하는 거하고 똑같아. 그건 또 남편을 시비 삼는 거요. 으음. 예. 지금 이게 마음을 비우는 거야.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왔을 때 “아이고 오늘 답답해서 한잔 드셨네~~에.”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마음을 비우는 거야. “하이고 건강도 안 좋은데 또 술 먹었네.” 이게 마음을 못 비우는 거야. 그런데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비운 다는 말에 자꾸 집착을 해가지고 “아이고 이거를 어예 비우노. 아무 생각도 안해야지.”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데. 비운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 자기 에고로 자기관점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거야. 욕심이 아닌 것도 있지. 3가지니까. 하나는 욕심이 우리가 내꺼다 하는 욕심에 해당되는 게 탐이고. 내가 옳다 하는 건 욕심하고는 틀린 거거든요. 진심이고. 그다음에 어리석음 3가지가 있잖아.
욕심이 주종인데 욕심만 아니야. 욕심을 버려도 인생은 괴로워. 욕심 다 버리고 내 재물 다~~~ 아들딸 중생에게 나눠주는데도 못사는 거 보면 어때요? 불쌍해서 만날 울고 다닌다. 그러면 그거는 내가 저 중생을 구제해야 된다는데 집착해서 생긴 문제요. 울고 다니면 안 돼. 다만 해야지. 어떻게 좀 이해가 되나? 알듯말듯하나? 이해가 되는데 현실에선 또 잘 안 된다 그것도 사실이야. 그것도 진리요.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것도 진리에요. 왜?
담배가 나쁜 줄 몰라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고 담배가 나쁜 줄 확실히 알았는데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왜? 이 업이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고거를 고치는 게 조금 시간이 걸려. 어떤 사람은 단박에 탁 끊어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고 사이에서 조금 헤매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그게 수행이오. 그런데 나쁘다는 걸 알아야 단박에 끊어지든지 조금 있다 끊어지지, 모르면 끊어지지가 않는 거야. 좋은 줄 알면 잘못 알면 계속 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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