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아는 자리(각성)'**의 실체를 밝히고,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님을 깨닫는 **'참나(본성)'**에 관한 핵심 가르침입니다.
1. 생각 없는 자리: 걱정 근심이 사라지는 곳
깨달음은 생각이 완전히 없는 상태라기보다, 생각에 힘을 주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마치 자각몽(Lucid Dream)을 꾸듯, 나쁜 꿈을 꾸고 있더라도 이것이 '꿈'임을 알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2. 세상을 창조하는 분별과 집중
세상은 나의 **'보고 아는 놈(의식)'**이 작동할 때 나타납니다.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주변 풍경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에만 집중되는 경험은, 우리의 분별과 의식이 세상을 창조하고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3. 몸은 내가 아니라 내가 탄 '택시'일 뿐
우리는 운전할 때 차를 나라고 착각하여 옆 차가 스치면 몸이 오싹해집니다. 이처럼 수십 년간 몸과 나를 동일시해왔지만, 몸은 의식이 잠시 빌려 탄 도구(택시)일 뿐입니다. 몸의 일부가 사라져도 '나'라는 의식의 자리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4. 마음(생각·감정)의 변화를 지켜보는 자
생각과 감정은 수시로 태어나고 죽으며 변하지만, 그것을 뒤에서 조용히 보고 아는 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슨 짓을 하든 그 모든 활동을 더 큰 눈으로 지켜보는 '그 무엇'이 바로 참나입니다.
5. 지금 여기 있는 '보고 아는 놈'
참나(부처자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의를 듣고 있는 육식(지식적 이해) 너머에서, 그 모든 상황을 통째로 **'보고 알고 있는 자리'**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한 줄 요약: 몸과 마음(생각)은 내가 잠시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며, 진정한 나는 그 모든 변화를 **뒤에서 생생하게 보고 아는 '변치 않는 의식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빨리 깨어나려고 하면은
한마디로
생각이 없는 자리가
바로 걱정 근심이 없는 자리예요.
생각을 하더라도
그 생각에 휘둘리지 않으면 상관이 없어요.
생각에 힘을 주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럼 마치 이게 어떤 상태와 같으냐 하면
자각몽 상태하고 똑같아요.
악몽을 꾸는데
이게 악꿈인 줄 알아
그럼 악몽이 더 이상 악몽이겠어요?
아니죠.
그냥 한마디로 좀 그런 꿈, 좀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있구나 할 뿐이지.
자 그러면 이렇게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고 아는 자리
보고 있죠.
자각몽 볼 때
또 그걸 ‘그런 꿈이구나’ 하고 아는 자리가 있죠.
그런데 그거는 지금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보고 알고 있잖아.
보고 아는 게 지금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여러분 여기 보고 아니까 이게 있지, 안 그래요?
아침에 갓 일어났을 때 내가 뭐랬어요?
보고 아는 놈이 작동돼서 뭔가를 분별하기 시작할 때
방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요.
만약 보고 아는데
이 보고하는 것에 분별이
좌뇌가 개입을 안 하면 어떻게 되냐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의식 이거 하나만의 있음을 보고할 뿐이야.
여기 분별이 없으면.
분별이 없으면 이 세상이 안 나타나요.
여기 이 컵은 이 거는
내가 이걸 보고
“있구나” 해서 있게 되는 거지.
여러분이 만약에
지금 여러분이 밖에서 딴 일 하거나
집에서 뭐 빨래하고 있거나 청소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 왔어.?
지금 어머님이 막 임종하실려고 그래요 빨리 오세요 라고 하면
그때 차키를 찾아야 될 거 아니야
그때 차키가 제대로 보여?
그럼 차키 어디 있지 어디 있지? 할 때, 다른 게 보일까?
여태까지 뻔히 잘 보이던 빨래거리며, 설거지거리며, 청소 대상들이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없어져요.
그냥 눈앞에 허옇게 자기 의식만 있다고.
오로지 키 하나에 집중이 되는 거야.
아까 내가 든 비유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신호등을 무시한 차가 덤벼든다 할 때
여러분 의식이 갑자기 환해진다고.
눈앞에 집중해서
초집중을 하면 환해져요.
그리고 모든 길거리 풍경이 다 사라져.
그냥 이 환한 것 이것 자체가
여기에 집중을 해서
빨리 몸이 피하도록 하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다 사라진다고.
그런 경험 안 해봤어요? 해봤죠?
이건 뭘 말하냐면
여러분의 분별이 세상을 창조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이 없는 듯하지만
이 세상 자체를 보여주고 창조하게 만드는 이 도리를 가진 이 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부처자리와 본성자리고 참 자아의 자리라는 거예요.
이거를 선가에서는 제1구라고 그래
1구, 말씀, 어구 할 때 구 자 있잖아요. 제 1구
“제 1구의 도리가 뭐냐? 1구를 일러라”
이거 말로 할 수 있어요. 일구를?
못하죠.
그러니까 그 “일구를 일러라” 하면 어떻게 해야 돼?
우리는 몸을 나라고 여기고 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의 몸은 자기가 아니에요.
자기가 타고 있는 택시 같은 거예요.
우리가 차를 타고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차가 옆을 아슬아슬하게 끼어들거나 스쳐갈 수가 있죠.
그때 여러분이 태평합니까?
아니면 몸이 이렇게 막 오싹합니까?
오싹하죠.
이게 바로
차를 내 몸과 자기 동일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몸이 아니란 얘기야.
요 의식이, 요 그 마음 활동이
지금 몸을 나라고 여긴 채, 수십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게 나 같은 거야.
근데 그게 운전할 때는 확장돼 갖고
차를 나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차가 막 10cm 간격으로 확 스치고 지나갈 때는
몸이 오싹한 거야.
그러니까 여러분 그 오싹한 그거라고.
몸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때는 몸에 아무 관심이 없어.
몸은 그냥 여기 있고
이 의식이, 마음이, 차로 확장돼 있어서
이걸 나라고 여기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놈이 밤에 잠자고 꿈꿀 때는 또 어때?
꿈속에 나타난 어떤 이미지
나 닮은 어떤 희끄무리한 이미지를 또 나라고 여기고
그거 가지고 아우성을 치고 있잖아.
그러니까 뭐가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냐고.
그게 바로 이놈이에요.
이 세상 전체를
여러분에게 인식하고 나타나고
꿈의 세상 모든 거를 창조하고 분별해서 보여주는 이놈이라고.
지금도 이 꿈 속에서 이거 보고 있잖아.
아시겠어요?
살아 있잖아요. 이렇게 생생하게.
자, 그러니까 몸은 내가 아니죠..
만약 여러분이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하나 잘렸다고 봅시다.
그러면 지금 이 자리가, 내가 말한 요 자리가
팔이나 다리만큼 줄어드나?
아니잖아.
그러니까 몸이 아니지.
그러면 마음이 참나라고 하면은
생각, 감정, 느낌 이런 게 참나라는 얘기잖아.
그럼 생각, 감정, 낌은 자꾸 변하잖아.
그럼 나도 자꾸 변하나?
그 생각이 나한테서 태어났다가 죽었어.
그럼 그때 그 순간에 나도 태어나고 죽었나?
아니잖아요.
이놈은 마음이 무슨 짓을 하든
그냥 다 구경하고 쳐다보고 있잖아.
여러분 당근 명상 봐봐
당근을 그렇게 막 몇 단을 묶어서 만들고 있는데
뒤에서 조용히 쳐다보고, 알고 있는 놈 하나 있잖아.
여러분은 지금 여기서 제 강의를 육식은 듣고 있지만
그 뒤에서, 육식 활동 뒤에서
“내가 지금 여기에 앉아서 이런 강의를 듣고 있다”라는 것을
더 큰 눈으로 보고 아는 그 무엇이 있다고.
그거라니까.
그러니까 이 앞에서 육식이 막 까불고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저 사람은 알쏭달쏭한데”
이런 거 하고 있는 그놈이 아니고요.
그 뒤에서 그걸 보고 알고 있는 놈이라고 .
그러니까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죠.
그게 어디 있어요?
지금 여기 있잖아.
여기 없어요? 딴 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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