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실상(의식의 화살표)'을 직접 체득하는 법을 구체적인 실습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삶은 '생각'이 아닌 '움직임' 그 자체
- 우리는 유치원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억과 의미 부여는 모두 환상에 불과합니다.
- 실상은 그저 살아있음의 화살표를 따라 매 순간 움직여 온 과정일 뿐이며,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유일한 진실입니다.
2. 핸드폰 실습: 생각과 느낌의 전환
- 생각의 주도: 핸드폰을 잡고 "딱딱하다,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이미 생각이 개입된 상태입니다.
- 느낌의 솟아남: 눈을 감으면 생각이 쉬어지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수한 **'느낌'**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 실상: 눈을 감고 뜨는 찰나에 생각이 느낌으로, 느낌이 생각으로 전환되는 그 **'살아 움직임(화살표)'**이 바로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3. 의식의 단일성과 '갑갑함'의 정체
- 의식은 한 번에 한 곳(촉, 觸)만 향합니다. 양손에 서로 다른 질감을 동시에 느끼려 하면 번개처럼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 이때 발생하는 **'갑갑함'**은 생명 의식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할 때 일어나는 저항(스트레스)입니다. 이 갑갑함 역시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의식(이 자리)**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4. 당처(當處)와 연기법
- 갑갑함은 인연에 따라 나타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이 현상이 나오기 직전의 자리, 즉 당처는 늘 존재합니다.
-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법을 실감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동그라미)을 보게 됩니다.
5. 결론: 단지 알 수 없음을 알 뿐 (단지불회)
- 본래면목은 3차원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어디에 있다"거나 "무엇이다"라고 생각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성):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구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 그 알 수 없는 상태로 깨어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성품을 보는 길입니다.
여러분 진짜 여태까지 여러분을 살아온 건 뭘까?
여러분 잘 봐요.
내가 헤븐존에서 제가 드린 강의 때 이런 얘기 한 번 했었을 거야.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 보니까 태어나 있어
유치원 들어갔어
지금 기억나는 건 간단한 것 밖에 없어
유치원의 생활 기억하시는 분 손 들어봐.
없죠.
그때 어떤 여자애를 만났어.
만났다는 거 알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기억나? 유치원 때
국민학교 들어갔어
중학교 고등학교 갔어
시험 봤는데 떨어졌어
낙담했다가 다시 재수해서 학교 들어갔어 등등
대학교 들어갔어.
어떤 여자를 만나서
결혼했어
애를 낳았어....
여러분의 실상은 내가 아까 축구 얘기 말했지
무슨 점수 부여하고
우리 팀 너네 팀 다 이거는 뭐라고?
환상이라고
생각이 만든 환상이고
실상은 그냥 움직이는 거였잖아.
여러분도 여태까지 그냥 움직였을 뿐이야.
무슨 뭐 생각, 다 환영이라고.
당신 여기 지금 이렇게 살아 있을 뿐이야.
이렇게 살아왔잖아.
오늘 아침부터 여기 이렇게 왔잖아.
내가 피올라를 강의를 들으러 뭐가 어쩌고저쩌고
전부 다 생각 아니야?
그냥 왔어.
여기 앉아서 듣고 있어.
내용이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뭔가 깨달음이 왔어요’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저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이럴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중요해.
여러분이 정말 깨달음이 왔어요, 해 봤자,
그건 지 생각이야.
죄송하지만 아이엠 소리야.
그냥 이거라고
이게 실상이에요.
어 뭘 알았다 그러면 뭘 붙든 거야.
알긴 뭘 알어.
이제 감이 와요?
12연기의 12가지 과정을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명 행식 명색 육입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거를 그 과정을 살아 움직이는 이 화살표가 중요한 거라고
그게 실상이거든
뭘 또 외우고 앉아 있어
12연기 못 외웠다고
아, 참 나도 못 외워요.
봐야 알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럼 이거를 한번 실습해 봅시다.
얘기 그만하고 실습을 해봐야지.
자 각자 핸드폰 옆에 있죠. 그 핸드폰을 한번 잡아봐요.
자 핸드폰을
자기 양 다리 사이에 두 손으로 포개서 이렇게 봅니다.
핸드폰을 보고 있죠?
그럼 여러분한테 지금 떠오르는 거는
‘핸드폰을 내가 잡고 있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거예요.
내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핸드폰을 잡고 있다라는 생각
이제 생각하지 말고
이 잡고 있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느낌...
핸드폰을 보면서
눈 감으라는 말도 아닌데 벌써 눈 감네.
자, 느낌이 있죠?
그 느낌이 어때요?
손가락이 무겁다?
그게 생각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손가락, 생각이죠
무겁다, 생각이죠.
진짜 느낌이 아니에요.
생각이 벌써 느낌을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자 이제 눈을 감아보세요.
핸드폰이 무거우면
무릎 위에다 이렇게 올려놓고 손으로 잡아봐요.
그러면 안 무겁지.
자 어쨌든 눈을 감으니까
‘내 손이 핸드폰을 잡고 있다’라는 생각은 아까처럼 강해요?
아니면 희미해졌어요?
이제는 느낌이 강해졌어요.
뭔가 느낌이 강해졌는데
이게 아까 유동님이 말한 것처럼
무겁고 무슨 딱딱하다 이런 생각이 앞서요?
아니면 그냥 느낌이 앞서요?
느낌이 앞서죠.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굳이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이거를
느낌에 충실해 보세요.
이런 느낌이 있어요.
자 눈 떠 보세요.
그러면 아까 여러분의 화살표는, 의식의 화살표는
생각이 느낌을 압도하면서
생각과 느낌이 사실 같이 작용했지만
생각이 주도적으로 이것을 표현했어요.
이게 여러분이 생각 중심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예요.
운의 중심이라고 그러면
그렇게 말을 안 했을 겁니다.
여러분의 현상을 표현하는 거야.
근데 눈을 감으니까
눈의 상태가 되는 거야.
생각이 쉬어지고, 느낌이 솟아나는 거야.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면
같은 화살표가 향하고 있는데
이 화살표에 입혀지는 모양이 달라지는 거야.
아까 생각이었고 지금은 느낌이었어.
이게 살아 움직임이야.
순식간에 생각이 느낌으로 전환돼요.
눈만 감으면
이게 살아있음이야
이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 자세히 봐봐요.
이게 살아있는 이 화살표, 실상이라고.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자 이제는 한 손에는 이거를 여전히 잡고 있고
한 손은 부드러운,
자기 옷깃이라든가
자기 옷깃을 만질 수 있잖아 아니면 무릎이라든가
어쨌든 부드러운 걸 만져봐요.
자 양손이 다른 걸 붙잡고 있습니다.
자 이제 눈 감아봐요, 눈을 감아야 집중하니까
동시에 양쪽 거를 하나는 딱딱하고 하나는 부드러운 걸
같이 느끼려고 해봐요.
됩니까?
눈떠봐요.
되시는 분?
여러분은 아직 안목이 어두운 거예요.
동시에 안 됩니다.
왔다 갔다 하는 건데
번개 같이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을 인식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하는 걸 못 보기 때문에
동시에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만큼 안목이 아직 어두운 거예요.
의식은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합니다.
즉 번개같이 한 쪽에 더 치우치는 거야.
그래서 이 두 개를 동시에 느낀다는 거는
번개같이, 막 천분의 1초, 100분의 1초 사이에
양쪽을 막 왔다 갔다 하면서 같이 느낀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거지
사실은 한 번에 하나에만 가서
촉을...
아까 12연기에서 촉에 있잖아요.
수, 촉
그게 한 번에 일어나는 거예요.
한 번에 한 곳을 향하는 거야. 아시겠어요?
이렇게 번개같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이 두 개를 다 느끼려고 하는 그 명령을
그 생각에 복종하면서 이렇게 움직이는
이게 살아있는 거 아니에요?
아 이거라고, 뭐 그렇게 어려워.
이게 바로 그 생명의식의 움직임이에요.
굳이 말로 하면.
그걸 왜 꼭 생각으로 정리해야 돼?
이거라고요. 그냥
근데 잘 봐요.
이게 동시에 두 개를 느끼려고 한번 해보세요.
자 눈 감고 다시 한 번 해봅시다.
나는 반드시 하고야 말리
눈 감고
하나 핸드폰 잡고 하나 부드러운 것을 잡고
동시에 느낄려고 해봐요.
자 눈 떠 보세요.
동시에 되요.
그런데 무슨 현상이 일어나냐면
뭔가 조금 갑갑해진다고.
뭔가 이렇게 어떻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막히는 듯한 갑갑함이 생기지.
이게 바로 이 자리가 살아있다는 거예요.
명령 수행을 해야 되는데 안 되니까
갑갑함을 만들어 내는 거야.
갑갑함을 여러분이 만들어 낼려고 했어요? 저절로 생긴 생긴 거예요?
저절로 생겼잖아
이게 무슨 의미냐면
지금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라면 같은 거를 전기 코드를 감아서
뻘겋게 달궈서 그거 갖고 라면 끓이고 밥하고
그런 전기 열선으로 된 곤로 같은 게 있었어요, 옛날에.
요즘은 없을 거야.
이게 뭐냐 하면
모든 그 선에다가...
구리선은 별로 열이 안 나지만
거기다가 저항하는 많은 금속을 집어넣어서 만들면
이게 뜨거운 쇳덩어리가 된다고
그러면서 이게 열을 내요.
전기가 흘러가는데 저항이 많으면
열이 난다는 거야.
자 이 생명 의식이 뭔가를 하려고 그러는데
갑갑하면 어떻게 된다고?
열이 나요
이게 스트레스야.
여러분 잘 생각해 봐.
자기의 삶이 답답하고 난감하고 힘들 때
지금 이 두 개를 동시에 느끼려고 할 때 일어나는
그것이 증폭된 거라고.
해법이 없다.
근데 해야 된다.
얼마나 그때 갑갑해
그리고 뭔가 콱 막힌 거 같잖아.
그 콱 막힌 걸 누가 만들었어? 내가 만들었어요?
저절로 생긴 거거든.
그게 바로 이 자리가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란 말이여.
바로 이게 여러분이 이거라는 증거야.
여러분이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이거라는 증거라고.
어떤 조건 현상을 만들면 자기를 나타내잖아 이렇게.
여러분이 이렇게 의식이라고 의식
의식이라는 것도 이름이에요.
‘아 의식 있구나’ 여기 붙잡고 정리하고 이해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있는 이것이라고.
그러면 이 자리가
지금은 있어요? 그 갑갑함이 지금 없어졌어요?
그럼 이 자리가 어디서 나온 거예요?
이 갑갑함이 아까 어디서 나온 거야?
이 흔적도 없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났잖아.
이게 나오기 직전에 자리가 지금도 있죠?
이거라고
이게 동그라미에요.
이게 여러분의 본래면목이야.
이게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있다고 하지에 흔적도 없고 없다고 하잖아.
그래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이게 어떻게 일어나냐면
연기법에 의해서 일어나잖아.
이런 어떤 뭔가를 해보세요 하면 일어나잖아.
그래서 연기법을 본 자는 진리를 본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야.
연기법에 의해서 이게 일어나고 있잖아.
연기법을 잊게 하는 게 뭐라고?
이것!
이게 이거라는 거
오늘 강의의 주제
이것!
지금 이렇게 이거를 실감하고 있죠.
그럼 당처가 뭐야?
여러분 당처는 지금 어디 있어요?
좀 전에 두 개를 다 할 때 당처는 어딨었어?
답답함은 명색에 떨어진 거잖아.
명색에 떨어지면 당처가 아니지
화살표로 얘기해야지.
그 답답함, 갑갑함을 만들어 내는 그 살아있음이 있잖아.
그게 당처잖아.
그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건 여러분의 자유야.
알아서 표현하세요.
자 이제 이것과 당처의 미묘한 차이를 아시겠죠?
여하튼 이게 이 모든 것이 나오고 돌아가는 것이
이 자리고, 동그라미고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것이 매 순간 순간 곳곳에서
자기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는 이게
화살표이자, 당처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 당초 아닌 게 있나?
여러분 우리 저기 저 화살표 봅시다.
여러분 저거 딱 보는 순간에 이제 뭐가 보여요?
화살표에 떨어졌어?
아니면 화살표를 보고 있는 나의 화살표가 느껴지지 않아요?
화면을 연결하면, 그지?
그러면 이거 볼 때는 여기 있고
저거 볼 때는 저기 있고
하늘 볼 때는 하늘에 가 있고
발목이 시큰거릴 때 발목에 가 있고
배고플 땐 배에 가 있고
걱정될 때는 머리에 가 있고
아무것도 안 할 때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그래서 오직 모를 뿐이 동그라미에요.
왜?
3차원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야.
우리는 3차원적인 얘기밖에 못하잖아.
그러니까 이거를
-아 전체입니다.
-우주에 편지하는 하나님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에요. 틀린 말이라고
왜 그런지 알아요?
삼차원적인 감각을 밑에 깔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건 삼차원적인 존재가 아니라니까.
다중우주라고 하는 건 3차원적 표현이 아니에요.
3차원에 어떻게 다중우주가 있을 수 있겠어.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그런 말을 하신 거야.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불회_ 아니 불(不), 만날 회(會)
만날 회자라는 거, 보고 안다.
너하고 나하고 눈길을 마주치는 게 회예요.
단지불회_ 서로 이렇게 알아볼 수 없다면
단지 알아볼 수는 없어.
-알아볼 수는 없구나.
-근데 분명히 있긴 있구나.
그게 현상이라는 거야.
왜 알아볼 수 없을까?
생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 이전 차원이니까.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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