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공부를 해보면
어떤 때는 색 쪽에 좀 치우치고
어떤 때는 공 쪽에 좀 치우치고 그렇습니다.
그게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공부하면서 경험하실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공 쪽에 이렇게 치우쳤다라고 할 만한 경전은
반야경 쪽 경전이에요.
그렇다고 반야경 경전이 치우쳤다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 우리 어떤 생각, 이 상을 다 쓸어 없애서
이 공만 얘기하거든, 공만.
그러면 색 쪽에 좀 치우친 거는 어떤 경전이냐 하면
화엄경입니다.
장엄, 드러난 모든 모습, 소리 색깔은
이 부처 아닌 게 없고, 도 아닌 게 없는
이거를 얘기하고 있거든요.
근데 반야경 이쪽은
도 아닌 게 없고 부처 아닌 게 없다
이렇게 표현을 안 해요.
‘부처는 이름이 부처지 부처라고 할 게 없다’
‘도는 이름이 도라고 할 게 없다.’
그러니까 모든 상을 다 쓸어 없애는 쪽의 방편을 씁니다, 반야경 쪽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이런 경전은.
이 화엄경 쪽은 우리가 이렇게 분별되는
보는 모습이나 소리나 색깔은 다
이 법을 이렇게 장엄하고 있다.
이쪽 방편을 많이 쓰죠.
근데 실제로 자기가 공부를 해보면
화엄경 쪽에 좀 이렇게 치우치기도 하고
반야경 쪽에 치우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방편이라고 하는 게
아무 쓸데 없는, 방편을 써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그것조차도 좀 귀찮고, 헛소리 같고, 쓸데없는 말 같은
이런 느낌이 강할 때도 있고
그냥 눈앞에 보이는 그냥 하나하나가
도 아닌 게 없고, 부처 아닌 게 없어서 따로 얘기할 게 없는
이쪽으로 또 이렇게 치우치는 경향도 있고 그래요.
실제로 공부를 해보면.
이쪽으로 약간 마음이 기울었을 때는
이 방편의 모든 말이, 뭐라고 해야 하죠?
방편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들려요, 방편의 말이.
그냥 눈앞에 보이는 모습, 소리, 색깔이
전부 부처 아닌 게 없고, 도 아닌 게 없는 이런 느낌이니까
이 방편의 말이
방편과 진실이 구분이 잘 안 됩니다.
그냥 방편의 말이 다 진실이야, 그냥 그럴 때는.
그렇게 느껴지는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공부를 해보면 이쪽으로 치우치죠.
좀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게
다 이렇게 뭔가 좀 귀찮고 구질구질하고
“표현할 게 뭐가 있어?”
뭐 이런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공부 얘기할 때
이 진실과 방편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제가 이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공부를 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쪽에 약간, 그럴 때는 그런 줄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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