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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세상에 등딱지가 달라붙었다

Buddhastudy 2026. 4. 8. 19:52

 

**'인간 의식의 위상과 초월을 통한 자유'**를 지렁이의 비유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의식 수준의 차이와 에고의 이면

  • 지렁이는 감각이 단순하고 에고(6식·7식)가 없어 시기나 질투 같은 고통을 겪지 않지만, 동시에 기쁨과 환희도 느끼지 못합니다. [조건적 반응]
  • 인간은 복잡한 에고를 가졌기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지독한 병증'을 앓기도 하지만, 이는 곧 세상을 풍부하고 깊게 경험할 수 있는 의식의 스펙트럼이 넓음을 의미합니다.

2. 중도(中道)와 초월의 진정한 의미

  • 초월적 시선: 중도는 회색지대가 아니라, 땅을 벗어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높이를 달리한 허공'**을 의미합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100만 마리의 개미(만물)가 차별 없이 똑같아 보입니다.
  • 무분별과 무집착: 초월했기에 판단과 집착이 사라집니다. 세상 전체를 풀 한 포기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상태가 곧 집착을 놓은 상태입니다.

3.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론적 가치

  • 전도몽상(顚倒夢想): 집착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집착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렁이가 자신의 한계를 모르듯, 인간도 깨닫지 못하면 거꾸로 뒤집힌 채 세상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 인간의 기회: 인간은 지렁이와 달리 스스로의 집착을 인식하고, 이를 놓아 신성(神)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핵심 요약: 인간은 에고로 인해 고통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집착을 끊고 초월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 기회를 알고 진리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이자 축복입니다.

 

 

페테르 에르베는 [우리는 신이다]에서

깨달은 이와 보통 사람의 의식수준 차이를

사람과 지렁이의 의식수준 차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지렁이.

잘은 몰라도 두세 개 정도의 감각만 있다고 해도 되겠죠.

 

그래서 지렁이의 감각영역을 벗어난

이른바 6식과 7식은 존재조차 하지 않기에 작동할 수 없습니다.

의식과 말나식이 없으니

지렁이는 에고가 없습니다.

 

지렁이에게는 당연히 에고의 폐해가 없습니다.

지렁이는 감정이 상하지도 않고, 기분 나쁘지도 않으며

시기, 질투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못하는 것이죠.

당연히 기쁨과 환희도 없습니다.

 

지렁이에게는 슬픔과 절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쌍생쌍멸하죠.

그게 지렁이의 업이라면 업이고

지렁이의 존재수준, 의식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에고가 없다고 해서 당신은 지렁이가 되고 싶습니까?

지렁이 아래로도 많습니다.

동물로는 단세포 동물까지 내려갈 수 있겠죠.

 

지렁이 위로도 많습니다.

그 모두는 각각의 존재수준 및 의식수준이 다를 겁니다.

사람 같지는 않겠지만 연구에 의하면

고등동물의 상당수가 연민, 공포, 두려움 등을 느낀다고 합니다.

 

지렁이와 단세포 동물은

에고가 없어서

자신과 남을 괴롭힐 수도 없습니다.

조건에 따라 기계적인 반응만 하죠.

몇 개 안 되는 감각에 따라 겨우겨우 꼼지락거릴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밖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이걸 그냥 단순히 보면 참 지독한 병증입니다.

 

악마를 본 적이 없다면 에고를 보라는 그 에고

악마는 왜 존재하는 걸까요?

선과 악은 왜 그럴까요?

그 이원성의 존재로 인해

세상은 얼마나 광대하고 풍부하고 다양하고 깊습니까?

 

선악과 이후에 비로소 만물이 생겨난 것이고

켄 윌버의 말대로

점심 혼자 먹기 심심해서 그랬다면

이제 신은 창조를 통해

같이 점심 먹을 대상들이 거의 무한해졌습니다.

 

 

이 장대한 드라마, 모든 의식의 스펙트럼을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밟아 올라서

결국 신에까지 이르는 이것이, 이 순간순간이

바로 활영창신 활동하는 영, 창조 중인 신인 것입니다.

 

진리의 전체적인 맥락이 항상 드러나 있고

일휘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 것을 꿰뚫는다면

이 모든 것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것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지칭하는 표현에는 중도가 있습니다.

중도는 좌우나 옳고 그름의 중간인 회색 지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을 의미합니다.

 

초월은 높이를 달리한 허공

즉 벗어남을 말합니다.

지면을 벗어난 공중에서 보면

지면의 모든 것이 똑같아 보입니다.

100만 마리 개미를 하늘에서 내려다봅니다.

 

이것이 분별과 판단이 없다는 뜻입니다.

초월했기에 집착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궁극의 중도는 세상을 벗어남을 말합니다.

세상 전체가 풀 한 포기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집착이 떨어지고 놓아진 상태입니다.

반대로 꿀을 빨다 뒤집어져

등딱지가 땅에 붙어버린 것이

바로 세상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그 모습입니다.

 

그런데 집착이 뭔지를 모릅니다.

놓지 못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살아온 방식대로 그대로 살면 알 수 없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도 집착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전도몽상

즉 완전한 Upside-Down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똑같이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집착인 것이죠.

 

사람이 빛과 축축함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지렁이는 그것이 뭔지 모릅니다.

지렁이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도 모릅니다.

자기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겠죠.

 

인간에게는 집착을 놓고

초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하이쿠 시인인

이싸의 한마디는 참으로 깊습니다.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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