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법륜스님의 하루

[법륜스님의 하루] 갈등이 생겼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는 여섯 가지 기준. (2025.04.07.)

Buddhastudy 2025. 4. 14. 20:32

 

화합의 6가지 원칙:

불교 원리와 가르침을 바탕으로

갈등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러한 기준 위반 여부를 확인하여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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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화로 코삼비 비구의 다툼이 있습니다.

코삼비는 당시 16개국 가운데 하나로

그 나라에도 스님들이 몇 백 명이 모여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화장실을 사용하는 규칙을 어긴 사건으로, 서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그

들을 따르는 두 그룹 간의 분쟁으로 확대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왜 그러느냐? 내 말을 들어 봐라.’ 하시며 이쪽에서 말씀하시고,

또 저쪽에 가서도 말씀하셨어요.

 

누가 더 옳은가 하고 논쟁하는 것이 승단을 분열시킨다.

너희들은 작은 것에 대해 시비를 가리다가

큰 죄를 짓게 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하며

부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그곳을 떠나셨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중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수행자들이 부처님 말도 안 듣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이러면서

걸식하러 온 스님들에게 공양을 주지 않았습니다.

스님들이 그제야 반성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수소문해서 기원정사로 찾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이 대중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승가 공동체는 청정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청정하다는 것은 검소하게 살고,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승가 공동체는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마치 꿀과 우유가 하나가 되듯이 화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합이 깨지는 이유를 살펴보면

화합을 이루는 여섯 가지 중에 뭔가가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조용해! 화합해! 싸우지 마!’ 이렇게 강압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 안에 불평등과 부당함이라는 문제가 있는데도

조용히 하라고만 윽박지른다면

구조적 모순은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전쟁을 안 한다고 해서 꼭 평화로운 것이 아니에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실제로 누군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화합을 위한 여섯 가지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육화합이라고 부릅니다.

 

첫째)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야 합니다.

함께 살면서 누군가는 계율을 지키고, 누군가는 안 지키면 불공평합니다.

누군가는 채식을 하는데 누군가는 고기를 먹는다든가

상대에게는 옷을 검소하게 입으라고 하고 자기는 비단옷을 입는다면 안 되겠죠.

이렇게 계율이 다르게 적용이 되면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말처럼

계율의 적용이 평등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법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만원을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천억 원을 훔치면 경제 활동이 됩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이 되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면

법 적용이 평등하지 못해서입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런 식이면

자연적으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자주 의견을 맞춰야 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민주적으로 합의해서 결정하라는 말입니다.

무언가를 할 때, 대중공사를 하든, 공청회를 하든, 의논해서 결정하면

나중에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결정을 누군가 한 사람이 하거나

그가 이래라저래라 명령만 한다면

사람들이 겉으로는 따르겠지만 속으로는 다 불만이 생깁니다.

자연히 안 보이는 데서는 안 따르게 되고요.

그래서 자주 의견을 맞춰야 합니다.

바른 견해로 통일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 방식입니다.

 

셋째) 보시받은 물건은 똑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즉 경제적으로 평등을 이뤄야 합니다.

한 사람은 좋은 옷만 입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주거나

한 사람은 큰 방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마루청에서 자라고 한다면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경제적 평등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불안 요소가 매우 커졌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보시가 누구 앞으로 들어오든 다 모아서, 공평하게 분배해야 합니다.

 

넷째) 같은 장소에 모여 살아야 합니다.

앞에 말한 세 가지는

우리 사회에도 바로 적용이 가능한데,

넷째 조항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다르게 표현하면

투명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뭘 먹고, 뭘 하는지가 투명해야 서로 신뢰가 생깁니다.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서로 뭘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칸막이 없이 한 방에 같이 산다면, 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스님들은 숲속에 칸막이가 없는 공간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이 훤하게 보였기 때문에 삶이 투명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없었던 거예요.

투명하게 살면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걸 제일 어려워합니다.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 사는 수행자들도

월급은 안 줘도 괜찮은데, 방만 하나로 주세요.’

작아도 괜찮으니 내 방만 하나 따로 주세요.’ 이런 요청을 합니다.

그만큼 투명하게 열어 놓고 살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막상 칸막이를 치우고 보면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데

어쨌든 심리적으로는 좀 막아 놓고 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이 조항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투명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말이 험악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요즘 우리 사회도 말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위 현장에 나가 보거나 인터넷 댓글을 읽어 보면

험한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혀가 칼이 되어 말로 사람을 죽이는 형국입니다.

국회 의원의 입에서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자기 뜻대로 안 돼서 화가 치미는 감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갖춰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이런 게 지금 다 무너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는 반면,

말 한마디에 지은 복도 다 까먹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라는 것은 복이 되기도 하고, 비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화합을 이루려면 말을 자비롭게 해야 합니다.

 

여섯째) 남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뜻을 존중한다.’는 말은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각기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대화하거나 의논할 때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질이 나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걸 생각이라고 내놨냐?’

이렇게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꼭 그 사람의 말이 맞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지킬 때 공동체에 갈등이 없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무조건 조용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만인지를 살펴보면

이 여섯 가지 중에 몇 가지가 어긋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 여섯 가지 모두 다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잡고 살펴나가면

우리는 화합을 이뤄 나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