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56] 대긍정의 세계 |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다

Buddhastudy 2024. 11. 20. 19:41

 

 

부제망상不除妄想

망상이 나쁘다고 해서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진리라고 해서, 그게 좋다고 해서

따로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

겉모양을 꿰뚫어서

본질을 보기 때문에.

본질을 보면

모든 것이 평등해진다 이거예요.

 

근데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일반인들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 망상을 없애려고 하지 않나요?

하죠.

 

성숙해지면

그러니까 번뇌 망상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방식에서

처음에는 그거를 자꾸 컨트롤 하고 제거하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성숙해진 사람이라면

번뇌가 바로 역행보살이라는 거를 안다 이거예요.

번뇌가 바로 본질이 나타난 것이라는 걸 꿰뚫어 보면

무엇을 봐도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고, 수용이 되는

성숙한 인격이 이루어진다.

 

/정도가

영가현각 스님 육조 혜능의 제자인

영가현각이 지은 정도가

도를 증명하는 노래.

정도가의 첫 구절은 노래한다.

망상을 없애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현상에서의 분별이 없어지면

망상과 진리를 분별하지 않는다.

둘 다 겉모습은 반대지만

속 알맹이는 본질의 현현인 것이다./

 

쌍차쌍조라고 했네요.

쌍차_ 쌍으로 막는다.

망상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도 막고

불이 막는다는 뜻이에요.

망상을 제거하는 것도 막고, 진리를 구하는 것도 막아서

쌍으로 막는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쌍차를 하면

쌍조_ 망상도 본질이 나온 거고, 진리도 본질이 나온 것이라 해서 쌍조

쌍차쌍조

 

여러분, 쌍차쌍조의 뜻이

여러분이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해서 생활해서 하는 것이

공부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여튼 여러분께서

자기도 모르게 진리를 구하고 있어요.

이해되나요?

 

진리를 구하면

반드시 구하는 것이 뭐예요?

구하는 것이 바로 에고예요, 아상.

진리를 구하면 아상이에요. 그죠?

또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 뭐예요?

에고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쌍차라고 하는 것은

양쪽으로 에고가 힘이 강해서

에고가 막 욕망으로 날뛰는 것을 막는다, 그 말이에요.

이해되시나요?

 

아니 이거 현타가 와야 되는데

현타가 뭐냐 하면

현실 자각 타임

현타가 와야 돼.

 

뭐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진리를 구하는 것은 옳고

그리고 이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 옳아서

나는 옳은 것을 해하고 에고에 속고 있다.

이게 현타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공부를 해왔다.

 

항상 생각하고, 실험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이걸 수행으로 삼아서 해왔다.

 

근데 이것이 바로 에고가 살아남는 전략이었구나.

그러니까 쌍차라고 하는 말은

이런 것을 안 해야

에고도 사라진다는 말이에요.

 

그럼 에고가 없으면

망상이나 진리나

그놈이 그놈이야.

잠깐 모양이 달라질 뿐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참 좋은 공부예요.

 

그래서 여러분께 요즘은 틈나면 계속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보세요.

의식을 챙겨야 되지만

나중에는 의식이라고 잡으면 또 안 돼.

 

의식을 자각하는 시간을 가져가야 되지만

그거를 착각해서

의식이라고 딱 이걸 쥐려고 하면

그 의식을 쥐는 것이 에고라서

의식을 쥐면 질수록 에고도 강해져서

어느 순간에 가면

, 내가 나도 모르게 또 의식에 또 집착하네하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있어요.

이해되나요?

그거를 느낄 때가 뭐냐 하면

꼭지가 떨어질 때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 공부를 하면서

꼭지가 안 떨어지거든.

꼭지는 아상이...

 

그러니까 과일이 익어서

푹 익어야 이게 똑 떨어지지 않아요.

근데 여기 꼭지가 아직까지 안 익으면

꼭지가 힘이 세서 꼭지가 안 떨어져

 

꼭지가 언제 떨어지는가?

여러분이 진리를 놓을 때, 그때 떨어져요.

참 아이로니컬하죠.

 

근데 이런 말을

때가 되면 들어오지만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이런 말을 들어도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참 때가 됐는데

때가 되면 이런 말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근데 이런 말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딴에는

나는 수행자다

나는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다하고 뭔가

이렇게 매달리는 그런 것이 있다, 이거예요.

 

근데 그것이 스스로 보여지기에는 시간이 걸려요.

잘 안 보여요.

근데 그걸 볼 때가 에고가 떨어질 때예요.

 

그러니까 이걸 하나, 지금 하여튼 들어두시면

때가 되면

하고 딱 이렇게 또 현타가 와.

내가 좋은 거라고 이걸 또 쥐고 있었네.

 

그래서 이런저런 체험을 한 것에서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지

본질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으로 삼아야지

체험 자체를 쥐면...

 

여러분, 체험은 현상이에요? 본질이에요?

현상이에요, 그냥.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체험에 자기도 모르게 매달리게 돼요.

그러니까 그 체험을 놓는 것이

하나의 고비다 이거예요.

 

그래서 때가 되면 그렇게 하세요.

지금 여기 이 중에서 누가 그런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저는 무작위로 말을 하고

들을 사람은 들으세요.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세요라고 저는 이야기를 또 합니다.

 

/쌍차쌍조

이 말에 대한 이해가 결국에는 실력이다.

망상도 진리도 본질에 나타남이다.

현상의 일체가 법신불이 나타난 화신불이다./

이 말이 바로 쌍조라는 말이에요.

현상의 일체가 법신불이 나타난 화신불이다.

이 말이 쌍조_ 대긍정의..

처음에는 분별을 하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쌍차가 되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이 다

법신불이 나타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분별을 해도 분별하는 바가 없어진다.

 

부처님께서

“49년간 내가 설법했지만

한마디도 내가 설법한 바가 없다는 말이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다 긍정되는 그런...

이게 불교의 본령이에요.

부정하자는 게 아니에요.

불교는 긍정하자는 거예요.

 

근데 긍정하기 위해서는

한 번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돼.

그리고 부활을 해야 돼.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을 쌍차라고 하고

3일 만에 부활하는 것을 쌍조라고 해요.

 

목적은 부활에 있지

죽는 데 있는 건 아닌 거예요.

근데 하여튼 한 번 죽어야지 살아나니까.

 

/분별하지만 않으면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지지 않아서

현상은 다만 있는 그대로 하나가 된다.

그런 경지에서

마음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통해 흐르고

하는 일마다 묘용

묘한 작용이 되어서 최고의 창조성이 발휘된다.

이것이 도다./

 

그러니까 최고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원리가

마음을 자유롭게 흐르도록 두어서

그것이 꽃이 피도록 하는 게

그게 창조의 원리예요.

 

/오조 스님은 또 말한다./

 

창조성이 많이 고갈되는 걸

우리 역사가 경험했어요.

인간의 창조성이 묶여서 고갈되었을 때가 이조 말엽이에요.

그런 느낌 없어요?

그 이조 말엽에 꼰대가 성행했어요, 이해되죠?

 

그러니까 이게 창조성이 묶이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삼강오륜, 이런 거 있잖아요.

그 자체가 젊은이들한테는 필요한 거지만

그것이 나이 들어서까지 그걸 고집하면

꼰대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럼, 사회 전체가 그렇게 경직된 세계

그러면 이게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경제가 흐르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러니까 일본한테 먹힌 이유가

그게 너무 오래돼서

경제가 말라서 그런 거예요.

상황 이해되죠?

 

/오조 스님은 또 말한다.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다./

 

하여튼 지금 보니까 또 좋은 말이네.

여러분, 본질은 참되거든요.

그러니까 본질이 나타난 현상으로서의 일체도 참되다.

그래서 그걸 좋다 나쁘다고 하는 나의 분별심이

이런 대목에서

어떤 각성이 이렇게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다.

당연하다.

본질과 현상은 연기로서 불이이기 때문이다.

온갖 경계에 스스로 여여하며

이 여여한 마음이 곧 진실이다./

 

이걸 오조 스님이 가르쳤어요.

/신수는 번뇌를 없애자

갈고닦자,

부지런히 먼지를 털고 닦자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본질을 보지 못해

아직 분별심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조는 번뇌조차도

본질이 드러난 것임을 통찰하라고 일러주었다.

번뇌는 없앨 것이 아니라 통찰하여 지혜로 돌려 쓰는 것이다.

그야말로 번뇌 즉 보리다.

번뇌는 본질적으로는 의식이며

돌려쓰면 묘용이 된다.

공부의 일이라면

욕망을 돌려서 원력으로 만들어

보살행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

 

여러분, 욕망을 없애면 꼬장꼬장 말라 죽어요, 사람이.

욕망 없는 거는

그냥 물기 없는 거하고 같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이 욕망을 원력으로 돌려서

사람을 도와주는 쪽으로 그 욕망을 쓰는 거예요.

 

저는 요즘 이 나이가 되니까 그게 좀 느껴지거든요.

개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그 사랑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그러니까 이 에너지를 본질에 대한 사랑으로 돌리면

그 사랑이 모든 사람한테 촉촉하게 가서

도움을 주는 것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공부가

사랑하지 말라가 아니고

그 사랑을 더 높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이렇게 돌려쓰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모든 개체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근데 본질을 사랑하면

다 그냥 알아서 통해.

그래서 이심전심

본질에서 본질로, 의식에서 의식으로

그때가 정말 지고지순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참, 도반끼리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아.

그렇잖아요?

어떤 개인대 개인의 사랑이 아니라

본질대 본질로서, 서로 소통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

그렇게 되면 그게

그 사람과 그 사람...

 

그러니까 석가세존이 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 짓는 것이

두 분 사이의 문제를 넘어서서

온 인류한테 넘쳐가잖아요.

전등이 되잖아요.

불꽃이 계속 이어가면서.

 

그러니까 그런 불꽃으로서의 사랑

이걸 여기서 지금 이렇게 돌려쓰는

원력으로 돌린다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라면

생명력의 발휘를 피하지 않고 기꺼이 꽃 피워야 한다.

그것은 남을 돕는 일이다.

이 진실을 모르고

분별심에 휘둘려 고통받는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

이 공부의 목적이다./

 

제가 아는 식물학자

제가 아는 무궁화 학자인 류달영 선생님

제가 가까이 모셨어요.

이분이 참 좋은 일을 많이 하셨는데

고전 아카데미를 하셨기 때문에.

이 류달영 선생님이 저한테 일러준 하나의 가르침이

지금도 기억이...

이 대목에서 딱 맞는 가르침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한 인간이 자기의 생명력을 가장 활짝 꽃피우는 방법이 무엇인가?

식물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 인간이

자기한테 주어진 이 생명력을 가장 활짝 꽃피우는 방법은

남의 생명력이 꽃피도록 도와주면

자기가 가장 꽃핀대요.

지금 이 대목에서 딱 들어맞는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분이

당신의 개인 재산을 출현해서 문화재단을 만들어서

고전 교육을 했거든요.

하여튼 평생 성실하게 이 사업을 하고 가셨어요.

놀랍게도 그분이 80세에 그 일을 시작했어요. 80세에,

여러분 80세면

그만해야 될 땐데

그때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95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굉장히 행복하셨어.

 

한 인간이 자기의 생명력을 최고로 꽃피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꽃피우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선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이라는 말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먼저 선, 태어날 생, 날 생

먼저 태어난 사람의 사명.

 

제가 지금 그냥 하는 거 아니에요.

오랜 인생의 길을 걸어오면서

오랜 그런 뜻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진정하게 이루어지려면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의식이 각성한다

이것은 누구나 공감하는데

문제는 방법론이에요.

 

근데 그것이 의식이 각성하는 데 주체가 에고냐?

아니면 본질이 스스로 깨어나오느냐?

거기서 깨달음의 세계가 새로 열린다 이거예요.

 

망상 제거하자그러면 에고라니까 그게.

에고는 항상 이상을 앞세우면서 자기가 살아남아.

그러니까 진리를 구하고 망상을 제거하자하면서

그 뒤에는 에고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 둘 다 안 해야지 에고가 떨어져

쌍차 하자는 것의 타겟은

쌍으로 막자

나쁜 거라고 해서 미워하지 말고

좋은 거라고 해서 무조건 추구하지 말자고 하는 타깃이 뭐냐 하면

그래야만이 에고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아주 세게 말하면

부처를 구하는 것도 에고예요.

그리고 진짜로 또 더 세게 말하면

하느님을 구하는 것도 뒤에는 에고가 있는 거예요.

 

진정으로 그 에고를 놓았을 때

하느님하고 나가 하나가 되는 거지.

에고가 있는 한은

이 에고는 항상 따로따로 놀아.

쌍차로 끝나면 이게 좀 허무한데

안 끝나고 쌍차 뒤에는 쌍조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술 하는데도 거기에는 꽃이 핀다.

내 욕심만 없으면.

 

그러니까 참, 공부는 간단해요.

결국 에고를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는데

에고가 붙어 있는 거를 스스로 돌아보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결국에는 이상을 놓아야 돼요.

이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에고의 전략이에요.

그리고 지금도 현대인들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토로 하고 살아요.

 

현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본질일까요? 에고일까요?

에고예요.

그래서 이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더욱더 해야 되죠.

우리라도 해야 되지.

 

육조단경 1장에 게송이 4개가 나와요.

근데 그 게송 하나하나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성장.

영적인 성장을 가장 이 비유를 잘한 것이

눈이 떠져 간다.

 

인간한테는 5개의 눈이 있는데

영적 성장이라는 말은

눈이 하나씩 하나씩 떠져 가는 거다.

 

그러면 5개의 눈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물질을 보는 눈은 [육안]

몸에 달린 눈 육안

 

그리고 이 육안을 넘어서 [천안]

현상계 안에서 깨끗한 세계

그거를 인도에서는 천상이라고 불렀어요.

일반적으로 그쪽 표현을 쓴다면

하늘나라.

이게 현상계 안에서 제일 높은, 깨끗한 세계

그러니까 그 세계로 가는 것

그것을 천안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육안에서 천안을 뜬다.

 

현상계를 인도인들은 이렇게 봤어요.

현상계를

제일 아래에는 지옥

그 위에는 아귀

아귀는 아주 욕망으로 들끓는 세계

그 위에 축생

아주 어두운 이 동물들의 그런 무의식적인 상황

그 위에 아수라

아수라는 싸움을 좋아하는, 아수라

그 위에 선악을 함께 겪는 인간

인간이 6층 아파트에서 5층이야.

그게 꽤 고위층이에요. 인간도

근데 마지막은 천상

인간 위가 천상이에요.

 

5개의 눈에서

인간의 영적인 성장에서

상대세계 안에서의 지금 이 인간입장에서의 육안에서

천상이라고 하는

조금 더 상대세계 안에서는

조금 더 업이 가벼운 세계

그 세계로 올라가는 천안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근데 여기까지는 현상계 안의 문제예요.

본질로 넘어가잖아요.

한 번에 못 넘어가고

세 단계를 거쳐서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현상에서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혜안]

지금 육안, 천안, 천안까지는 현상계

근데 이제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이

처음에는 먼저 발견하는 것이 혜안

 

발견을 해도 여전히 나의 입장은 현상 속에 있어.

그러면 넘어가야 되잖아요.

넘어가는 과정에서 혜안

그다음에 빠져나온 것이 [법안]이에요.

혜안, 법안.

 

그리고 [불안]은 그런 빠져나온 입장에서

아직 몸은 있죠.

몸은 현상계 안에 있잖아요.

빠져나온 입장에서 이 몸을 가지고 사는 한은

이 현상계가 펼쳐지니까

이 속에서 최대한 남을 도와주는 삶.

벗어나는 것은 혜안, 법안인데

그 위에서 남을 위해서 이렇게 도와주며 사는 그 삶을

불안이라고 그렇게 불러요.

 

그래서 우리 공부가

영적 성장의 이 모습을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으로 딱 이렇게 정해서 하면

우리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공부가 되잖아요.

 

근데 이것이 놀랍게도 육조단경의 첫머리에

육안은 이미 뜨고 있어요.

우리가 다 육안은 가지고 있잖아요.

지금 잘 쓰고 있잖아요.

 

그러면 천안에 해당되는 게송

혜안에 해당되는 게송

법안에 해당되는 게송

 

다시 말하면 법안에 경지에 갔을 때 보이는 세계를 노래한 것

그리고 마지막 불안의 세계를 노래한 게송

이 네 가지 게송이 나오는 거예요.

 

근데 요 게송을 이렇게 보니까

이 게송만 가지고는

이 영적 성장의 전체 일정표의 가닥을 잡기가 어려웠는데

제가 지금 보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안이라고 하는...

오안이라는 말도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 딱 배대해서

이 게송은 천안에 해당하고

그다음에 혜안, 법안, 불안에 해당하는구나 하고 보면

이게 환하게 통해진다.

그리고 제가 뒤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 육조단경에 나오는 4개의 게송이 오안에도 해당되지만

우리가 화두 가지고 참선하고 있는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돈오, 점수, 돈수, 무오무수라고 하는 이 과정에도

똑같이 이 게송들이 다 똑같이 적용이 되고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이렇게 되면 육조단경에 나오는 게송을 가지고

오안도 해결되고

그리고 돈오, 점수, 돈수, 무오무수라고 하는 이런 논쟁으로

우리가 궁금해하던 세계도

그대로 정확하게 보여지고

또 하나가 십우도에 해당돼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영적인 성장이

이렇게 진행되는구나 하는 것을

지금 게송을 가지고

이 내용이 이렇게도 적용되고 저렇게도 적용되면

다 통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일정표를 쥐게 된다.

 

일정표를 쥐면 뭐예요?

가면 되잖아요, 그다음에는.

가면 되잖아요.

모르고 가는 거 하고

일정표를 딱 확보를 하고 가는 거.

그것도 하나만이 아니라

게송으로도 확보하지,

오안으로도 확보하지

십우도로도 확보하지,

돈오돈수 논쟁으로도 확보하지.

 

그러니까 이게 서로 다 통한다, 이거예요.

그리고 가져가면

우리 공부가 확신 속에서 갈 수가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