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선공부

[릴라선공부] 답답함이 일어나는 여기!

Buddhastudy 2024. 7. 1. 19:40

 

 

하려고 하니까 어려워요. 진짜 그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그러는데 잘 안 될 때 어렵다고 하잖아요.

 

알려는 마음 그 일어나죠. 알고 싶죠.

알려는 마음이 딱 일어나는 거기가 있거든요.

거기서 모른다는 생각도 일어나는 거예요.

 

거기를 가리키는 거지

이 자리를 가리키는 거지

뭘 알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뭘 모르는 일도 아닌 거예요.

 

알고 싶은 마음이 딱 일어나는 거, 느껴집니까?

거기라는 거야.

알고 싶은 마음이 탁 일어나는 여기라는 거예요.

 

대상이 아니고

알면은 대상을 아는 거고

진짜 가리키고 있는 거는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죠.

이 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이거를 떠난 일이 어디 있냐 이거예요.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데서

모른다라는 생각도 일어나고

답답함도 일어나는

답답함이 일어나죠.

여기라는 거예요.

답답함이 일어나는 여기

답답답답한 느낌이 일어나는 여기라는 거예요.

이거를 떠난 게 어디 있냐?

 

아이고 할 소리 그게 아니라

아이고 소리가 잘 나오죠.

아이고 이거라니까요.

 

이거 안 들려요, 진짜?

그런 경험이 있어요.

우리가 어떤 고민에 빠져 있다가

그 일에 갇혔을 때는 되게 큰일인 것 같고, 되게 큰데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해결해야 될 것 같고

그러다가 뭔가 그 일에 대해서

그게 아무 일이 아니라는 자각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문제가 진짜 내가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게 훅 풀려날 때가 있잖아.

내가 막 해결하려고 하다가.

 

그 순간 이렇게 가만히 보면은

나는 생각에 빠져 있었고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고

사실은 그 순간에 해소되고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었어.

그냥

소리도 잘.

 

내가 들은 게 아니고

, 소리도 잘 들리고 있었고

늘 변함없는 게 있었어요.

근데 우리는 그 생각에 빠져서

뭔가가 있다 없다, 해결해야 된다 해결하지 말아야 된다

빠져 있었는데

사실 나중에 딱 보면

그 생각도 잘 일어나고 있었어요.

내가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도

잘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게 소리가 잘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도 잘 드러나고 있었는데

내가 한다라는 생각, 문제가 해결 안 된다는 생각도 잘 일어나고 있었는데

잘 일어나는 그거

저절로 일어나는 그 있어요.

그 능력이 있어요.

 

저절로 잘 일어나는 그 능력을 다 갖고 태어나셨는데

그 일어나는 것들은

다 그림자와 같고

거기서 일어나는 것들은 다 망상들이라.

근데 망상에 빠져서

내가 한다, 이걸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 있었어.

 

그러면서 뭐야?

잘 저절로 일어나고 있는 그 한결같음만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다 없어.

고민도 없었고, 다 사라지고 없어요.

 

근데 그냥 잘 들리고, 잘 보이고, 그것만이 변함없는 거예요.

잘 일어난 생각에 라는 사람이 뭔가를

그 내용 자체가

내가 뭔가를 한다, 내가 하지 못한다.

그 생각이 잘 일어나고 있었어요.

 

잘 일어나고 있어.

진짜는 다 아무 일이 없어요. 진짜는.

진짜는 아무 일이 없어요.

우리 존재 자체가 훼손된 적도 없고

상처받은 적도 없어.

 

옛날 선사들은 그러거든

나를 때려봐라그러거든

나를 때려봐라.

 

네가 아무리 때려도 나는 맞지 않는다. 나를 때릴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진짜 나는 이 몸이 아니고

나라는 어떤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못 때려요, 진짜 자기를.

 

이 말은 뭐냐 하면

그 선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분 자신이 그렇다는 거거든요.

 

어느 누가 나를 훼손한 적도 없고

어느 누가 나를 상처를 준 적도 없고

어느 누가 나를 아프게 한 적도 없고

진짜 나는 이런 몸과 마음이 아니라 이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나를 구속할 수도 없고

어느 누가 나를 더 훌륭하게 띄울 수도 없고

더 낮출 수도 없고

어느 누가 나를 묶을 수도 없고.

 

이 얘기를 하다 보니까

여순 비구니 시가 생각나네.

이 사람이 제가 쓴 책에 나오는 조선시대의 비구니인데

그 비구니가 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불교가 억압을 받았잖아요.

근데 이 사실이 알려진 거야.

관아에, 조정에 알려져서 갇혔어요.

이상한 공부를 하고 그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의금부에 갇혔다 해야 되나?

고문을 할 거예요.

그래 감옥에 가둘 거야.

근데 그 사람은 이렇게 얘기해.

너희가 나를 가둘 수 있느냐 봐라.

나는 절대 의금부에 가둘 수 없다. 진짜 나는

그런 시를 남겼거든요.

 

진짜 나는 이런 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내 몸을 여기 가둬봐야

진짜 나는 갇히지 않는다.

온 우주를 삼라만상을 훨훨 돌아다니고 날아다니고 있다.

다 이것이다.

그런 시가 있어요.

그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했던 시대에

여성분이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이 공부를 해서.

 

그 시랑 아까 선사들이 얘기한

나를 때려봐라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그게 뭐냐?

여러분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고

이거는 분별 망상이고

이게 나야” “이게 몸이야하고 일어나고 있는 이 자리는

누가 가둘 수도 없고 묶을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어.

왜냐면 때리는 것도 이거고

묶는 것도 이거고

가두려고 하는 것도 이거라.

이거를 이 모든 경험에 앞서 있는

앞서 있으면서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이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본래 사실은 완전하고

본래 자유이고

본래 묶여 있지 않은 게

우리의 법성이고, 본성이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자꾸 습관적으로 사로잡혀

몸이 나아야

생각이 나야

일어난 생각이 자꾸 어두워지는 거예요.

그게 미세한 생각들에 더 잘 속죠, 우리가

 

몸이 나야

몸이 내가 아니라 몸이 나야하는 이거예요.

진짜 몸이 나라는 거는 분별이고

몸이 나야하는 이게 바로

이뭐꼬고, 뜰 앞에 잣나무고, 무 자이고, 속이고

뭐고 뭐고 뭐고 뭐고 뭐고 뭐고

온 우주 삼라만상이 이거라는.

 

그거밖에 없어요.

찾아보세요.

이게 아닌 거 있으면 여러분이 좀 보여주세요.

의심이 생기면

이거 아닌데하는 게 있으면 좀 갖다 주세요.

 

그거 없거든요.

우리 스스로가 밝게 보지 못해서

의심이 남아있는 거지

그게 있어서 의심이 남아있는 게 아니에요.